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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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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오랫동안 알려져온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가 있다. 우리는 세 가지 오해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진화는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종으로 만드는 진보를 동반한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적의 진화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였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셋째, 진화는 적자생존의 원칙 그 자체다. 자연에 적응한 강한 종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그렇지 못한 종의 유전자는 도태되면서 끝내 절멸된다. 그래서 자연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규칙이 지배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르면 오래 살아남는 종이 강하다. 생육과 번식, 창조를 거듭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발명하고 문명을 세운 인류는 살벌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 속에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이며 인류는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생명체다. 하지만 인류의 삼림 수탈과 지구 온난화로 침팬지의 터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류에게 포획된 침팬지는 실험용 동물이 되어 희생된다. 적자생존을 세상 불변의 진리로 보는 세계관은 자연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적 탐욕으로 확장된다. 이로 인해 침팬지는 멸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이 모든 문제는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진화론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이런 오해를 한다. 따라서 진화와 관련된 막연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오해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심각한 오류로 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로지 ‘적자생존’ 밖에 모르는 얼뜨기 진화론자도 하기 쉬운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제한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을 지향하는 진화 전략보다는 타인과 협력하는 진화 전략에 주목한다. 이 인류의 생존 전략의 중심에 연대와 공존을 강화하는 다정함과 친밀감이라는 정서가 있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경쟁에서 이길 정도로 똑똑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 강한 자만 살아남았는 게 아니라 다정한 자도 살아남았다.
인류는 어떻게 혈연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면서 진화했을까? 저자들은 다정함과 친밀감이 진화의 근원임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 가설을 제시한다. 자기 가축화란 말 그대로 야생의 개체가 스스로 인간과 함께 사는 가축이 되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대표적인 자기 가축화 동물이 바로 개다. 개의 조상인 야생 늑대는 인간을 경계하고, 공격성이 강하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살아갔고, 인간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인간의 터전 주변을 맴도는 늑대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보다 친밀감이 강했다. 늑대가 점점 가축으로 진화하자 공격성이 줄어들었고, 날카로운 이빨의 크기는 작아졌다. 이렇게 성격과 외형까지 완전히 달라진 늑대는 인류의 반려동물인 개가 되었다.
자기 가축화 현상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타인을 만나면 친밀감을 느낀다. 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타인을 가족 같은 친구로 여긴다. 이러한 관계에서 싹트기 시작한 다정함과 친밀감은 타인을 향한 적대감을 줄어들게 만들었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했다. 어쩌면 평화주의자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을 내세워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평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은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폭력성을 완전히 줄이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고 싶은 친밀감과 결속력이 더 높아질수록 타인과 외집단과의 협력을 꺼린다. 심지어 타인을 차별하고, 공격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인종주의와 우생학은 인류의 진화에 적용된 자기 가축화 현상의 어두운 이면이 낳은 이데올로기다.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서구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민족을 분류하여 이들을 원숭이와 같은 미개한 존재로 바라봤다. 우생학은 적자생존의 원칙을 사회에 적용하려는 진화론자들이 열광한 학문이었다. 우생학자와 사회진화론자들은 뛰어난 유전자와 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류를 선호했다. 그들이 바라본 장애인은 뛰어난 인류에 적합하지 않는 배제의 대상이었다.
특정 민족을 인간이 아닌 원숭이 같은 동물로 취급하던 사람 중 일부는 진화론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특별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확신(착각)했기 때문에 동물을 인간의 조상으로 보는 견해에 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잘못 알았다.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원숭이, 즉 영장류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친척’임을 알지 못했다. 인간과 영장류는 유인원에 가까운 오래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진화했다. 진화는 원숭이가 점점 인간으로 변하는 단선적인 현상이 아니다.
네발로 기어가는 원숭이가 두 발로 걷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류 진화도’는 진화의 두 번째 오해를 낳게 만든 주범이다. 저자들은 여전히 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인류 진화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188~189쪽). 그리고 침팬지와 보노보가 영장류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87쪽).
두 저자는 협력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발현시킨 인류의 진화 전략을 찬양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다정함과 친밀감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진화론을 주장했다면, 인류가 영원히 발전할 거라고 믿는 진보사관에 가까운 견해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저자들은 진화의 첫 번째 오해가 파놓은 함정을 피했다.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그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저자들은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라고 말한다(32쪽). 저자들이 생각한 인간의 정의는 낙관적인 진보의 달콤한 환상이 섞인 진화론에 부합한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인류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으면 진화를 진보로 착각할 수 있다. 결국 진보사관으로 둔갑한 진화론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가장 다정하면서도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철학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진화론을 제대로 안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대답할 수 있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31쪽, 옮긴이 주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랭엄 피터슨[주1], 《악마 같은 남성》,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8 참조).
[주1] 《악마 같은 남성》(Demonic Males)은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과 데일 피터슨(Dale Peterson)이 함께 쓴 책이다. 공저자의 이름을 알아보기 쉽게 ‘랭엄, 피터슨’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 135쪽, 옮긴이 주
괴테의 동명 시 <발라드(Der Zauberlehrling)>[주2]를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디즈니 장편 3부작 <판타지아>의 마지막 편으로 1940년에 개봉, 2000년에 개봉했다.
[주2] 135쪽 두 번째 역주는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시 제목이 잘못 적혀 있다. 괴테의 시 제목은 발라드(ballade)가 아니라 <마법사의 제자>(Der Zauberlehrling)다. 발라드는 시 형식을 지칭하는 단어다.
* 267~268쪽
러시아 대통령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