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4점 ★★★★ A-
작년 여름부터 대구의 책방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가 직접 책을 쓰고, 편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 등록 당시에 출판사 이름은 ‘도서출판 서탐’이었고, 올해 1월에 사명을 ‘tampress(탐프레스)’로 변경되었다. 책방지기는 겸손하게도 ‘tampress’를 ‘출판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tampress’는 책방 안에서 나온 창작 활동의 산물을 출판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출판사다.
책방에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책방지기의 든든한 벗이다. 책방지기는 재주가 많은 두 명의 벗과 함께 ‘여성을 위한 소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소셜 커뮤니티 이름은 ‘W.살롱’이다(나는 처음에 ‘W.살롱’을 ‘우먼살롱’으로 읽었다. 정확한 호칭은 ‘더블유살롱’이다). ‘W.살롱’ 프로젝트에 참여한 책방지기의 동료들 모두 글 쓰는 일을 한다. 권지현 작가는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이기도 하다(본인을 ‘프리랜서 글꾼’이라고 소개했다). 이도현 작가는 ‘이도’라는 필명으로 단편소설 《보름달》을 펴냈다. ‘책샘(책이 샘솟다)’이라는 독서 모임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W.살롱’은 여성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화 공동체이다. ‘tampress’의 첫 번째 출판물인 <W.살롱 에디션>은 ‘W.살롱’ 정기 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의 글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 책방지기, 권 작가, 이 작가가 쓴 글도 실려 있다. 세 사람이 함께 표지 디자인 제작, 편집, 교정 작업을 했다. 현재 총 네 권의 <W.살롱 에디션>이 출간되었다(책 한 권의 정가는 8,000원이다). 네 권의 책 모두 이 글에 전부 소개할 수 없어서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만 언급하겠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주제는 ‘밥’이다. 주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대부분 사람은 밥을 ‘한국인의 주식(主食)’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W.살롱의 작가들은 ‘밥을 차리는 주체’에 주목한다. 여성은 결혼하면 ‘밥을 차리는 아내’가 된다. 사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주변 사람들한테 ‘아내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다. “여자는 자고로 음식을 잘 만들어야 좋은 아내가 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오랫동안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살아봤거나 이런 아내를 만나 살고 싶은 남자들은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을 모른다. 책방지기 겸 편집자인 김정희 작가는 ‘나 또는 누군가의 끼니를 위해 육체를 움직여 보지 않은 사람’은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이반 일리치 《그림자 노동》 (사월의책, 2015)
우리는 정떨어진 사람에게 ‘밥맛없다’라고 말한다. 권지현 작가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단어인 ‘밥맛’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밥맛’에 밥을 차리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이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밥을 차리는 노동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도 작가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 소비되는 돈과 시간을 직접 재보기 위해 ‘요리 마일(cook miles)’이라는 계산식을 만들었다. ‘요리 마일’은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적 수치에 반영되지 못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사노동, 특히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림자 노동’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임금 노동에 가려진 가사 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명명했다.
일리치는 남성 중심의 생산노동에 가려진 그림자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빛이 너무 밝으면 공해가 된다. 밥 만드는 일을 지나치게 숭배하고, 여성의 모성과 희생에만 초점을 맞춘 ‘신화’는 밥 차리는 주체의 수고로움을 가리는 공해이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의 부제는 ‘신화를 걷어내다’이다. 그들이 걷어낸 ‘신화’는 ‘밥을 차리는 주체’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관념적인 식탁보다. W.살롱의 작가들은 식탁보가 된 ‘신화’를 걷어낸다. 만약 당신이 <W.살롱 에디션>을 다 읽고나서 식탁보를 걷어내면 식탁 위에 밥이 아닌 ‘밥을 차리는 주체의 삶’이 있음을 알게 된다.
<W.살롱 에디션>을 문고본 형태의 문집이라고 얕보지 마시라.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있는 단행본이다. 서평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위원인 송지우 교수는 “책을 내는 가치가 있다면 서평은 그 가치를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했다.[주] 나는 송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책방에 모인 작가들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작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서평을 썼다. 내가 ‘책방지기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평을 쓴 건 절대로 아니다(<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은 책방에서 샀다). 지인이 쓴 책도 쓴소리와 악평을 피할 수 없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독자는 잘 만든 책 속에 부족한 점, 아쉬운 점, 문제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반드시 언급한다. <W.살롱 에디션> 첫 번째 책에 몇 개의 오자가 보였다. 나는 이 사실을 책방지기에게 알렸다. 내 의견을 그분에게 직접 전달했으므로 이 글에 책의 오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주] 『‘책 감별사’ 모여 국내 최강 서평지 만든다』 (동아일보, 2020.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