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루시우스의 황당한 시간여행
며칠 전에 IPTV를 통해 재미있는 내용의 만화를 봤다. 야마자키 마리의『테르마이 로마이』라는 만화다. 고대 로마 목욕탕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만화의 상상력과 소재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역사물이면서도 개그를 가미한 재미있는 만화다.
만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로마의 목욕탕 건축가 루시우스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갑자기 일본의 현대 목욕탕으로 시공간 이동을 했다가 로마로 돌아온 뒤 일본의 목욕문화를 로마에 소개해 대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다.
『테르마이 로마이』일본어판 3권 (알라딘 내 서지검색 불가능)
표지에 등장하는 머리를 감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어디선가 본 듯 낯익더라 했었는데,,
알고 보니 로마 시대에 제작된 '라오콘 상'일부분이었다.
커다란 뱀에 의해 고통스러워 죽어가는 라오콘을 만화 표지에서는 머리 감는 남자로
만들다니.. 만화가의 패러디에 절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테르마이 로마이』일본어판 4권
내가 IPTV로 본 것은 일본 후지 TV에서 3부작으로 방영된 TV판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의 각 한 권당 총 5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일본에서는 4권까지 출간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현재 2권까지 번역, 출간되었음) TV판은 3부작 총 6편의 에피스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 원작에 있는 내용들이다. 만화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TV판으로나마『테르마이 로마이』의 내용 일부만 볼 수 있어서 아쉬운 감이 들었다. (『테르마이 로마이』를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서는 원작을 토대로 실사 영화로 작년부터 제작, 촬영 중이며 내년에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와 일본은 모두 화산 국가이며 온천이 발달했고, 목욕 문화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연결고리에서 시작한 만화는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동서양 목욕 기구와 문화의 차이 등등을 더해 매회 유쾌한 개그 에피소드가 연출되었다. 하지만 픽션이라고 해서 이 만화를 그저 웃음을 유발하는 가벼운 만화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테르마이 로마이』TV판 에피소드 중 장면. 만화 주인공이자 로마의 건축가인 루시우스이다. 그가 쥐고 있는 갈개 모양의 물건은 스트리질이라는 목욕 도구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에 묻은 먼지나 때를 벗겨내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때밀이'다.
만화 곳곳에 등장하는 로마의 건축양식과 주변 인물들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한 만화가의 경험과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 역시 이탈리아 유학생활 중에 만난 이탈리아 출신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황제의 손자이자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과거 지나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황제가 지켜야 할 덕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터라 이 소설에서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언급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테르마이 로마이』에피소드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76~138)가 등장하는데 루시우스가 최고의 목욕탕을 만들 것을 주문하는 의뢰인으로 등장하며 만화에서는 미소년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로 나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팍스 로마나를 이룩한 5현제 중의 한 사람으로 로마의 전성시대를 마련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고 한다. 그 당시 로마에는 동성애가가 보편적인 문화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미소년을 자신의 궁전에 불러들여 함께 생활을 했는데 그 중에 황제로부터 많은 총애를 받은 자가 안티노오스(안티누스, ?~130)였다. 그는 황제마저도 혹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랜 수명을 누리지 못한 채 이집트에서 사망하고 말았는데 어느 문헌에 의하면 황제의 제물이 되었다거나 본인 스스로 나일 강에 투신자살했다고 전해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랑했던 미소년 안티노오스의 흉상 모작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스럽게 여기던 안티노오스가 죽자, 실의에 빠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전역 곳곳에 안티노오스의 조상을 여러 개 세움으로써 그의 행적과 생전의 아름다움을 추모했다. 오늘날까지도 안티노오스의 조상 또는 흉상 모작이 남아 있는데 로마인들이 극찬했던 전형적인 '꽃미남'의 표상이 되었다.
목욕을 좋아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
『테르마이 로마이』만화를 보고나서 문득 로마의 목욕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어져서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로마의 목욕 문화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는 책이 캐서린 애셴버그의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예지, 2010)뿐이었다. 『테르마이 로마이』만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해갈할 수 있었다.
로마에는 수많은 공중 목욕탕이 설치되었는데 '테르마이'와 '발네움'으로 구분할 수 있다. '테르마이'는 다양한 기능을 갖추어 있으며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스파'라고 한다면 반대로 '발네움'은 평범하면서도 작은 크기의 일종의 '동네 목욕탕'이라고 보면 된다.
토마스 쿠튀르 「타락한 로마인들」 1847년
로마 문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향락'과 '사치'다. 역사가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로마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로마 패망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역시 로마의 사치스러운 목욕 문화가 로마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봤다.
