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2 -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 무서운 그림 2
나카노 교코 지음, 최재혁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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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그림 속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뒷담화 
 

2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부대 배치를 받은 지 5개월 만에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실 수 있는 사회에 드디어 발을 내딛었다. 군대에서 말하는 우스갯소리로 4분 5초, 4박 5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아직 신병 티를 벗지 못한 이등병은 5개월 동안 그토록 기다렸던 부대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집이 있는 대구로 향하기 위해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곤 했었는데 가끔 동대구역행 KTX가 역 플랫폼에 들어 올 때까지는 2, 30분 정도 시간이 빌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서울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서점에 들러서 그 때 나온 신간도서들을 확인하였다. 5개월 동안 무수히 많은 신간도서들이 많이 나왔었다. 보이는대로 이리저리 움직인 나의 눈길은 독특한 표지와 제목이 있는 책 한 권에서 멈췄다.  


 

     그 책이 나카노 교코의『무서운 그림』1권이었다.  

 

 

제목 자체에 흥미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표지 속 그림도 미술에 관심 있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화가의 이름은 기억은 안 났지만(조르주 라 투르의 <사기꾼>이라는 그림의 일부이다) 책 표지에 있는 힐끔히 쳐다보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본 적이 있었다. 원화는 저 여인 이외에 두 명의 남자와 함께 등장하여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라 투르의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는 직접 읽어봐야 재미있으니까.....『무서운 그림』시리즈에서 소개되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름 흥미 있는 것들이 많아서 리뷰에서 언급하면 스포일러성 내용이 되고 재미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라.....  부제만 봐도 유명 그림 속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읽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터라 목차만 잠깐 봤는데 흥미진진한 그림 속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대구에 도착하면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때 이 책이 대출중이라서 아쉽게도 읽지 못하고 말았다. 휴가 기간이 9박 10일이었다면 이 책이 반납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을텐데..... 언제 읽게 될지 모르기에 독서를 하지 못한 것과 부대 복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정기 휴가 때 꼭 읽기로 하였다.  

 

결국, 1권은 9박 10일 일병 정기 휴가 기간이었던 다음 해 5월달 쯤에 읽게 되었다. 2권 역시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그러니까 올해 전역하고 나서 읽었다. 일병 정기 휴가 갔다 오고 나서 2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 리뷰를 읽기 전에.....

작년에 1권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읽은 지 오래 됐다보니 지금 리뷰로 쓰기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최근에 읽은 2권에 대해 리뷰를 쓰게 되었다. 앞에도 미리 언급했지만 사실 이 책을 리뷰로 쓰는 게 껄끄럽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내용을 리뷰에 언급하고 싶지만 자칫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책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소개한 그림의 내용은 무시무시했다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그림의 내용에 대해 깊이 사색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2권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은 그림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해볼까 한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해 한껏 기대감이 부풀려 있는 독자는 주저 없이 ‘뒤로 가기’를 클릭하시거나 아니면 다른 리뷰어의 글을 읽는 게 나을 것이다.  
 

 

 
한 부인, 두 초상화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위의 그림은 프랑수아 제라르가 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이다. 그림 속 복장만 봐도 부유한 귀족의 부인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의 레카미에 부인은 18세기 프랑스 살롱의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미녀였다. 그래서 제라르의 그림 이외에도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그 중에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자크 다비드와 제라르는 사제 관계이다. 다비드가 제라르보다 먼저 레카미에 부인의 그림을 그렸는데 부인의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미완성이 된 채 남게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림 하나 그리는데 1시간 만에 뚝딱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이보다 더 긴 시간동안 긴 의자에 저런 자세에 있었으면  모델로서는 짜증이 날 만 하다) 그러다가 부인은 다시 다비드의 제자인 제라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게 된다. 스승인 다비드로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세는 다비드의 레카미에를 명작으로 손꼽힌다. 두 그림 속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패션 유행 
  

