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펭귄클래식 20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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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아, 거울아.   

 

 

 

어린이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에는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미모를 시기하는 마녀가 마법 거울을 통해서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어른들도 생생히 기억나는 <백설공주>에서 제일 유명한 장면이다.  

백설공주의 계모로 새 왕비가 된 마녀는 자신만의 방에 걸려 있는 마법 거울에게 질문을 하는데 거울은 마녀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왕비가 "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 라고 물으면, 거울은 " 여왕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거울의 대답에 마녀는 자신이 이 나라의 최고의 미인된마냥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마녀의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백설공주가 어여쁜 여인으로 자라게 되면서 항상 마녀가 예쁘다던 거울은 마녀가 아닌 백설공부가 더 예쁘다고 대답을 하게 된다.   

자신보다 더 예쁜 백설공주의 미모를 향한 질투심에 불타오른 마녀는 수차례나 백설공주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마녀는 사과를 파는 노파로 변신하여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네주면서 백설공주가 죽어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이웃나라 왕자와의 극적인 만남으로 백설공주는 다시 살아남게 되고 왕자를 사랑하게 되어 이웃나라의 새 왕비가 된다.

백설공주가 죽은 줄 아는 마녀는 다시 한 번 거울에게  " 누가 가장 예쁘냐? " 고 묻는다.  거울은 " 왕비님이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그러나 새로 왕비가 된 백설공주가 당신보다 천 배는 아름답습니다 " 라고 대답한다.   마녀는 거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다시 한 번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백설공주를 죽였으며 분명히 두 눈으로 똑똑히 온 몸에 독이 퍼져 죽어가는 백설공주를 봤었는데,,,     백설공주가 아름답다는 거울의 대답을 듣고난 뒤 실성해버린 마녀는 거울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바닥에 부딪힌 거울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 동화 <백설공주>를 읽었을 때는 마녀가 마법 거울을 깨뜨린 이유를 백설공주가 이쁘다고 말한 거울의 대답을 듣게 된 이후 생긴 단순한 분노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순히 거울의 대답 때문에 마녀가 홧김에 거울을 깨뜨렸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실체를 눈 앞에 확인하게 되면서 생긴 불신과 혐오로 인한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마녀가 제 스스로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기품이 있고 아름다운 왕비의 얼굴이 아니었을 것이다.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가 만들어낸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주름 투성이의 중년 여성의 얼굴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치켜세운 거울의 대답을 듣고 자란 마녀가 실제로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되면 큰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완벽함 ' 에 대한 인류의 환상

비록 자신의 모습이 예쁘든 못 생겼든 간에 마녀는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말하는 거울의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미모를 갖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겨결국에는 마녀가 바라본 마법 거울은 완벽을 꿈꾸는 인간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허상적인 도구인 셈이다.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완벽하고 영원불멸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었던 마녀의 환상처럼 인간은 언제나 완전한 존재나 가치에 대해 동경해오고 있었다.  

  


 

피터르 브뢰겔 <바벨 탑> 1563년 

 

' 노아의 홍수 ' 이후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설했던 바벨 탑은 오늘날에는 인간의 허영과 오만이 만들어낸 상징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허영과 오만 뒤에는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혐오와 불신으로 가득한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끝없는 환상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조르주 루오 <늙은 왕> 1937년

 

헤라클레스와 같은 힘이 센 장사라도 죽음 앞에는 어쩔 수 없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은 그가 33세라는 짧은 나이에 죽음을 맞는 순간부터 거대한 제국은 한순간에 붕괴되었으며 고대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약인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20여 년 간 중국 대륙을 다녔지만 그 역시 죽음이라는 운명을 거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거대한 땅덩어리에다가 수많은 휘하의 군사력을 보유하였으며 머리 위에는 화려한 왕관을 씌우고 있는 권력자라고 해도 늙어가는 세월의 흐름과 죽음 앞에서는 부질 없는 것들이다.  

이런 인류의 생로병사를 바라본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으로 가득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영원불멸의 힘을 가진 완전한 존재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God)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의 발명품 신은 오랫동안 서양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한 수많은 오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자기 혐오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사상적 명언으로 남아 있는 ' 신은 죽었다 ' 라고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 신은 죽었다. '  

니체의 사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독자들 특히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니체의 말이 불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니체의 사상을 몰랐었을 때는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의 말이 극단적인 무신론주의자의 말처럼 들리곤 하였다.  

니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신의 죽음'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등장하는 위버맨쉬(Übermensch, 초인) 사상이다.  그러나 이런 니체의 사상들은 대중중들 사이에서는 썩 좋지 않은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이 왜곡된 사상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해하기가 수월하지 않는 난해하기로 유명한 사상이기도 하다.  

