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나도 모르게 돈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p 19)
* 올해 하반기부터 지정좌석제로 운영하는 정기이용권 버스가 시범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기이용권 버스는 1개월 이상 이용권을 구매한 승객을 대상으로 출근시간대 3시간(오전 6~9시), 퇴근시간대 5시간(오후 5~10시) 동안 좌석제로 운행된다. 하루 운행 횟수는 편도 기준 4회 이하다. 예컨대 일산에서 서울역까지 오가는 버스의 정기이용권을 구입하면 매일 지정장소와 시간에 좌석버스를 타는 식이다. 요금은 지역 여건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자율신고제 방식으로 운영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과거 불법 사설 버스가 경기 용인에서 서울 삼성역까지 월 9만 9000원을 받고 운행한 적이 있으나, 정기이용권 버스 비용은 이보다 낮은 수준일 것"이라며 "일부 승용차 이용자들도 흡수해 대도시 교통난 완화에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인천지역의 일부 중등고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잘 치르면 상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들 학교는 기초학력 부진 학생이 없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급에 상금을 주고, 기초학력 부진에서 벗어난 학생에게 1만원짜리 상품권을 지급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리고 성적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학생은 자전거, 헤드폰, 선크림 등을 부상으로 받기도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에 따르면 일제고사를 잘 보면 학급에 상금을 지급하거나 학생에게 문화상품권을 주겠다고 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조사 대상 96개 학교(중학교 54곳, 고교 42곳) 가운데 22%인 21개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 최근에 방한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청중 1만 명을 대상으로 무료 강연을 펼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샌델 교수의 강연을 돈으로 사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웃지 못할 역설이 발생했다. 이번 강연은 이메일로 신청자를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무료 입장권이 지급됐으며, 신청자가 폭주하면서 입장권 발송이 조기 마감되었다. 하지만 신청이 마감된 입장권을 구하려는 사람이 여전히 많자, 이번에는 입장권에 웃돈을 얹어 팔려고 내놓은 암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강연 당일 인터넷 중고장터 등에는 샌델 교수의 강의 입장권을 장당 1만 원에서 많게는 3만 원까지 판매한다는 판매 글이 수 십 개씩 올라왔다.
돈은 편리하다. 또한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돈의 권력은 막강하다. 일상생활의 웬만한 불편거리는 대부분 돈으로 해결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어울릴 만큼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돈을 그만큼 많이 벌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이제 한국사회는 시장지상주의에 익숙해진 듯하다. 하지만 돈을 대하는 태도는 어쩐지 불안하고도 이중적이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시장지상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낼 자신도, 피해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상에는 이렇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많다. 생명, 질서, 출생, 자연과 같은 가치들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샌가 돈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고 있다. 일정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얼마든지 지정된 버스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출퇴근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만 잘 쳐셔 좋은 성적을 받게 된다면 노력의 성과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일정한 상금 및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샌델 교수의 강연 입장권마저도 거래 대상이 되었다. 후문에 의하면 강연 당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샌델 교수는 그저 쓴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이루어진다?
(左)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경제를 주장한 애덤 스미스
(右)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를 창시한 제레미 벤담
시장을 옹호하는 두 번째 주장은 경제학자에게 좀 더 친숙한 것으로 공리주의자(Utilitarian)의 입장이다. 공리주의자는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중략) 이렇게 시장 거래의 결과로 구매자와 판매자는 모두 행복해지고 효용은 증가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시장이 재화를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장이다. (p 52~53)
시장경제 또는 자유주의 경제체제(시장자유주의)는 분업에 의해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자유 가격 체제의 수요와 공급 관계에 의해 분배하는 사회구성체이다. 실제로는 순수한 형태로서의 시장경제체제는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각 국가 또는 사회마다 다양한 형태로 수용되고 있다. 시장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모든 경제주체의 생산활동은 자유로우며, 시장에서의 물품구입도 자유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같은 흐름을 일견 너무 자유로워 무질서한 경제활동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가격이라고 하는 메커니즘이 시장에서의 상품매매를 성사시키고, 또 이것을 근거로 생산과 소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의 특징은 장기적으로 보아 가격의 자유로운 흐름에 따라 자원의 합리적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시장자유주의 경제는 매우 효율적인 경제 체제이기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경제적 효율성은 달성할 수 있지만, 형평성은 달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리고 시장자유주의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고 타고난 능력과 소질도 제각기 다르므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평성 문제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적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다.
