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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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의 연구방법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곪아터지던 18세기 조선 사회에 인간 중심의 새로운 학문을 추구한 실학의 완성자, 개혁 군주인 정조의 오른팔로 이상사회 실현에 열정을 바친 개혁사상가, 정조의 죽음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개인의 꿈과 이상을 접고 유배로 점철된 만신창이의 삶을 살아야했던 시대의 불운한 천재.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물을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렵다.

 

다산이 관여한 연구와 저술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동안 다산이 어떤 방법으로 위대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는지, 즉 다산의 작업 자체와 과정, 방법에 대한 탐구는 거의 없었다. 정 민 교수는 이러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이유를 다산의 연구방법에 주목했다.

 

다산은 전무후무한, 탁월한 지식편집자였다. 그는 18년 간의 강진 유배생활 동안, 무려 수백 권의 책을 썼다.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지식을 취합한 다음 이를 글로 살려내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베껴 쓰기만 해도 10년이 넘게 걸릴 양이다. 참고서적도 넉넉하지 않은 척박한 귀양지에서 엄청나고 방대한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질서로 통합시키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정보조직화의 귀재였다. 또 언제나 동시에 7∼8가지 이상의 저술작업을 동시에 수행해냈다.

 

다산의 작업방식은 실로 단순 명쾌하다. 먼저 필요에 기초해 목표를 세운다.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한다. 명확하게 판단해서 효과적으로 분류한다. 분류된 자료를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한다. 이런 작업은 그의 아들과 제자들 간의 역할분담을 통해,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했다.

 

 

 

 대학생들을 위한 다산의 '지식공부법' 

 

정 민 교수는 다산의 독특한 공부 방법을 '지식경영법'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제목만 보자면 경영인들을 위한 지식경영 노하우쯤으로 볼 수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식경영법' 대신에 '지식공부법'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식경영'은 일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 개발하거나 혁신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영을 의미한다. 지적자본을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성과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움의 열망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했던 다산의 연구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산의 '지식경영법'은 단지 지식경영을 기업현장에 적용하려는 경영인들을 위한 경영지침서가 아니다. 수많은 지식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법칙과 원리를 도출해야하는 교수 또는 졸업논문을 써야한다거나 공부를 어려워하는 학생에게도 다산의 공부법은 유용하다. (성과, 경쟁 중심 사회의 흐름은 올바른 학문 공부를 추구해야하는 대학교도 피할 수 없다. 교수들은 논문 발표 수로 학문 업적을 평가받고 있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논문 작성은 그저 졸업을 하기 위한 힘든 과정이다. 대학생들은 졸업을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논문 한 편을 써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검을 현(玄)자를 칭칭 감는다는 감을 전(纏)자의 뜻으로 알고 누를 황(黃)자를 꽉 누른다는 누를 압(壓)자로 풀이한다. 이것이 그 아이들이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능히 종류별로 접촉해 곁으로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정 민『다산선생 지식경영법』중에서, pp 37-

 

다산이 쓴 '천자문'에 대한 평의 일부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뜻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공부를 조선시대의 학동들은 많이 지겨워했다. 하늘은 검지 않고 푸른데 검다고 하니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천지'라는 글자를 배웠으면 다음엔 일월, 성신, 산천 같이 연결되는 글자를 배워야 하는데 갑자기 검고 누르다는 '현황'을 배운다. 그러면 청적(靑赤), 흑백(黑白) 등을 배워야 하는데 또 느닷없이 우주(宇宙)를 배우게 한다. 한마디로 천자문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뒤죽박죽 네 글자씩 엮어 운자를 맞춘 계통도 없는 체계도 없던 책이었던 것이다.

 

다산은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한자를 학습시키는 대안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는'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을 제시한다.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연쇄적으로 가르쳐, 이것으로 미루어 저것까지 알게 하는 학습법이다.

 

종핵파즐은 복잡한 것을 종합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질하듯 깔끔하게 정리해낸다는 뜻이다. 다루어야 할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여기에 휘둘려서 허둥지둥하기 마련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이 명징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눈앞에 펼쳐진 어지러운 자료를 하나로 묶어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슷한 것끼리 갈래로 묶고 교통정리를 하고 나면 정보간의 우열이 드러난다. 그래서 요긴한 것을 가려내고 긴요하지 않은 것을 추려내는데 이 과정이 바로 '종핵'이다. 그 다음은 남은 알맹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과정이다. 무슨 말인지 모를 것들은 마고 할미의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듯 명쾌하게 설명을 보태고, 어지러워 혼동하기 쉬운 것들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참빗으로 빗듯 깔끔하게 교통 정리한다. 이것이 바로 '파즐'이다.

 

 - 정 민『다산선생 지식경영법』중에서, pp 69~70 -

 

 

오늘날 인터넷, 도서관에는 수많은 정보가 복잡하게 유통되고 있다.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를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져서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종핵파즐법을 이용하면 복잡한 내용이 비로소 일목요연해지고 단순명료해진다.

