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그레이비어 스캔들

 

 

 

 

 

 

어젯밤에 모 방송국에 방영된 셜록 시즌 2를 시청했다. 작년에 성우 더빙판 시즌 1를 재미있게 봤었는데 우연하게도 오늘부터 내일 일요일까지 시즌 2의 총 3회분을 방영한다는 것을 TV 광고로 보게 되었다. 언제 등장할지도 모른데다가 1초 만에 잠깐 지나가는 광고를 보지 못했다면 시즌 2의 1회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즌 2의 1회 에피소드는 '벨그레이비어(Belgravia) 스캔들' 이다. (벨그레이비어란 상류층들이 거주하고 있는 런던 남부의 고급주택구역을 말한다) 에피소드 제목의 '스캔들'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이 드라마 에피소드의 원작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즐겨 읽었으며 홈즈를 추종한다는 셜로키언이라면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에피소드의 원작은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셜록 홈즈의 모험>에 수록된 단편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이다. 보헤미아의 국왕이 유명 오페라단 소속 여배우인 아이린 애들러라는 여자와 교제를 한 과거가 있었는데 그 당시 함께 찍었던 사진을 되찾아 달라고 홈즈에게 의뢰한다. 국왕이 스칸디바니바 왕실의 딸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상황 속에서 아이린은 자신과 함께 찍은 그 문제의 사진을 미끼로 협박한 것이 사건의 발단인 것이다. 왕족으로서 자신의 불미스러운 과거가 만천하에 공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린이 가지고 있는 그 사진을 찾는 것뿐이다.

 

홈즈는 목사, 부랑자로 변신하여 애들러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 곳에서 애들러가 숨긴 사진이 보관되었던 것이다. 홈즈는 여자들의 본능적인 심리를 역으로 이용하여 사진이 보관된 곳을 알아내고 만다. 홈즈는 국왕에게 사진이 있는 장소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국왕은 홈즈 덕분에 사진 한 장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스캔들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결혼에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국왕과 홈즈 일행은 애들러의 자택에 찾아갔지만 이미 그녀는 자신과 결혼한 남자와 함께 유럽으로 떠나고 없었다. 애들러의 하녀로부터 그녀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문제의 사진과 홈즈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받는다.

 

애들러는 편지를 통해서 국왕의 결혼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으며 홈즈의 변장을 눈치챘다고 밝혔다. 사건이 해결된 후 국왕은 감사의 표시로 홈즈에게 값비싼 반지를 주려고 했으나 홈즈는 반지를 받는 대신에 애들러의 사진을 받고 싶다고 청을 한다. 국왕으로부터 애들러의 사진을 받은 홈즈는 그 이후로부터 벽난로 위에 올린 그 사진 속 애들러의 모습을 본다거나 가끔 애들러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할 때면 언제나 '그 여자는...'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존경을 표시했다고 한다.

 

선혈이 낭자하고 항상 기기묘묘한 사건들을 맡게 되는 홈즈 시리즈 중에서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은 가장 평범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단편소설은 오늘날까지도 드라마나 영화로 패러디할 정도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보헤미안 왕국 스캔들'는 홈즈는 명석한 추리력을 통해 사진이 보관된 곳을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애들러는 홈즈의 변장과 그가 꾸민 전략의 과정들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점이다. 완벽함을 표방하는 홈즈로서는 이번 사건이 자존심 상할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애들러의 지혜에 존경을 한다. 애들러에 대한 홈즈의 존경은 곧 자신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아이린 애들러는 홈즈에게 패배를 선사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홈즈와 애들러와의 관계

 

 

 

 

 

 

 

시간이 지날수록 홈즈 시리즈를 즐겨 읽은 독자들과 후대의 추리소설가들은 홈즈와 애들러의 관계에 대해서 상상력을 가미하여 재해석하게 되는데 애들러에 대한 홈즈의 존경 속에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6기 <베이커 가의 망령>은 사건 전개상 내용도 재미있지만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에 대한 코다마 겐지 감독의 오마주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공 두뇌로 이루어진 '노아의 방주' 게임에 참여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코난과 소년 탐정단 일행은 홈즈가 활동하던 19세기 말 런던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코난은 자신의 우상 홈즈뿐만 아니라 아이린 애들러도 만나게 된다. 이 만화에서는 애들러는 홈즈의 '연인'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애들러의 모습이 결혼하기 전에 인기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코난의 어머니 쿠도 유키코 (한국판에서는 이하연)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들러를 좋아하는 홈즈의 모습은 당연히 코난의 아버지이자 유명 추리소설 작가인 쿠도 유사쿠(한국판에서는 남건)와 닮았다. 홈즈와 애들러의 관계를 절묘하게 설정한 재미있는 오마주다.

