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더 구름을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보여주오!" (22쪽, 민음사)

 

 

헤세는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 자신의 구름 사랑을 예찬했다. 보들레르도 산문집 『파리의 우울』 첫 번째 시 ‘이방인’에서 노래했다.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지나가는 저 구름……저기…저기…저 찬란한 구름을!’ 구름을 사랑하는 시인이 많다.

 

 

 

 

 

 

 

헤세의 구름 사랑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인『페터 카멘친트』뿐만 아니라, 초기 시에서도 볼 수 있다. 헤세의 첫 시집은 1899년 『낭만적인 노래』로 그가 18~21세 때 쓴 시들을 모아서 수록했다. 헤세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구름을 즐겨 봤고, 관찰했을 것이다.『페터 카멘친트』가 1904년에 출간된 사실을 생각해보면 ‘구름’을 바라보는 헤세의 시점이 습작 시기에 맞물려 있고, 시와 소설을 비교하면 구름을 사랑스럽게 묘사하는 분위기면에서도 상당히 유사하다.

 

 

파란 하늘에, 가늘고 하얀

보드랍고 가벼운

구름이 흐른다.

눈을 드리우고 느껴 보아라.

하얗게 서늘한 저 구름이

너의 푸른 꿈속을 지니는 것을.

 

 

- 헤르만 헤세 「한 점 구름」(『헤르만 헤세 시집』21쪽) -

 

 

구름은 시인들의 몽상을 자극하는데, 헤세는 구름의 몽상을 따라가지 않고, 구름의 본질과 기질을 캐고자 한다. 오랜 관찰 끝에 시인이 바라본 구름은 고향에 대한 향수와 청춘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이방인의 영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구름은 모든 방랑, 모든 탐구, 갈망과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수줍어하고 그리워하며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시간과 영원성 사이에서 매달려 방황한다. (23쪽, 민음사)

 

시인은 자기가 구름에 대해 확실히 아는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새파랗게 맑은 하늘은 구름이 생성과 소멸을 또렷하게 펼쳐 보이는 스크린이다. 시인은 중얼거린다. 구름, 너 역시 쓸쓸하구나. 허공에서 태어나 허공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구름. 소년 헤세가 바라보는 구름은 이렇다.

 

 

 

 

내가 나 자신에 질문한다. 최근에 구름을 본 적이 있는가. 요즘 나도 그렇다고 손들고 싶다. 가을하늘 못지않게 아름다운 게 사실 비 오고 난 후의 구름이다. 흰색의 물방울체가 파란색을 바탕으로 벌이는 그 다채롭고도 깊고 선명하면서도 아득한 변화와 이동의 장엄. 자연 속 최고의 창조물이 아닐까 싶다. 인생무상(無常)의 덧없음이 아니라 인생과 자연이라는 거저 주어진 무상(無償)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다.

 

그런 구름을 어린 시절엔 자주 올려다봤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곧잘 그렇게 거꾸로 올려다봤던 구름들은 하늘이 두 발을 받쳐주는 땅이기도 함을 어린 머리에도 깨우쳐주곤 했었다. 그런 놀이를 더는 하지 않게 되면서 어린이라는 순수한 시절과 결별한 게 아니었을지.

 

어른이 되어 낮의 하늘로 고개를 드는 때는 애써 눈물을 감춰야 하거나, 날씨를 확인할 때 정도뿐이다. 낮의 일상은 어른에게 우두커니 고개를 젖히거나 누워서 구름의 변화나 흐름 따위에 눈과 마음을 주게 하지 않는다. 사실 밤하늘의 별보다 더 올려다보기 힘든 게 낮의 구름이다.

 

 

 

 

 

 

 

 

 

 

현대 이전에는 어른들도 그렇지 않았다. 1803년 루크 하워드라는 허름한 차림의 한 약사 출신 젊은이가 당시 유행하던 과학발표극장에서 구름을 적운 권운 층운 같은 유형으로 나누고 이름을 붙였을 때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열광했다. 하워드의 발견이나 작명 자체보다 구름에 대한 그들의 열광이 기상학에 역사적인 방점을 찍게 했다.

 

재상이자 시인이었던 괴테는 '구름을 분류한 사람'을 일부러 초청해 만나고 '하워드를 위하여'라는 구름처럼 풍성한 헌시를 쓰기도 했다. 풍경화의 역사를 시작한 화가 존 컨스터블도 하워드의 구름에 영향을 받아 저 유명한 구름 그림들을 그렸다. 구름은 그 전에도 있었으되 구름에의 새삼스런 열광이 한 시대의 과학과 예술 전체를 새로이 드높인 것이다.