실제로 고대 로마의 테르마이는 이미 어느 정도는 현대식 목욕탕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탈의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온탕, 냉탕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만화 에피소드처럼 음식과 음료가 제공되는 간이 식당이 마련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목욕탕 내부 또는 근처에는 정원, 운동장, 도서관 등도 설치되었다. 현대식 목욕탕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마인들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비누를 사용 안 했다기보다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 당시 비누는 오늘날의 비누만큼 제 구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탈의실에는 입욕자들의 옷을 지키는 노예들이 있었다.
로마인들의 목욕 방법은 일정한 순서로 정해져 있다. 목욕탕 근처에 마련된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난 뒤에 바로 목욕탕을 향했는데 그들은 땀과 먼지가 묻은 채 탕으로 향하지 않았다. 스트리질로 때와 먼지를 벗겨낸 뒤에 온탕, 열탕, 냉탕 순으로 몸을 담갔다.
하지만 이러한 로마인들의 목욕 문화는 로마인들이 스스로 만든 독창적인 문화라고 볼 수 없다. 목욕 문화를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되었다. 로마보다 이미 그리스가 먼저 목욕 문화가 발달되었다.
다만 로마의 목욕문화가 향략적이라고 한다면 그리스 인들에게 '목욕'은 살아가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보편적이면서도 예의를 지키기 위한 신성스러운 행위였다. 신에게 기도할 때나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몸을 씻었으며 낯선 사람이나 친구의 집에 도착했을 때도 집주인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이나 친구에게 먼저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는데 그것은 그리스 인들에게는 하나의 '예의'였다.
유레카!
『테르마이 로마이』TV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루시우스는 '목욕의 힘은 위대하다'라고 말하면서 목욕의 즐거움을 찬미하고 있는데 사실 그저 몸을 씻는 '목욕'이라는 행위 속에는 세계를 뒤흔들고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다. 그야말로 '목욕의 힘'이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장면을 연출할 수 잇었던 것이다.
만약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대신에 산책을 했다면 왕관이 금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 왕이 쓰고 있던 왕관에 금 대신 은이 섞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머리를 식힐 겸 목욕탕에 몸을 담그게 되는데 자신의 체중으로 인해 욕탕에 넘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왕관을 훼손하지 않은 채 왕관의 성분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 낸 발견이라 기쁨에 겨운 아르키메데스는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쳐나와 '유레카!'(발견했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는 단골 과학사 에피소드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가 아르키메데스 사후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는 허구된 이야기라고 보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더라도 아르키메데스의 일화는 물체의 부피, 질량, 밀도 사이에 성립하는 개념적 상관 관계에서 비롯된 부력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증기탕에서 죽은 철학자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는 목욕의 역사만 소개할 뿐만 아니라 목욕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목욕을 너무 좋아해서 목욕탕에서 암살당해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만 로마 황제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서 일부러 목욕을 한 철학자가 있었다.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죽음도 '목욕'과 관련해서 유명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세네카의 죽음」 1773년
세네카는 로마 황제 네로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네카는 어린 시절부터 네로를 가르쳤으며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네로의 폭정이 시작된 이후부터 세네카는 정치에 뜻이 없음을 스스로 밝혀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역시 황제의 스승이라고해서 네로의 광기어린 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네로는 자신을 둘러싼 암살음모에 스승 세네카도 관련이 있다고 모함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네로는 자신의 스승에게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하였다.
그 당시 로마의 전통에 따라 황제가 명하는 자살은 일본처럼 할복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이나 종아리의 혈관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칼로 그은 부분에서는 과다 출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세네카는 출혈을 위해서 물이 담긴 통에 칼로 그은 발목을 담갔다. 역시나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처럼 독약을 마셨으나 이 방법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결국 세네카는 뜨거운 증기탕에 들어갔으며 그 곳에 질식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급소에 정확히 칼로 찌른다면 단숨에 즉사할 수 있었을텐데 세네카는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따뜻한 온기가 가득찬 증기탕으로 선택했다. 목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로마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자살을 예찬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다운 극적인 죽음이다.
가장 극적인 욕실 살인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년
몇 몇의 로마 황제들은 욕탕에서 목욕을 즐기다가 비무장된 상태에서 암살자들로부터 불의의 최후를 맞았다고 했지만 수천 년이 지난 뒤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욕실 살인'에 비하면 시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프랑스 혁명에는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장 폴 마라(1743~1793)이다. 그는 프랑스 국민들로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정도로 혁명 과격파인 자코뱅당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을 선동하는 그의 과격한 정치적 행보에 반대하는 세력들, 즉 지롱드당은 그를 제거하기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라는 심각한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 당시에는 피부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욕조 속 찬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유행했다. 마라 역시 쉬는 날에는 하루 절반을 자신의 집에 설치된 욕탕에서만 지냈다. 마라는 욕조에 물을 담근 상태에서 종종 업무를 보거나 편지와 책을 읽곤 했다.
