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역사 -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장영란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인들에게 '영혼' 이란...?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영혼' 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 수 있다.   

-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 장영란, 글항아리. pp 7 -

 

'영혼'   우리가 살아가는데 귀에 들리는 익숙한 단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작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최첨단 과학기술과 정보가 흘러넘치는 이 시대에 '영혼' 을 들먹거린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대에 뛰떨어진 추상적인 관념을 논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혼' 이라고 하면 단지 죽은 사람의 넋이라는 일반적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영혼' 이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의미에만 국한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간혹 '영혼을 팔아서 OO를 이루겠다.' , ' 혼란스러운 세상으로 인해 병든 도시인의 영혼들' 이라는 식으로 이 '영혼' 이라는 단어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영혼' 은 그저 죽은 사람의 넋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모든 정신활동을 함축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영혼' 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나간다면 '마음' 또는 '정신' 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병든 영혼' 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현대인의 정신은 그야말로 피폐해져만가고 신체 질환 못지 않게 마음과 정신의 병을 죽을 때까지 달고 살아가기도 한다. 아무리 시대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남녀노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높아지고 있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이 현대인들의 '영혼' 을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정신상담 관련 카운셀러나 전문의들은 대체적으로 현대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현대인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우울증 문제는 단지 사회 구조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좁은 발상이며 실질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한계가 따른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으로 보는 영혼의 역사>를 쓴 그리스 신화 및 고대철학 전문가인 저자는 현대인들의 피폐한 삶을 치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고대 그리스로 대표되는 고대인들의 영혼 개념에서 찾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림으로써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영혼을 고대의 선조들이 남긴 지혜, 즉 그리스 신화와 철학을 통해서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영혼의 개념  

'영혼' 은 '숨쉬다' 라는 말을 뜻하는 그리스어 psycho에서 유래되었다.  오늘날에는 '정신' 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영혼의 기능이 정신적인 의미로 자리잡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똑부러지게 한 가지의 의미로 특정짓기보다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혼' 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호메로스<일리아드><오뒷세이아>를 통해 다양한 표현으로 영혼의 기능을 설명해주었지만 매우 한정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었을 뿐이었다.  영혼의 어원이 '숨쉬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듯이 그저 죽은 자들에게만 사용되는 단어였으며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즉, 신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은 바로 죽음이며 그것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는 호메로스가 남긴 문헌들,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를 보게 되면 영혼을 생명의 원리로서 본절적 특성을 부여한 표현도 있지만 호메로스는 영혼의 본질적 의미에 심도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리스 철학이 등장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영혼의 개념이 철학적 사유로 분석되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밀레토스 학파의 시조인 탈레스는 모든 만물에는 그 자체 속에 생명을 갖추고 있다는 물활론을 확립하여 영혼을 통해서 만물이 스스로 운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에도 초기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영혼의 개념을 내세우게 되었는데 아낙시메네스 는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야말로 영혼이라고 생각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영혼 개념에 '인식' 능력을 덧붙였다.   

  

 

  오르페우스교 & 피타고라스 학파 :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두 학파의 입장 

영혼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연히 인간의 신체가 죽음으로 소멸해도 영혼은 다른 신체에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고 여겼다.      

  

 

 카미유 코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1861년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뤼디케가 있는 지하세계 하데스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리라 솜씨로 스튁스 강의 뱃사공 카론과 괴물 케베스(케로베로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까지 감동시켜 에우뤼디케의 영혼을 데리고 갈 것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아무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지하세계의 법칙을 어겼고, 결국 아내의 영혼을 헤르메스에 의해 이끌려 되돌아갔다.  오르페우스는 그녀 무덤 앞에서 슬픔을 감출 수 밖에 없었다.  

- 같은 책, pp 256 -

 

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데려오기 위해서 죽은 자들만 갈 수 있는 지옥 세계에 도달한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리라 연주가 오르페우스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진 오르페우스교는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영혼이 영적 존재로서 불멸의 행복을 얻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영적 불멸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엄격한 수행이 요구되는데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수학 시간에 배우게 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주축으로 형성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전생과 윤회를 믿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가입된 학자나 사람들은 육식과 동물 살생을 금기시하였는데 인간의 영혼이 완전하게 정화될 때까지 다른 생물로 형체를 바꾸며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 영혼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한 일상적인 방법  