공리주의적 효용 분배의 문제점
(참고자료 : 김정헌 『정책학NOTE』학문사)
공리주의에 입각한 정책(또는 제도) B의 전체 효용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갑과 을이라는 사회 구성원 개인 간의 배분상 문제는 외면하게 된다면 정책 B는 불평등한 정책이 되고 만다. 이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를 강조하는 공리주의의 기본전제에 위반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역설은 시장경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시장자유주의의 환상을 부추기는데 공리주의가 일조하고 있다.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근거의 배경에는 공리주의적 입장이 내포되어 있다. 공리주의는 한마디로 사회구성원 전체 효용을 극대화하도록 목표를 두고 있는데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시장 거래 행위에 참여하는 구매자, 판매자만 효용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발전에 있어서 효응을 최대한 증진시켜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각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뜻대로 추구하고 있는 동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상상치 못했던 사회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봤던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 묘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시장지상주의자들은 공리주의의 원리가 친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리주의 역시 시장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효율 분배에 대한 형평성 및 공정성의 기준으로 본다면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 효용의 극대화라는 기본전제로 인해서 개인상호간의 효용을 교환하는 것마저도 허용하고 있다. 즉,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내용대로 도덕적 추구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자유, 정의, 공익, 생명 등이 효용의 한 구성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전체 효용이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개개인간의 배분이 제대로 돌아갔다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즉, 개인간의 효율배분이 불평등하더라도 전체 효용의 극대화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들 간의 차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공평성 또는 형평성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위에 제시한 표가 의미하는 것처럼 공리주의에 입각한 정책(또는 제도)이 전체 효용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갑과 을이라는 사회 구성원 개인 간의 배분상 문제는 외면하게 된다면 그 정책(또는 제도)은 불평등한 성격이 되고 만다. 이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를 강조하는 공리주의의 기본전제에 위반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역설은 시장경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소개된 사례 하나를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에서는 '전담 의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연회비 1500~2만 5천 달러를 지불하여 서비스에 가입한 환자는 불필요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24시간 내내 언제나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말 그래도 환자에는 '주치의' 한 명을 두고 있는 셈이다. 내용과 취지만 본다면 환자들이 좀 더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연회비를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에게만 가능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환자들은 진료 받기를 대기하고 있는 또 다른 환자들과 함께 진료실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들도 질 좋은 진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라면 비싸더라도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여 특별 진료 서비스 예약권이 암표로 판매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전담 의사 제도가 진료를 받기를 원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전체 효용을 가져다주는 좋은 장점의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제도는 단지 특정 상류층 계층만을 위한 '주치의' 서비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들의 윤리적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에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선서 속 내용이 무색하게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도덕적 윤리가 퇴색될 수 있다.
도덕적 가치와 덕목은 상품이 아니다
1980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조세감면과 사회복지지출를 억제하여 '작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시행함으로써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시장지상주의의 번영을 알리는 서막의 신호탄으로 애덤 스미스의 초상화가 새겨진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시장자유주의가 오랫동안 경제 호황을 가져다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을 이끌어낸 시장자유주의는 인류가 미처 그 다음을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인간사회 자체를 거래가 최선의 행위로 강조하는 시장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재화를 사고 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제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윤리적 딜레마들은 대부분 저자가 태어난 곳이며 이미 시장경제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책의 서론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장경제의 윤리적 딜레마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답게 거래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일부 도시에는 죄수가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호텔방 못지 않은 독방을 마련해주는 교도소가 있다. 댈러스에 위치하는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돈을 지급해준다. 심지어 어느 명문대는 학생의 성적이 나쁘더라도 부유한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명문대로 입학하기 위한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면 입학을 허락해주는 비공식적인 관례(?)도 있다고 한다. ('관례'라기보다는 '청탁성 뇌물'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윤리적 딜레마의 사례들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시장경제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윤리적 딜레마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시장중심적 사고를 일상생활에서도 흡수하고 있다. 아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이미 잠식당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 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p 177)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게 되면, 시민정신, 관용,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사회의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 사라진다. 샌델의 말처럼 이 윤리적 덕목과 가치들은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근육이다. 올바른 삶의 질로 이루어진 '근육'이 균형잡혀야 '사회'라는 신체가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다. 하지만 근육은 오랫동안 운동하지 않는다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된다. 이렇듯 삶에서 중요하고도 가치로운 것이 상품화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정한 것들의 가치가 변질되거나 저평가되어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시장가치를 내면화하는 경향은 삶의 질, 맺어온 관계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의 대상이 아닌 '사물'로 인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시장 중심의 사고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센델은 시장경제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도덕적, 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로 인해 공적 담론에서 도덕적 에너지와 시민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시장경제의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딜레마는 빠른 시일 내 해결하기는 무척 어렵다.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이익과 효용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 또한 외면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문제를 인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다. 우선 시장의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하여 시장의 가치에 의해 침해받고 있는 공공의 가치가 무엇이며, 그러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적 토론을 벌임으로써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토론 여건이 필요하다. 공공의 영역으로 중요시되는 교육, 의료, 시민권 등은 돈과 시장의 가치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공공선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정치를 밀어내서는 안 되며, 공공선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견이나 생각을 이끌어내는 공적 토론이 필요하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논의와 시장에서 가격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되는 사회적 재화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공적 토론을 통해 적어도 우리가 선택했고 적응하고 있는 사회의 이면에 대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