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한 성 - 과학은 어떻게 성차별의 도구가 되었나?
앤절라 사이니 지음, 김수민 옮김 / 현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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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과학만큼은 젠더나 계급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과학 연구는 천문학적 연구비가 투여되고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래서 연구 주제나 방향에 따라 혜택을 입는 사회 집단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가장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분야가 의학이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인 동물실험에서 대부분 수컷 동물을 사용하며 임상시험에서 남성 환자가 다수로 참여한다. 이런 연구들에서 얻은 편향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임상시험이 수행되고, 그 결과를 다수의 환자에게 적용하면 여성한테 약물 부작용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남성과 여성은 평균 키와 몸무게뿐 아니라 호르몬의 분비, 유전적 특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질환의 발생, 증상, 약물 반응에서 성별 차이가 나타난다.

 

과거에는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 아들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고, 여자답게 자라기 위해 딸은 소꿉놀이를 하도록 길렀다. 이러한 가정교육의 내면에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라는 꽤 오래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생물학적 차이라는 표현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남성과 여성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믿으면서 자라왔다. 지금도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다르다. 이 차이가 권위적인 남성과 수동적인 여성으로 만들어준다.’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믿음은 성별 임금 격차와 남성에 뒤처진 여성의 능력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호출된다. 그 믿음이 오류라는 진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말이다.

 

열등한 성은 생물학과 의학이 어떻게 해서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과학 분야에서 여성 전문가의 수가 적은 이유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여성을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보는 과학의 한계를 지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립적인 학문으로 알려진 과학은 수 세기 동안 여성을 괴롭힌 성 고정 관념과 잘못된 믿음을 제거하지 못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조물주가 생명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에 반대해 생물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한다는 진화론을 종의 기원을 통해 발표했다. 성경은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든 여성주의자들은 진화론의 등장에 열광했다. 진화론은 여성의 열등함을 설명할 때 언급되는 하와의 탄생 과정(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아담을 먼저 만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그것으로 하와를 만들었다)을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인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은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다. 진화론을 옹호한 여성주의자 캐럴라인 케너드(Caroline Kennard)는 다윈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아주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다윈은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주장을 번복하지 않을 거라고 답변을 보냈다. 다윈의 후계자들(그 중에는 진화론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다)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증거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열등한 성은 교양과 상식으로 포장한 성차별적인 과학의 사례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를 입증할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다. 일례로 성별 차이 또는 두뇌의 크기 차이 때문에 수학과 과학 분야에 진출하는 여성이 적다는 인식은 다양한 과학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들의 반론에 의해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수학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해당 분야에 여성이 적을까.

 

아주 작은 편견에서 시작되었다.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 성적이 낮다’ ‘여자는 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직에 어울리지 않는다여성을 열등하게 만드는 편견들은 낙인이라는 도장이 되어 수많은 사람의 뇌리에 찍힌다. 이 잘못된 도장이 전문가들, 특히 남성 지식인들의 손에 쥐어질수록 사회 이곳저곳에 남은 도장의 흔적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찍어놓은 도장의 흔적들을 말끔히 제거할 생각이 없다. 오랫동안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인식됐기 때문에 여성 교육은 돈과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심지어 많이 배우는 여성은 진리를 추구하는 남성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여성 과학자들은 과학협회 회원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사회에 퍼져 있는 성적 불평등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그 이유를 불공평한 사회 구조보다는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생물학적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과학의 허점에서 나온 편견이라는 아주 작은 씨앗은 전문가가 쓰는 글 속에서 자라나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권위를 먹고 자란 편견은 대중적으로 퍼져나가 사실또는 상식이 된다. 이와 맞서기 위해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학의 오류와 잘못된 편견을 반박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과학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은 과학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영리한 여성들이 과학의 한계를 보완해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자기 생각을 펼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독립된 공간과 경제적인 자립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말은 작가가 되고 싶은 여성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여성은 자기만의 연구실과 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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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1 22:07   좋아요 0 | URL
자본이 많이 있으면 누구나 강자가 되기 쉬워요. 그런 사회적인 강자는 사회적인 약자를 곤란하게 만들고요.

서니데이 2019-12-2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cyrus 2020-01-01 22:09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에 활동하는 분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적이 별로 많지 않아서 좋은 이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먼저 새해 인사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겨울호랑이 2019-12-2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지난 한 해 페니미즘과 관련한 좋은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cyrus 2020-01-01 22:1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저는 보고 들은 것들을 정리만 했을 뿐인데요. 올해도 꾸준히 공부하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서니데이 2019-12-31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소원을 이루는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