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月)이 지는 금요일 밤이면
정원에서(In the garden) 달무리가 생긴다.
정원에 뜨는 달은 우리의 참모습을 밝혀주는 책이다.
정원에 모인 독자들은 책에 둘러앉아 자신의 감상을 진솔하게 말한다.
정원에 생긴 달무리는 독서 모임이다.

달무리
(사진 출처: 위키백과)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줄임말 ‘세속’)는
카페 <인더가든>(In the garden)에 뜨는 달무리다.
한 달이 끝나가는 마지막 금요일에 뜨는 달무리다.
<인더가든>은 책이 있는 카페이다. 그러나 책에 눈길을 주는 손님은 없다. 카페에 있는 모든 책은 가만한 장식품이 되었다. 그러나 가만히 책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정원의 서재’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만난 책들은 대부분 문학 작품들이다. 그리고 출간된 지 오래돼서 절판되었다. 그래서 나는 <인더가든>이 ‘문학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정원에 희귀한 책이 있다. 한 권이 아니라 여덟 권이다. 책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전집’이다. ‘성창(成昌)출판사’에서 태어난 책이다. 판권장에 적힌 초판 발행 연도는 1990년이다. 양장본이며 책 전체를 보호하는 케이스가 있다.

총 8권으로 구성된 헤세 전집의 정가는 5만 원이다. 1990년대 물가 수준을 생각하면 비싼 편이다. 케이스에 구김 흔적이 남아 있지만, 책 상태는 아주 좋다. 책은 나이를 먹으면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한다. 하지만 헤세 전집의 종이는 심하게 누렇지 않았다. 많이 펼쳐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손때도 묻지 않았다.
헤세 전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1권 <데미안, 호반의 아틀리에>
2권 <지와 사랑>
3권 <유리알 유희 1부>
4권 <유리알 유희 2부, 싯다르타>
5권 <향수, 단편집>
6권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라디델, 일기>
7권 <사랑의 3중주, 시집>
8권 <황야의 이리, 우화집, 동화집, 수상(隨想)>
* 헤르만 헤세, 윤순식 옮김 《로스할데》 (현대문학, 2013년)
<호반의 아틀리에>는 헤세의 네 번째 장편소설 《로스할데》(Rosshalde, 1914년)다. 소설의 주인공은 잘못된 결혼으로 인해 고통받지만, 창작에 몰두하는 화가다. ‘로스할데’는 화가 부부가 사는 저택 이름이다. 화가는 헤세의 분신이다. 실제로 헤세는 연상의 첫 번째 아내와 별거 생활을 하다가 이혼했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2002년)
* 헤르만 헤세, 김이섭 옮김 《수레바퀴와 아래서》 (민음사, 2001년)
<지와 사랑>의 원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년)다. ‘지’는 지성(知性)을 의미한다. 1967년 연수사(硏修社)라는 출판사에서 태어난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부제가 ‘지성과 사랑’이다. 그 이후로 여러 출판사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국역본 제목을 ‘지와 사랑’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르치스가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인물이라면, 골드문트는 사랑과 감정을 중시한다. 두 사람은 수도원에 입학한 학생으로 만나 친구가 되지만, 삶의 태도는 달랐다. 나르치스는 엄격한 규율이 있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공부에 매진한다. 골드문트는 갑갑한 수도원을 떠나 방랑 생활을 한다. 골드문트는 헤세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인물이다. 헤세는 열네 살에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속박된 생활을 견디지 못해 입학한 지 9개월 만에 퇴학한다. 헤세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쓰기 전에 이미 헤세는 학생의 자율적 성장을 막는 교육제도를 비판한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이 바로 《수레바퀴 아래서》(1906년)다.
* 헤르만 헤세, 원당희 옮김 《페터 카멘친트》 (민음사, 2017년)
* 헤르만 헤세, 황종민 옮김 《게르트루트》 (현대문학, 2013년)
<향수>의 원제는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 1904년)다. 헤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며 헤세의 초기 문학의 시작점이다. 5권의 <단편집>(Novellette)에 다섯 편의 노벨레가 수록되었다. <사랑의 3중주>의 원제는 《게르트루트》(Gertrud, 1910년)이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음악가가 주인공이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소프라노 가수의 이름이 게르트루트다.
* [eBook] 헤르만 헤세, 이민정 옮김 《라디델 허영과 체면》 (본투비, 2026년)
<라디델>(Ladidel)은 1909년에 발표된 헤세의 중편소설이다. 라디델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헤세의 초기작이다. 새로 나온 번역본은 없고, 전자책은 있다. 제목은 《라디델 허영과 체면》이다.
* 헤르만 헤세, 이노은 옮김 《크눌프》 (민음사, 2004년)
* 헤르만 헤세, 전영애 옮김 《데미안》 (민음사, 2000년)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개정판 278번째 책]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2002년)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개정판 310번째 책]
* 헤르만 헤세, 김누리 옮김 《황야의 이리》 (민음사, 2002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방황과 방랑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자아)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헤세의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Knulp, 1915년), 《데미안》(Demian, 1919년), 《싯다르타》(Siddhartha, 1922년),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 1927년)이다. <라디델>은 이 다섯 편의 ‘문학적인 성과’를 맺게 해준 뿌리와 같은 소설이다.
<라디델> 최초의 번역문은 1969년에 나온 <헤르만 헷세 전집>(대양서적) 2권에 있다. 사실 성창출판사의 헤세 전집은 대양서적(大洋書籍)의 헤세 전집을 복제한 출판물이다.

