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중략)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

   

 

 

  난쏘공,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기록'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쏘공’ 이란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1978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연작소설은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고통받던 노동자와 빈민의 삶을 그렸다. 당시 정권으로서는 불온하고 위험한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형상화한 이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출간된지 30여 년이 지남 지금까지 200쇄를 돌파했다. 책 한 권이 30년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작가는 <난쏘공>의 200쇄 출판이 자랑거리가 아닌 '부끄러운 기록' 이며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소설이 아직도 읽혀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년 전의 불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 을 증명하는 기록의 반증이라고 하였다.  작가의 말대로 70년대의 불행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여전히 빈부와 소외계층 문제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이 쓴 글이 꾸준히 읽혀져 온 사실이 부끄럽다고 여기지만 그 글을 읽었던 독자, 우리들 역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될거 같다.   청소년 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목록에는 예외 없이 <난쏘공>이 포함되곤 한다.  특히 입시교육을 받고 있는 중, 고등학생들에게는 <난쏘공>은 대학수능시험 언어영역 시험에 지문으로 출제될 수 있는 작품이며 대학논술에서도 인용되는 필독서로만 인식하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소설에서 말하고자하는 시대의 현실상을 보지 못한 채 오직 '대학입시' 을 위해서 읽어야하는 그저 그런 소설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이 직시한 이데올로기와 빈부 격차 문제는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해야할  '고민' 임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청소년들은 그 진지한 고민조차 하지도 못한채 때이른 독서로 강요 당하고 있는 셈이다.      

 

 

  1970년대 '못 가진 자' 들의 이야기  

소설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일가의 이야기다. 난장이 아버지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세 남매는 ‘날마다 지기만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루하루 살기도 벅찬 이들에게 어느 날 철거계고장이 날아든다. 쇠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자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녀야 한다. 죽어라 일해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달나라로 떠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결국 굴뚝에서 떨어져 죽는다. 

도시 빈민의 처참한 생활상,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실태를 정면으로 고발한 소설은 1970년대 사회에 대한 강렬한 문학적 보고서로 꼽힌다. 산업 개발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사회에 이 소설은 커다란 충격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다.

1970년대는 외형적으로는 산업화 시대가 본격화되어 근대화가 급진전되는 시기였지만 독재정권이 장기화되고 부정부패가 극심해지는 가운데 경제적 위기감이 고조된 시기이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빈부 격차로 인한 계층 간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농촌과 도시 간의 소득 격차도 커지게 되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산업화로 인한 소외 현상이 심각해지고 기존의 질서와 가치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난쏘공>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대립적인 구도로 사건이 형성, 전개되고 있다.  난장이 가족이 사는 판자촌과 ‘다른 세계’ 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거기에선 매일같이 고기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건너온다.  공간적으로 도시 변두리의 철거민촌, 노동 계층의 비참한 생활상과 개천 건너편에 위치한 잘 사는 계층의 화려하고 타락한 생활상으로 세계는 극명하게 갈린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 소외된 사람을 의미하는 '난장이' 가 있다면 반대로 난장이보다 덩치가 큰, 거대 자본을 상징하는 '거인' 도 존재하게 된다.    키 작은 난장이가 덩치가 크며 힘이 센 거인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속 난장이 가족들은 자본가들과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만다.   영희는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잇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투기업자에게 순결을 빼앗기게 되며 그녀의 아버지인 난장이는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자본주의 4.0과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난쏘공>은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이다.  그 중에 동명제목의 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 2년 전 용산 참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재조명되기도 했었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연작단편 중에 네 번째로 구성된 동명제목의 소설만이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다 '난쏘공' 이라는 제목이 주고 있는 대중들의 인식이 워낙에 강다하다보니 나머지 단편소설들의 문학적 가치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감이 있다.  그나마 '난쏘공' 다음으로 알려진 것이 첫 번째 단편인 '뫼비우스의 띠' 와 열 번째 단편 '클라인씨의 병' 그리고 열한번째에 수록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이다.  

<난쏘공>은 상징적인 형식과 언어를 통해 비참한 1970년대 사회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정작 작가 본인은 소설 집필 당시의 사회에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형식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 열한번째 연작소설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는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같은 경우에는 최근 '따뜻한 자본주의' 를 표방하고 있는 '자본주의 4.0' 와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좋다.   

