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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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과학' 의 부재 

지난 학기 때 전공과목으로 '사회학'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사실 이 수업을 신청하기 전부터 행정학 관련 전공과목보다 내심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했던만큼 수업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사회학' 이라는 제목답게 사회학에서 다루는 이론을 강조하는데만 그쳤을 뿐 정작 중요한 사회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못했다.   '사회학' 에서 '과' 자가 빠져버린 탓일까?       

이번 2학기에는 2학넌 전공과목으로 '사회과학방법론' 이라는 이름의 수업이 있다.  이름만 들어보면 사회 현상을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수강신청했을 때 이 수업의 수강계획서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과학' 과는 내용이 너무나도 달랐다.   '사회과학방법론'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회조사방법론' 에 가까웠다.   

최근까지만해도 언론매체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여 학문 풍토의 문제점을 거론하였는데 인문학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회과학에도 학문적 주체성과 존립성에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회과학' 이란 사회학, 행정학, 정치학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사회 현상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을 이해하고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내용을 뜻한다.  

그런데 '사회과학' 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게 느껴진다.  사회에 '과학' 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사회과학이 유행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가에서는 사회과학을 운운하는 대학생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취업' 과 '스펙' 에 집중하고 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에서 우석훈은 사회과학의 남성적인 측면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데 집중하다가 결국에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고 하였다.   사회과학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만들었지만 시대가 흘러가면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학문으로 변질된 것이다.   사회과학의 부재 이후, 우리 사회에는 경제 근본주의와 무한경쟁 자본주의만 남게 되었고 정치와 사회는 좌우로 나뉘어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처했다.   이러한 상태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회는 문제 투성이면서도 도통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 르네상스' 를 제시한다.  그는 사회를 작동원리를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읽는 방법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권하고 있다.   대결, 대립의 언어로서의 사회과학이 아닌 공감과 소통의 언어로 사용되어지는 사회과학을 가리킨다.   

사회과학을 공부함으로써 복잡한 사회현상을 분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사회의 대안을 찾을 때 길잡이가 되어준다.   

 

 

  환원주의와 근본주의의 해악 (관련내용: 제7장 환원주의와 다원론)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빅,  

그는 무고한 시민들을 희생한 '가해자' 테러범이면서도  

동시에 '기독교 근본주의' 의 해악에 희생된 '피해자' 이다.  

 

 

지난 7월 22일, 글로벌 평화지수 세계 1위의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십자군 전사를 자처하는 32세 청년이 정부청사에 대한 차량폭탄 테러와 이민 수용에 앞장선 노동당 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반인륜적이면서도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극우 테러사건을 사회과학적 관점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다.

환원주의는 다양한 현상을 기본적인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다. 환원주의는 결정론과 함께 과학의 양대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위상을 자랑한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는 세상사를 한 개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는 일원론적인 관점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회, 언어, 기술 등 한 가지 요인으로 사회나 개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들은 사회과학의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복잡한 설명보다는 간단한 설명을 좋아하는 인간 습성은 과학의 세계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환원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다. 환원주의가 완고해지면 근본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환원주의는 극복과 경계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환원주의와 근본주의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기독교 근본주의' 이다.    노르웨이에서 1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붙잡힌 테러범이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혀 사회적 관심이 증폭되기도 하였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과 테러도 불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사회를 부정하는 편이다.  이런 종교적 근본주의는 기독교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특징만 다를뿐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를 지켜내기 위해서 테러로 서방세계와 맞서려고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 들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다.   

우리나라에는 노르웨이의 테러범과 같은 극단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경향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일원론, 환원주의적 원리가 작동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라도 예외가 아니다.    테러범은 가부장제 특성과 단일문화 전통이 강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보수주의를 칭찬하면서 유럽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모델 국가로 바라봤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 이민자들이 증가하면서 다문화 담론이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반(反) 다문화적 경향이 자리잡고 있다.    

