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쓴 후성유전학 - 21세기를 바꿀 새로운 유전학을 만나다
리처드 C.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시공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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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환경으로 DNA를 바꾸다

 

우리 몸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유전자로 결정될까. 또 얼마나 많은 것이 환경이나 생활방식의 영향을 받을까. 흔히 사람은 타고난 모습대로 산다고 한다. 부모를 꼭 닮은 붕어빵 아이의 모습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유전물질을 물려주는 것은 자신의 생명 특성과 성질 대부분, 즉 DNA로 이뤄진 유전자 텍스트를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타고 난 자신의 모습이 탐탁지 않을 때, 흔히 DNA 탓으로 돌리거나 생겨먹은 대로 살 수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한다. 그야말로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인 셈이다. 실제로 많은 유전학자들이 성격이나 체질 등은 유전적으로 미리 결정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생명체는 모두 DNA의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자, 사람들은 이제 곧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생명의 신비가 드러날 것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오히려 ‘DNA가 생명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가설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등장한 ‘후성유전학’은 운명결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후성유전학자들도 생물학적 운명, 즉 육체와 정신을 주관하는 유전 프로그램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다만 유전에 관한 숙명론에 반기를 든 것이다.

 

2009년에는 최초의 후성유전자 지도가 완성됨으로써 인간의 유전구조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생활습관, 먹는 음식, 우리가 노출된 오염물질, 심지어 친구관계 등이 유전자의 발현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메커니즘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Scene #2  후성유전체가 우리 몸에게 전하는 것

 

후성유전학은 분자수준에서 일어나는 유전현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문용어도 그렇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 ‘흥분을 주는 과학’으로 불리며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후성유전자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대기근을 통해 후성유전적 영향의 역사적 사건을 파헤치는 식이다. 과학자들은 네덜란드 대기근을 겪은 특정 연구 집단을 비교함으로써 어머니의 뱃속에서 기근을 겪은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의 자식에게까지 기근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비유전자적 유전방식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충격적 내용이다.

 

후성유전학은 DNA에 달라붙는 생화학물질 ‘메틸기’의 패턴에 의해 유전형과는 다른 표현형의 변이가 나타나고 그것이 대물림된다고 본다. 아구티라는 쥐의 털 색깔에 관한 연구결과는 메틸화에 의한 대물림 현상이 포유류에게도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유전적으로 동일하지만, 아구티 유전자의 메틸화 패턴이 다른 부모에게서는 새끼들도 다양한 색깔을 지닌 채 태어난다.

 

세대를 초월한 후성유전은 생명의 연쇄 고리가 대를 넘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가장 직접적인 것이 게놈 각인이다. 이는 부모가 갖고 있던 후성유전적 표지가 자손에게도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되는 현상이다. 저자에 따르면 스웨덴의 외딴 동네에 사는 남자가 사춘기에 섭취했던 칼로리조차 그 손자들의 건강과 연관관계가 있다. 사춘기 이전에 기근을 겪었던 남자의 친손자들은 기근을 겪지 않은 남자의 친손자들보다 심장혈관 질환에 더 취약했다는 것이다.

 

생활방식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이 우리 몸의 세포에 새겨지기 때문에 유전형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분자생물학적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다. 후성유전체는 유전체에게 잠재력 중에 무엇을 활용해야 할지 말해주는 존재다. 즉 세포가 빠르게 노화할지, 느리게 노화할지, 쉽게 질병에 걸릴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생활방식 영양 인간관계를 개선하면 유전자를 조종해 체질 신진대사 인성을 바꿀 수 있다.

 

특히 후성유전학이 최근 과학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암 치료에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암세포의 유전자들은 메틸화 감소를 포함하여 메틸화 패턴이 독특하게 바뀌어 있다고 한다. 이런 결과로 정상상태에서 억제되던 유전자들이 활성화되는데, 종양억제 유전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주장은 혈액암의 일종인 백혈병 세포에 후성유전적으로 개입하여 정상 백혈구처럼 행동하도록 한 연구로 뒷받침되는데, 주목할 점은 백혈병세포가 정상화된 다음에도 염색체 재배열 상태는 되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성염색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발암물질들을 염색체의 이상을 일으키는 발암물질과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재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후성유전적 변화는 가역적이기 때문이다.

 

 

 

 Scene #3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후성유전학

 

후성유전학의 효과를 두고 저자는 다미앵 신부의 기적을 재평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벨기에 출신의 다미앵 신부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생을 바친 선교사다. 다미앵 신부가 성인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감동적인 선교활동에 더하여 전이암을 앓던 오드리 토구치라는 하와이 여성이 그의 무덤에 가서 암을 치료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암이 싹 나았다는 기적 같은 일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암의 후성유전학적 관점, 특히 미세환경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미앵 신부를 성인으로 인정할 근거가 약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환자의 면역체계가 알맞은 순간에 환자의 구조에 나선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환자의 지극한 소망을 담은 기도가 그녀의 암세포를 둘러싼 미세환경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암환자의 기도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요즘도 우리 주변에서 보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암치료법을 비싼 값으로 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는 암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하는 환자의 경험담을 입증자료로 내놓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완치된 환자의 경험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몇 건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무조건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치료효과를 나타냈는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치료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치료법을 파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완치된 사례는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오비이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환경에 영향 받은 후성유전에 의한 유전자 발현조절의 이상이 암, 치매, 정신분열증, 당뇨, 심혈관계 질환 등의 다양한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보고됐다. 그러나 이러한 질병을 유발하도록 하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한 정확한 조절기전과 환경적 요소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후성유전적 과정에도 무작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성유전학이 우리 운명을 한 번 결정해주는 진정한 맞춤 의학으로 보기에는 아직은 멀었다.

 

현재 생물학은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기존 관점들이 재고되고 있다. 우리 몸에 있는 유전자도 중요하지만, 환경 또한 중요하다. 우리 신체와 정신이 환경에 맞춰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서 건강한 삶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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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0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군요. cyrus 님의 충분한 설명 덕분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싶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몇 달 전에 '유전자공학'을 이용해 불치병을 치료하는 '바이오 생명공학 회사'를 직접 방문해 본 적이 있는데 '유전공학'의 발전 속도가 정말 놀라울 정도더라구요. 제가 가봤던 회사의 설립자 또한 그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던데(MIT에서 석사, 하버드에서 석사, 옥스퍼드에서 박사, MIT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쳐 하버드 의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모교로 돌아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분이더군요) 머지않아 획기적인 치료제들을 여럿 출시할 가능성도 있어 보이더라구요.

cyrus 2014-01-08 20:31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 조금은 어려웠어요. 유전학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의 구조와 성질을 먼저 알고 있어야하거든요. 다행히 책에 유전자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을 먼저 알려주고 설명을 시작해요. oren님이 방문하신 곳에서도 후성유전학과 관련된 실험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과학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발달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