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자발적인 교양 공부를 하지 못하는 대학생들

 

개학날을 코앞 둔 며칠 전에 오랜만에 안부 인사할 겸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그 친구와 10여 분 간 정도 전화를 하다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이야기나 나왔다.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내일 모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있는데 안 올래?'  그 친구가 학과 생활을 하지 않는 나와 깊은 친분이 있어서 예의상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어차피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학과 생활 안 하는 아웃사이더가 갑자기 신입생들이 모이는 곳에 간다는 게 나나 학과 학생들 입장에서는 서로 어색하면서도 눈치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를 화제를 돌릴 겸 오리엔테이션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후배들이 신입생들 시간표 짜냐?"  친구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신입생 시간표 짜는 거 간단하고 말했다. 신입생들이 수강해야 할 단대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시간표를 만들면 된다고 했다. 나는  '시간표 짤 때 교수님이나 조교 선생님들은 가끔 조언도 해주시냐? " 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듯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입생 시간표는 선배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통화를 끝나고 난 뒤, 문득 다른 대학교 신입생들이 시간표를 만드는 방법이 궁금했다. 우리 학과처럼 타 대학교 학과도 직접 선배들이 손수 만들어 주는 것일까? 

 

학칙에 의하면 신입생이 수강신청을 하거나 시간표를 구성할 때는 학과 또는 학부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은 뒤 정하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이미 학부생 경험이 많은 선배들이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은 방법이다. 하지만 신입생들은 자신이 대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대해서 모른 채 대학교 캠퍼스에 온다. 왜냐하면 그것을 모른 채 선배들이 만들어 준 시간표대로 강의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생 시간표는 오리엔테이션 전날 또는 당일에 만들어지게 되는데 아직 고등학생 티가 역력한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교 강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이렇다보니 학부생들은 신입생들을 위한 시간표 만드는 것을 선배라면 해야 할 일종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지도교수의 도움을 통해 시간표를 구성한다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학칙을 모른 채 말이다. 사실 학칙대로라면 신입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골라 시간표를 만들되, 지도교수 혹은 선배들이 조언을 통해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을 하기가 어렵다. 교수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연구나 학술과 관련된 이부 활동 때문에 바쁘고 학부생들은 새로 들어올 신입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경 쓰고 준비하다 보니 시간표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된다.

 

수능시험을 치고 난 뒤, 고등학생들은 본격적으로 대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 3월까지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고등학교는 일정상 수업을 하지만 예전처럼 타이트하게 공부하는 그런 정상 수업이라고 볼 수 없다. 수업 시간에 영화를 본다거나 곧 대학생이 될 학생들을 위해 특별 활동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수능시험 끝난 고3 학생들을 위한 시간 때우기 수업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고3 학생들을 위해서 대학교에서 교양강좌를 한다거나 대학교 교양수업을 2학점 정도 신청하여 미리 수업을 듣어볼 수 있는 '고교-대학 연계 학점 인정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이고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 그리고 수시로 이미 대학교 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정시 모집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합격 발표를 기다려야한다거나 수능이 끝난 뒤에도 논술고사를 준비해야하는 학생들에게는 대학 연계 학점 인정 프로그램을 신청할 겨를도 없거니 쉴 여유마저도 없다.

 

 

 

 

 대학 신입생들의 고민

 

대학 신입생들은 너나 할것 없이 '후회없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싶다' 고 말할 것이다.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해 실천하려고 계획을 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정하는 게 쉽지가 않다. 비록 계획을 정한다고 해도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바랐던 것과는 달리 선배들과 술모임에서만큼은 완벽한 출석율을 자랑하지만 성적에서만큼은 '선동율 방어율'에 맞먹는 점수를 받게 된다.

 

그러나 대학생활이 실패하는 원인이 비단 대학생들의 능력과 의지에서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대학교는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교양과 지식을 함양할 수 있는 학문의 장이 아니라 오직 취업을 목표로 하는 취업 준비생 양성소가 되었다. 이렇다보니 대학교에서 듣게 되는 강의들도 대부분 취직을 전제로 한 특정분야에 치우쳐 있게 되며 당연히 학생들은 교양과 전문지식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먼저 대학생활을 경험한 인생의 선배뿐만 아니라 대학 신입생 시절을 겪어 본 나 역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좋은 대학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 배우게 되는 기초과목을 잘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 친구 및 선배 따라 수업을 듣는다면 친구, 선배 간의 우정은 돈독해질 수 있지만 최악의 성적표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친분 중심의 모임이 강한 학과 생활에만 치중한다면 성적 관리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 학과 생활을 적절히 참여를 하고 있다면 친한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안 듣는다고 해서 우정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신입생 시절은 윗 선배들의 강요를 어길 수 없는 학과 내 위치다. 최근에는 어느 모 학교에서는 단합을 강조하는 학과 생활을 거부하는 학생들은 교내장학금 수혜 혜택에 불리하게 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런 폐해는 비단 특정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서 은밀하게 카르텔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되는 신입생들은 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 이런 여러가지 상황들이 맞물리게 되기 때문에 자신이 계획했던 대학생활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올바른 지(知)의 체계가 필요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 학부 강의 모음집인『뇌를 단련하다』에서 대학 담장 너머는 참호 속을 뛰어다니며 24시간 내내 총을 쏴야 하는 최전선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학 졸업생들이 21세기 최전선으로 내던져지려고 하는데도 그들의 머릿속은 여전히 19세기 이전의 것들로 가득 차 있고, 20세기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개탄한다.

