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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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마법 거울은 참 신기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의 얼굴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준다. 거울로 인하여 백설공주는 계모 왕비에게 살해될 위험에 처한다. 계모 왕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기보다 어쩌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는 시기심이 많은 여자인지 모른다. 그래서 왕비는 매일 같이 거울에다 대고 누가 예쁘냐고 연신 묻는다. 거울이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라고 대답하길 원한다. 알고 보면 계모 왕비는 ‘답정녀’(답을 정해놓은 여자)의 원조이다. 그러니까 왕비 본인은 자신이 예쁘다는 착각에 빠졌다. 거울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말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한다.

 

거울은 원본을 모방한다. 누구나 거울을 보면서 앨리스처럼 거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야릇한 충동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 본 거울상은 진짜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는 현란하게 치장한 자신을 비춘 거울상에 일종의 도취를 느낀다. 계모 왕비처럼 거울을 통해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스스로 판결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미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타자를 배제할 뿐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부정적인 사실을 은폐하고 '나쁜 것'으로 몰아세운다.

 

 


 Scene #2  서경식이 들여다본 ‘미술’ 거울들

 

서경식 선생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펴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미술을 ‘거울’로 비유한다. ‘나는 무엇인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술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례를 시작한다. 과연 선생은 ‘미술’ 거울에서 무엇을 봤을까? 우리나라 미술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까? 일단 선생이 본 ‘미술’ 거울은 다음과 같다.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미희(나탈리 르무안), 홍성담, 송현숙은 지금도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미술’ 거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다간 화가 두 명,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과 월북 화가 이쾌대는 만든 지 오래된 ‘미술’ 거울이다.

 

그런데 선생이 보는 ‘미술’ 거울 중에 신윤복을 제외하면 나머진 우리에게 낯선 이름들이다. 심지어 우리는 이 ‘미술’ 거울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미술’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에 입양되어 지금도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한국계 화가 미희, 파독 간호사 출신의 재독 화가 송현숙 그리고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넘어가서 남한 땅에서 잊힌 이쾌대. 이들은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적이지 못한 미술로 배제되었다. 거울인데도 디자인이 조금 튄다는 이유만으로 거울들만 모아놓은 진열장에 놓이지 못한 채 하자품으로 분류되어 차가운 창고로 향하는 운명과 같다. 하자품 신세가 된 ‘미술’ 거울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 즉 한국적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본 이 ‘미술’ 거울들을 ‘우리 미술’로 포함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괴리감을 없애기 위해 애초부터 이 책 제목을 ‘나의 우리 미술 순례’라고 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의 의미가 내포된 ‘조선미술’이라고 사용한다. 원래 선생은 ‘우리’와 ‘미술’ 사이에 빗금을 넣어 ‘우리/미술’이라고 정하고 싶었다. 배타적인 자의식이 강화되는 ‘우리 미술’이라는 언어의 권위성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Scene #3  역사의 흉터를 비추는 ‘미술’ 거울들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초혼 1980」, 1980년 (왼쪽)

윤석남 「어머니 I : 열아홉 살」, 1993년 (오른쪽)

 

 

 

선생은 8개의 ‘미술’ 거울을 통해 질문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것은 곧 정체성을 되묻는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 속에 포함된 진짜 ‘나’를 찾는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8개의 ‘미술’ 거울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진짜 ‘나’의 정체성을 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의 흉터가 보기 싫어 일부러 거울을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슬픈 역사의 생채기로 인한 흉터가 많다. 일제 강점기, 골육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남북 분열, 5월 18일 광주의 역사. 깊게 팬 역사의 흉터를 보는 것은 차마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외면하거나 잊어선 안 된다. 몸에 남은 흉터도 ‘우리’ 몸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에게 분열과 고통, 공포를 줬던 아픈 과거도 ‘우리’ 역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의 흉터를 외면한다. 반면 아름다운 역사만 보려고 하며 자랑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만 비춰주는 왜곡된 ‘미술’ 거울만 들여다보면서 자아도취에 빠진다. 이런 ‘미술’ 거울들은 대상의 단점을 은근슬쩍 감추고, 장점만 부각해주는 계모 왕비의 마법 거울과 같다.

 

신경호, 윤석남, 미희, 송현숙은 역사의 흉터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화가들이다. 그들은 역사의 흉터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진짜 ‘미술’ 거울이다. 신경호는 광주 사람으로서 5.18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예술적으로 증언하고자 노력한다. 지금도 극우로부터 공격받고, 왜곡되는 가슴 아픈 역사를 예술을 통해 구출함으로써 잊고 여전히 역사 하나로 인해 분열된 ‘우리’의 본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윤석남은 위안부 문제에 ‘어머니’와 관련된 아련한 기억을 접목해 공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미희와 송현숙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6261번째 해외 입양인인 미희는 자신의 처지를 ‘한국 경제성장의 산업폐기물’이라고 과격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 말 속에 고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세계의 투명 인간들, 디아스포라의 아픔이 서려 있다.

 

 


 Scene #4  우리가 ‘우리/미술’을 ‘우리 미술’로 부를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선생은 8개의 ‘미술’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기보다는 끊임없는 타자와 대화하는 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일단 계모 왕비처럼 ‘미술’ 거울들 앞에서 질문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보고 싶고 익숙한 것들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 대신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을 향해 물어본다. ‘거울아, 거울아!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선생의 미술 순례는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빗금을 쳐놓은 ‘우리 미술’의 환상을 의심한다.

 

과연 우리가 ‘우리/미술’을 ‘우리 미술’로 부를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일단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상의 거울만 자꾸 들여다본다면 어떤 대상의 진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고 삐딱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은 살면서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보게 될까. 진실한 내면이 오롯이 남아있는 정체성일까 아니면 타자의 눈에 맞춘 거짓된 아름다움만 뽐내는 가짜 정체성일까. 진짜 나를 보았을 때, 한 점 부끄럼이 느껴져서 괴롭더라도 전자의 거울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거울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마주 볼 수 있는 진실한 물건이다. 이것은 곧 우리나라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진실을 외면하고 환영에 가까운 아름다움만 보여주려는 미술은 계모 왕비처럼 착각에 빠진 대중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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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4-12-2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책 보고 있는 중인데 리뷰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하게 잡히던 것들이 cyrus님의 리뷰덕분에 더 명확해지네요.

cyrus 2014-12-26 00:14   좋아요 0 | URL
긴 글을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서중인데 제 글이 의도치 않게 바람님에게 스포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바람돌이 2014-12-26 00:42   좋아요 0 | URL
지금 3분의 2쯤 읽었으니까 스포는 아니구요. ㅎㅎ

stella.K 2014-12-2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벌써 읽었네.
그렇지 않아도 서평단 신청 왜 안하지 했는데.
난 그저께 도착해서 아직 시작 안하고 있어.
서경식이야 워낙...!

cyrus 2014-12-26 14:01   좋아요 0 | URL
신청하고 싶었는데 그 책에 신청자가 너무 많았어요. ㅎㅎㅎ 운 좋게도 지난주에 도서관 신간코너에 서경식 선생의 책이 있어서 읽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