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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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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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 노랫말 일부 -



사진은 1977년에 재발매된 한대수 1<멀고 먼 길> 앨범 앞표지다.





상상화는 그리기 쉽다. 내 생각과 상상한 것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상화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하지만 완성된 상상화는 온통 검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도 상상화는 까맣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상상화는 어두컴컴하다. 상상화를 그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뭘 그린 거야?” 그들은 깜깜한 상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상상화는 이상하고두렵고불쾌하고난해하다이해하기 힘든 상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까만 상상화가 낯선 사람들은 상상화를 그린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의심한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상상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우리 눈은 실물과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익숙하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동자가 좁아지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긴다그래서 상상화가 항상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창문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 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느낀 물체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좋고, 친숙한 세상만 보려고 하는 눈은 항상 열려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장막이다.

 

상상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환상의 미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검은 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반대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이 책이 깊고 광활한 검푸른 바다로 보인다. 그들은 공상에 취한 상태다. 익숙해서 지루한 일상을 잠시 잊어버리고 환상의 검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환상의 미술솔직 과감한 상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막을 걷어내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컬트, 죽음, 공포와 같은 어둡고 음산한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상의 바다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고 자란 괴물이 득시글거린다. 환상의 바다를 처음으로 유영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예술가들이 세운 드림랜드를 헤맨다상상하는 일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이 환상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들면 눈동자가 깜짝 놀라서 갑자기 눈이 감겨버린다. 환상의 바다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눈 풀기 독서를 해야 한다상상력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진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또 다른 책들, 오컬트 미술: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하지은 옮김, 미술문화, 2022년)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023년)은 환상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현실을 확장하는 일이다.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일이 아니다. 기존의 유를 새로운 유로 바꾸는 일이다. 상상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가들은 개방된 세계를 묘사한다. 개방된 세계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과거와 현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어 있다개방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상하고, 환영받지 못한 사물과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담력이다.







<cyrus의 주석>

 



* 13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센 퉁명스러운 성격의 외눈박이 거인,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마법을 부리는 반짝반짝 날개 달린 자그마한 존재, 빛을 발하는 뿔이 달린 말을 닮은 짐승, 그 외에도 인어, 미노타우로스, , 난쟁이, 스핑크스, 사티로스, 백조 아저씨[주1], 잠 귀신! 키클롭스의 흙투성이 동굴에서부터 버섯들이 빚어낸 요정의 반지, 그리고 세상의 끝 어두운 숲에 숨겨진 마지막 유니콘까지. 모든 문화에는 환상적인 생명체에 관한 신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문]


 Lumbering one-eyed giants with surly personalities and prodigious strength; diminutive, winged beings twinkling with magic both mischievous and malicious; luminous equine beasts with shimmering horns, elusive and rare. Mermaids and minotaurs, dragons and dwarves! Sphinxes, satyrs, swan maidens and even the Sandman from the Cyclops’ dusty cave to the mushroom-spotted faerie rings to the last unicorn hidden in a dark wood at the end of the world, there are clamouring, tales of fantastical creatures to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of every culture.

   


[1] 백조 아저씨는 오역이다. ‘maiden’처녀, 아가씨를 뜻한다. 백조 처녀(Swan maiden)’ 전설은 우리나라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하늘에 내려온 백조가 여자의 모습으로 목욕하고 있었는데, 이를 훔쳐본 남자는 백조의 깃옷을 감춘다. 여자는 원래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자의 아내가 된다.





* 47

 




 보리아 삭스는 상상의 동물: 괴물, 불가사의, 인간(2013)에서 모든 유인원에는 설인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모든 말에도 페가수스가 조금 들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다. 켄타우로스, 늑대 인간, 마법사 맨드레이크[2], 스핑크스 같은 면도 있다라고 쓴다.