 

매일 전사자가 나오는 최전선에서의 생존능력을 기르기 위해 대학이 제시하는 커리큘럼 이수를 넘어서 균형 잡힌 교양 습득을 제안한다. 균형 잡힌 교양은 우주 생명 의학 철학 종교 역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류사를 거시적인 눈으로 총괄할 때 얻어진다. 이는 학문을 사랑하는 철학자 정신으로 현대사회의 지적 토대가 되는 자연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해 가능해진다. 급변하는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현대문명을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현대는 과학 위에 구축된 세계이고 과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근간인 지(知)의 도달점인 자연과학 위에 구축돼 있고, 현실 작동이 이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사상과 경제사상, 사회사상 등과 달리 과학지식은 전 세계에서 동일한 지식이 공유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지(知)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둘러싼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결국 인간의 '지'란 인간 자신 및 자신을 둘러싼 타자 또는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라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대한 공부 역시 이런 '관계'에 대한 전반적이고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일본 문과대 학생의 과학 교양은 중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운동, 가속도, 질량, 열, 파장, 소립자 등 세계 존재의 근본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일본 대학생들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실정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지적처럼 자기 입맛에 맞거나 자기 전공분야에만 한정해서 공부하다보면 소위 이과형 인간, 문과형 인간들로 굳어지게 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20살은 자신의 뇌에 책임져야 할 나이

 

인간이 가진 지식은 일천하다.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업적을 위대하다고 찬양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눈에는 진리라는 큰 바다를 앞에 두고 바다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못하고 주변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 한두 개를 주웠다고 기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위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조금은 우쭐해서 나도 이제 한 인물이 되었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아직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노바디(Nobody)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이란 '노바디'(Nobody)를 '섬바디'(Somebody)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요컨대 그는 “빨간 신호등이라도 모두 함께 건너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마흔 살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나는 스무 살이 넘으면 자기 뇌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도쿄대의 젊은 학생들에게 스무 살 무렵의 뇌는 아직 성인의 뇌가 아니라 왕성하고도 유연하게 성장하고 있는 과정의 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뇌가 말랑말랑할 때일수록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사상적 외도를 하라고 권유한다. 다른 것과 달리 사상에서는 이꽃 저꽃을 옮아 다니는 나비처럼 변덕을 부리라는 제안이다. 대학생 때의 지적 탐험이 중요한 것은 뇌의 유연성과 관계가 깊다. 저자는 그냥 그렇다고 하지 않고, 자연과학 지식을 동원해 이를 치밀하게 설명한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다치바나의 대안들은 인상 깊다. 심지어 영양가 없는 강의는 과감히 제치라고 한다. 닳아서 너덜너덜해진 젊은 시절의 독서 노트는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지식의 자극제다. 대학입학을 공부지옥으로부터의 해방쯤으로 여기는 일본과 한국 대학 신입생들이 경청할 만한 내용이 가득하다.

 

다치바나의 조언대로라면 신입생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될까?  그는 일부러 휴학을 해서라도 특정 기간을 잡아 그 기간동안 제대로 된 교양 공부를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 교양에 목마른 대학생들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곧 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태어난 모든 대학생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대학교를 졸업해서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위한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를 위한 토익 공부를 한다너가 따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면 휴학을 할 수 있다만 다치바나처럼 자신을 위한 교양 공부를 하기 위해서 휴학을 한다고 하면 그러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좋은 취지의 휴학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목표를 두지 않는 공부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지금 대학교가 원하는 교육 목표를 봐서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교양'을 쌓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이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학교가 그런 교육 환경을 구축할 때까지 학생들이 마냥 기다릴 수가 없다. 결국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진부한 말 같지만 공부와 독서가 유일한 대안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편식을 경계해야 한다. 학문 간의 경계 없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함께 공부하고 이해하는 균형 잡힌 지의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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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2-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그렇다면 마흔살이 넘은 저는 뇌와 얼굴 모두 책임져야하는 거로군요. 어쩜 좋으까잉.. ㅠㅠ

cyrus 2012-02-29 23:20   좋아요 0 | URL
저자의 말에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요. ^^;;

2012-02-29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9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홍 2013-01-1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렸는데,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됐어요. 운명론 신봉자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서 만약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여기저기서 안내표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참 반갑네요. 이미 신입생 시절은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하는 마음에 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갈 길이 먼 저에게 바짝 힘내라고 확 꼬집어 주는 것 같아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