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EP. 1
미주알 고주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미주알: 항문에 닿아 있는 창자의 끝부분
고주알: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의미 없는 단어
미주(尾註): 논문 따위의 글을 쓸 때, 본문의 어떤 부분의 뜻을 보충하거나 풀이한 글을 본문이나 책이 끝나는 뒷부분에 따로 달아놓은 것
고주(考註): 깊이 연구하여 해석하거나 풀이함 또는 풀이한 주석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2011)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1962년에 나온 책이다. 2022년은 《침묵의 봄》 출간 60주년이다. 아직 오지 않은 그해에 독자들은 어떤 작가의 책, 어떤 분야의 책을 선호할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독자와 전문가들이 《침묵의 봄》에 주목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올해 읽은 것을 포함하면 나는 《침묵의 봄》을 네 번 읽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내 과학도서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읽은 책이 《침묵의 봄》이었다. 나는 《침묵의 봄》을 ‘환경 운동을 촉발한 고전’이면서도 ‘대중적인 과학책’이라고 보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침묵의 봄》을 두 번 읽었고(한 번은 자발적인 독서였다. 그다음은 알라딘 과학도서 리뷰 대회에 응모하려고 읽었다), 최근에 독서 모임 필독서로 선정돼서 다시 책을 펼쳤다.
이제 사람들은 《침묵의 봄》을 안 읽어도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뭔지 다 안다.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화학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된 생태계의 실태를 고발한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의 봄》에 이런 반응을 드러낼 것이다. “화학 살충제의 유해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카슨이 《침묵의 봄》을 쓰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지 않았을 거예요.” 이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침묵의 봄》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침묵의 봄》을 안 읽었을 것이다. 아니면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침묵의 봄》이 왜 중요한 책인지 인식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의 독서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렇다.
《침묵의 봄》은 ‘살면서 한 번 정도 읽어야 할 책’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생태계가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를 심각하게 여긴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그럴 때 자주 거론되는 책이 바로 《침묵의 봄》이다. 이 책은 1962년부터 현재까지 대중에게 생태학적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카슨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아프리카인을 죽인 살인자’로 여긴다. DDT 사용이 전면 금지되면서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의 개체 수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 지금도 말라리아와 티푸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 인도, 스리랑카, 중국 일부 지역은 DDT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DDT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모기들이 늘어나고 있다. DDT에 저항성을 가진 모기는 이미 1950년대에도 확인됐다. 모기는 계속 진화를 거듭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DDT가 언제까지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카슨은 살충제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침묵의 봄》을 안 읽었거나 《침묵의 봄》이 어떤 책인지 대충 아는 사람들은 카슨을 ‘화학 물질 자체를 혐오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녀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 중 상당수는 《침묵의 봄》을 오독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침묵의 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카슨이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고, 제대로 사용하자’라고 강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학 살충제의 전면적인 금지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독성이 있고 생물학적 문제를 일으킬 잠재성을 가진 살충제를 그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이 독성물질을 다루도록 허락했다. 그들에게 어떤 동의를 구하거나, 안전한 사용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지도 않은 채 말이다. (37쪽, 밑줄은 필자가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것)
본의 아니게 《침묵의 봄》 서평과 비슷한 글을 쓰고 말았다(서평 형식은 아니지만, 이번에 쓴 글을 포함하면 세 번째로 쓴 《침묵의 봄》 서평이다). 사실 이 글을 쓴 진짜 목적은 《침묵의 봄》을 읽으면서(두 달 동안 읽었으니 꽤 오래 읽었다) 내가 기록한 주석(註釋)들을 모아 공개하는 것이다. 이 글이 이제 막 《침묵의 봄》을 읽으려는 독자와 《침묵의 봄》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길 바란다.
《침묵의 봄》 제사(題詞)
나는 인간이라는 종(種)에 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도 교묘하게 행동한다.
인간은 자연을 투쟁의 대상이자 굴복시켜야 할 상대로 인식한다.