하지만 레카미에 부인이 다비드에게 반감을 가졌던 진짜 이유는 복장의 차이에 있었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당시 일상적으로 입던 긴 치마의 드레스를 입었지만 제라르의 레카미에는 가슴 라인이 돋보이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자신이 사교계 최고 미녀라는 것을 알고 있던 레카미에는 그림 속에서도 자신의 미모가 돋보이길 바랬을 것이다. 이 두 그림을 대놓고 비교해봐도 제라르의 레카미에가 다비드보다 사교계의 남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성적 매력이 드러난다. 다비드의 레카미에는 사교계의 미녀라기보다는 그냥 수수한 여인의 느낌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레카미에만 자신의 미모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교계를 주름 잡고 있었던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여성들도 레카미에 식의 옷을 입었던 것이다. 요즘 사회를 비유하자면 레카미에는 살롱의 패셔니스타, 패션 아이콘이었다. 귀족의 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생각하지도 않고 무조건 레카미에식 패션을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제라르의 그림 속 복장처럼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몸매 라인과 하얀 피부를 강조할 수 있게 얕은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었다. 당시 속옷이 없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여성이 옷 한 벌 걸쳐도 속이 보였다. 이렇다보니 사교계 귀족 남정네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남성들의 시선이 한 몸에 받음으로써 자신의 미모가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이름이 사교계에서 알려지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했다.  

 

문제는 프랑스 여성들의 복장은 남성의 은근한 성적 욕구 충족 해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난방 시설도 갖추지 않은 시절임에도 프랑스 여성들은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가슴이 드러나는 얕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렇다 보니 여성들은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악화되어 사망하게 된다. 레카미에는 당시로서는 장수한 70세 정도 살았지만 다른 여성들은 30세도 못 넘기도 추위 앞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죽음을 부르고 만 셈이다.

 

   

 

골칫거리 패션 유행, 시스루 룩 
 

레카미에식 패션이 낳은 프랑스 사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요즘도 여성들 사이에서 속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 룩(see-through look)이 유행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여성들처럼 어리석게도 추운 겨울에 입지는 않지만, 이 복장 역시 몸매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옷을 입어도 속이 보인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성년자인 여성 연예인이 시스루 룩 복장을 입어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아무리 연예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상 어른이 되지 않은 미성년자가 속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는다는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미성년자의 여성 가수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니 방송가에서는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출연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봐서는 패션 유행의 문제점이 그낭 넘어갈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여성의 신체를 노출하는 복장이 오히려 남성 성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은 많지만 지금까지 체포된 성 범죄자들이 노출 복장을 입은 여성을 보고 범죄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복장과 성 범죄 발생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레카미에의 그림을 보면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떠올랐다. 분명 하나의 패션 유행으로 인해서 이런 문제점들이 야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무턱대고 시스루 룩을 아예 입지 말라고는 할 수가 없다. 패션 자체가 그 사람만의 외모를 강조시켜 주며 요즘과 같은 자유 국가 사회에서 1970년대 복장 검열이 도입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패션을 통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은 좋지만 자기중심적 생각을 벗어나 주위 시선들의 태도를 인식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패션을 추구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부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아름다움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 이황의 시로 긴 글을 마무리 하겠다. 

  

 

    꽃치고 열흘 가는 꽃이 없고 

   번화한 꽃일수록 열매 적은 법. 

   요즘들 화려함을 숭상하지만 

   근본이 없는데 어디다 쓸꼬. 

 

   - 퇴계 이황「꽃이 화려한들」전문, 『도산에 사는 즐거움』김대중 편역, 돌베개 -  

 

 

 

 

 

* 그림 출처
http://blog.naver.com/haru8365?Redirect=Log&logNo=850113
http://100.naver.com/100.nhn?docid=76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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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07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은 걸요.
형식이나 내용 뿐만 아니라,시각적으로 까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장시간 저런 표정,저런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냔 말이죠.
진짜 무서운 그림 맞는걸요~~~ㅋ~.

cyrus 2010-10-07 21: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댓글을 보고나니깐 모델이 저런 상태에서
오래 있다는 것 자체도 무섭다는 것을 알았네요^^;;

비로그인 2010-10-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관심있는 부분이 많아서 올리신 글 챙겨보고 있습니다. 근데 이곳에 들르시는 분들 가운데 저위의 양철님 처럼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몇 있으신 듯 하네요~

ㅎ.. 오늘은 좀 들렸던 흔적 남기고 가겠습니다 :)



cyrus 2010-10-22 14: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저도 어떻게 하다보니 다른 분들의 서재에 들리다보니
이렇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취향이 비슷한 분들끼리 만나는것도 같네요ㅎㅎ
저도 바람결님 서재 자주 들릴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