다문화 반대 움직임이 날로 커지고 조직화되는 시민단체 및 온라인 카페의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외국인 범죄와 결혼 이민자의 가출 사례 등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려 반 다문화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자칫 이런 기류를 무시하고 방치할 경우 사회불안 요소로 비화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노르웨이의 사례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보장도 없다.   

  

 

 수다쟁이들을 위한 사회과학

노르웨이 테러범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의 이면에는 사회과학적 원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현상의 원인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즉,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 정치 균열, 사회 갈등, 문화 충돌 등의 현상 속에는 사회과학 영역이 아닌 것이 없다.   

특히 1984년에서 1995년 사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과학의 학문적 공헌은 매우 컸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pp 19)   그리고 1980년대 대학생들은 동아리 같은 소모임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자발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였다.  (같은 책, pp 32)    삶의 양뿐 아니라 질이 한층 제고된 한국 사회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과학의 공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회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여건은 좋지 않다. 2, 30년 전과 같은 사회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동아리를 결성하는 대학생들을 찾기가 어려우며 학문의 기본을 구성하고 있는 교양 커리큘럼에서 사회과학의 비중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과학 내부에 존재하는 양극화다. 정치학, 법학, 행정학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응용학문 성격을 띠는 사회과학 분과는 활기를 띠고 있지만, 정작 이들 학문을 밑바탕이 되는 기초학문 성격을 지니는 '사회학과' 는 위축되어 있다.  일부 사회과학 학과는 수강하는 학생들이 없어 폐과 직전이다.  

엘리트 남성의 전투 용어로 뒤덮인 사회과학의 언어가 여성을 포함한 생활인들의 일상용어로 바뀌어야 '사회과학의 르네상스' 가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의 생각이 사회과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척박한 학문의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조금은 미약한 감은 있지만 즐겁게 수다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다쟁이' 들의 사회과학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라면 복잡한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스스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P.S >  

사회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사회과학적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각 챕터 끝에는 독자들이 직접 사회과학적 방법론들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는 '쪽글' 이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본다면 이제 막 사회과학에 입문한 대학생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몇 몇 내용들 중에는 대학생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소지가 있으면서도 잘못 소개한 부분도 있었다.    

 

알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실험을 통해서 이론을 개진했다기보다는 이른바 '사고실험', 즉 계산을 토대로 이론을 만든 학자였죠.  그는 계산에 근거해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해왕성이 발견되죠.    (pp 115) 

 

* 과학주의와 해석학을 다루고 있는 제6장 '설명과 이해' 에 언급되는 내용 일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이 해왕성의 존재를 예언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강한 중력장 속에서는 빛이 구부러진다는 과학적 예상을 발표하였다.  그의 예상은 훗날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을 중심으로 한 일식관측대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해왕성의 존재에 대해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추정한 사람은 위르뱅 르베리에라는 프랑스의 천문학자다.  1846년에 르베리에가 시도한 계산을 의뢰받은 독일의 천문학자 갈레가 해왕성을 발견하였다.

  

선불교를 정리한 6조 혜능이 과연 돈오점수라고 이야기했는지 아니면 돈오돈수라고 이야기했는지 이것도 아주 오래된 선불교 논쟁이에요.   그런데 분명 <육조단경>이라는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조작한 것 아니냐며 도무지 믿지를 않았어요.  나중에 둔황 석굴에서 진본이 등장한 다음에야, 돈오돈수가 맏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이해와 해석의 문제였지요.   (pp 120)

 

* 이 문장 역시 제6장 '설명과 이해' 에 언급되는 내용 일부분이다.   여기서 '이해' 와 '해석' 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를 사례로 들어 잠깐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방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레들을 인용하다보니 이에 대한 자세한 부연적인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인용한 부분만 읽어도 독자들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논쟁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게 되며 논쟁의 의미를 모르게 되다보니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마저 불분명해져 버렸다.  