 


[2] 맨드레이크(mandrake)는 전설에 묘사된 식물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몸에 나온 정액에서 피어난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 형상과 닮았다. 맨드레이크를 뽑으면 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을 들은 사람은 미치거나 죽는다. 맨드레이크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다. 맨드레이크는 중세 시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한 약초였다. 식물 이름이 아니라면 필 데이비스(Phil Davis)와 프레드 프레드릭스(Fred Fredericks)의 만화 <마술사 맨드레이크>(Mandrake the Magician, 1934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이름일 수 있다. 원서에 ‘mandrake’라고 적혀 있는데 맨드레이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 72~73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20세기 이론은 경계를 허무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특히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새로운 현대 신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괴물 같은 기괴함을 포옹하여 강렬하고도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꿈과 악몽에서 영감을 얻어 대체 현실의 끔찍한 장면이 연상되는 광경을 그려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선구자들은 악마와 유령으로 구성된 어둡고 환상적인 동물원을 창조했는데, 그것은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과 파시즘의 폭력을 상징하였다. [3]




[3]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온갖 기행을 일삼은 괴짜로 유명하다. 달리는 히틀러(Adolf Hitler)를 찬양했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제명당했다.





* 111

 





J. J. 그랜드빌 J. J. 그랑빌(Grandville)






* 143


 





 『백설 공주이야기를 소름 끼치도록 뒤틀린 반전으로 재해석한 닐 게이먼의 단편 , 얼음, 사과[주4]는 공주와 계모를 경쟁 관계로 보고, 실제로는 그리 사악하지 않은 여왕이 뱀파이어 같은 의붓딸 때문에 공포에 질려 이 괴물로부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이다.

 


[주4] 1995년에 발표된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단편 소설 원제는 ‘Snow, Glass, Apples’. 소설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집(Grimm’s Fairy Tales)에 실린 백설 공주. 게이먼의 단편 소설 제목의 ‘Glass’는 원작 동화 속 계모가 소유했던 말하는 거울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설 제목은 , 거울, 사과. 이 소설은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정지현 옮김, 하빌리스, 2023)에 수록되어 있다.






* 203

 




 만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선사시대를 목적지로 해서 트리케라톱스와 익룡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티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돌아오고 싶은가? [주5]



[주5] 타임머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계라는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 똑똑한 타임머신이 실용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룡을 만나고 싶으면 타임머신에 선사시대로 가자고 부탁하면 안 된다. 만약 타임머신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기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다간 짝퉁 과거로 가거나 현재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 가면 공룡을 볼 수 없다. 공룡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고, 그 대신에 두 발로 걷는 인류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만나 보고 싶으면 목적지를 선사시대로 하면 되고,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백악기로 가면 된다.





* 더 읽어보기, 236

 

Dinotopia: A Land Apart from Time, James Gurney, 1992 [주6]

 

Fairs and Elves(The Enchanted World), Colin Tuubron, 1984

Wizards and Witches(The Enchanted World), Brendan Lehane, 1984 [주7]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Dr Rosemary Jackson, 2008. [주8]



[주6] 1993년에 다이노토피아: 공룡 나라 여행(오경아 옮김, 디자인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주7] 분홍개구리라는 출판사가 총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Fairs and Elves’의 국역본 제목은 요람을 흔드는 요정(박종윤 옮김, 2005)이다. <인챈티드 월드> 시리즈 전권 모두 절판되었다.

 

[주8]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저서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1981년에 출간되었다. 국역본 제목은 환상성: 전복의 문학(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문학동네, 2001)이다. 현재 절판되었다.





* 책 뒤표지

 






이 책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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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과 얼음의 차이는 많이 나는데^^;;

살바도르 달리 하면 ‘숟가락? 스푼과 낮잠‘ 일화가 압도적이어서 그것만 떠오르는데 히틀러랑 얽힌 사연도 있군요

cyrus님 어떻게 이런 고퀄 분석을 하실수가요. 번역가분들이 cyrus님 모셔서 강의하실 기회를 만들어주셔도 진짜 유익할 것 같아요^^

cyrus 2024-02-26 06:29   좋아요 1 | URL
달리의 작품 중에 <히틀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어요. 그림을 보면 왜 저런 제목을 붙인 건지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들 앞에서 가르칠 수준은 아니에요. ^^;;

감은빛 2024-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데 알라딘에서 글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미지들을 깔끔하게 예쁘게 넣으신 건가요? 저는 이미지를 넣으면 편집이 잘 안 되던데요. 신기하네요.

cyrus 2024-03-01 10:01   좋아요 0 | URL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사진 이미지 크기를 작게 조절해요. 사진 원본을 올리면 너무 크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사진이 너무 작으면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보기 좋게 크기를 조절한 다음에 알라딘 블로그에 올려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 크기를 조절하고, 알라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저는 이 과정을 반복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