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채널e - 어느 독서광의 일기

 

 

 

 

Scene #1

 

 

 

 

 

 

 

 

 

 

 

 

 

 



벡곡(栢谷) 김득신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백이전’(伯夷傳)을 총 11만 3천 번이나 읽을 정도로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기로 유명한 조선의 문인(文人)이다. 김득신의 아버지는 아들이 노자처럼 훌륭한 학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어린 김득신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제대로 된 내용 하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썩 총명하지 못했다.

 

주위 이웃과 친지들은 김득신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아버지만큼은 아들의 능력을 굳게 믿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믿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김득신은 오로지 책만 읽었다. 이때부터 책 전체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결국 59세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아버지가 그렇게 바라던 성균관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40년 간 책을 읽고 나서야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김득신의 묘비명에는 이러한 글이 쓰여 있다.

 

"재주가 남보다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그러니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Scene #2

 

 

 

 

 


 

 

 

 

 

 

김득신의 반복 독서법도 대단하지만 그가 그토록 열심히 읽었던 ‘백이전’을 쓴 고대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도 김득신 못지않게 무수한 인고(忍苦)의 노력 끝에 뒤늦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낸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물이다. 사마천의 아버지는 천문과 역법을 주관하고 황실의 도서 관리를 담당하는 벼슬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방대한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사마천에게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해줄 것을 부탁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사마천은 아버지처럼 황실 도서를 담당하는 관리가 되어 그 곳에서 본격적으로 <사기>을 편찬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중국과 전쟁을 치루고 있었던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그만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사마천은 일생 일대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한 순간에 대역죄인으로 몰리고 말았다. 황제는 사마천에게 사형을 내렸지만 그 당시 중국에서는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 하는 것, 또 하나는 벌금을 낼 수 없다면 궁형(宮刑)을 받아야했다. 궁형은 남자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형벌이다. 그 당시 궁형은 중국에서는 가장 치욕스러운 형벌 중의 하나였다. 사마천은 어떻게든 사형을 피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유지를 계속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벌금을 낼 경제적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어떻게든 벼랑 끝에 몰린 삶을 부지하기 위해서 궁형을 선택했다. 사마천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맡은 벼슬보다 한참 낮은 환관(내시)로 좌천되어야만 했고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아 운신의 폭도 그리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사마천은 세상의 멸시와 핍박 속에서도 <사기>의 저술을 멈추지 않았으며 마침내 필생의 역작 <사기>를 완성했다. <사기>의 규모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모두 130권, 52만 6천 5백자. 34세 때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5년 만에 완성했다.

 

 

 


Scene #3


김득신과 사마천, 공통적으로 이 두 사람은 아버지의 소원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일에만 충실히 노력했으며 오랜 노력의 시간을 통해 하나의 목표를 끝내 이루고 마는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주위의 냉담한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그들의 시선에 맞춰 한계를 두지 않았다. 김득신의 묘비명대로 결국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표의 달성 여부는 그것을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계를 스스로 안다면 그것 또한 옳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자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놓고 애초부터 할 수 없다고 체념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를 해선 안 된다. 그것은 결국 미련하고 게으른 자의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2-08-2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네요. 사마천의 일화는 예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cyrus 2012-08-27 22:07   좋아요 0 | URL
두 사람 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죠. 항상 이런 일화를 접하게 되면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맥거핀 2012-08-2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득신을 그냥 조선의 문인 중의 하나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배경이야기가 있는 인물이군요. 덕분에 하고자하는 일에 있어서 좀 힘이 생겨나는 듯 합니다. 59세의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다라...
(cyrus님 잘 지내시죠?)

cyrus 2012-08-27 22:10   좋아요 0 | URL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개학이라서 좀 놀면서(?) 개강 준비하고 있습니다 ^^;;

2012-08-28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6-11-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광불급... 백곡 김득신의 이 책도 읽으셨군요... 리뷰 찾아 읽다보니 cyrus님의 리뷰들이 눈과 마음에 맴맴 도네요.

cyrus 2016-11-04 14:24   좋아요 1 | URL
《미쳐야 미친다》가 2004년에 나왔으니 저는 그때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 해에 이 책을 읽었고, 전역한 뒤에 또 읽었습니다.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들 중 한 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