 

4대강 사업 같은 경우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엉뚱하게 적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개발주의자들과 토건주의자들이 주로 쓰는 논리가, 이미 돈을 들였으니 그만둘 수가 없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들였어도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면 그만두는 게 이익입니다.  경제학에서는 그걸 '매몰비용 sink cost' 이라고 부릅니다.   (pp 195) 

*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되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말한다. 물건이 깊은 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면 다시 건질 수 없듯이 과거 속으로 가라앉아 버려 현재 다시 쓸 수 없는 비용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매몰비용의 영문을 Sink Cost 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정확한 영문은 Sunk Cost다.   Sunk는 '가라앉다' 라는 뜻의 Sink의 과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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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2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점에서 이 책을 좀 읽었었는데, 마치 강의를 하는 식대로 나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하기는 요즘에는 가장 밀려나 있는 것이 사회과학인 것 같기는 합니다(서점에서도 대부분 한갓진 구석에 배치되구요). 예전에만 하더라도 도리어 사회과학이 다른 많은 것을 포괄하는 것으로 대학생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사회과학 학회 같은데에 첫 커리로 철학책을 가지고 하는 것이 정석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사회과학'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이념적 용어처럼 받아들여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구요.

학문의 유행도 사회의 어떤 경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겠지만, 저역시도 씁쓸하게 생각되는 점들이 있네요.

cyrus 2011-09-20 16: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본적인 사회과학 이론을 쉽게 풀어내고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알기로는 80년대 때 많이 읽혀졌던 사회과학 도서들이 마르크스
사상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한창 그 시기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물꼬를 틀고 있었던 때라,,
맥거핀님 말씀처럼 오늘날 사회과학이라고 하면 이념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당연한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9-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이론 중에서 환원주의가 정말 어려운 문제더군요.우리가 무슨 원인을 이야기할 때 개인문제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심리학 환원주의가 되고 사회문제만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사회환원론(사회결정론)이 되는데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이 문제는 철학분야의 인식론과도 겹치니까 그 분야도 한번 다뤄보세요.유물론과 관념론의 논쟁까지도 공부할 수 있으니 도움이 많이 될 거에요.

cyrus 2011-09-20 16: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환원주의도 어떠한 상황과 관점에 따라 종류가 다양했어요.
제 글에는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환원주의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에도
유물론, 관념론이 언급되더군요, 저는 처음에 읽었을 때 이게 왜 나왔냐
생각이 들었는데.. ^^;; 환원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9-20 17:32   좋아요 0 | URL
에밀 뒤르켐의 사회실재론은 유물론이나 관념론 어느 범주에도 넣기가 좀 애매한데, 이것을 막스 베버의 방법론과 비교해보는 게 괜찮을 거에요.그 책에 사회실재론에 대해서도 나오나요?

에드워드 카<역사란 무엇인가> 중 제2장 '사회와 개인'에선 사회환원론과 심리학환원론의 문제를,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는 결정론과 인간의지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니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의 방법론을 비교한 후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겁니다.물론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공부해도 되고요.

cyrus 2011-09-21 16:07   좋아요 0 | URL
잘못 기억할 수도 있지만 제 기억으로는 사회실재론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없었어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언젠가는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노자님이 권하시니 읽어야할 동기가 생겼네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yamoo 2011-09-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르켐의 방법론과 베버의 방법론을 비교해 보는 것두 재밌을 거 같아요. 헌데, 비교하는 거 자체가 만만치 않을 거 같다는..ㅎㅎ

cyrus 2011-09-21 16: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혹시 야무님도 도움이 되는
정보 알고 계신다면 알려주셔요 ^^

yamoo 2011-09-21 22:31   좋아요 0 | URL
환원주의에 대한 장단점을 균형있게 보여주는 책이 레이첼 칼슨의 <침묵의 봄>이에요. 정확히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입각한 책이지만요^^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도 환원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명화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