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가 사랑한 책
마리엘라 구쪼니 지음, 김한영 옮김 / 이유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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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Genuine, Honest, Destin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압생트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즐겨 마신 술이다이 술은 가격이 싸지만알코올 도수가 높다그래서 압생트의 별명은 녹색의 악마너무 많이 마시면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정신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빈센트가 압생트를 많이 마신 탓에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잊을 수 있을 때까지 벌컥벌컥 마신다. 압생트를 좋아한 보들레르(Baudelaire)는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황현산 옮김)에서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취하라끊임없이 취하라고 했다술이든 시든 미덕이든 좋을 대로어떤 사람은 빈센트를 술에 절어 살다가 미쳐버린 화가로 기억한다반은 맞고반은 틀렸다빈센트는 술이 전부가 아니었다그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책에 미쳐버린 책 중독자였다책에 중독성과 치유 효과가 있다한 권의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책을 다 읽으면 현실에 다시 뛰어들 수 있을 만큼 고통과 근심이 사라진다


책은 빈센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빈센트는 오직 그림과 책만 생각했다빈센트가 사랑한 책은 빈센트의 예술 세계에 또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책들과 그것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빈센트는 동생 테오(Theo)와 누이동생 빌레미엔(Willemien)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읽은 책을 언급했으며 이따금 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내게는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끊임없이 깨우치고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지마치 하루하루 빵을 먹어야만 하는 것과 같아.’

 

(빈센트가 쓴 편지 중에서빈센트가 사랑한 책》 6)

 


책에 대한 빈센트의 사랑은 설교자에서 화가로 변신하게 만든 욕구였다빈센트를 죽을 때까지 책을 먹었고, 책에 취했다끊임없이 취했다그에게 책은 평범한 그림 소재가 아니었다자기 생각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종이 거울이었다빈센트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예술가의 역할을 찾아냈다그가 지향한 예술가의 역할은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빈센트는 자신이 좋아한 낱말인 진실(genuine)’과 정직(honest)’에 부합하는 책들을 찾아 바지런히 읽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빈센트의 책들이 그림 속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빈센트의 그림과 편지를 읽으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책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책을 향한 사랑이 그림 속에 녹아 있고진실하고 정직한 예술에 대한 열정이 그가 꾹꾹 찍어 눌러서 생긴 붓 자국에 남아 있다.



진실정직운명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영원히[]





[N.EX.T의 노래 <Here, I Stand For You>에 있는 노랫말(노래가 시작되는 부분과 마치는 부분)을 차용해서 빈센트의 독백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봤다







※ Mini 미주알고주알

 

 


1

 

* 8

 

 어린 시절부터 빈센트는 수백 년에 걸쳐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읽고곱씹으며 다시 읽고필사하고생각하기를 거듭했다.[] 문학지와 예술잡지를 빠뜨리지 않고 보았고성경도 여러 판본과 번역본을 두루 읽었다.

 

 

[걸치다는 일정한 횟수나 시간공간을 거쳐 이어지는 상황즉 시간의 길이를 표현할 때 쓰는 동사다. ‘걸쳐를 동안이라는 단어로 바꿔 써보자그러면 인용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빈센트는 어린 시절부터 수백 년 동안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읽었다. (‘백 년 동안의 독서인가?)

 

두 번째빈센트는 수백 년 동안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어린 시절부터 읽기 시작했다.

 

인용문은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빈센트는 30대 후반에 요절했다당연히 그가 백 살까지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2

 

 

* 22

 

 빈센트는 약 3년간(1876~1879) 신앙에 심취했는데 그 기간 동안 강렬한 열정이 그를 고양시켰고심지어 광신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그의 편지에는 종교적 인용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그는 주로 두 권의 책성경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해 세상을 보았다이 두 번째 책은 후에 빈센트가 설교자의 길을 갈 때 깊은 영향을 미쳤다네덜란드 수사이자 신비주의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책은 헌신적인 신앙의 지침서로신의 뜻에 완전히 복종할 것을 주장했다.

 

 

[켐피스는 그가 태어난 지역 이름 켐펜(Kempen)’에서 유래된 것이다켐펜은 독일에 있는 지역이므로 토마스 아 켐피스는 독일 출신의 인물이다(독일어 이름은 ‘Thomas von Kempen’이다). 이 책의 부록 책과 함께한 삶간추린 연대기에도 토마스 아 켐피스를 네덜란드 수사로 소개되어 있다(194).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 게 역자는 네덜란드 수사라고 했지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다실제로 토마스는 1492년부터 네덜란드의 수도원에서 생활했다그를 네덜란드 수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하지만 네덜란드 수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 수사로 생각한다그래서 본문에 토마스 아 켐피스가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3

 

 

* 71~72

 

 위대한 화가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어 평생토록 여러 차례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빈센트에겐 프랑스 바르비종 화파로 농민의 삶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가 그런 사람이었다밀레는 농민의 힘든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빈센트가 거룩하다고 느끼는 것을 그림 속에 불어넣을 줄 알았다.

 ‘페레(아버지밀레는 빈센트의 예술의 길에 빛을 비춰주는 등불이었다하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도 그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것은 밀레에 관한 책 한 권이었다프랑스 작가 겸 시인[] 알프레드 상시에가 밀레의 생애와 작품에 전념한 끝에 완성한 대작이었다상시에가 묘사한 밀레의 멜랑콜리한 성격은 빈센트에게는 계시나 다름없었다마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 책의 글쓴이들이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한 직함은 전기 작가’, ‘미술사가’, ‘미술 평론가나는 상시에를 시인으로 소개한 책을 처음 본다.

 

프랑스판 위키피디아 알프레드 상시에’ 항목에 보면 그가 시를 쓴 사실을 언급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그가 생전에 펴낸 출판물을 모아놓은 목록에 시집은 없다상시에가 시집을 내지 않고문예지를 통해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면 그를 시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상시에를 시인으로 소개한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은 오류다.






4

 


 

* 184


 1890년 1월에도 신경쇠약 증세가 찾아왔다동생이 빌레미엔에게 쓴 편지를 보면빈센트가 지루함과 싸울 수 있도록 동생들이 헨리크 입센의 유령》 같은 어두운 글을 제외하고 좋은 책을 신중하게 골라서 보내줬다는 걸 알 수 있다. ‘입센의 희곡들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 [‥…빈센트 형에게 노라를 보냈단다하지만 지금 형의 상태로 봐서는 당분간 유령》 같은 것은 보내지 말고 갖고 있는 게 좋겠어.’ 아쉽게도 빈센트가 노르웨이의 작가 노라(1828~1906),[] 즉 인형의 집을 읽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편지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노라는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이다인형의 집을 쓴 작가는 입센(Henrik Ibs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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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노르웨이 작가 노라는 좀... 오타도 아니고.. 이건...ㅜ

cyrus 2021-01-15 12:02   좋아요 0 | URL
최근에 알았는데, 이 책의 역자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많이 번역한 베테랑입니다.

syo 2021-01-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역시 우리는 같은 세대인가요.

cyrus 2021-01-15 12:03   좋아요 0 | URL
우리 나이 차가 별로 안 나잖아요. 같은 세대 맞아요.. ㅎㅎㅎ

stella.K 2021-01-15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생일 날 나온 책이네.ㅋ
근데 책이 넘 비싸다.ㅠ
빈센트는 그림은 좋은데 그의 삶은 좀...
영화 버전이 많은데 내 갠적으론 옛날 커크 더글라스의
영화가 좋아.^^

cyrus 2021-01-16 14:33   좋아요 0 | URL
그죠? 빈센트를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책을 모으고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비싸서 구입하지 못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