1969년 헤세 전집 번역에 8명의 독문학자가 참여했다. 이들의 이름은 성창출판사의 헤세 전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6, 70년대에 출간된 독일 문학 작품들은 주로 독어독문학 교수들이 번역했는데, 곽복록(1922~2011) 교수가 번역한 책들은 지금도 나오고 있다. 헤세 전집 수록작 중에 곽 교수가 번역한 작품은 <호반의 아틀리에> 한 편뿐이다.
성창출판사 《데미안》은 김정진 교수가 번역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가 학교 쉬는 시간에 우연히 발견한 쪽지에 적힌 문구다. 이 쪽지를 쓴 사람은 싱클레어에게 도움을 주는 데미안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데미안》 중에서, 전영애 옮김, 123쪽)
김정진 교수는 이 명문장의 첫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새는 알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다.
(107쪽)
‘알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다’라는 문장을 눈으로 씹어서 읽으면 얼얼하다. 오히려 유명해진 문장이 밋밋하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혼자서 한 번에 깨기 어렵다. 알껍데기에 여러 번 부딪히는 새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듯이 인간 역시 어떠한 일을 성취하려면 그만큼의 성장통을 참아야 한다. 바둥거리는 몸짓은 쉼 없이 노력하는 행위인 동시에 성장통을 앓는 존재의 모습이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026년 9월, 10월의 세계문학, 추천 독자: 조약돌]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개정판 411번째 책]
* 헤르만 헤세, 이영임 옮김 《유리알 유희》 (민음사, 2011년, 전 2권)
* [품절] 헤르만 헤세, 박계수 옮김 《유리알 유희》 (현대문학, 2013년)
8월 막바지부터 헤세의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세속> 9월과 10월의 세계문학 작품이 헤세 최후의 대작 《유리알 유희》이기 때문이다. 9월 25일 추석이 9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연휴인 이날에 모임을 진행하기 어렵고, 한 달 만에 《유리알 유희》 두 권을 완독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서 모임 날짜를 10월 2일 금요일로 변경했다. 한 주 미뤄진 모임은 《유리알 유희》 1권을 읽은 독자들이 만든다. 《유리알 유희》 2권 모임 날짜는 10월 30일 금요일이다. 2권 모임 장소는 세속 독자인 ‘읽고 글을 쓰는 인간’ 성은님이 운영하는 카페 <그라디언트>다.

《유리알 유희》를 추천한 독자는 조약돌님이다. 약돌님은 《수레바퀴 아래서》와 《싯다르타》를 읽은 후로 헤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헤세 작품 중에 가장 높게 평가받는 《유리알 유희》를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했다. 다음 주 모임에 약돌님을 만나면 《수레바퀴 아래서》와 《싯다르타》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