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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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70] 영원(蠑蚖)과의 전쟁

 

 

   
 

「왜요?」
「거기 악마들이 있어요. 선장님. 바다 악마들이죠.」
「바다 악마가 뭐요? 물고기?」
「물고기는 아니고요.....
혼혈은 잠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악마에요. 심해의 악마. 바티크 사람들은 <타파>라고 부릅니다. 타파.
그 악마들이 모여서 자기네 마을을 이루고 산답니다. 잔 채워드릴까요?」

- 『도롱뇽과의 전쟁』p 24 -

 

 

 

 국내에서는 생소한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

체코에서 이름 있는 작가를 꼽으라면 대부분은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를 언급할 것이다. 체코라는 나라는 예전에 '체코슬로바키아'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그래서 예전의 국명이 익숙하게 느껴진다. 1993년에 정식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었음에도 2001년까지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 라고 불렀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사실은 알게 된 것은 2001년에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가 월드컵 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했던 당시 체코와의 평가전을 치뤘을 때 알게 되었다. 그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5:0으로 대패하여 거스 히딩크는 그 이후로 '오대빵' 감독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갖게 되었다)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체코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체코라고 하면 앞에서 언급한 두 명의 문학가와 한 때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활약을 했던 축구선수 네드베드 밖에 생각이 안난다.   

이번에 읽은 <도롱뇽과의 전쟁> 덕분에 카렐 차페크라는 체코의 걸출한 문학가를 알게 되었다. 이 작가 역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문학가이지만 체코 국민들에게는 카렐 차페크에 대한 애정이 무척 각별할 정도로 '국민작가'급의 대우를 받았으며 지금도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생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로봇>이라는 희곡이 있다. 그의 동생이며 역시 작가인 요제프 카페크와 공동으로 집필하였는데 그 동생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용어 '로봇(Robot)' 를 처음 만들고 사용한 인물이다. 로봇은 robota라는 '일한다' 라는 뜻의 체코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형인 카렐이 동생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인지라 지금까지도 '로봇' 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카렐 차페크라고 알고 있다. 지금도 네이버 백과사전에 '로봇' 을 검색하면 카렐 차페크가 만들었다고 정의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생전에 카렐 차페크는 백과사전 편찬자들에게 잘못된 내용을 검토할 것을 종용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카렐 차페크가 쓴 작품들이 번역되긴 하였으나,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서 그런지 절판된 책이 많다. 그는 짤막한 동화 작품집으로도 유명한데 절판 상태이다. (<어느 의사의 길고 긴 이야기><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가 있는데, <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에도 '어느 의사의 길고 긴 이야기' 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나마 절판된 작품들은 최근에 지만지고전천줄에서 철학소설 3부작 시리즈 중 두 작품이 번역되기도 했으며 사실 <도롱뇽과의 전쟁> 은 2001년에 두산동아에서 출판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SF소설이 아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을 어느 장르라고 쉽게 말하기 힘든 작품이다. 카렐 차페크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는 '로봇' 용어 창조 이외에도 이 작품을 SF소설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SF소설이 아니다. SF소설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과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미래의 과학 수준을 예상하여 전개되는 장르이다. 물론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어보면 SF소설의 특징이 드러나 있다.  도롱뇽이 인간처럼 말을 하고,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도 인간처럼 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족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내용 중간에 도롱뇽에 대한 연구논문과 학술적인 자료를 발췌한 기록들을 삽입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게 되면 과학소설이면서도 SF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SF소설에는 과학의 미래, 과학의 진보에 수반되는 사회생활의 변화에 대한 문제점들을 다루는데 <도롱뇽과의 전쟁>은 인간처럼 행동하는 도롱뇽을 작품에 등장시키켜 단순히 과학이 진보된 미래를 비판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에서 드러나고 있는 과학이 지배된 사회 비판은 미시적인 내용일 뿐이다. 이 작품은 과학, SF소설이라기보다는 진지하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사회비판적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제2의 종족, 도롱뇽 

이 작품 줄거리는 '자본주의' 라는 하나의 거대한 틀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반 토흐 라는 선장은 바닷가에서 우연히 진주조개를 잡는 도롱뇽들을 발견하게 된다. 도롱뇽들에게는 자신들이 잡은 진주조개로 아름다운 빛깔로 둘러싸인 진주들을 채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본 반 토흐 선장은 도롱뇽들의 능력을 이용하여 한 몫 잡아보기 위한 사업 계획을 구상하게 된다. 그 후로 인간처럼 행동하는 도롱뇽들의 정체는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도롱뇽들은 인간들에게 직접 접근하여 말을 걸기도 한다. 단순히 아름다운 진주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구상된 반 토흐 선장의 사업 계획은 점차적으로 영역이 확대되어 간다. 기업가들은 노동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도롱뇽들을 노동자원으로 투입시킨다. 노동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수중 건설사업에 도롱뇽들이 사람 대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도롱뇽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서 전쟁터에도 동원하기도 한다.

