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잠도둑

 

 

1년 중 수면 시간이 적어지는 기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방학 기간일 것이다. 평소에도 수면이 많지 않은 일과를 보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방학 기간만큼은 거의 늦잠을 자고, 늦게 일어난다. 아침식사를 한 끼라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 돋을 것이라는 식습관 신조를 지키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아침식사 한 끼를 꼭 거르게 마련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제대로 한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거의 하루에 식사를 두 끼를 하는 셈이다.

 

어젯밤은 수면 부족의 최절정이었다. 책을 읽느라고 잠을 늦게 잘 때도 었었지만 어젯밤 같은 경우에는 축구 경기를 보느라고 새벽 5시까지 밤을 세우고 말았다.

 

맨체스터 Utd와 첼시와의 축구 경기가 새벽 1시에 시작했고(흥미진진한 라인업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셜록 시즌 2 세 번째 에피소드를 중간까지만 보다가 말았다) 두 팀간의 치열한 골 공방전이 펼쳐진 뒤에는 바로 한국 올림픽 대표팀과 사우디 간의 조별예선 경기를 시청했다. 후반전에 상대팀의 골로 한국 팀의 패색이 짙어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 김보경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만약에 1:0으로 한국 팀이 패배했더라면 잠을 설쳐가면서도 중계를 본 의미가 없어졌을 것이다.

 

축구 중계가 끝나고 난 뒤에 바로 잠을 청하면 되는데 수면이 적은 생활 때문인지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2, 30분 남짓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서 킬링타임으로 중간에 읽다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즘 방학 기간에 수면이 많이 부족해서 걱정하고 있는 판에 이번에 새로 장만한 LED 램프 때문에 제대로 된 수면시간을 누려보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 반값 할인으로 판매되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했다. LED 램프를 구입하기 전에는 10년 전에 구입한 큰 스탠드로 책을 읽곤 했다.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스탠드에 흘러나오는 불에 의지한 채 엎드려 책을 읽는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전기장판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다는 것. 소파에서 느긋하게 책 읽는 것만큼 정말 편한다. 문제는 너무 오래 배를 깔고 엎드리면 소화불량 또는 허리에 무리에 갈 수도 있지만.

 

 

허리에 부담을 주는 올바른 독서 자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추운 겨울에는 전기장판에 의존해서 책 읽는게 좋다. 왜냐하면 내 방은 보일러의 열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방에 들어가면 한기로 가득하다.

 

집이 가난해서 보일러를 못 켜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내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내가 사용하는 방,여동생의 방이었지만 지금은 창고가 되다시피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방,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그리고 커다란 거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 방을 제외하고는 보일러를 작동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방이 다른 방에 비해 추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춥다고 해서 보일러 안 틀어주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은 없다. 알록달록 수면양말 신고 이제는 황금빛이 바래버린 깔깔이(군용 방상내피)를 입는다면 그렇게 춥지 않다. 단, 불편한 것이 있다면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 그리고 전기장판 위에서 엎드려 책을 읽을 때이다. 아무리 따뜻하게 무장을 하더라도 한기는 빈틈으로 치고 들어온다.

 

요네하라 마리도 따뜻한 이불 속에서 엎드려 책을 읽을 때가 좋아했는데 그녀 역시 아무리 이불로 꽁꽁 감싼다고 해도 책을 쥐고 있는 두 손과 얼굴 부분이 시러울 때가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기를 완전히 막기 위한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양손이 시러울 때가 싫다. 양손과 양발이 찬 체질이라서 공부할 때나 책 읽을 때가 양발에 수면양말이 없으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다. 문제는 양손을 한기로부터 어떻게 보호나느냐가 문제인데 장갑을 끼면 책 종이를 펴거나 펜을 쥘 때 불편하다. 손이 추워도 그냥 책을 읽는 수 밖에...

 

 

 

 

 또 한 명의 잠도둑, 플로베르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인데 독서 진도가 시원찮다. 내용 전개면에서는 흥미로운데 읽으면 읽을수록 속도가 더디다. 2년 전에 <감정 교육>을 읽은 적이 있었는 데 그 때도 그 두 권을 완독하느라 고생했다.

 

플로베르라 하면 객관적인 묘사를 고집하는 사실주의 소설가이다. 어떠한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사실적이다. 그러한 필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밀한 관찰력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의 문장은 소설 속 인물들과 풍경을 하나하나 관찰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플로베르의 아버지가 외과의사 출신인데 의사의 아들답게 소설 속 인물인인 샤를 보바리가 당연히 의사로 설정될 수 있었고 간혹 문장 마다 과학, 의학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하고 약제사가 말했다.  "이 고장에서는 의료 행위가 별로 힘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로 상태가 괜찮아서 이륜마차를 타고 다닐 수 있고, 대체로 농민들이 넉넉하게 살기 때문에 지불도 잘합니다. 의학상으로 말씀드리자면 장염, 기관지염, 간장염 등 보통 질병 외에 가끔 수확기에 유행하는 감기가 있습니다만 요견대 심각한 것은 별로 없고,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다수의 경부 임파선 정도입니다. 아마 이건 우리 고장 농가들의 한심스러운 위생 조건에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중략) 

 

하지만 기후는 사실 나쁘지 않습니다. 마을에는 아흔 살이 넘은 노인들도 몇 사람 있습니다. 온도계(내가 관측해 본 바로는)는 겨울에 사 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에는 섭씨 이십오 도나 최고 삼십 도 정도니까, 최고가 열씨(列氏) 이십사 도, 또는 (영국식 단위로 말씀드리면) 화씨 오십사 도, 그 이상은 안 올라갑니다. 사실상 한편으로는 아르괴이유 삼림이 북풍을 막아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 장의 삼림이 서풍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더운 기온은 강에서 증발하는 수증기와 들판에 있는 많은 가축 때문인데, 아시다시피 이 동물은 다량의 암모니아를 발산합니다. 즉 질소, 수소, 산소(아니, 질소와 수소뿐이지요) 말입니다.  (생략)

