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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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30] 몰타의 매

 

 

" 톰, 내가 볼 때 샘 스페이드는 자기 집안 문제는 자기가 조용히 해결할 사람일세 . " 

 - 대실 해밋 <몰타의 매> p 30 -  

 

 

  매서운 한파 때 읽어서는 안 될 책   

요즘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전날의 한파보다 추위가 한 풀 꺾었다고 했지만 해가 물러나는 밤은 한파 못지 않게 춥다.   최근의 한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꽁꽁 얼게 만들었다. 물, 수도, 식물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이번 주말에는 날씨가 잠시나마 풀린다던데 전국적으로 눈이 또 온단다.  그리고, 또 한 번 한파가 찾아 온다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쓴 단편소설 속에 있는 표현처럼 차디찬 ' 얼음 왕의 키스 ' 를 받게 되었다.   얼음 왕의 심술은 따뜻해야할 집도 피할 수는 없었다. 세탁기가 잠깐 맛이 간 것 이외에는 생활하는데 지장을 줄만한 동파 피해는 입지 않았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바깥보다 춥지 않지만 충분히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한기의 여운이 감돈다.   

그런 차디찬 분위기의 텅 빈 방 한가운데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를 읽어 보게 되면 오히려 더 추워지고 싸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송곳니와 같은 샘 스페이드의 짧고 절제된 대사들은 ' 금발의 악마 ' 라기 보다는 금발의 ' 아이스 맨 (Ice man) ' 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다가 스페이드가 활동하고 있는 소설 속 배경 역시 더 싸늘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920년대의 미국 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닥친 경제 공황의 한파 때문에 싸늘했던 것도 있었지만  ' 금주령 시대의 산물 ' 이라는 별칭답게 대중이 원하던 시대의 영웅은 경제 공황을 타파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통령이 아니라, 밀주업자로 악명 높았던 ' 스카페이스 ' 알 카포네였다.  대중들이 열광했던 영웅은 아이러니하게도 암흑가의 제왕이었다.   

이런 시대 속에 과연 인간들 사이에서는 따뜻한 정(情)이란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정이라는 것이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싸늘했던 시기가 바로 알 카포네 그리고 샘 스페이드가 살았던 1920년대 미국이었다.  

  

 

  불신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샘의 여자들      

이 소설에는 ' 범인이 누구인가? ' 이라는 초점이 중요하지 않다. ' 금발의 아이스 맨' 샘 스페이드가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는 샘 스페이드의 진면목과 그 밖의 주변 인물들의 성격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하드보일드 장르답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온감어린 ' 정 ' 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으며 특히, 상대방에 대한  ' 믿음 ' 역시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의뢰인 브리지도 오쇼네시는 자신 스스로도 인정하는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찬 ' 나쁜 여자 ' 다.  하지만, 그녀가 ' 나쁜 여자 ' 가 되고 싶어서 나쁜 여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에서 비롯된 불신으로 가득 찬 나머지 자기 자신마저도 믿지 않게 되는, 어떻게 보면 ' 정' 이 없는 1920년대 사회가 낳은 불쌍한 여자이기도 하다. 

" 나는 나쁜 여자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빠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스페이드 씨, 나를 좀 봐요. 내가 완전히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알죠?  

 (중략)  그러면 나를 좀 믿어 주세요. 아, 나는 너무 외롭고 두려워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 , ,   

나는 당신을 믿어요.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할께요. 무서워요. 스페이드 씨. 당신을 믿는 게 두려워요. " 

 - 대실 해밋, <몰타의 매> p 49 -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샘 스페이드뿐이었다.  하지만, 오쇼네시는 자기 자신을 불안과 불신의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극단적인 상황을 고집한다.  자신과 함께 새 조각상을 훔치는데 공모한 동료마저 믿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결국,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러 그녀의 비관적인 불신이 만들어낸 비수는 그녀의 심장을 제대로 꽂히게 된다.  오쇼네시가 자신의 동료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낸 샘은 매정하게 그녀를 차버린다. 결국, 그녀는 살인죄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오쇼네시는 믿는 샘 스페이드에게 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오쇼네시 다음으로 비운의 인물은 죽은 샘의 동료의 아내인 아이바이다. (공교롭게도, 소설 속 두 여인의 공통점은 샘 스페이드를 향한 연분을 품고 있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불륜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동료인 탐정 샘 스페이드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 역시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침없이 샘의 차가운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도 아이바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사람이 샘이라고 의심을 한다. 아이바의 등장은 소설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의 의심은 샘의 사건해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샘 스페이드 씨, 이게 최선입니까? 

' 몰타의 매 ' 라는 값비싼 조각상을 둘러싼 샘 스페이드와 브리지도 오쇼네시 그리고 카이로, 이 세사람 간의 얽힌 관계 속에서 맞물리게 되는 길고 긴 만남의 과정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샘 스페이드의 동료를 죽인 사람이 누구이며, 몰타의 매 조각상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중요한 결말 따위가 중요치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부각되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탐정인 샘 스페이드뿐이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 오쇼네시, 카이로 그리고 샘의 동료까지, 모든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은 ' 불신' 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서 희생되거나 상처를 입었다.  샘 스페이드는 그런 혼잡한 상황 속에서도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이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무미조건한 샘 스페이드의 성격답게 결말 역시 무미건조하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드보일드 소설이라서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아서 아쉬운 것이 아니다. 소설의 결말이 읽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기대감을 저버려서 작가에 대한 원망함이 살짝 담긴 아쉬움도 아니다.    