한 때 깊은 수심속에서 살았던 미지의 동물에서 인간 덕분에 문명의 사다리에 타고 올라간 도롱뇽들은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제2의 종족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인간들에게 불평등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도롱뇽들은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을 전복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언론 매체를 장악, 통제하였으며 인간에게서 배운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만든 폭탄으로 의도적으로 대홍수를 일으켜서 인간들을 도발하기도 한다. 이 때부터 인간 대 도롱뇽이라는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작품 시작부터 등장하는 아름다운 진주 하나가 인류과 도롱뇽은 서로 피를 보게 되었다. 진주는 아주 값비싼 귀금속 중의 하나이다. 도롱뇽들이 진주를 많이 캐내기 위해서, 그리고 힘든 노동에 도롱뇽들을 투입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반 토흐 선장이나 기업가들의 모습은 과거 식민지 국가가 많았던 때에 성행했던 플랜테이션(Plantation)을 연상시키게 한다. 플랜테이션은 사업가들이 자본과 기술을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했던 농업방식이다. 식민지 나라를 다스리던 유럽 열강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업 방식이었는데 훗날 유럽 대륙을 지배하게 된 자본주의 열풍의 도화선이 되었다. 18세기 중반에 영국에 산업혁명이 불기 시작하면서도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된다. 공장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특히 값싼 노동력인 동시에 그 당시에 인권이라고는 가지지 못한 상태였던 빈곤층들을 자신들을 위한 일꾼으로 써먹기에는 딱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빈곤층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으로 기업가들에게 착취당하였다. 이 때부터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빈곤층 노동자들은 공장 내의 기계 보급이 두려웠다. 자신들이 기계의 등장으로 고용되지 않을까봐 그들은 게릴라로 공장에 급습하여 기계를 부수는 난동을 펼치기도 했었는데 이를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한다.  

<도롱뇽과의 전쟁>에도 도롱뇽들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계급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자 인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자리가 빼앗길까봐 총파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롱뇽들을 살해하는 등 극단적인 일도 발생하게 된다. 기계를 파괴하려던 18세기 노동자들의 모습이나 만능 노동자였던 도롱뇽들을 죽이려고 했던 작품 속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등장하게 된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사상 뒤에 가려진 인간들의 끝이 없는 물질적 탐욕이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만들게 된 원인이 되었다. 작품 초기에 배에 타고 있던 진주잡이들이 봤던 시커먼 바다의 악마들은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인류가 만들어낸 골칫덩어리 악마인 것이다.  

 

 

 

  첫 번째가 비극, 두 번째는 코미디, 그러면 세 번째는...?  



칼 마르크스는 "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가 비극이라면 두 번째는 코미디이다. " 라고 말하였다.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희극적인 행적이 담겨져 있다. 인류 간의 대립과 갈등이 있었던 자본주의의 역사가 비극이라면, 아마도 역사에 대한 코미디는 이 작품일 것이다. 인류 대 도롱뇽으로 점철되는 자본주의의 비극을 차페크는 코미디로 희화화시키고 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굉장히 슬픈 사람이라고 하였다. 작품 속 마지막에는 에필로그 형식으로 차페크가 작가로 직접 등장하여 작품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이 있는데 차페크는 자신의 작품을 극단적으로 구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미래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흥분과 분노를 억누른 채 종이에 이 글을 꾹꾹 눌러가면서 썼을 것이다. 그는 인류의 비극을 코미디로 승화시킬줄 아는 문학적 광대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래에 대한 차페크의 생각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는 다음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즉 세 번째 경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과거와는 별반 다를게 없다. 지금도 자본이라는 수단 하나가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 하늘 위에서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을 차페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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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쿤테라에 이어 보흐밀 흐라발을 추가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덕분에 차페크도 추가합니다.

cyrus 2010-11-10 13:39   좋아요 0 | URL
보흐밀 흐라발이라,, 반딧불이님 덕분에 또 한 명의 체코 작가를
알게 되었네요^^ 제가 읽은 작품 말고도 <호르두발><별똥별>이라는
소설이랑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에세이가 출판되었는데,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대부분 나머지 작품은 절판 상태입니다)
저도 아직 안 읽었지만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으니
읽어보려고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11-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SF로 분류되어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님의 리뷰를 보니 얼른 읽고 싶어져요.
4대강과 김탁환만 읽고 바로 봐야겠어요.

리뷰 좋아요.
그리고 오늘은 리뷰랑 댓글 박스 사이의 간격이 얼마 안떨어져 있어서 좋아요~^^(속닥)

cyrus 2010-11-10 17:03   좋아요 0 | URL
사회비판적인 소설이면서 그렇게 내용이 우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장하신 책이 두산동아에 출판된 것이라면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도 읽어보세요. 이번에 나온 작품이
완역판이라네요. 그리고 나무꾼님이 언급하신 김탁환이
이번에 나온 소설 작품을 말씀하신거지요? 저도 그 책 급땡기던데,,
즐거운 독서 하세요. 나무꾼님^^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코 출신 유명인은 그래도 몇 명 알겠는데 슬로바키아 출신은 정말 얼른 생각이 안 나는게 현실이지요.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자유화운동과 반스탈린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슬로바키아 지식인들이었고, 그 시절 서기장도 슬로바키아 출신인 두브체크였는데...하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진 지금 슬로바키아는 체코에 가려져 인지도가 낮은 나라가 되어버렸지요.

cyrus 2010-11-11 16:40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체코슬로바키아라고 알고 있었고, 저처럼 아직도 많은 사람들도
체코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겠군요. 이런 사례와 유사한 것이
유고슬라비아도 몇 년전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고 개명된 것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리된 것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조금씩 국외 정세들도
알아야할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8:23   좋아요 0 | URL
아...그렇던가요? 제 주변엔 슬로바키아는 몰라도 체코는 거의 다 알더라구요.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나 밀란 쿤데라 덕이지요.여행사에서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동유럽 중에선 체코를 제일 많이 간다고 하네요.하지만 슬로바키아는 모르던데 그건 아마 체코슬로바키아 시절부터 줄여서 체코라고 했던 버릇때문일 겁니다.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어를 쓰더군요.

슬로바키아 출신들이 자유화 운동의 선두에 섰는데 정작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후로 외국인들은 체코는 알아도 슬로바키아는 모르게 되었으니 묘하게 되어버렸지요.



유고슬라비아는 내전 이후 몇개로 갈라졌는지 어지러울 정도라서...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저번 월드컵 땐 슬로베니아 선수단을 계속해서 아나운서가 슬로바키아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