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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일라이 클레어 지음, 전혜은.제이 옮김 / 현실문화 / 2020년 4월
평점 :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서를 하려고 크레파스를 쥐었던 손은 왼손이다. 그 후로 나는 왼손잡이가 되었다. 하지만 왼손의 임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님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야 하는 거야.” 누구도 왼손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와 오른손만을 써야 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쓰는 것이 올바르며 왼손을 쓰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런 원인 없는 편견과 이유 없는 억압이 어디 왼손잡이에게만 해당할까? 세상은 귀가 따갑도록 배워온 올바른 상식과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면 여지없이 ‘낙오자’, ‘패배자’,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으며 배척한다. 차별과 혐오는 차이에서 시작한다. 나와 다른 존재는 낯설고, 낯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혐오와 수치심》에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분석한 것처럼, 혐오와 수치심은 공통점이 있다. 수치심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수치심 문제의 핵심에는 ‘정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정상’으로 정의하고 자신의 약점에서 생겨난 수치심을 타자에 투여하여 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수치심은 타인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주는 공격적인 행위로 표출된다. 자녀에게 오른손을 쓰라고 알려준 부모도 처음에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을 것이다. 왼손잡이를 향해 ‘눈으로 욕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시작하면 왼손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체의 일부가 된다. 왼손잡이는 혹독한 교정 끝에 오른손잡이가 된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 편한 자식을 혼낸다. 부모는 오른손을 활용할 수 있는 정상적인 존재라는 기만 위에 있으므로 왼손잡이 자식을 통제한다. 왼손잡이라는 수치심은 자신의 약점을 부정하는 동시에 자신이 믿고 있는 삶의 방식(“오른손을 쓰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다”)을 방어하기 위해 타자를 공격한다.
사회에 ‘정상성 신화’가 작동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 모두가 생물학적으로 취약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취약함을 덧씌울 수 있는 ‘타자’가 필요하게 된다. ‘타자’라는 단어의 자리에 항상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가 있다. 이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자신을 ‘비정상적인 존재’와 비교하려는 욕구에서 온다. 이러한 반응은 곧 몸에 대한 혐오이기도 하다. 우리 몸은 질병과 바이러스에 취약하고, 냄새나는 불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일라이 클레어(Eli Clair)는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이다. 그는 장애, 환경, 성소수자 운동 등에 참여하는 젠더 퀴어 페미니스트다. 뇌병변 장애인은 손 떨림 증상을 보인다. 클레어의 오른손은 떨림 증상을 보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는 오른손 때문에 놀림감을 받았다. 그러나 클레어의 연인이자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새뮤얼 루리(Samuel Lurie)는 클레어의 떠는 오른손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 느껴지는 촉감을 관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인다. 클레어는 자신의 오른손이 항상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신체적인 약점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개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클레어의 대표작 《망명과 자긍심》은 지금까지 3판이 나올 정도로 장애학, 퀴어 이론, 페미니즘의 고전이 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성차별이 교차하면서 관통한 자신의 삶과 몸을 분석한다. 그가 책 2판 서문에서 밝히기를 “(뇌성마비를 안고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 비탄, 부담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을 “열어젖힌다.” 그의 분석 방식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활동한 흑인,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의 다중 쟁점(multi-issue) 정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다. 다중 쟁점 정치는 단일 쟁점(single-issue) 정치의 반대말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다중 쟁점 정치는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강화되는 관계에 주목한다. 다중 쟁점 정치는 젠더, 인종, 사회계급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다중 쟁점 정치는 ‘여성/남성’, ‘피해자/가해자’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분석하는 방식의 한계를 넘어 억압과 특권이 복잡하게 뒤얽힌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는 사회분석 전략이다.
이 책은 크게 ‘장소’와 ‘몸’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졌다. 클레어가 말하는 ‘장소’는 다중 쟁점 정치가 가능한 세상을 의미한다. 그는 노동계급을 자연 파괴에 일삼는 나쁜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환경운동가들, 시골에 거주하는 퀴어들의 활동과 존재감을 배제하는 도시의 퀴어 활동가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클레어의 글은 우리가 환경문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보일 때 흔히 놓칠 수 있는 세부 사항들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벌목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법적으로 막으면 다 해결될까? 일자리를 잃은 벌목 노동자들의 생계는 누가 보장해주는가? 생태계 보호라는 단일 쟁점에 치우치면 벌목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경제권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들과의 연대가 어려워진다. 클레어는 위기의 지구를 구하려면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그릇된 신념과 정책만 개선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자란 클레어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중산층 퀴어 활동가의 활동이 시골의 퀴어 공동체를 고립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삶, 정체성, 공동체, 정치가 공존하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사회를 갈망한다. 그는 이러한 사회를 누구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집’으로 비유한다.
반면에 차별과 혐오, 그리고 수치심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집’에 무단 침입하는 ‘도둑’이다. 도둑은 타인의 몸에 거짓말을 심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제하고 그 사람들의 욕망을 파괴해버린다. 클레어는 어린 시절에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뻔한 도둑과 함께 살았는데, 그 도둑은 바로 자신을 강간한 친아버지다. 클레어의 떠는 오른손을 비웃으면서 그의 장애를 멸시하던 친구들도 클레어의 몸에 침입하여 짓밟는 도둑들이다. 클레어는 도둑들이 판을 치는 지역에 벗어나 자신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이주한다. 그는 자신의 이주 생활을 ‘망명’이라고 말한다.
만약 클레어가 수치심을 받아들이면서 고립을 선택했다면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자긍심’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혐오와 폭력의 말들에 저항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망명과 자긍심》은 퀴어, 장애, 페미니즘, 환경, 계급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도록 만든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위치를 끝없이 돌아본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클레어가 자신의 몸을 열어젖혀 사유하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사회운동에 동참하는 내가 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