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생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는 에디트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면서 말을 건다. 그런데 그 말이 문제가 될 줄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에디트는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장애인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을 느껴 계속해서 그녀를 만난다. 에디트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호프밀러에게 호감을 느낀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문학과지성사, 2013)
2019년 12월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면서 지속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에디트는 그의 감정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한다. 에디트로부터 사랑 고백을 들은 호프밀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츠바이크는 작품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의 정의를 말한다. 이 연민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 자신의 연민을 오해한 에디트 때문에 초조해진 호프밀러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는 에디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감상적인 연민’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호프밀러는 약혼한 지 몇 시간 후에 군인 동료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인한다. 그는 재산 때문에 장애인과 결혼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호프밀러와 에디트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를 오해하게 만든 호프밀러의 ‘감상적인 연민’이다. 그는 에디트를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긴다. 성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애인이 이성의 장애인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 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부부가 되는 일을 ‘특별한 만남’으로 인식한다. 비장애인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시혜와 연민의 대상으로 봤을 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보지 못했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의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언급한다.
나는 당신이 나병 환자나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나에게서 도망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초조한 마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버릇없어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남들을 괴롭히게 되었는지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나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 같은 괴물이 덮치려 하면 다들 움찔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295쪽)
“여성 장애인은 결혼할 수 있겠어?”, “장애인이 무슨 애를 키워” 이와 같은 비장애인의 생각은 여성 장애인을 사랑의 주체로 보지 않는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다. 1930년대 말의 독일과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디트가 했던 말처럼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은 여성 장애인을 누군가 사랑할 수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무성(無性)의 괴물’로 바라본다.
* 천자오루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사계절, 2020)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2020년 2월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 그러나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모임이 취소되었다. 이 책, 내가 추천한 건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은 비장애인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멸시’가 장애인들이 소름 끼쳐 하는 ‘적’이라고 말한다. 에디트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다. 그녀를 약자로 대하면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 호프밀러도 ‘적’에 포함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연민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본 것이다. 호프밀러는 무심코 차별을 저지르고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을 빌려서 쓰자면 호프밀러는 ‘선량한 적’이다. 한때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호프밀러의 배려를 거부했던 에디트가 자신을 피하려는 호프밀러의 반응과 태도를 이해한다고 했을 정도면 그녀는 그를 너무 사랑했다.
* 김기흥 《죽음의 가스실》 (집문당, 2019)
* 김기흥 《히틀러와 장애인》 (집문당, 2018)
츠바이크가 《초조한 마음》을 쓰고 있었던 기간에 독일의 총통 히틀러(Hitler)는 ‘유럽 정복’을 위해 슬슬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Nazi)는 ‘아리아인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위험한 명제를 내세워 수많은 장애인과 정신병 이력이 있는 사람을 학살했다. 독일 나치가 첫 번째로 저지른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계획적인 장애인 학살이다. 나치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Aktion T4(T4 작전)’를 실시했다. 이 기간에 나치는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여해 장애인들을 안락사시켰으며 장애인 불임시술까지 강행했다. 교회의 반발로 작전은 중단했지만, 우생학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라서 장애인 학살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초조한 마음》이 나온 그해에 독일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태어나지 못한 장애 태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향하게 만든 홀로코스트가 너무나 악명 높아서 나치가 저지른 장애인 학살과 T4 작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히틀러와 장애인》(집문당)과 《죽음의 가스실》(집문당)은 나치의 장애인 학살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히틀러와 장애인》은 T4 작전과 같은 나치의 장애인 정책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정책에 거부한 저항 운동을 보여준다. 《죽음의 가스실》은 나치가 장애인과 환자들을 학살하면서 사용했던 안락사 시설들을 소개한 책이다.
※ Trivia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초조한 마음》 236쪽)
→ ‘안 돼죠’라고 쓰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