내가 느꼈던 그 아쉬움이란, 바로 샘 스페이드 역시 불신 시대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1920년대가 만들어낸 ' 어둡고 차가운 영웅' 이라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서 오쇼네시를 두고 냉정하게 뒤돌아서버린 그의 태도였다.   

" 내가 당신을 믿어야 하나요?  

  (중략)  

나를 만난 이후 거짓 없는 시간을 30분 이상 보낸 적이 없는 당신을?  아닙니다. 믿을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겁니다. 왜 믿어야 합니까? "  

 - p 277 - 

고질적인 불신으로 인해서 오쇼네시는 ' 인과응보 ' 의 결과를 맞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무엇보다도 살인을 범했다는 점에서 오쇼네시는 분명히 죄에 대한 처벌을 마땅히 받아야한다.  

하지만, 동료를 죽인 살인죄에 대한 처벌이라는 명목 아래 그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오쇼네시의 여심을 자극하고 이용을 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의 뒷통수를 치고 만다. 샘 스페이드는 애초부터 오쇼네시를 끝까지 믿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법의 심판자인마냥 범죄자를 응징하는 샘의 태도 역시 못마땅하고 차마 눈 뜨고 보기에는 거북스러웠다.  아무리 그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탐정이라고 해도 그의 삶에는 ' 정의 ' 와는 거리가 멀다. 죽은 동료 몰래 동료의 아내와 은밀히 연분의 정을 나누웠으며 사건 해결 과정 중에서 오쇼네시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건 해결하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 비용인데도 말이다.   

샘 스페이드, 그도 불신과 허위로 치장하고 다닌 인물이었다.

대실 해밋는 이 소설 한 편 덕분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샘 스페이드는 하드보일드 탐정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은 이 ' 까도남 ' 탐정의 이야기에 열광을 하였다.  암흑가의 제왕 알 카포네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1920년대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독자들의 샘 스페이드 신드롬은 당연한 사회적 흐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와 실제로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묻고 싶다.    

 

 , , , , ,

 

 

  

 

" 샘 스페이드 씨, 죽은 동료를 신뢰하지 않았으며 애초부터 불쌍한 여인 오쇼네시마저 믿지 않았던 당신을 내가 믿어야 하나요?   그리고, 당신과 같이 어두운 사회 때문에 불신과 가식으로 치장해야만 했던 오쇼네시를 그렇게 냉담하게 내쳐버려야 했습니까?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잔인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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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1-2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워지고 싸늘해지는 문학이라니, 나도 킵해놔야지!^^

[그러면 나를 좀 믿어 주세요. 아, 나는 너무 외롭고 두려워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여기 꽂혔거든요. 좋아요, 이거.

cyrus 2011-01-21 23:20   좋아요 0 | URL
이 소설 읽으면서 오쇼네시가 제일 불쌍했어요. 비록 자신의 마음 속에서
비롯된 기우 때문에 죄의 대가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기대려고 했던
샘 스페이드에게 제대로 버림 받은 결말이 인상 깊으면서 씁쓸했었습니다.

stella.K 2011-01-2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확실히 추운 날 저런 책 읽으면 진짜 더 추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같은 걸
제가 못 읽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ㅎㅎ
더구나 하드보일드는 더더욱.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을 봤는데 그림은 좋은데 영 땡기지를 않아 결국 보다 자고
다시 안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드보일드잖아요.
전에 바람구두님이 극찬을 했었는데 도무지 제가 이쪽 취향이 아니라.ㅠㅠ
근데 시루스님 리뷰가 점점 분석적이 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하드보일이라면 하드보일이랄까?ㅎ
아무튼 좋습니다.^^

cyrus 2011-01-22 14:0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언급하신 두 소설,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괜히 읽다가 더 추워질거 같네요^^ 저도 카우보이 비밥 재미있게 봤어요, 그 땐 만화 속 주인공 스파이크가 멋있었는데,,^^;;

노이에자이트 2011-01-2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 파탈만 있냐...옴므 파탈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죠.저는 아주 오래전 영화로도 봤습니다.험프리 보가트가 옴므 파탈의 진수를 보여주지요.

cyrus 2011-01-22 17:3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영화 보고 싶어요. 소설보다 영화가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양철나무꾼 2011-01-2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밋 해실의 ‘몰타의 매’ 비껴갈 수 없죠.
'까도남'정도론 부족하죠, ‘차도남’도 약해요.
추워요, 냉랭하고...근데, 좀 멋진건도 사실이예요. 철퍼덕~

cyrus 2011-01-22 21: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위의 노자님 말씀대로 샘 스페이드는 옴므파탈의 대명사인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