인간이 이 지구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대하는 대신
지구에 순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존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 엘윈 브룩스 화이트(Elwyn Brooks White)[주]
* [절판] 윌리엄 사우더,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 (에코리브르, 2014)
평점: 4점 ★★★★ A-
[주] 살충제 문제에 관한 신문기사를 일상적으로 스크랩하고 최근 이슈를 꾸준히 파악해온 카슨은 이미 살충제에 관한 자료를 수북하게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카슨은 독성 화학물질의 사용 확대에 따른 문제를 파헤칠 누군가가 롱아일랜드 소송에 대해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정은 해안이 아닌 만큼, 자신이 직접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 일을 맡아줄 적임자다 싶은 사람을 접촉했다. 바로 <뉴요커>의 편집자 E. B. 화이트였다. 카슨은 화이트에게 롱아일랜드 소송에 대해 들려주며 <뉴요커>가 그 문제를 좀 다뤄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카슨은 몇 년에 걸쳐 화학 살충제가 인간의 행복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화이트에게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연구 결과 및 보고서를 “수십 편” 보내주겠다고 제의했다. 화이트는 즉시 카슨에게 답장을 띄웠다. 그리고 살충제 문제는 “다른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요한 관심사이자 걱정거리”라고 맞장구쳤다. 화이트는 살충제 사용과 관련된 논의에서 늘 어떤 특정 집단이나 이해 관계자들만 고려할 뿐 결코 “지구 자체를”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화학 살충제의 유해성 문제와 관련된 재판 보도 건을 떠맡기는 너무 바빴다. 그래서 대신 카슨의 편지를 <뉴요커>의 윌리엄 숀에게 다시 보내 그 일을 맡을 만한 누군가를 찾아볼 의향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화이트가 진짜 염두에 둔 것은 카슨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이트는 당장 <뉴요커>에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숀이라면 그녀의 제안을 귀담아 들을 거라 확신했다. (윌리엄 사우더, 《레이첼 카슨》, 370~372쪽 본문 발췌)
감사의 글, 7쪽
1958년, 뭇 생명이 사라져버린 작은 세계에 관한 아픈 경험을 담은 허킨스(Olga Owens Huckins)[주]의 편지를 읽고, 나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오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써야겠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 [품절]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 (샨티, 2004)
평점: 4.5점 ★★★★☆ A
[주] 롱 섬 소송 건은 많은 사람들이, 특히 1957년 봄과 여름에 자신의 소유지에 살포를 당한 경험이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뉴욕 주,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농무부와 몇몇 주 기관들은 매미나방, 천막벌레나방 유충, 모기의 습격을 퇴치하기 위해 연료유에 DDT를 섞어 그 일대를 살포했었다. 뉴햄프셔 주 힐스보로에 사는 유기 원예가이자 자연주의자인 베아트리체 트럼 헌터 역시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이 박멸 조치에 유난히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헌터의 성난 편지는 또 한 사람, 뉴잉글랜드 인으로 올가 오웬스 허킨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허킨스는 작가이자 연사요 전 《보스턴 포스트》의 문학 담당 편집자였다. 그녀와 남편은 매사추세츠 주 덕스베리의 자신들 집 부근에서 거대한 새 보호 구역을 운영하고 있었다. 허킨스가 《보스턴 포스트》에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 대해 근사한 서평을 실어줘 카슨이 감사 편지를 보냈던 1951년 이래 둘은 이따금씩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덕스베리에 있는 허킨스의 땅 역시 뉴햄프셔의 헌터 여사 땅처럼 1957년 여름 모기 박멸을 이유로 여러 차례 살충제 세례를 당했다. 그 일로 많은 새가 죽고 새들의 보금자리, 연못, 목욕통이 오염되었다. 공중 살포는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이고 아마도 위헌적인 행위일 것”이라고 생각한 허킨스는 헌터의 《보스턴 해럴드》 편지 사본을 카슨에게 보냈다.
헌터의 편지는 각계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의견들 역시 《보스턴 해럴드》에 실렸다. 그 첫 번째는 매사추세츠 주 와밴에 사는 R. C. 코드맨의 것이었다. 주의 살포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신원을 밝힌 그는 주의 조치를 지지했고 야생 동식물에 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코드맨은 헌터의 주장을 깎아내리면서 중독반대위원회 회원들을 “이성을 잃었다”고 몰아붙였다.
이 일로 더욱 발끈한 허킨스는 《보스턴 해럴드》에 신랄한 반박 편지를 써 보냈다. 그리고 카슨에게는 이 편지의 사본과 함께 자기 새들이 입은 피해 사례를 적어 보내주었다. 허킨스의 편지는 카슨의 관심에 더욱 불을 지폈다.
허킨스에 따르면 참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생물학적 ․ 과학적으로, 즉각적 ․ 장기적으로 야생 동식물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낱낱이 밝혀질 때까지 공중에서 독을 살포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카슨도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주장이었다.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493~495쪽 본문 발췌)
서문, 14쪽
레이첼 카슨은 자연학습운동[주]에 적극적인 동조자이던 어머니 덕분에 어려서부터 자연과 친하게 지냈다.