니체의 사상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관념적으로 치우친 서양 사상의 흐름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신에 대한 믿음과 종교적 신앙을 강조해온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그 당시 유럽 사회에서 니체의 ' 신의 죽음 ' 선언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은 니체의 책과 사상이 불온하고 위험한 악마의 사상이라고 여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의 관념적인 가치를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초극해나가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상징되는 차라투스트라, 즉 위버맨쉬는 한 때 군국주의 시절에는 전쟁을 찬미하는 영웅으로 왜곡되기도 하였다.  오빠의 명성을 이용하여 독일의 히틀러의 총애를 받고 싶어하던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무자비한 왜곡 때문에 니체는 ' 전쟁 옹호론자 ' , ' 독일 군국주의의 화신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위험한 책일까? 

사실 니체가 지금까지 남긴 수많은 저서들은 아포리즘을 모아놓은 듯한 일종의 문학적인 글을 취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시를 보는 거 같은 느낌도 들게 된다. 그러나 니체의 문장은 읽기가 쉽지 않으며 단 한 번만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많다. 이렇다보니 니체의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1부 내용 중에는 '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 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는데 제목만 봐도 전쟁을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인식 속에서 이 내용을 읽게 되면 언뜻 니체가 전쟁을 옹호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해!  그대들의 사상이 패배할지라도 그대들의 솔직함은 아직 승리를 외쳐야 한다!    그대들은 새로운 전쟁에 대한 수단으로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오랜 평화보다 잠깐의 평화를 더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일이 아니라 싸움을,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권한다.  그대들의 일이 싸움이고, 그대들의 평화가 승리이기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홍성광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105 -

 

엘리자베스는 니체가 역설하고 있는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맨쉬를 궁극적으로 승리만을 목표로 하는 영웅으로 과대포장하였고 히틀러와 같은 군국주의자들은 엘리바제스의 화려한 과대포장을 제대로 뜯겨 보지도 않은채 받아들었다. 니체의 문장을 문장 자체의 뜻대로 이해를 해버린 것이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 전쟁 ' 은 군국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살육의 전쟁 놀이는 아니다.  살아가는데 지금보다 보다 나은 삶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치열한 자신만의 싸움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 자신만의 싸움 ' 에 임하기 위해서는 불완전함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운명과 자아에 대해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Amor fati, 운명애) 그것을 극복하여 자신의 삶을 초연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능동적인 인간이 바로 위버맨쉬라는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싸움을 이겨낸 위버맨쉬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승리이며 평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니체가 정말로 죽이고 싶어했던 것

그리고 니체가 신을 죽었다고 사형선고를 내림으로써 위버맨쉬야말로 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인간의 삶을 구원해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니체는 위버맨쉬를 통해 기독교적 교리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인간을 초월하는 초감각적인 존재를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초감각적인 신 앞에서 치유할 수 없는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해봐도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 교리를 바라 본 니체는 신에게 구원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모습이 본연한 삶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하였다.          

 


 

수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 빛나는 졸업장 ' 을 받게 되는 기쁨도 잠시  

치열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현빈, 김태희처럼 외모가 출중한 미남, 미녀가 되기 위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성형 시술에 투자한다.  그리고 취업을 하기 원하는 젊은이들은 삼성과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 끼니와 잠을 거르면서 도서관에서 TOEIC과 자격증 공부를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 완벽한 사람이 되려는 목표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못생긴 외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거나 4년제 대학보다도 못한 지방대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장래의 취업 전선에 대해서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 인생의 낙오자 ' 혹은 ' 루저 ' 라고 규정함으로써 부족한 모습만 바라보고 자신 스스로 열등감과 욕구 불만에 가지게 된다.     

그런 열등감을 피하고 삶의 위안을 삼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신을 광적으로 믿어야하는 극단적인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한 번 빠지면 영원히 헤어날 수가 없는 이유는 부족하기만한 자신이 처한 현실과 삶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느끼게 될 허무함과 굴욕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 신의 죽음 ' 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삶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자기혐오, 불신이 만들어낸 회의적인 감정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뜻을 기독교의 신, 예수, 유태교의 야훼쯤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니체의 생각을 철저히 왜곡하는 것이다. 니체는 비록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그대로 똑바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하며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힘에의 의지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극복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니체가 꿈꾸는 그런 인간상이 바로 위버맨쉬인 것이다.  

 

 

  즐겁지 않고 삶을 어떻게 견디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년 

 

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단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산을 오르는 자에게는 모두 이런 혹독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깨달음을 구하는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면 모든 사물의 눈에 보이는 근거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모든 사물의 근거와 그 너머를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고 올라야 한다. 위로 저 위로, 그대가 바로 별 위에 오를 때까지!     

그렇다!  나 자신과 나의 별들을 내려다보는 것, 나는 그것을 정상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나에게 남겨진 최후의 정상이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 제3부 [방랑자] 중에서, p 251 -  

 

니체의 책을 읽게 되면 어느 한 줄 버릴 게 없는 감명 깊은 구절을 만나게 된다. 그런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전기가 통하는 찌릿함 같은 전율이 가슴 속에 느껴질 정도이다.   

나약한 모습에만 안주하지 말고 삶을 긍정함으로써 자신의 삶에도 실존적인 가치를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니체의 아포리즘은 오늘날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원한 오아시스가 되어준다.