1793년 7월 13일, 마라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욕탕에 몸을 담근 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여자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해서 찾아왔다. 그는 여자 손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실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제 곧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저승사자'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마라를 만나고 싶어하던 여자는 자신의 품 안에 숨긴 칼을 반나체 상태인 그의 흉부에 여러 차례 찔렀다. 국민들의 영웅이었던 혁명가는 이렇게 한순간에 욕실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 마라를 암살한 여자는 마라를 반대하던 지롱드 당원 소속의 샤를로테 코르데(1768~1793)라는 인물이었다. 마라의 암살 소식을 접한 프랑스 국민들은 혁명 영웅의 죽음을 추모했으며 자객 코르데는 민중의 분노 속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라의 절친한 친구이자 열렬한 혁명 과격파인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친구'이자 '혁명의 영웅'이었던 마라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죽어가는 마라의 모습을 전통적 성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같은 자세로 그렸다. 그는 실제로 살인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죽음을 '위대한 혁명 영웅'의 성스로운 죽음으로 연출시켰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실제보다 더 웅장하면서도 다소 과장되게 그려낼 줄 알았던 다비드 특유의 연출력이 만들어 낸 걸작이자 유명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목욕, 덜 깨끗하게 해도 된다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는 정말 우리와는 좀 다른(?) 특이한 사람들이 '고민'이라고 내세우면서 등장한다. 그 중에는 2년 간 단 한 번도 몸에 물을 대지 않은 일명 '악취남'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목욕을 안 했다는 그 문제의 악취남은 자취 생활하는 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다보니 안 씻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좀 더럽게 느껴지지만 1960년대에 안 씻고 다니는 게 '자유해방'의 미학으로 여겼던 히피족을 생각하면 2년 동안 안 씻은 악취남은 새 발의 피다.
오늘날에는 안 씻고 다니는 사람을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로 취급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목욕을 기피하는 것을 생활의 미덕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있었다. 로마 문화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목욕은 교회의 힘이 강력했던 중세에 들어서부터 '사악한 쾌락'을 추구하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변질되었다. 한 마디로 말자하면, 중세인들은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세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았던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페스트였다. 페스트가 유행함으로써 사람들은 외부 출입을 금하게 되었고 흑사병으로 오염된 물로 몸을 씻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페스트의 그림자가 완전히 지워지기 시작하는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유럽 문명에서 물로 몸을 씻는 '목욕'이라는 행위는 당분간 사라져야만 했다.
하지만 전염병의 유행이 사람들이 물을 멀리 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 빈민가 중심으로 콜레라가 유행하게 되자 정부 당국은 목욕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콜레라 유행을 일으키는 원인 대상이 위생상황이 열악한 곳에 살며 일생동안 목욕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도시 빈민층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목욕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청결함의 기준이 생기게 되었으며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빈곤층 계급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럽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 때부터 청결함을 기준으로 문화적으로 우월할 수 있느냐 또는 정상인이냐 비정상인으로 구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목욕을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면 목욕 행위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물 소비량은 15만 리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 25%가 쓸데없이 낭비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몇 몇 국가에서는 '물 부족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도 물 부족 현상에 대해서 고심해야 될 현실에 직면했다. 물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지 말고 샤워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욕조에는 136리터의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는 대신 샤워기만 사용하면 50% 이상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물 절약 방법을 생활 습관으로 만들지 못하면 어쩌면 먼 훗날 물 부족으로 인해서 깨끗한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을뿐더러 목욕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시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목욕을 금기시했던 중세처럼 청결함보다는 더러움을 흠모하는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 몸에 물을 끼얹어 목욕을 해야하지만 거기에 소비하는 물 소비량은 상당하다. 그렇다고 물 절약한답시고 목욕을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안 씻은 채 더러운 세균과 불결한 악취를 온 몸에 달고 사는 삶은 더더욱 싫어할 것이다. 청결함을 유지하면서 물 절약도 할 수 있는 적당한 목욕 용수와 욕실에서의 목욕 시간. 참으로 애매하다. 애정남한테 물어봐야하나...?
청결을 유지해야하는 강박증에 안 걸린 이상 몸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되 물을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는 방법 밖에 없는 듯하다. 사실 인간의 몸은 '적당히' 깨끗해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지나치게 청결함을 유지하다보면 정작 우리 몸의 피부에 살아야 할 좋은 세균들마저도 씻겨 나가며 알레르기와 같은 각종 질환에 대응하는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 저자는 목욕과 과한 약품 소독을 통해 '세균과의 전쟁'을 부르짖는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어느 미생물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청결함을 이유로 지나치게 목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곱씹어봤으면 하다. "더 더러워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덜 깨끗해도 된다는 말이다." (pp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