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미술 -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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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조커를 위한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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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 합본 173쪽, 열린책들)

 



조커(Joker)는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이다. 총 다섯 명의 영화배우가 조커를 연기했다. 현시대의 조커는 히스 레저(Heath Ledger)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물론 대중은 히스 레저의 조커를 높이 평가한다. 그는 조커 그 자체가 되어버렸고, 조커를 새롭게 만든 배우라는 찬사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팀 버튼(Tim Burton)이 연출한 <배트맨>의 조커는 잭 니컬슨(Jack Nicholson)이 연기했다실은 지금부터 내가 언급하려는 조커는 히스 레저가 아니라 잭 니컬슨이다. 이러니까 내가 옛날 사람 같군. 내가 태어나고 이듬해에 영화 <배트맨>이 첫선을 보였다. 바로 다음 해에 국내 개봉되었다(내가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맞혀 보세요).









<배트맨>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잭 니컬슨의 조커가 부하들과 함께 미술관에 침입해서 난동을 부리는 일이다. 조커 일당은 비싼 명작들을 칼로 난도질한다. 부하 한 명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을 찢으려고 하자 조커가 막는다. “이 그림은 마음에 드니까 그대로 놔둬.” 







조커가 마음에 들어 했던 베이컨의 그림을 보자. 제목은 고기와 함께 있는 인물(Figure with Meat, 1954)이다. 인물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허옇게 녹아내린 상태다. 그래서인지 그는 외마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인물 뒤편에 걸린 도축된 고기가 잔혹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베이컨의 그림은 기괴하고 음침하다. 그가 표현한 얼굴과 몸은 일그러져 있다그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무서워하거나 불쾌감을 드러낸다. 조커는 명작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약 올린다.

 


“Why so serious? See, This is not a monster. 

He’s just ahead of the curve.”

(“왜 그리 심각해? , 이건 괴물이 아니야. 그는 시대를 앞선 거지.”)


 

조커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리라베이컨의 인물화(베이컨의 그림을 봐서는 인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는 결국 조커를 위한 초상화이자 자화상이다. 조커는 베이컨이 누군지 몰라도 그가 괴물을 그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베이컨이 그린 건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으로 규정하면서 자꾸만 감추려고 하는 내면의 깊은 어둠 덩어리다.


우리는 내면의 어둠을 애써 부정하려고 한다. 질투, 분노, 불안, 트라우마, 우울, 배타심, 폭력성. 하지만 어두운 감정 또한 우리 삶의 일부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아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역설한다우리 안에 짙게 덮은 추한 그림자는 제거해야 할 해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이 어두운 반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실체를 마주 보기가 두려울수록 절대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변명한다. 어두운 반쪽을 회피하거나 감추기 위해 보기 좋은 가면을 항상 쓰고 다닌다. 그런 삶이 지속되면 화려한 가면을 진짜 자기 모습으로 착각한다.







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오싹함을 주기 위해 무시무시한 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부도덕, 사악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파괴적 충동 등 우리가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는 어두운 반쪽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림들이 대신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대체로 난해하거나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보면 볼수록 불쾌감이 생기고 꺼림칙하다당연히 이 책에 베이컨의 그림 한 점이 실려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를 연구한 습작(1953)이다.


어둠의 미술은 공포감을 유발하는 이미지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나도 안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은가?(I know. Isn’t it beautiful?). 모든 이들이 아름다움과 화려함에만 좇고 있을 때 철저히 외면해 온 내면의 어둠을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들이거추장스러운 가면을 내려놓고 이 책을 제대로 본다면 꼭꼭 숨겨 놓은 어두운 반쪽을 끄집어낼 수 있다가면을 벗은 얼굴에 어둠을 새겨 보자(Let’s put a dark on that face)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어두운 일부를 억압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악당이 된다. 어두운 반쪽과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무 가까이는 말고, 멀리하되 억지로 떼어내지 않을 만큼 정도로.






※ cyrus의 주석



* 49




   

 파리에서 활동했던 독일 화가 불스[1]의 대담하고 공격적인 그림은 유럽의 추상화 운동인 앵포르멜의 특징이다. 사르트르는 불스[1]의 작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일의 보편적 두려움과 세속적 현상의 타자성에 대한 이끌림을 시각화하였기에 실존주의적이라 말했다.


 

[1] 독일어 발음에 따라 표기하면 볼스(Wols, 1913~1951)’.






* 65





 분노, 질투, 복수, 병과 질환. 폭력과 갈등. 슬픔과 상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죽음. 인간 조간[2]의 이 어두운 측면을 파헤치는 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골치 아프지만 꼭 필요한 단계이다.



[2] 조건의 오자.






* 95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1938-65)[주3]는 볼로냐 화파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당대 가장 조예가 깊고 혁신적이며 성공적인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주3] ‘1638’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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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가 벌써 나이가 그렇게 되었단 말이더냐?
출생년도 기준이지? 개봉년도 아니고ᆢㅋㅋ

cyrus 2023-07-18 05:52   좋아요 1 | URL
혹시 제가 언제 태어났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신 건 아니죠? 하셨다면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ㅎㅎㅎㅎ 저는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났어요.. ㅋㅋㅋㅋ

미미 2023-07-12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너무 좋네요. 제가 요즘 생각하던 주제를 사이러스님이 이렇게 써주시다니 놀랐습니다. <장미의 이름>의 발췌문도 소설을 재독 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고요. 저도 조만간 써야 할 독후감이 있는데 저 말 인용하고 싶어져요. 사이러스님 88년생이십니까? ^^

cyrus 2023-07-18 05:53   좋아요 1 | URL
미미님이 관심 있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네, 마음껏 인용하셔도 좋습니다. 88년생 맞아요 ^^

서니데이 2023-07-1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잭 니콜슨이 조커로 나왔던 영화는 80년대 영화였을거예요. 요즘엔 조커는 그보다는 최근에 나온 히스 레저 사진이 더 많이 나오긴 합니다. 조커 캐릭터도 영화마다 다른 것 같긴 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3-07-18 05:5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배트맨>이 처음 나온 연도가 1989년이에요. ㅎㅎㅎ

날씨가 변덕스럽네요. 무덥다가 어느샌가 비가 많이 내리고. 더위와 습함이 공존하는 일상이 지속되니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쳐버리네요. 오늘도 비가 온다네요. 여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