 

다산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때 결코 앞선 것을 그대로 따르는 법이 없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존에 있던 것을 참고해 새 것을 만들어내는 '변례창신법'(變例創新法)을 역설했다. 옛것을 살피되 옛것만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발상을 전환하고 성과를 점검하는 것을 창조작업의 요체로 꼽았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강의실에서 몇 몇 학생들이 자신이 쓴 과제(레포트)을 제출하거나 어떠한 주제를 선정, 조사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만든 과제나 프레젠테이션 결과물은 교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지 못했다. 이런 결과물들은 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가끔 주위 친구들의 과제를 보곤 하는데 내가 봐도 내용 곳곳에 허술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교수로부터 과제 점수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내용의 질보다는 분량에 치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수가 제시한 페이지 수를 맞추기 위해서 어떻게든 주제에 부합되지 않은 자료들을 제시한다. 심지어 현실과 맞지 않은 옛날 자료를 인용하기도 한다. 통계 자표나 표를 제시하면 교수에게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십년동안 대학에서 생활했던 교수의 눈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용하고 조사한 자료, 예를 들어 학술논문의 내용의 틀에 벗어나지 않아 과제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표절'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이에 덧붙이자면 아예 자료출처도 쓰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이것은 과제나 논문 작성에 있어서 기본적인 과정인데도 이를 소홀히 여기는 학생들이 꽤 많다) 

 

과제나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대학생들이라면 '변례창신법'의 의미를 소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쓸모없는 지식에 탐닉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은 어떤 지식이 가치 있는 지식인지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어디에 소용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라는 것이다.

 

다산은 실제에 유용한 공부를 하라는 '강구실용법'(講究實用法)을 강조하면서 공리공론은 하나마나한 공부라며 철저히 배격했다. 여러 정보 가운데 가치 있는 것만 추려내 하나하나 타당성을 따져보고 검토하는 '취선논단법'(取善論斷法)은 다산의 실용적인 문제해결 노하우를 집약한 말이다.

정보가 많다고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많은 정보를 한 장의 보고서 또는 논문 한 권에 담을 수가 없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취하고 쓸모없는 자료를 버릴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 밖에도 다산은 스스로도 많은 책을 읽고 썼지만, 제자들이나 자식들에게 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올바른 독서 방법까지 알려주던 독서가였다. '수사차록법'(隨思箚錄法)은 읽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는 맹목적인 독서보다는 거기서 얻은 깨달음이나 의문 등의 생각들을 따로 메모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는 것은 아주 능동적이고도 생산적인 읽기 방법이다. 정보들이 넘쳐 나면서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판단하기 힘든 요즘 시대에 독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손을 움직여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를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들이 추려지고,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지식공부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인용한 방법 외에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산의 공부비법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바로 '분류'와 '정리'다. 18세기는 조선사회가 최초로 경험한 정보화사회였다. 중국 청나라를 통해 온갖 신문물과 백과사전식 지식이 전방위로 쏟아져 들어온 시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상 처음으로 정보가 범람하던 시기에 다산은 이런 정보를 취합해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 많은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분류와 정리.  말로만 쉬워 보이지 이러한 방식의 프로세서가 낯선 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막연하게 분류와 정리를 한 대학생들에게는 말이다. 나 역시 과제나 수업시간에 발표해야 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 확보해놓은 방대한 자료들을 분류, 정리할 때가 많았는데 다산의 공부방법을 적용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부방법을 몸에 밴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업무 처리하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다산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공부한 것처럼 공부하는 방법 역시 자신의 두뇌에 맞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공부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평생 육체만 피곤할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도 피곤해진다.      

 

올해는 다산이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특별한 해인만큼 다산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기적절한 기간이다. 다만, 다산이 워낙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만큼 한 측면만 부각시키는 것은 그의 업적이나 능력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런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조직의 체계를 세우고 지식을 수집, 관리한 그의 공부방법도 재평가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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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2-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여기에 꾸준하게 글 남기시는 것 보면, 다산의 방법들을 이미 상당수 실천하고 계신듯하여 저도 자극을 받습니다. 다산 선생님의 방법을 보니 하나라도 버릴 게 없네요.

cyrus 2012-02-23 20:53   좋아요 0 | URL
아니요, 방학 마지막 주라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많아서 그래요. 이제 방학도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네요 ^^;;

stella.K 2012-02-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오래전에 사 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다.
책 엄청 읽네. 아직 개강 안했나?
다산도 다산이지만, 난 얼마 전 정민 교수 강연회 다녀오고
정말 좋았어. 어쩌면 강연회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시는지.
왠만한 대학 강의처럼 하시더라.
너도 그분 어디서 강연회 한다고 그러면 열 일을 제쳐놓고 가라.
기회가 왔는데 잡지 않는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것 같아.
사실은 내 말이야. 작년인가? 그분 차에 관한 엄청 두꺼운 책
내신적이 있잖아. 그때 강연회 뽑히고도 안 갔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바로 그때 깨달았다는 거 아니니. 나도 참.ㅠ

cyrus 2012-02-23 20:54   좋아요 0 | URL
개강은 다음주 금요일이에요. 방학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저는 이 책 2년 전에 구입해놓다가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도중에 멈추다가, 읽다가 말았던 것만 해도 여러번 되었을거에요.
요즘은 그냥 관심 있는 주제나 필요한 부분만 따로 읽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