 

 -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김화영 역, 민음사, pp 120~121 -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쓰는데만 해도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장편소설 한 권을 쓰는 데 인고의 창작이 있었으리라. 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말대로 글을 쓰는 플로베르는 고뇌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짊어진 문학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에 대해서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며 반면에 싫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플로베르의 소설 한 권을 읽으면 한 문장 한 문장 끝까지 읽어내는 게 고역일테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문장을 좋아하는 편이다. 각기 다른 성격대로 좋아하는 글의 취향도 다르다고 하던데 완벽함을 추구하고 어떠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꼼꼼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써는 이제는 플로베르의 문장에 견딜 만하다. 오히려 그의 세밀한 문장을 눈으로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한 페이지씩 넘겨가고 있는 독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읽는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가끔 그의 문장은 세련되기까지 하다.

 

 

 

 

그의 소설은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한 벌의 옷과 같다. 소설 문장 부호가 하나라도 빠져 있는 것도 허용치 않았으며 수많은 퇴고를 거듭한 끝에 나온 인고의 노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한 결과물 앞에서 읽는 것이 힘들고 괴롭다고 말한다는 것은 문학의 대가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자기 전에 <마담 보바리>를 펼쳐봐야겠다. 현재 보바리 부인은 일상 속 권태에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혼자 몸부림치고 있다. 결말은 뻔히 알지만 과연 그녀가 어떻게 스스로 파멸되어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번 주 안에 완독할 수 있을런지...  보바리 이외에도 읽을 책을 많다. 당분간은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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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2-0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플로베르 모파상 같이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가 가득한 글이 그 나름대로 묘미가 있더군요.그리고 이들은 특정 직업에 대해 묘사할 때 정말 철저히 사전조사한 뒤에 글을 썼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정확하고 자세히 묘사하더라고요.이게 진짜 직업의식이겠죠.

cyrus 2012-02-07 19: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플로베르의 문장을 읽어나갈수록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에
소름이 돋기도 해요 ^^;; 어떻게 저런 문장을 완성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2-02-0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의 끊임없는 고전 탐독을 보면서
나두 그래야하는데 하는 부러움에 잠시 멈춥니다. <마담 보바리>는
읽다가 결국 때려치운거 같아요... 그런 기억이... 흐흐.

LED 램프는 이곳저곳에서 보게 되네요. 저도 갑자기 혹하기 시작한다눈~~ ^^

cyrus 2012-02-07 19:18   좋아요 0 | URL
사실적인 문장 때문인 것도 있지만 <마담 보바리>는
결말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완독하기가 쉽지 않은 소설인거 같아요.

램프가 반값할인이었을 때는 2만원 정도에 팔더군요, 그래서 냉큼 구입했어요.
혹시 또 반값할인 행사하면 꼭 구입하셔요 ^^

stella.K 2012-02-0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ED램프 좋은가?
나도 끌리긴 했는데 사용후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망설여지더군.
얼마 전 우리집 전구를 그걸로 교체해 봤는데 옛날 60촉 백열전등 쓰는 기분이
나더라구. 근데 이게 전기를 엄청 덜 먹는 거라는데 진화가 좀 필요한 것 같아.
내가 하루의 마감을 TV를 보다가 자는 것도 책 보다 자려면 일어나서 불 끄는 게
싫어서였는데 이것에 대한 유혹이 참 만만치 않더군.

우리가 왜 고전을 읽기 싫어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글을 쓰는 옛날 작가에 질려서인 것 같더라구.
요즘 작가들은 점프를 잘 해서 빨리 읽을 수 있잖아.
현대를 배경으로 해서 이해도 쉽고. 별 씹을만한 내용도 없구.
나도 어제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는데
열흘 동안 매일 50페이지는 읽어줘야 마치겠더라구.
근데 이 50페이지 읽는데 왤케 진도가 안 나가던지.
2시간쯤 걸리더라구. 어려운 것도 없으면서. 완전 끝장이다 싶어.ㅠ

근데 저 이태리 장인 그림 좋다. 저 그림 나 주라!ㅋㅋ

cyrus 2012-02-07 19:23   좋아요 0 | URL
자기 전에 램프 불빛에 책을 읽으면요,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면
되요 ^^ 그래서 불을 켠 채 자는 일이 없어요 ㅎㅎ

저는 <폭풍의 언덕>도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시간이 남아돌 때
안 읽어둔 게 후회가 되요, 사실 저도 보바리를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절대로 1시간 안에 못 읽게 되더라고요. ^^;;

그리고 저 그림은 한창 시크릿가든 드라마가 뜨고 있을 때
현빈이 입었던 이태리 장인 수제 트레이닝복을 패러디한 그림이에요.
ㅋㅋㅋ

stella.K 2012-02-08 13:24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이 기회에 네가 예전에 내게 선물한
<제인에어>를 조만간 이어서 읽어보려고 해.
나 참 게으르지? 아, 부끄.ㅠ
솔직히 말하면 <폭풍의 언덕> 협찬 받은 건데 그 조건으로
받은 거거든. 안 그러면 '제인에어'를 언제 읽을지 몰라.>.<;;
3월 안으로 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될지 모르겠어.
암튼 어느 날 <제인에어>의 리뷰가 올라오거든 추천 좀 해라.
하긴, 너 학기 중에 여기 잘 안 들어오고, 소설에 대한 리뷰가
약한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쑥스럽긴 하다.ㅋㅋ

근데 100페이지를 1시간 반만에 읽는다니
폭풍 독선데?! 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