 

 

 

 

 팜므 파탈, 아이린 애들러

 

 

 

 

 

 

셜록 시즌 2의 에피소드 1화에 등장한 아이린 애들러

 

홈즈보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리는 연상으로 등장했지만

팜므파탈 매력을 지닌 애들러의 마스크가 무척 신선했다. 

 

 

 

 

홈즈와 애들러와의 관계를 소개하다가 그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

 

다시 BBC 드라마 <셜록>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돌아가보면 원작인 '보헤미안 왕국 스캔들'을 모티브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린 애들러가 등장한다. 내심 홈즈와 애들러와의 고전적인 관계가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발달한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변용, 설정되었는지 무척 기대 되었다.

 

그 전에 시즌 1의 세 편의 에피소드도 브라운관을 1초라도 땔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면서 시청했는데 이번 편만큼은 사건 전개보다도 유독 눈이 간 것이 아이린 애들러였다.

 

아이린 애들러가 이렇게 섹시한 여성으로 나올 수 있다니... 드라마 속 애들러는 정치적 거물이나 상류층 인사들과 자주 만날 정도로  팜므파탈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홈즈와 첫 대면부터 올 누드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중파라서 희미하게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게다가 원작 소설에서처럼 그녀 역시 홈즈를 골탕먹이기도 한다. 애들러가 저장한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서 번번히 추리력이 빗나가게 된다. 애들러에게 여러 번 농락당한 끝에 홈즈는 드디어 폰의 비밀번호를 알게 되는데...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한 분들 때문에 드라마 속 내용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홈즈는 애들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며 원작처럼 그녀의 지혜를 존경한다기보다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차도남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여자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냉혈한 홈즈에게는 애들러와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홈즈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철면피답게 그러한 감정을 자신의 가면 속에 숨기고 있었다.

 

 

 

 

 연애는 못 하더라도 '홈즈'처럼 되지 말자

 

어렸을 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즐겨 읽었을 때에는 완벽한 추리력에다가 상대방의 기를 꺾일 정도로 빈틈 없는 논리력 그리고 무감정해보일 수 있는 냉혈한 이미지가 무척 좋아했고 한 때 동경한 적이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상도 출신이라서 그런지 홈즈의 그런 모습이 그냥 좋아보였다. 그야말로 '차도남'의 전형적인 인물이며 원조격인 셈이다.

 

하지만 홈즈는 여성의 존재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다. 가끔 그의 절친한 동료인 왓슨도 고쳐야 될 성격의 약점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여성 앞에서는 차가운 반응만 보일 뿐이다. 드라마 속 홈즈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여성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대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당연히 그는 연애 한 번도 못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성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보헤미안 왕비 스캔들'에서는 여성의 본능을 이용하여 애들러가 사진을 숨겼던 곳을 알아내게 된다. 왓슨은 홈즈가 시킨대로 애들러의 집에서 불꽃과 연기를 일으키게 하는 작은 폭탄을 던지게 되는데 일부러 집에 불이 나게 함으로써 애들러가 소중히 여기는 사진이 있는 곳을 알려고 한 홈즈의 전략이었다. 홈즈는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먼저 지키려고 하는 여성의 심리적 본능을 이용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홈즈 역시 여성이라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본능과 신체적인 반응만 가지고 애들러가 저장한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알게 된다.그는 위험하기 짝이 없고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직업상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고 조절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차도남 이미지를 좋아했었는데 요즘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갈수록 이제는 따도남 이미지를 선호하고 있는 편이다. 오랜만에 어렸을 때 즐겨 읽은 낡고 변색이 된 문고판 홈즈 시리즈를 다시 보니 홈즈가 멋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연민이 느껴졌다. 머리가 똑똑하고 악의 무리들을 소탕하는 멋진 영웅으로서의 홈즈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기괴한 사건들을 푸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데다가 완벽함을 추구하고 무척 깐깐한 유별난 성격 때문에 자신 스스로 너무나 차가운 탐정이 되어버린 고독한 런더너였다. 홈즈가 좀 더 마음의 문을 열 줄 알고 타인의 입장과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아이린 애들러는 아니더라도 좋은 여자와 연애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 오늘 밤 12시 15분 KBS 2TV에 셜록 시즌 2의 두 번째 에피소드 '바스커빌의 개' 가 방영한다. <바스커빌의 개>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장편소설이면서도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패러디가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팁을 알려준다면 먼저 원작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낫다. 소설과 같이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바스커빌의 개>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이번 에피소드도 무척 기대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2-0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저도 어제 셜록홈즈 재미있게 봤어요.오늘 방영한다는 버스커빌가의 개도 상당히 기대됩니다^^