[주] 마리아 카슨은 여성들만 있는 집안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자기 의견이 확실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두 딸은 이런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밀어주긴 하되 결코 간섭은 하지 않는 남편의 후원을 등에 업고 정력적으로 자녀 교육과 사회생활을 해나갔다. 마리아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녀는 여가 시간은 자기 자신과 아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써야 한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했다. 그녀가 가장 관심을 보인 분야는 자연사였다. 당시에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은 비단 그녀만이 아니었다. 식물 연구, 조류 관찰, 자연 공부는 1900년을 전후해 아마추어 자연주의자들, 특히 교육 받은 중산층 여성 사이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분야였다. 여성지, 문학잡지, 아동 서적에서는 새 이야기를 빈번하게 다뤘다. 새의 습성을 알아가면서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보호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된 젊은 독자들에게 새에 관한 지식 쌓기가 각별한 관심사가 되었다. 유능한 여성 작가들은 살아있는 생명체, 특히 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비범한 책과 논문을 잇달아 발견했다. 이런 경향은 1875년에 시작되어 제1차 세계대전 뒤까지 이어졌다. (린다 리어, 《레이첼 카슨 평전》, 32~33쪽 본문 발췌)
2장 참아야 하는 의무, 30쪽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이 되는 태양 빛에도 해로운 방사능이 존재한다.[주]
[주] 항공 승무원 1096명의 방사선 피폭량이 원자력 발전소 종사자 평균의 1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타 방사선 관련 직군 중 월등히 높은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와 예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종사자의 평균 피폭량은 0.43mSv(시버트)다. 일반적으로 100mSv 내에서는 방사선 피폭에 의한 유의미한 기능부전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지만 장기간 꾸준한 노출에 따른 암 발생율의 증가 등은 보고되고 있다. 승무원 중 방사선 피폭량이 가장 많은 운항 승무원의 5년(2015~2019년)피폭량은 25.44mSv, 객실 승무원의 피폭량은 22.02mSv에 달한다. 이는 항공편이 방사선이 급증하는 태양 폭발(태양 폭풍: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여 100억 톤의 방사능 물질[우주 방사선, 우주선]과 자기장이 방출되는 현상, 이로 인해 지구의 모든 전자기기는 고장이 나며 심하면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경보 발령 시에도 고위도에서 고고도 운항을 한 까닭으로 해석된다. 태양 폭발 경보 때 고고도 비행은 방사선 피폭 위험성을 높인다. 이때 고고도 운항을 한 항공기는 북극 항로가 아닌 우회 항로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고도를 낮추지 않았는데 우회 항로는 방사선 피폭량을 크게 줄이지 못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항공기 승무원, 원전 종사자 10배 넘는 방사능 노출되지만 대책 없다] 여성신문, 2020. 9. 23, 발췌 요약)
2장 참아야 하는 의무, 32쪽
스프레이, 분말, 에어로졸 형태의 이런 화학제품들은 농장 ․ 정원 ․ 숲 ․ 가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데,[주] ‘해충’은 물론 ‘익충’까지 모든 곤충을 무차별적으로 죽였고 노래하는 새와 시냇물에서 펄떡거리며 뛰놀던 물고기까지 침묵시켰다. 모든 생물을 위험으로 몰고 가지 않는 적절한 양의 화학물질만이 살포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화학물질은 ‘살충제(insecticides)’가 아닌 ‘살생제(biocides)’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 DDT의 용도는 무궁무진했다. 분말 형태로도, 여러 가지 액상 스프레이 형태로도, 분무기 형태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1945년부터 주부들은 백화점에서 DDT를 분무기 형태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 분무기는 나중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로 밝혀진 프레온을 추진제로 사용했다. (윌리엄 사우더, 《레이첼 카슨》, 21~22쪽)
2장 참아야 하는 의무, 32쪽
다윈이 제창한 적자생존론(survival of the fittest)[주]을 증명하듯, 곤충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놀라운 종으로 진화해갔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곤충에 사용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살충제가 나오고 그다음엔 이보다 독성이 더 강한 살충제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주]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다윈이 아니라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다. 다윈은 《종의 기원》 개정 5판에 이 용어를 처음 언급했다.
