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알라딘에 로그인하여 이웃님들의 서재를 방문하면서 글 읽고 댓글을 남기고 있던 중이었다. 한창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 복학하게 되는 녀석인데 수업 시간표 편성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통화하는데 만 30여 분 족히 걸렸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네이트에 접속하여 시간표 편성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항상 매 학기 전에 수업 시간표를 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기간만 되면 신경이 예민하다. 어떤 과목을 들어야할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 시간과 공강 시간의 정도까지 따져봐야 한다.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이 있다면 하루에 두 과목 수업을 듣는 건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운 없으면 하루에 세 과목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루에 세 과목 듣는 데 있어서 공강 시간만 적절히 남아 돈다면 별로 어려운 점은 없지만 문제는 하루에 세 과목을 한꺼번에 시험을 친다는 것은 시간적, 정신적 여건상 부담스러운 스케줄이다.
이번에도 시간표를 짜다보니 하루에 세 과목을 들어야 할 꼴이 되었다. 대부분은 그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는 과목을 선택했지만 이번 학기에는 순전히 내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목적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이랑 그 친구가 제안한 과목 한 과목의 시간이 중복되었다. 나름 고심 끝에 공간 시간이 적절히 나올 수 있게 편성했지만 하루에 세 과목을 들으어야하는 스케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듣고 싶어했던 과목은 학과와 관련된 전공이 아니라 교양과목이다. 과목 이름이 'DU 문화지대'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 내에서 시행되는 일종의 문화체험 강의라고 보면 된다. (과목 이름에서 'DU'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니셜이다) 일반적인 강의실 수업이 아닌 문화에 종사하는 외부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하는 교양 수업이다.
내가 알기로는 DU 문화지대 강연에 참여한 명사만 해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많다.
작년 학기에는 문화평론가 김갑수, 김용택 시인의 강연이 있었고 이 밖에도 도종환 시인, 가수 안치환, 칼럼니스트 김규항 등이 우리 학교에 강연 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강연뿐만 아니라 클래식, 국악, 재즈, 무용, 연극도 공연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화적인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유익한 과목이면서도 공부할 필요 없이 점수 따기 쉬운 인기 있는 과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목은 딱히 교재도 없다. 그냥 강연을 듣거나 공연을 감상하고 난 뒤에 정기적으로 감상문을 작성하면 된다. 그리고 이 과목은 학점이 아닌 'T/F'식으로 평가를 한다. 강의 시간에 결석이 많다거나 감상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바로 'F(False)', 즉 '불합격'으로 판정받으며 감상문을 제 시간에 제출하고 오픈 테스트로 이루어진 정기고사 때 어느 정도 준비만 잘 하게 된다면 'T(True)', '합격'을 받을 수 있다.
이 수업이 4학년 학생들은 신청할 수 없게 되어서 3학년이 시작되는 이번 학기만큼은 'DU 문화지대' 과목을 꼭 듣고 싶었다. 아직 본격적인 수강 신청하는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수강 신청하는 것도 학부생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얼른 수강 신청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학교에는 'DU 문화지대' 외에도 'DU 영화지대'라는 이름의 과목도 있다. 전자의 방식과 유사하다. '영화지대' 과목에서는 매주 영화 한 편씩 감상한다. 영화만 보는 과목이라... 영화를 좋아하는 학부생들에게는 매력적인 과목이다. 하지만 이 과목 역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감상문을 작성하고 제출해야 한다. 사실 이 과목도 같이 듣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다음 학기에 수강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온 걸로 봐서는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을 뿐이지만, 1개월이라는 시간 역시 금방 지나가는 법이다.
