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중략)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거닐어보는 것조차 금지했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인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그에게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응당 쉬어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길가에 쓰러진 이 망아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172~173쪽)

 

 

 

 

 Scene #1  너무 예민했던 젊은 영혼

 

문학 고전을 읽다보면 누구보다도 세상살이가 캄캄하고 답답하게 여겨지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는 인류 역사 이래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 당당히 주체로 서지 못하고, 늘 무언가에 이끌려 사는 듯한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면 사는 데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거기에다 가난과 질병 등의 개인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받은 이들에게는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때로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물음에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전부를 혹독하게 산산조각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는 나이와 지위, 시대를 불문하고 늘 따라붙는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누구나 삶에서 가장 예민한 시절이 있다. 하이틴 무렵이다. 영혼과 지혜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이 극대로 나타나는 시기면서도 동시에 억압의 굴레를 가장 수치스럽게 느끼는 때다. 순수 영혼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어린 시절에서, 삶의 굴레를 감당하게 되는 성인기로의 통과 과정이기 때문에 하이틴의 촉수는 그만큼 예민하다.

 

한스 기벤라트라는 젊은 영혼이 있었다. 그는 그 전환기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순수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그에게 억압의 굴레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가중되는 억압의 수레바퀴 아래서 가련한 영혼 한스는 그만 질식하고 만다.

 

책을 덮는데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더니 주인공이 죽은 것이다. 한스의 죽음을 그토록 허무하게 이끌고만 원인이 무엇일까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고도의 억압기제가 그를 신경쇠약으로 만들어서 그럴까, 마을에 사는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그를 충격으로 밀어 넣었을까, 급작스레 떠나고만 하일너의 실종이 그의 의지할 바를 없애버려서 그럴까, 자신의 수제자로 받아들이려고 하던 교장이 한스의 변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대를 포기하고 말아서일까.

 

어쩌면 그 모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게서 생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하게 한 건 애정 없는 기대감으로 꽉 찬 억압의 사슬이었으며, 누구나 다 타고난 바가 다르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권위 있는 자들의 경멸에 찬 눈빛이었다. 유일하게 맹목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간신히 마음을 얻고 세상을 좀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준 시인 친구는 생사를 알 수 없다. 총체적인 질풍노도의 소용돌이는 그를 연못 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던 것이다.

 

 

 

 Scene #2  주어진 길을 찾지 못하다 

 

한스는 학교와 사회라는 두개의 큰 수레바퀴 아래 깔려 절망하다가 안타깝게 죽어간 슬픈 영혼의 초상이다. 그가 자유로운 영혼의 비상을 꿈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에게 고통스런 번민이 찾아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역설이다.

 

금단의 정원, 비좁은 새장 안에서는 영혼의 위안을 받을 수 없었던 한스, 그래서 결국 영원히 자유로운 안식의 세계로 서둘러 떠나버린 한스. 학교와 세상에 드리워진 억압의 굴레가 조금만 더 느슨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지평이 좀 더 넓게 펼쳐져 있었더라면, 한스라는 젊은 영혼은 그렇게 죽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우연으로써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헤세의 의도가 아닐 것이다. 한스가 고향에서 발견한 것은 보통 사람 사이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었지만, 동시에 그것과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기도 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이 의도한 길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 또는 정신적 추구의 길이 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그것을 통하여 모두의 삶에 기여하는 것일 뿐이다.

 

헤세는 자신의 고등학교 중도 퇴학을 설명하면서 자기는 열두 살에 시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시인을 위한 정해진 길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스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행복을 발견함과 동시에 정신의 길이 자신의 길임을 새삼 깨닫게 되지만, 그에게 주어진 특정한 길을 찾지 못하다가 죽음의 길로 접어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헤세는 교육을 세속적인 출세에만 연결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통념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 결과 그는 교육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생각한 감이 있다. 그러나 『수레바퀴 아래서』의 체험적 기록이 교육의 근본에 대하여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Scene #3  수레바퀴는 지금도 굴러가고 있다

 

한스는 죽기 전에 갑갑한 세상에 대한 울적한 심정을 못 이긴 나머지, 흐리멍텅한 상태로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 시구를 읊조린다.