자본주의 4.0 이란 20세기 초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 시대(자본주의 1.0)를 지나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 1970년대 자유시장자본주의(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에 이어 등장한 새 자본주의를 뜻한다.   자본주의 4.0이야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병리적 현상, 즉 빈부격차, 중산층 빈곤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자본주의' 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일방적인 성장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에도 공정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회적 모순을 정부의 힘이 아닌 시장과 기업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4.0이 이전의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4.0을 이루고 있는 내용의 요지들은 보게 되면 예전부터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할 때 항상 언급되던 내용들이다.  더구나 시장의 문제와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업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는 대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홀대하는 지금의 기업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동떨어져보인다.     

마르크스가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관계를 서로 목에 칼을 겨누는 대립, 투쟁적 관계라고 비유했던 것처럼 시장의 기능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자본과와 노동자가 서로 공생하고 협동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자본가는 '이익' 을, 노동자는 '생존' 을 중요시하다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계급의 대립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은강그룹 노동자들은 기계처럼 착취당하며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은강그룹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로 높은 이윤을 얻고 있다. 은강그룹은 거대한 기업으로,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저임금과 높은 이윤’ 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은강 그룹 회장의 손자인 경훈이 전개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본가의 비윤리성과 부도덕성,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화해 불가능성 등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경훈이 꾸는 꿈이 인상적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고, 깨기 직전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그물을 쳤다. 나는 물안경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가 내 그물로 오는 살찐 고기들이 그물코에 걸리는 것을 보려고 했다. 한 떼의 고기들이 내 그물을 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살찐 고기들이 아니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단 큰 가시고기들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큰 가시고기들이 뼈와 가시 소리를 내며 와 내 그물에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밖으로 나와 그물을 걷어올렸다. 큰 가시고기들이 수없이 걸려 올라왔다. 그것들이 그물코에서 빠져 나와 수천 수만 줄기의 인광을 뿜어 내며 나에게 뛰어올랐다. 가시가 몸에 닿을 때마다 나의 살갗은 찢어졌다. 그렇게 가리가리 찢기는 아픔 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치다 깼다. 

- 조세희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중에서 -

  

그물과 가시고기의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앙상한 뼈와 가시에 두 눈과 가슴지느러미만 달려 있는 가시고기들은 헐벗고 소외된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가시고기들이 경훈이 쳐 놓은 그물을 뚫고 나와 경훈을 향해 달려든다. 이는 노동자들이 아무리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경훈은 가시고기의 꿈을 꾸고 난 후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라고 말하면서도 혼잣말을 하게 되는데 경훈의 의식 속에는 노동자들을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도 마땅한 존재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난장이' 들의 비극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가난이란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던 말이 나오던 전후 시대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인 가난이라는 말 대신 사회적 양극화라는 그럴 듯한 표현으로 가난을 이야기하며 정계 인사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인마냥 자처한다. 눈으로 봤을 때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었다 하여도 여전히 자고 일어나면 가난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끓었다거나 가난과 빈곤을 둘러싼 엽기적인 사건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스스로 빈곤하다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강제철거로 누울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철거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애인들과 노숙인,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정규직자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고용의 불안에 시달려야만 했고, 젊은 패기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할 청년들은 실업이라는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난장이' 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공장 노동자였고,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도시빈민을 상징하는 시대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가난한 노동자를 조명했던 조세희의 <난쏘공>에 나오는 그 난장이는 옷을 갈아입을 뿐, 여전히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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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1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세희 소설가 말대로, 이 소설이 점점 "한 때 그런 무지막지하고, 무서운 시대가 있었지.."라고 읽혀야 하는데, 수치상으로나 체감상으로나 빈부격차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누군가는 내몰려 죽음에 이르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낙원구 행복동'이라...

cyrus 2011-09-16 18:56   좋아요 0 | URL
소설 속 배경의 이름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소설 속 이야기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씁쓸하죠.

아이리시스 2011-09-16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친구가 가져간 난쏘공 어떻게 됐어요? 아직 멀었어요?ㅋㅋㅋ 아프지만 유명해서 막막한 마음으로 읽었었는데 뭐 지금도 변함 없으니 씁쓸해요. 세상은 좋아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의 골은 더 깊고 커졌어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어쩐지 아찔하네요. 그래서 낚시의 행위를 좋아하지, 고기를 포획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없고, 때로 미친 폭력이라 생각하는 저입니다. 그렇다고 생선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썩 즐기지도 않지만 갈치조림이랑 고등어찌개는 너무 맛있..^^

cyrus 2011-09-16 22:26   좋아요 0 | URL
네, 아직 못 받았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돌려준댔어요. ^^;;
<난쏘공>에서 '난쏘공'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고 인상 깊은 소설이
'가시고기'에요. 정말 사회적 상황을 기가 막히게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은 부산에서 사시는데 생선을 싫어하시는군요.
지방 사람들은 부산 사람들이 생선회를 즐겨 먹는다는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그런가 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