<차라투스트라>를 먼저 읽었거나 그 밖에 다른 니체의 저작을 먼저 읽게 되면 니체의 사상이 생각보다 어둡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니체의 생애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조숙한 성격 탓에 그리 밝지 않는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 살아 있는 종합병원 ' 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통과 위장 장애를 달고 살았다. 자신의 인생 중에서 첫 사랑이었던 루 살로메로부터 두 번이나 실연을 당한 아픔을 겪어야했고 그 후로부터 고독한 인생의 방랑자로서 살기 시작했다. 만년에는 정신 이상 증세까지 그를 덮쳐오면서 미친 사나이가 되어버린 채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가 땅 속으로 들어간 이후에도 사람들은 니체라는 사람을 광기로 가득한 사상가로 인식하였다.    

사실 니체의 삶 속에서 그에게 그나마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하면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 시절, 24세라는 젋은 나이에 교수가 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멋쟁이로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을 때 그리고 니체의 가슴을 한 때 불태우게 만들었던 바그너와 루 살로메와의 교제 기간이었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의 인생은 어렸을 때 생기게 된 온갖 병마와의 싸움 그리고 바그너와 루 살로메와의 결별 이후 겪은 고독의 시간들이다.    

 


 

앙리 마티스 <춤> 1910년

그러나 불행으로 점철된 삶과 다르게 니체의 사상은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주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오히려 자신의 사상에 영향을 준 쇼펜하우어와는 다르게 니체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는 니체가 만들어낸 자신의 아바타라고 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도 마을을 떠나 산 속에서 혼자서 10년동안 지내게 되는데 니체가 교수직을 그만 둔 이후에 시작한 10년간의 방랑 생활이 연상된다.  방랑 생활 기간 중에서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집필 계획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차라투스트라>이다.  책 속 주인공 차라투스트라가 10년 간의 은둔 생활 끝에 마을에 내려와서 ' 신의 죽음' 선언과 위버맨쉬 사상을 주장한 것처럼.   

니체에게 <차라투스트라>를 위한 집필 기간은 그동안 겪어왔던 삶의 풍파를 견대내고 잊어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니체는 ' 차라투스트라 ' 라는 고대의 인물을 자신만의 아바타로 만들어 불우한 삶을 겸허이 받아들어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사상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비유와 알레고리로 이루어진 아포리즘으로 가득찬 그의 글이 오늘날의 독자들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니체가 쓴 아포리즘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글이 아닐까 조심스레 상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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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15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약 '니체' 역할을 맡은 배우라면, 캐릭터를 잡는데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는 막연할지 몰라도, 이 리뷰를 읽으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

아, 예전에 나온 책은 대부분 '짜'라투스트란데, 요즘은 '차'라투스트라군요. '차'는 왠지 어색하지 않나요? '짜'가 훨씬 친근한 느낌.. 후훗.

cyrus 2011-03-16 00:44   좋아요 0 | URL
원래 우리말 정식 표기대로 하면 '자'라투스트라인데 요즘에는
'차'라투스트라가 많이 사용되서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하네요.
아마도 독일어 원어 발음대로 하면 '짜' 가 되지 않을까요. ^^

마녀고양이 2011-03-15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예요... ^^

니체가 몸이 약했지요? 천재성이 번뜩이고?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좋은 부분을 제대로 찌른거 같은데요.. 아마, 초인은
니체가 간절히 원하던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철학가든 심리학자든
자신에게 가장 모자란 부분, 절실한 부분을 체계로 세우는 면이 있대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거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김에 거울의 상징에 대한 책을 뒤졌는데
못 찾았어요.. 예전부터 거울 상징을 한번 알아보고 싶었는데... 엄청 다양하더라구요.

cyrus 2011-03-16 00:45   좋아요 0 | URL
마고님 댓글이 저의 생각을 제대로 간결하게 표현하셨네요.
사실 백설공주 이야기는 그냥 그전부터 개인적으로 생각했던거에요.
거울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 너무 궁금하네요. 시간만 된다면
이와 관련된 글이라도,,,^^;;

양철나무꾼 2011-03-16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기하면 되게 웃기지만, 전 니체의 저 책을 중3 겨울방학때처음 읽었어요.
그 후에 몇번 더 읽었는데...완독의 경험이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해두고라도, 뜻도 아직 제대로 이해 못했었는데...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나마 윤곽이 뚜렷해지는걸요.

참 좋아요, 백개쯤 추천을 날리고 싶어요~^^

cyrus 2011-03-17 11:01   좋아요 0 | URL
니체의 저작을 읽을 때는 꼭 개론서랑 같이 읽으면 좋아요.
원전 그대로 읽으면 좋긴 좋지만,, 니체의 생각을 왜곡되어 받아들일수
있거든요,, 니체의 글이 운문 형식이라서 시적인 문장이 많아서
여러번 읽으면 읽을수록 감명 깊은 구절이 많은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