 

 

아, 나는 피곤합니다.

아, 나는 지쳤습니다.

지갑에는 돈 한 푼도 없고,

주머니에도 없습니다.

(183쪽)

 

 

한스는 성공을 강요하는 세상에 지쳤고 피로을 느꼈다. 지갑에는 돈 한 푼도 없고, 주머니에도 없다. 그뿐만 아니다. 한스가 돈이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다. 그는 꿈도 없었다. 인생이 달린 입시 제도에 지쳐 열정과 꿈이 없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슬픈 시구다.

 

시대가 변했으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도식이 있다면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원래의 나를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치스런 놀음이며, 우정 또한 성공에 저해가 된다면 끊어야 하는 것이며 오로지 믿을 바는 신격화된 우상에의 복종과 권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우상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권력이거나 돈, 지위나 명예, 인기나 몸과 같은 표면적 허상 같은 것들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그에 따른 불이익도 달게 받아야 한다는 것. 사회는 그런 자를 신경 쇠약이거나 의지 박약, 정신 착란 등의 이상증후군 환자로 진단하고 판명하여 제 집으로 보내버린다는 사실이다. 한스의 죽음은 우연을 가장한 명확한 사회적 타살이다.

 

독일어의 직업이라는 말, ‘Beruf’에는 부름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교육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부름의 소리를 듣고 그에 따라 자기 형성을 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것은 또 직업의 부름에 맞아야 한다. 이 과정은 책만으로 또는 시험공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와 장인적 수련, 거기에서 오는 삶의 기쁨. 이런 모든 것이 자기형성에 관계된다. ‘수레바퀴’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아득하기만 한 이야기로 들린다. 수레바퀴는 지금도 여전히 굴러가고 있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하다 하더라도 꿈을 꾸는 자들의 마음은 늘 따뜻했으면 좋겠다. 인간이 타고난 바가 다 다르듯이 꿈도 사랑도, 삶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돈이나 지식, 외모만으로 한 인간을 단정 짓지 말고,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자신이 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새해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노력 부족으로 이어지는 나태함의 문제로만 치부해야 할까. 자유로운 꿈을 꾸지 못하도록 눈치를 주는 기성사회의 시선이 열정이 넘치는 젊은 영혼을 무력하고 무능한 몽상가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지지하고 믿는다면 혹독하게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올해 새해 소망으로서 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다는 말이 특정인에게만 적용되는 한낱 구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부모님들, 아니 어른들. 젊은 친구들의 꿈을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걸 이루기 위해서 진심으로 도울 마음이 없다면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제발 젊은 친구들에게 꿈이 뭔지 물어보지 말기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4-01-0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되세요.

젊은 친구들 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꿈이 뭐니... 하고 쉽게 물어볼 문제가 아닌거 같아요.
기성 세대 역시 자신의 꿈을 이루었는가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괴로와하니까요.
그만큼 자신에게 만족하고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날이 화창하고 따스하네요, 올해가 이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cyrus 2014-01-06 02:32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마고님~ 어느 정도 삶의 목표를 잡아야 하는 철들 나이가 되었는데도
가끔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가 찾아오네요. 그래도 스스로 마음 추스리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즘 날씨가 참 좋네요. 당분간 또 날씨가 춥다던데 감기 조심하세요 ^_^

아이리시스 2014-01-0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이 책 읽었어요, 유년시절에나 읽었을 법한데, 저는 헤세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야 조금씩 다가오는 걸 보면. 무척 재미있었고, 결말에 놀랐어요,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데미안>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고, 다른 작품도 좀 더 천천히 기회를 봐야겠어요.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다시 한번 인사해요. 감기 조심하구요^^

cyrus 2014-01-08 21:01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이번에 지금까지 번역된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어보려고 해요. 요즘 알라딘 중고샵에 가면 헤세가 쓴 책 몇 권 구입하곤 해요. 이제 <게르트루트>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크눌트><데미안> 순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