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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 복잡한 세상, 넘쳐나는 기기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평점 :
Scene #1 스마트폰에 푹 빠진 산만한 원숭이
우리 생활은 ‘스마트폰 라이프’라 해도 좋을 만큼 스마트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잊다. 아침에 눈을 떠서 화장실에 갈 때에도 이제는 신문 대신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간다. 먼저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을 간단하게 읽는다. 집이나 밖에서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친구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답글을 올린다.
최근 중독에 대한 개념은 약물중독 혹은 물질중독의 개념을 넘어 인터넷, 게임, 스마트폰에 이르는 '디지털 중독' 개념으로 확산하고 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거나 밥을 먹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달려가는 등의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스마트폰 사용 빈도가 높다고 생각하면 한국과학기술개발원에서 만든 ‘스마트폰 중독 자가진단법’으로 중독의 심각성을 확인해보면 좋다. 이 중 ‘그렇다’가 8개 이상이면 중독, 5~7개는 의심, 3~4개는 위험군이다.
옛사람들은 마음을 원숭이 같다 했다. 원숭이를 보면 온종일 꺅꺅거리고 고함치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 돌아다니며 종일 설쳐대지만, 하루해가 지고 나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시간만 보낼 따름이다.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스마트폰을 24시간 손에 쥐고 있는 우리는 원숭이처럼 무언가에 불안해하고 가만히 있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 알람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 ‘호모 디지털쿠스’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푹 빠진 산만한 원숭이’에 가깝다.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는 정말 아무 생각 없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Scene #2 멀티태스킹에 대한 오해
혹자는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에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트윗을 날리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한꺼번에 여러 작업을 하면 능률이 높아지는데 그에 비해 언론과 전문가들은 너무 문제점만 부각한다고. 이를 우리는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른다. 즉,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진행한다.
그런데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관해서 오랫동안 연구를 한 퓨처리스트 알렉스 수정 김 방은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멀티태스킹의 의미를 착각하고,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에 당신이 작업 시간이 꽤 오래 걸릴 듯한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상상해보자. 막상 보고서를 시작하려니까 벌써 싫증이 난다. 이 지루하고 끔찍한 작업을 얼른 끝낼 방법이 없을까? 당신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면서 보고서를 쓰려고 한다. 음악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당신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 것이다. 이제 보고서를 반 정도 작성하는 와중에 마침 친구의 카톡이 왔다. 내일 만나는 장소에 대해서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괜찮은 약속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보고서를 쓰다 말고, 인터넷으로 지도 검색을 한다. 이런 산만한 상황 속에 보고서는 하루 안에 다 완성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우리는 분명 멀티태스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사실 멀티태스킹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두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능률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또 다른 의미는 이것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작업 진행 속도가 느릴 정도로 비생산적인 작업 과정이다. 우리는 전자의 멀티태스킹을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얼른 끝내고 싶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 하고, 중간에 딴 일로 빠진다면 보고서 작업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다. 결국, 보고서 작성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멀티태스킹이 아닌 ‘스위치태스킹’(Switchtasking)이라고 해야 맞다. 두 가지 이상을 한꺼번에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번갈아 하는 것뿐이다. 특정 작업에 대한 집중력과 주의력을 떨어뜨리고, 작업의 생산성이 떨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가지 이상의 작업 진행 방식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인데, 사실 스위치태스킹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작업 진행 방식이 능률성을 보장해주는 멀리태스킹이라고 착각하는 자기 합리화에 빠진다.
스위치태스킹은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몰입을 방해한다. 특히 스마트폰은 우리가 흔하게 스위치태스킹으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길을 지나가면 두 눈은 스마트폰에 향한 채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나머지, 앞으로 다가오는 보행자나 통행차량을 보지 못한다. 집중력이 스마트폰으로만 향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동차 운전 중에 스마트폰이나 DMB를 보는 것도 위험하다.
Scene #3 스마트폰과의 얽힌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 때
그동안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기술 시대의 진화를 안정적인 견인해 왔다. 메모리의 용량이나 CPU의 속도는 약 1.5년에 2배씩 증가했다. 그러나 이제 그 시대의 의미가 서서히 무색해진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속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향상되고 있고, 그 속도가 예전보다 빨라졌다. 저장 용량이 더욱 커지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컴퓨팅 환경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반환경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와 IT 기기의 관계는 친밀한 연대성을 넘어서 이제는 구속에 가까운 ‘얽힘’(Entanglement)으로 형성되었다. 인간의 두뇌에서 탄생한 IT 기술이 역으로 인간의 두뇌역할을 대신하는 능력으로 발전되었다. 인간은 많은 양의 정보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없고, 망각하기 쉬운 동물이다. 반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기계 부품이 망가지지 않는 이상, 정보를 오랫동안 보관하고 기억한다. 우리는 사소한 정보마저도 외울 필요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는 스마트폰에 입력만 하면 저장되고, 전화를 걸기 위해서 숫자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스마트폰을 분실하면 자주 연락하는 친구의 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등장 이후로 우리는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일을 스마트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속도와 효율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변할수록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디지털 중독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당신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인터넷에 질 수밖에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우리는 집중 상태를 지속시키는 데 실패한다. 매 순간 정신 팔기 딱 좋은 놀이공원 규모의 가상 세계가 있는 것을 아는데 어쩌겠는가. (81쪽)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산만하고 집중력이 저하된 우리 마음을 원 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익숙한 물건을 잠시 멀어지게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마음을 산만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지 또는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즉, 나와 스마트폰과의 관계에 대해 재설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관조적 컴퓨팅’(Conterplative computing)이라고 한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 횟수를 줄이고, 정말 필요한 상황이거나 목적이 있을 때만 사용한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혼란한 마음을 잡기 위해서라면 명상과 산책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활동이 익숙해지면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제 우리 삶에 가족만큼 너무나 친숙해진 스마트폰과의 얽힌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 때다. 그 속에 갇힌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