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본 글이다. 옛날에 애꾸눈 왕이 있었는데, 나라 안의 유명한 화가들을 불러 초상화를 그리라고 했다. 모든 화가는 어떻게 왕의 모습을 잘 그릴까 고민을 했다. 애꾸눈을 그대로 그린 화가들, 애꾸눈이 아닌 것처럼 정상적으로 그린 화가들 제각기 다양하게 그렸다. 그런데 임금님은 화를 벌컥 내면서 거짓으로 그린 것도 안 되며 애꾸눈인 자기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 또한 몹시 불쾌하다며 다른 화가를 찾았다. 많은 화가 중에 마침내 임금님의 마음에 흡족한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나타났다. 그 화가는 임금의 미소 띤 옆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

 

“폐하,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면이 있습니다. 폐하는 미소 짓는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왕의 신체적 단점을 극복하여 미적 완성도를 높인 초상화를 제작한 이 화가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대상을 진짜처럼 똑같이 그릴 줄 안다고 해서 다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대상도 아름답게 보고 묘사하는 능력이야말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사실 초상화의 등장은 원래 얼굴 정면이 아닌 측면을 그린 것으로 시작되었다. 인물 또는 사물을 대충 나타낸 그림을 실루엣이라고 한다. 원래 하나의 색조만을 사용해 만든 이미지나 도안, 또는 물체의 윤곽이나 윤곽이 뚜렷한 그림자를 의미했다. 실루엣은 종이를 오려서 그림자 초상을 만드는 것이 취미였던 18세기 중반의 프랑스 재무장관인 에티엔 드 실루에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흰 종이 위에 검은 종이를 옆모습처럼 잘라 붙여 만든 초상화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조지프 라이트  「코린토스의 소녀」  1782~1785년경

 

 

그렇다고, 실루엣을 만든 실루에트가 측면 초상화를 최초로 그린 사람은 아니다. 그 기원을 찾아보려면 미술의 역사를 더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벽에 비친 인물의 그림자 윤곽을 그린 코린토스 도공의 딸에서 측면 초상화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도공의 딸은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에 떠나보내야 하는 생이별의 슬픔을 견디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훈련소로 떠나보낸 남자친구의 사진을 지갑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곰신의 처지가 되었으나 그땐 사진이 있을 리가 없다. 멀리 떠나 있어도 애인의 얼굴이 바라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그래서 도공의 딸은 애인의 얼굴에 불빛을 비추어 나타난 그림자의 외곽선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이렇듯 서양의 초상화는 정면을 그리던 동양의 초상화와 달리 측면을 중시했다. 측면의 윤곽을 뜻하는 프로파일(profile)은 오늘날 특정 인물에 대한 단평이라는 뜻으로 더 알려졌다. 정면이 아닌 측면이야말로 한 사람의 특징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인식했다. 

 

모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멋있지 않은 모델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 모델을 정확하게 그리기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앞에서 언급한 동화 속 궁정화가는 화가 중에 극한직업일지도 모른다. 왕은 화가가 만나게 될 모델의 ‘끝판왕’이다. 권력자의 얼굴을 늘 바라보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은 화가로서의 재능과 배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Mission impossible)이다. 왕이 초상화가 마음에 든다면 더 많은 명예와 부를 얻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화가의 입지는 곤란해진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 부부」  1472년경

 

 

과연 이 그림의 모델은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프란체스카는 근엄하게 보여야 할 모델을 솔직하게 그리는 데 치중한 것 같다. 관객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의 매부리코와 검버섯에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약간 풀린 듯한 공작의 눈은 세상의 거센 풍파를 딛고 정상에 오른 권력자의 고된 여정을 말해준다. 화가가 공작을 무기력하게 그렸어도 한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자란 사실을 잊지 않았다. 공작 부부의 배경으로 공작이 소유한 땅을 그려 넣어 권력자의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프란체스카가 공작 부부를 서로 바라보는 설정으로 측면을 그린 것은 공작을 멋있게 그리고 싶은 화가의 배려이다. 공작은 마상시합 중에 오른쪽 눈을 다쳐 실명된 상태였다. 프란체스카는 공작의 오른쪽 눈이 드러나지 않도록 왼쪽 측면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공작의 부인은 자연스럽게 오른쪽 측면으로 그리게 됨으로써 부부는 죽어서도 그림에서나마 영원히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부부 초상화에 관련된 또 하나 슬픈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서로 마주 보는 공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어렴풋이 재현된다. 부부 초상화가 제작되기 전에 공작부인은 아들을 출산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화가는 부부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부부가 서로를 마주보도록 그렸다.

 

프란체스카가 못생긴 공작을 있는 그대로 그렸던 것은 오른쪽 눈을 잃고, 거의 다 늙어간 정도로 남성미가 완전히 상실된 공작의 곁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난 공작부인과의 고결한 사랑을 충실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듯이 찬바람같이 훨훨 들어오는 세월은 뜨거웠던 사랑 감정을 식게 한다. 이 공작 부부의 초상화는 단순히 권력과 부를 과시하려는 일종의 명예인증서라기보다는 고결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인증하는 멋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눈, 코, 입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정면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옆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옆모습은 우리의 눈을 이쪽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도록 은근히 유혹한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벨 것처럼 날카로운 콧대와 조각 같은 옆모습이 사랑받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다. 가짜 콧대와 가짜 눈으로 겉모습이 화려한 얼굴을 자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앉아 있는 거 

 

 

(안도현, ‘옆모습’ 중에서)

 

 

어쩌면 삶의 동반자와 백년해로하는 과정에 정작 옆모습을 소홀히 여길 수도 있다.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도 늘 바라보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점도 예쁘게 보인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에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옆모습에서 진솔한 매력을 발견하는 것은 정겹다. 옆모습, 옆모습, 자꾸 바라보면 시큰거린 옆구리에 사랑하는 사람의 옆구리가 있음을 가까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한, 꾸밈없고 진실한 그 옆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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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1-0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정겨운 얼굴이 좋아. 아주 미남이거나 아주 미녀보다는. 그나저나 우리 사이러스 얼른 연애를 해야 할 터인데_

cyrus 2015-01-03 20:30   좋아요 0 | URL
연애세포가 완전히 죽기 않기 위해 오늘도 글로 사랑을 논합니다. ㅋㅋㅋㅋ

댄스는 맨홀 2015-02-04 1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주는게 사랑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