cyrus 2012-02-06 18:42   좋아요 0 | URL
버스커빌 가의 개 에피소드를 중간에 보다가 그만 잠이 들어서 결말을
보지 못했어요. 무척 기대했던 에피소드였는데 케이블에서 또 방영된다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봐야겠어요 ^^;;

stella.K 2012-02-0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왜 하필 늦은 밤에 하는지 모르겠어.
아예 포기했다. 오늘 거라도 볼 수 있을까?
난 더빙판 좋아하는데. 자막으로 읽는 거 좀 지겨워져서 말야.
성우의 꽃은 더빙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좋은 자리 다 자막으로 대치하고
예능이나 다큐 나래이션에 집중해 있는 거 안타까워.
요즘엔 다큐 나래이션도 꽃미남, 미녀들한테 주고 뭐 먹고 사는지 모르겠어.ㅋ

cyrus 2012-02-06 18: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바스커빌 가의 개 에피소드 보다가 깜빡 잠 들어서
결말을 보지 못했어요. 케이블 영화채널에서는 시즌 1을
자막판으로 방영해준 적이 있었는데 이참에 시즌 2도 다시 방영해줬으면
좋겠어요.

BRINY 2012-02-0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이린 애들러가 80년대생이라는 설정으로 나오는 걸 보고, 무척이나 놀랐습다. 드라마 셜록이건, 영화 셜록홈즈이건, 권교정님의 만화 셜록이건간에, 제가 상상하는 아이린 애들러랑 너무나 거리가 먼 아이린애들러만 나옵니다 흑흑.

cyrus 2012-02-06 18:49   좋아요 0 | URL
권교정님의 만화는 보지 못했어요. 사실 저도 원작에서 본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이번 BBC판에서는 팜므파탈로
나와서 살짝 원작을 탈피한 점에서 참신했어요.
사실 이 에피소드가 방영되면서 애들러에 대해서 영국 현지에서도
호불호가 있었다고 하네요. 온 가족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애들러가
누드로 나온 장면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고요.

마녀고양이 2012-02-0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만일 홈즈가 자신의 위험한 처지를 생각해서 여자를 멀리하는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완전 반대랍니다... ^^. 저는 결코, 코난 도일이 그려낸 홈즈가 그렇게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질 않거든요. 음침하고, 외골수에, 마약장이이고, 자극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친밀감-특히 여자-는 최저인... 그런 인물로 그려졌잖아요. 그렇기에 저는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도 듭니다만...

셜록 시즌2 KBS에서 하는데, 너무 늦게해서 졸려요. 거기다
더빙이라서 너무 이상하게 느껴져서 몰입이 안 되구요.
시즌2를 케이블에서 하루 종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바랍니다!!

cyrus 2012-02-07 19: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처음 홈즈라는 인물을 오래된 문고판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요즘에 나오고 있는 전집도 아니었고요, 번역도 누락된 부분도 있었고요.
나중에 황금가지에 나온 전집을 읽으면서 제가 어렸을 때 본 문고판이랑
다른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오히려 전집을 읽으니 홈즈의 음침하면서도
마약에 중독된 모습이 확실하게 그려지더군요. 그래서 홈즈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

저도 이번 시즌 2에 두 편을 제댖로 보지 못해서 혹시 이번에도
케이블에서 방영하면 꼭 보려고 해요. 더빙보다는 훨씬
이야기가 쉽게 이해될 수 있을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