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을 읽었다. 그동안 《백 년》을 완독하는 데 실패했던 나로선 숙원이 드디어 풀렸다. 《백 년》이 독서 모임 필독서가 아니었으면 올해도 ‘제목만 아는 고전’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 (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 (민음사, 2005)
가장 많이 알려진 《백 년》 번역본은 2종(문학사상사, 민음사)이다. 번역본 2종(실질적으로는 책 세 권)을 같이 읽느라 오래 걸렸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즉 부엔디아(Buendía) 가문의 가계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소설을 읽으면 헤맬 수 있기 때문에(예전에 《백 년》 읽기를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과거, 현실, 환상이 복잡하게 뒤섞인 미로 같은 이야기에 적응하지 못해 포기했다) 정말 집중해서 읽었다. 역시나 《백 년》은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백 년》 번역본 2종(문학사상사 판본은 영어 중역본, 민음사 판본은 스페인어 직역본)에 대한 독자평들을 확인했는데, 2종 모두 번역이 별로여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있었다. 확실히 2종의 번역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문학사상사 판본이 민음사 판본보다 가독성이 좋다고 한 독자가 있었고, 반대로 민음사 판본의 번역을 선호한 독자도 있었다. 그런데 번역을 지적한 독자들은 어떤 번역문이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필자가 제대로 못 찾은 것일 수 있지만, 《백 년》 번역을 요목조목 따진 독자 및 전문가 서평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필자는 어색하거나 문제가 되는 번역문을 직접 찾아보게 되었다. 필자는 스페인어를 쓰고 말할 줄 모른다. 영어 까막눈이지만(…), 《백 년》 영문판을 참고했다. 내용 분량을 조절하기 위해 두 편의 글(첫 번째 글은 민음사 판본 1권의 문장들, 두 번째 글은 민음사 판본 2권의 문장들이 나온다)로 나누어 썼다.
1
* 원문
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 문학사상사 10쪽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제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 민음사 1권 19쪽
멜키아데스가 제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 bichloride of mercury: 염화수은(II), 염화 제2수은, 제2염화수은, 승홍(昇汞, corrosive sublimate)
→ 염화수은: 염소와 수은의 화합물, 염화수은(II)의 화학식 HgCl2
→ 산화수은(mercury oxide): 수은의 산화물(한 개 이상의 산소 및 다른 원소와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화학식 HgO
2
* 원문
He had been shipwrecked and spent two weeks adrift in the Sea of Japan, feeding on the body of a comrade who had succumbed to sunstroke and whose extremely salty flesh as it cooked in the sun had a sweet and granular taste. [중략] In the Caribbean he had seen the ghost of the pirate ship of Victor Hugues, with its sails torn by the winds of death, the masts chewed by sea worms, and still looking for the course to Guadeloupe.
* 문학사상사 91~92쪽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 한국 동해에서 2주일 동안 표류하다가, 일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았는데, 그 짭짤한 살은 햇볕에 잘 익어서 달콤하고 쫄깃쫄깃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중략] 카리브 해에서는 빅터 휴즈의 해적선이었던 배가 죽음의 바람에 돛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돛대가 바다벌레에 갉아 먹힌 유령선이 되어 아직도 과달루페로 가는 뱃길을 찾아 헤매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 민음사 판 1권 141~142쪽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 일본 해에서 두 주일 동안 표류하면서 일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았는데, 소금기에 절고 또 절고, 햇볕에 익은 그 살이 쫄깃쫄깃하고 달콤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중략] 카리브 해에서는 빅또르 우게스의 해적선으로 사용되던 배가 죽음의 바람에 돛이 갈기갈기 찢기고 바다 바퀴벌레에 돛대가 갉아 먹힌 유령선이 되어 여전히 구아달루뻬로 가는 뱃길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 ‘동해’ 명칭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국제적 갈등을 생각하면 영문판에 적힌 ‘Sea of Japan’과 두 역자의 명칭 모두 아쉽다. 동해는 특정 국가가 영유한 바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동해’, ‘일본 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 ‘동해’라고 써야 한다.
→ Victor Hugues: 빅토르 우게스. 쿠바의 소설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Alejo Carpentier)의 소설 《The Age of Enlightenment》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민음사 1권 142쪽에 빅토르 우게스에 대한 역주가 있다. 이 역주를 단 조구호 씨는 《The Age of Enlightenment》의 우리말 제목을 ‘빛의 세기’라고 썼는데, 원문의 의미에 부합한 제목은 ‘계몽의 세기’다. ‘빅터 휴즈’는 빅토르 우게스의 영어식 발음이다.
3
* 문학사상사 102쪽
쏟아져 나오는 피를 잉크를 말리는 압지처럼 흡수하는 그물침대의 무더운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레베카는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고 다시 태어났음을 하느님에게 감사드렸다.
→ 필자가 밑줄 친 부분이 어색하다. 도대체 뭔 말이야?
4
* 문학사상사 177쪽
‘세인트 엘모의 불꽃(St. Elmo’s fire)’에 대한 역주
도깨비불, 매일 밤 양초를 들고 정처 없이 마을의 거리를 헤매 다니던 프랑스 신부 ‘엘모’에게서 유래.
→ 안정효 씨가 단 역주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 엘모는 뱃사공들의 수호성인 포르미아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Formia)가 와전된 이름이다. 포르미아는 이탈리아 라치오 주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포르미아의 에라스무스는 프랑스 (출신의) 신부가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이다. 민음사 판에는 ‘도깨비불’이라고 번역되어 있다(1권 236쪽).
에필로그
이 첫 번째 글은 민음사 판 《백 년》 1권 전체 본문과 이에 해당되는 문학사상사 판 《백 년》 본문 속에 발견한 오역 문장과 오류를 정리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2종의 번역본의 문제점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필자가 글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쓴 이유가 있다. 오역으로 볼 수 있는 문장들이 민음사 판 《백 년》 2권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안정효 씨의 오역과 엉터리로 쓴 역주도 있다. 인지도가 높은 《백 년》 번역본 2종의 번역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