 

컨스터블은 유독 구름을 주제로 한 습작을 많이 남겼으며 그의 풍경화에는 지상의 구름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다. 그는 실제 자연보다 더 그럴듯하게 그리는 것을 거부했는데 아마도 그는 찬찬히 하늘의 구름과 날씨와 바람을 꼼꼼히 관찰하면서 일지에 적었을 것이고 그보다 더 오래 정성껏 그림들을 다듬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인 모네는 순간 변화하는 빛의 흐름을 일순간에 포착해 캔버스 위로 옮기고자 노력했다. 모네의 작품은 대부분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외광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어두운 색감 위에 밝은 색채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자연을 감싸고 있는 대기의 미묘함이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인 분위기와 그 느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묘사되었다. 폭풍에 흔들리는 나무나 출렁이는 물결, 그 물에 비친 검푸른 구름이 지금도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듯 다음 순간과 느낌이 상상된다.

 

도시의 하늘은 온통 뿌연 회색하늘뿐이라지만 요즘 내가 본 찬란한 구름들은 대부분 대학교 캠퍼스에서 본 것들이었다. 희뿌연 도시에서 살짝 벗어난 교외로 가서 문득 고개를 젖히고 걸음을 멈추며 새털, 뭉게, 비늘, 면사포 같은 모양의 구름들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구름이 되지 못한 물방울이 만든 투명한 무지개 빛깔도 본다.

 

 

 

 

 

존 컨스터블  「구름 습작」 1822년

 

 

긴 여로에서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스스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해나 바다나 바람과 같은

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누이들이며 천사이기 때문에.

 

 

- 헤르만 헤세 「흰 구름」중에서 (『헤르만 헤세 시집』65쪽) -

 

 

 

청년기에 마주하는 구름은 마음에 품은 꿈과 방황과 방랑의 가치를 꼽아보게 한다. 장년기의 구름은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순백할 수 없었던 날들에의 고백과 겸손에 마음을 여미게 한다. 구름의 시인 헤세는 또 말한다. 방랑의 기쁨과 슬픔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헤르만 헤세  「계곡 풍경」 1930년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양을 보면 온갖 상상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모습이 연상되는가 하면, 그리운 사람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도 같고, 영락없는 천상의 그림이라는 생각도 든다. 때때로 먹구름이 몰려오면 금세라도 저주를 퍼부을 듯하다. 한 군데 머물지 못하고 늘 이동하는 구름을 우리네 삶에 빗대어 인생무상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는 구름을 두고 향수, 낭만, 방탕, 원망이라고 했나 보다.

 

구름은 그 부드러운 기운이 지상까지 전해져 땅의 무거움을 들어 올려 주는 것 같다. 우리가 지상에서 마주치는 생활의 무거움을 기중기처럼 가볍게 살짝 끌어준다. 지상에 내린 구름 그림자는 구름 발자국과도 같아, 침묵의 언어로 잠시 동행하는 친구가 된다. 먹구름은 먹구름대로, 슬픔과 우울함이 없는 삶은 기괴한 삶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구름의 귀한 존재감은 현실을 벗어난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러고는 진짜 삶이 어떤 것인지 살짝 맛보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름이 현실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름은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 우리는 구름의 존재를 가끔 잊고 살 뿐, 구름은 현실의 머리 위에 있다. 구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하늘과 우주까지 보는 시야를 확대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하늘을 봐야 구름도 본다. 하늘은 누워서 보는 게 제격. 방바닥에라도 누워 유리창을 올려다보자. 통유리창이라면 더 좋겠지만, 작은 유리창 한 장도 충분히 하늘을 담는다. 사람 등짝만 보지 말고, 잠시 고개를 젖히고 하늘 위에 있는 구름을 다시 보자, 구름을 이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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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3-11-1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늘을 자주 쳐다본답니다, 늘 그렇고 그런 일상에, 쉼표를 찍는 의미루다가...ㅋ~.
대낮의 하늘은 햇살 땜에 눈을 잠시 찌푸리게도 되지만,
밤에 조각달이나 눈썹달이라도 걸린 하늘을 바라보면,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 좋아요.

헤르만 헤세는 그림도 좋군요.
님 덕분에 제 눈이 호사네요, 감솨~(__)

cyrus 2013-11-11 21:06   좋아요 0 | URL
가끔 캠퍼스 혼자 걷다가 하늘 위의 구름을 보는 순간, 콱 막힌 마음이 뻥 뚫려요. 나무꾼님 말씀대로 고요한 밤하늘도 좋아요. 하늘을 볼 수 있는 작지만 여유로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참고로 헤세의 그림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에 수록되어 있어요.

수이 2013-11-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네의 이 감수성이란-

cyrus 2013-11-11 21:06   좋아요 0 | URL
가을이니까요~ :)

프레이야 2013-11-1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무상으로 보는 게 많은 계절입니다.
구름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방법 얻어 가네요^^

cyrus 2013-11-13 00: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구름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여유로운 가을 보내세요 :)

그렇게혜윰 2013-11-1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그림 참 좋아해요!
오늘은 나가면 구름으르 잘 만나 봐야겠어요^^

cyrus 2013-11-13 00: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요즘 가을하늘 좋을 때죠.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헤세 시집에 수채화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책 광고는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