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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ㅣ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강남좌파의 등장
한 달뒤에 치뤄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각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요즘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바로 '강남좌파' 이다. 진보, 중도. 보수성향 언론들은 앞다투어 소개할 정도로 오늘날 강남좌파 논의는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통념적으로 볼 때 ‘강남 좌파’ 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강남’ 이라는 지명과 이념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진보 진영의 ‘좌파’ 라는 표현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강남좌파는 곧 부유한 진보주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 전통이 깊은 서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을 일컫는 다채로운 용어들이 사용되어 왔다. 각국 문화를 반영한 용어들은 대개 말로만 진보적인 부자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부정적 의미의 조어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 이라는 함의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고급 승용차인 리무진을 몰고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비아냥대는 의미로 ‘리무진 리버럴’ 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고급 요리인 철갑상어알을 먹으며 사회주의를 논한다는 의미로 부자 좌파들을 '캐비어 좌파' 라고 부른다.
강남좌파 역시 처음에는 이들과 비슷한 의미의 용어로 출발했다. 다만 서구의 용어가 보수진영의 비아냥거리는 용도 이상을 넘지 못했다면, 근래 한국의 강남좌파는 수동적으로 붙여진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선다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 고학력, 전문직의 중산층이면서 적극적으로 진보적 언행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 사회적 영향이 커지면서 등장한 것이다.
'엘리트주의' 가 만들어낸 강남좌파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은 이들" 이라며 '강남 좌파'를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다. 그리고 때마침 강남좌파의 존재가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강남좌파를 석한 종합적인 결과물이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주 거론되는 강남좌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국 서울법대 교수다. 그는 전형적인 강남좌파 아이콘으로 꼽힌다. 본인 스스로 강남좌파라고 자처할 정도로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보수파에 빼앗긴 정권을 진보 세력이 탈환하기 위한 이념적 당위성과 전략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강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분류하고 있다.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선 학벌, 학력에서 생활 수준까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좌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보 좌파와 대립하는 보수 진영도 예외일수가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 지역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사용하며, 반(反) 포퓰리즘적 언어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강남좌파를 이념 진영의 기준보다는 엘리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이루어지는 정계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지지받기 위해서는 이와 동일한 성향을 지닌 인물과 결탁하기 쉽다. 민주화 이후에 정치적 엘리트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인물 중심주의' 에 원인을 두고 있다. 최근에 줄줄이 터져나오는 MB 정부 측근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학벌, 연고 등을 통해 이루어진 자기동질적 집단의 특징에서 기인한 정치적 엘리트의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물 중심주의가 곧 '엘리트주의' 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에게는 민생문제보다는 승진과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강 교수는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게 큰 힘이 되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더 많은 권력을 얻는 수단으로 '진보' 이념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하층 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실현가능한 공약이 아닌 립서비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 존재하고 있는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로 가장하는 우파 진영을 경계했다. 좌파 성향의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개인적, 정치적 이익과 결부되는 '밥그릇 지키기 싸움' 에서 이기기 위해 겉으로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강남좌파 신드롬 이면에 숨겨진 엘리트주의의 문제점
강남좌파의 실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복잡해지는 양상이지만 강남좌파는 ‘있는 자=우파’ , ‘없는 자=좌파’ 라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이분법을 깨뜨리면서 환경 변화에 맞춰 자연선택적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파의 보수 진영이 두 번 연속해서 정권을 빼앗기면서 뉴라이트가 등장했듯 강남좌파는 진보주의자들이 변화된 사회 상황에 적응하며 진화한 좌파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강남좌파는 부와 권력에 양심과 정의라는 상징 자본까지 가지려는 위선자로만 비춰지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지만 강 교수의 주장대로 모든 정치인이 '강남좌파' 라고 해서 꼭 '있는 자' 들은 양심과 정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양심과 정의는 빈부귀천을 떠나 맘껏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신좌파 사회사상가인 앙드레 고르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생각의 나무, 2011)에서 전통 마르크스주의가 계급 해방의 주체로 제시한 프롤레타리아에 작별을 고한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이 이미 자본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지배질서에 편입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계급만으로 실업 및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명의 주체' 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의 주장처럼 지금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찾고자했던 양극화 해법의 열쇠가 기득권층에 있을 수 있다. ‘진보의 진보’ 를 꿈꾸는 진정한 강남좌파라면 이 지점에서 뭔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상징적 제스처에 머물게 된다면 '엘리트주의의 옷을 입은 진보' 라는 강남좌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 하락와 불신은 곧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강남좌파 진영이 진보 세력에서도 환영을 못받든 간에 결국 강남좌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참여한 또 하나의 정치적 세력이다. 지금 우라나라 사회에는 경제적 위기와 대북관계 등과 같은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굵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인들이 '강남좌파' 라는 이슈에만 사로잡힌채 설전이 길어지게 된다면 정작 눈 앞에 보이는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도외시할 우려가 있다.
모든 정치인들이 '강남좌파' 라면 그 용어의 이면에는 숨겨져 있는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엘리트주의의 문제점으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엘리트로써의 허위의식과 정치 유혹을 떨치는 게 관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념을 기준으로 선을 그어 팽팽하게 다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념의 허상에서 벗어나 '소통' 과 '화합' 을 통해 실천적 담론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적 욕망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결판이 나지 않은 무의미한 대립 속에서 진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