나름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적으로 취업 스펙을 위한 공부보다는 교양에 대한 열의가 무척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 2주 전부터 읽고 있었던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을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하는 '지적생활'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겸해서 '지(知)의 거인'이라고 불리우는 다치바다 다카시의 <두뇌를 단련하다>를 읽고 있으니 젋었을 때라도 교양 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교양'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변화되고 있고 새로운 현상과 방식들이 등장하는 과학, 컴퓨터 기술 관련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전부터 알려진 옛 지식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들도 무시해서는 안 되며 특히 문과와 이과 간의 교양적, 문화적 격차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른 영역 지식에 대한 배타적인 경향은 편협된 교양의 안목을 가질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사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접했다.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저자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만든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였다. 한창 독서를 좋아했떤 시기라 책 속에 소개된 저자의 고양이 빌딩 속 서재가 부러우면서도 그의 독서법을 마음 속에 새겨넣기도 했다.
1.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주제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 도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 도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주제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시간은 금리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가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 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곡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신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 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율이 아주 높다.
12. 웬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안 좋은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안 좋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보다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중에서, 청어람미디어 -
특히 마지막 14번의 내용은 가슴 속에 지적 호기심의 열의가 들끊였던 사춘기의 심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대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전공과목을 공부하더라도 여러가지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 영역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책 읽는 생활은 꼭 유지하리라 다짐했었다.
이제 대학생의 일부 능선을 넘은 지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서 교양의 안목을 키우는 독서를 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데다 정작 살아가는 데 유익한 교양을 위한 스펙마저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예전의 대학 생활을 반성할 수 있었다.
도쿄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을 토대로 구성된 <뇌를 단련하다>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학생들에게 교양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1년 정도 유급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카시의 제안은 올바른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업에 대한 열망이 강렬한 젋은이들로 가득한 우리나라 사회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교육 현장에서는 다카시의 1년 유급은 차라리 토익이나 자격증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써야할 판이다. 요즘에는 토익, 공무원 시험 준비와 같은 스펙 준비 때문에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미리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서 사회 생활을 하고 싶은 게 모든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마음이다. 준비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취업에 대한 주위 시선들의 압박이 부담스러워지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경제적 형편도 만들지 못하게 되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취업 준비생이 처하게 되는 현실이다.
(그러할 일은 없겠다만) 취업이 강조되는 사회 구조가 조금이라도 개선된다면 다카시의 제안처럼 유급은 아니더라도 일부러 교양 실력을 쌓기 위해서 휴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니면 올바른 교양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이나마 그러한 시간적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고 스스로 준비할 수 밖에 없다. 다카시의 독서법 14번처럼 말이다. 젋었을 때라도 책 읽는 시간은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독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 단, 만날 친구들이랑 극장에서 영화만 보는 게 진정한 문화생활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 연극이나 뮤지컬로 극화된 것을 본다거나 클래식 공연에 가서 감각을 전율케하는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를 드는 것도 좋다. 아니면 한적한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한다거나...
지금까지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나 웃어른한테 이런 말을 수십번 넘게 들은거 같다.
"대학생활이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 시절동안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놀아라. 대학생활 제대로 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대학생활을 학점으로 스스로 평가하자면 학업은 A+, 노는 거는 A0에서 B+ 정도 그리고 연애는 정말 최악인 F학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학부 생활이 남아 있어서 대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못 하고 있다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정말 남은 대학생활, 후회하지 않는 좋은 기억과 경험들로 가득한 시절로 만들고 싶다.
* 뱀꼬리
우연히 번화가에서 놀다가 대구에서 '노르트담 드 파리' 내한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광고를 보는 순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마저도 두 눈으로 못 본다면 남은 생에 과연 뮤지컬이라는 걸 볼 기회가 있을까나...
이번 설 연휴에는 세뱃돈을 많이 받게 되어서 어디에 쓸까 고민중이었는데 그 돈으로 뮤지컬 공연이라도 봐야겠다.
그런데 이런 건 여자친구랑 같이 보면 참 좋을텐데... 일단 뮤지컬 보자고 (친)동생을 꼬셔봐야 겠다. (참고로 동생은 여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