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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마농지 / 2025년 9월
평점 :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의 첫 번째 장
금일 오인(吾人) 의 차거(此擧)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현대어 풀이]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출처: 나무위키)
소극적인 자유주의자는 남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만약 타인이 그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간섭한다면 자유를 침범한 것이다. 적극적인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연문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분류한다. 그는 자유의 두 개념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같이 갈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주의자를 지지한다. 적극적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자기 계발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벌린은 적극적인 자유가 과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극적인 자유를 왜곡하거나 악용하면 개인의 자유를 죽이는 전체주의 사회가 등장한다.
벌린은 소극적 자유론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 자유론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적극적 자유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전 시대에 소극적 자유론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유주의의 근본은 소극적 자유’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적극적 자유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학계와 정계에 진출한 소극적 자유주의자 중 일부는 우파 자유 지상주의자(libertarianism)가 된다. 이들은 전체주의의 등장을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마르크스주의자(Marxism)와 사회주의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과거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와 대적한 정부를 찬양하고, 전체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들은 냉전 시대 정부의 전체주의적 행보를 모르는 체한다. 오히려 우리가 공산주의에 점령당하지 않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게 해준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한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견해는 ‘종북 세력과 결탁한 적’으로 간주한다. 이런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떠벌린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별성(individuality)’을 발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자유의 다양한 의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우파가 자유를 독점하다시피 틀어쥐고 있으니, 자유의 ‘자’도 꺼내기 쉽지 않다. 자유를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을 곱씹어 읽어야 한다. 《자유론》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 그의 자유주의에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어떤 사람의 물질적 또는 도덕적 이익을 위한다면서 그 사람을 간섭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32쪽). 소극적 자유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어서 밀은 개인이 절대적인 자유를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이유를 “자기 자신, 즉 자기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이기 때문이라고 명시한다(32쪽). 주권자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러한 밀의 견해는 적극적 자유로 볼 수 있다. 《자유론》을 번역한 서병훈 교수는 밀의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의 기본 원칙’을 주장하면서도(소극적 자유), ‘자기 발전’이라는 본원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한다(적극적 자유).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철학의 정석(定石)이면서도 회의주의(skepticism) 철학의 기본 원칙을 강조하는 교본(敎本)이다. 밀은 ‘자유주의자 이전의 회의주의자’ 또는 ‘회의적 자유주의자’다. 밀은 영국의 어떤 작가가 말한 “확정된 결론은 깊은 잠에 빠진다”라는 말을 인용한다(91쪽). 회의주의자는 확정된 결론 앞에서 꾸벅꾸벅 졸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로 확정된 결론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인식하지 않는다. 확정된 결론에 허점이 보이면 검증에 들어간다. 회의주의자 밀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믿는 것일수록 온 세상 앞에서 더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52쪽).
회의주의자는 냉소주의자가 아니다. 냉소주의자는 믿을 만한 진리가 없다는 이유로 숙고와 검토를 포기한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의 견해를 만나자마자 매정하게 마음을 닫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경청한다. 밀이 강조한 것처럼 회의주의자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다.” (51쪽) 밀은 소크라테스(Socrates)를 ‘모든 도덕 철학자의 원형’으로 평가한다(58쪽). 소크라테스는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주1]라고 말한 회의주의 철학의 원형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견해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쉽다. 여기에 권위까지 실리면 ‘검토하지 않아도 되는 확정된 지식’으로 굳어진다. 회의주의자는 ‘전문가가 말했으면 사실이야’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적 독자는 《자유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밀은 지적 스승이자 아내인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나면서부터 여성의 불평등을 지적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역설한 《여성의 종속》을 발표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어린이와 같은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수많은 남성 지식인은 정신적 ·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밀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보는 차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지식인이다.
그런데 밀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자유의 기본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성년인 어린이를 자유 원칙의 적용 대상에 제외한다(32쪽). 영국 산업혁명 시대에 살았던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탄광이나 공장에서 열 시간 넘게 일했다. 1833년에 어린이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9살 미만의 어린이는 노동을 금지하는 일명 ‘노동법’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아동 노동은 여전했다. 밀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했다면 어린이에게 너무 많은 일을 시킨 사업주가 ‘어린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밀은 《자유론》을 “시민의 자유를 다룬 책”이라고 말한다(17쪽). 모든 시민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있는 시민에 어린이는 없다.
밀은 비유럽권 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아시아를 ‘관습의 전횡이 극에 달한’ 대륙이라고 규정한다(138~139쪽).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밀이 백 세 넘게 장수해서 ‘자유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자주적인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알린 1919년 3월 1일 조선을 알았다면, 아시아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을까?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불신한다. 이들과 대면해서 자유로운 토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냉소주의자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른다. 밀은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론의 자유가 이루어지려면 상대방을 향해 인신공격과 언어 폭력을 쓰는 사람을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배척하지 않고,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밀의 자유주의 또는 회의주의는 ‘다정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밀은 다정다감한 ‘희망찬 회의주의자’다. 진보, 보수, 좌우를 떠나서 우리는 희망찬 회의론자가 되어야 한다.
<(밀리터리 덕후가 아닌)
‘밀’ 덕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서평 제목이 있는 배경 사진에 관한 주석]
사진 속 남성은 밀,
여성은 해리엇 테일러의 친딸이자 밀의 의붓딸
헬렌 테일러(Helen Taylor)다.
어머니의 외모와 정신을 빼닮은 헬렌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한 페미니스트다.
[독서 모임 날짜에 관한 주석]
<고라니 울고>의 《자유론》 모임은 107주년이 된 3·1절인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했다. 모임 장소는 ‘인더가든’이다. 이곳은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고라니 울고>를 이끄는 분은 김성현 님이다. 작년부터 만난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독자님이다.
『기미독립선언서』는 1919년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처음으로 낭독되었다.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과 일치했다. 어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성현 님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 시간을 정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성현 님도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한 시간을 모르고 있었다. 『기미독립선언서』 낭독 시간과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주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8a,
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년
* 33쪽, 옮긴이 주

Akbar, 1524~1605 [주2]
[주2] 인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Akbar) 대제의 출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그는 1542년에 태어났다.
* 113쪽

다른 사람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하도록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견의 자유도 무제한 허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곡물 중개상이 가난한 사람들을 배곯게 한다거나 사유재산은 강도질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주3]을 신문에 발표하는 경우는 누구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
[주3] 사유재산을 부정한 프랑스의 아나키스트(Anarchist)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견해다. 그의 사상이 담긴 책이 《소유란 무엇인가》(이용재 옮김, 아카넷, 2013년, 절판)다.


[주4] ‘첨밀밀(甜蜜蜜, 달콤하다, 다정하다)’은 등려군(鄧麗君)이 부른 유명한 노래 제목이자 1996년 홍콩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첨밀밀>(Comrades: Almost a Love Story)이 우리나라에 처음 개봉한 날은 1997년 3월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