3장 죽음의 비술, 40쪽
합성 화학 살충제 산업의 급작스러운 부상과 놀랄 만한 확장이 문제의 원인이다. 이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다. 화학전에 사용할 약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몇 종류의 물질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약제를 시험하는 데 곤충류가 자주 사용된[주] 때문이었다.
[주] 어색한 표현이므로 ‘사용되었기’라고 써야 한다. 이 책을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오자를 발견했다.
3장 죽음의 비술, 57쪽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법사 메데이아(Medea, Medeia)는 남편 이아손(Iason)의 애정을 가로 챈 연적의 등장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이 새 신부에게 마법의 약물이 묻은 웨딩드레스를 선물한다. 이 옷을 입은 신부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이런 간접 살인은 오늘날의 침투성 살충제와 흡사하다. 이 물질은 식물이나 동물체에 흡수되면 메데이아의 옷처럼 강한 독성을 발휘한다.[주] 즉 독이 들어 있는 수액이나 혈액을 곤충이 빨아먹음으로써 박멸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게르하르트 핑크 《Who: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 (예경, 2012)
평점: 3점 ★★★ B
[주] 이아손과 아르고호 영웅들을 도와 황금 양털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으나 배은망덕한 이아손이 자신을 버리자 잔인하게 복수했다. 이아손의 아내가 된 메데이아는 그의 아버지를 젊어지게 했고, 펠리아스의 왕위를 빼앗은 후 그 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도 젊게 해주겠다고 속여 펠리아스를 죽이도록 만든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과 함께 코린토스로 망명해 두 아들을 낳고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소름 끼치는 메데이아에게 싫증이 난 이아손은 새로운 짝을 찾기 시작했고, 코린토스의 왕인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를 새로운 신부로 맞이하기로 결심해 그녀와 약혼한다. 크레온은 콜키스 출신 여자는 그리스인과 정식으로 결혼할 권리가 없다는 관례를 들어 메데이아를 이아손에게서 떼어놓은 다음 아예 나라에서 추방시키려 하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던 메데이아는 결국 버림받은 아내가 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고, 젊은 신부에게 화려한 드레스를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신부가 이 옷을 걸치는 순간 옷이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글라우케와 딸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그녀의 아버지는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큰 괴로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아테네로 날아갔다.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는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아내로 삼아 아들도 하나 두게 된다. (게르하르트 핑크, 《Who: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 예경, 102~103쪽 발췌 요약)
카슨은 피부에 스며드는 살충제의 유해성을 독이 묻은 옷에 비유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원전에 묘사된 옷의 독극물은 발화성 물질이다. 그리고 ‘남편 이아손의 애정을 가로 챈 연적의 등장’이라는 표현도 그리스 로마 신화 원전에 나온 내용과 다르다. 카슨이 말한 ‘연적’은 글라우케를 가리키는데,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을 차지하기 위해 글라우케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끝에 약혼에 성공했다.
9장 죽음의 강, 165쪽
삼림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물고기를 살리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강이 죽음의 강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포자기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대안들을 좀 더 폭넓게 활용해야 하며 지식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대안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가문비나무벌레[주]의 억제에서는 기생충을 활용하는 방법이 살충제보다 효과적이었다는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런 자연 방제를 최대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주] 생물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국가생물지식정보시스템에 ‘가문비나무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곤충이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름에 ‘가문비나무’가 들어간 곤충은 총 6종이다. 가문비나무좀(학명: Polygraphus subopacus), 가문비애나무좀(학명: Cryphalus piceae), 가문비가는나무좀(학명: Crypturgus pusillus), 북방가문비애나무좀(학명: Pityophthorus jucundus), 가문비나무잎말이진딧물(학명: Mindarus abietinus), 가문비뿌리나무좀(학명: Dryocoetes autographus)이다. 여섯 종 모두 산림 해충으로 분류되어 있다.
‘가문비나무벌레’로 번역된 원문은 ‘spruce budworm’이다. 이것은 사과잎말이나방(학명: Choristoneura longicellana)의 일종인 ‘eastern spruce budworm(학명: Choristoneura fumiferana)’이다. 우리말 이름이 없어서 번역하기 쉽지 않다. 구글에 ‘Choristoneura fumiferana’을 검색하면 ‘가문비나무잎말이나방’이라는 이름도 같이 나오는데, 학계가 정식으로 지정한 이름은 아니다. 그래서 역자는 ‘가문비나무벌레’라고 번역했다(‘spruce’는 가문비나무를 뜻하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