플라톤은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일 없이 동일한 것으로서 머무는 영원불변한 형상, 즉 이데아(Idea)를 영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진실한 존재로서의 이데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영원불멸한 진리를 인식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재판 이후 비극작가로의 꿈을 접고 철학의 길로 들어선 플라톤은 그가 살아가는 초라하고 부적절한 세계보다는 마음속으로 더 순수하고 더 확실한 미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플라톤에게 있어 영혼은 육체보다 완벽하며, 이데아는 육체나 영혼보다 더 완벽하였다. 그에게는 배움마저도 태어나기 전부터 비자연적인 존재로부터 배웠던 것을 ‘상기’해 내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행위 자체를 곧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주의 깊게 성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혼을 성찰하고 돌보기 위한 일상적인 행위로서 플라톤이 제시한 방법은 바로 '글쓰기' 다.  그러나 문자 자체로서의 의미만 파악한 채 정작 참된 의미의 지혜를 기억하지 않는 글쓰기 행위를 경계하였고 인간이 문자를 배워 글쓰기에만 신뢰한다면 지혜의 기억에 무관심해져 영혼이 더 쉽게 망각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단 한 편의 저서를 남기지 않았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는 반대로 대화편을 남긴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의 모습과 상반되는 사실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vs 스토아 학파 :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형성된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공통적으로 영혼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행복한 삶은 최대의 쾌락과 최소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가르친 반면, 스토아 학파는 행복을 정신과 영혼의 안정에서 찾았으며 욕망을 버리는 금욕주의를 행복을 달성하는 실천 윤리로 제시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옹호하면서도 그것을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 두 가지로 분류했다. 전자는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형성되는 쾌락(아포니아, aponia)이다. 후자는 욕구가 충족된 뒤 더는 그것을 느끼지 않는, 그야말로 영혼이 동요되지 않는 평정한 마음 상태의 쾌락(아타락시아, ataraxia)이다.  에피쿠로스는 그러한 감각적이며 순간적 쾌락으로 대표되는 아포니아를 부정하고,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쾌락인 아타락시아를 역설하여 쾌락의 질적 구별을 인정하였다.  에피쿠로스가 정적 쾌락을 중시한 것은 욕구의 충족보다는 그것의 제거가 인간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행복의 관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죽음과 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곧 불멸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세네카의 죽음>  1773년 

여느 스토아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세네카도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삶은 자연에 일치하여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면서도,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을 갖췄기 때문이며 유일의 선(善)인 덕(德)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중략) 

- 같은 책, pp 493 -

 

반대로 스토파 학파와 같은 경우에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면서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쾌락에도 고통에도 무감각한 부동심의 마음을 강조했다.  변화무쌍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성' 에 따름으로써 분노, 슬픔 따위 감정의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자기보존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 일어나게 될 상황들을 예측하고 상상함으로써 미리 영혼의 준비를 하는 훈련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고대인들의 지혜를 통한 잃어버린 영혼 되찾기  

고대 그리스 신화나 철학에서 언급되는 있는 '영혼'의 의미들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관념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영혼' 의 의미보다는 한층 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논어> 위정편에 '온고지신'(新)이라는 구절이 있다.  옛 것을 배움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영혼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들 중에는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내용도 있다.  

자신의 삶, 즉 영혼 그 자체를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쉬운 방법이 글쓰기임을 플라톤은 제시하였고,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곧 삶의 욕망으로 발전하여 자신 스스로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 봤다.    즉, 고대인의 지혜가 함축된 철학을 배움으로써 단순히 진리를 인식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갈수록 더욱 고달퍼지고 퍽퍽해져나가는 세상 속에서 영혼이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굳이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상담 카운셀러와 전문의를 만나는 것보다는 자신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해보고 이를 해결해나가 수 있는 영적 훈련을 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플라톤의 스승이 델포이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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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아, 근데...진짜..무엇이 현대인들의 '영혼' 을 병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요? 정말 궁금해요...저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가요??

나 자신을 알면 병든 영혼을 치유할 수 있을지...근데, 이거...넘 어려운거 아닌지...ㅜㅜ

cyrus 2011-09-02 23:25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부분만큼은 글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네요.
자칫 읽는 분들이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겠습니다. ^^;;

참고로 이 책에서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병에 대한 원인은 상세하게
밝히지 않고 있답니다. 머리말에서 저자가 현대인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단초로 고대인들의 신화나 철학 속에 등장하는
영혼 개념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덧글로나마 글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병에 생기는 이유가 스토아 학파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자신 스스로 병들게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 책의 내용이 어렵기는 해요.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면 읽는데 수월할거 같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학파에 대해서 학창시절에 인상깊게 배운 적이
있어서 제가 최대한 소개할 수 있었던 내용이랍니다.

꽃도둑 2011-09-0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안농안농! 잘 지내시죠? 아, 여전하네요.. 보기 좋아요..^^
정말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네요.
그냥 인사차 들렀어요.. 잊을만 하면 또 올게요.
몸, 마음, 정신, 영혼 모두모두 건강하게 지내세요~~

cyrus 2011-09-02 23:26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꽃도둑님 ^^
잘 지내고 계시죠. 꽃도둑님도 건강하시고,, 제 생각이 나신다거나
심심하면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