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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5월
평점 :
돌잔치의 꽃은 돌잡이다. 돌잡이는 첫 생일을 맞은 아기의 미래를 재미로 점치는 행사이다. 아기가 무엇을 잡았느냐가 화젯거리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 실, 돈, 연필과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잡게 한다. 돈을 잡으면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연필을 잡으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요즘은 마이크, 판사 봉, 청진기, 공(야구공, 농구공, 축구공 등)이 돌잡이 물건으로 많이 나온다. 마이크는 가수, 판사 봉은 법관, 청진기는 의사, 공은 운동선수가 된다는 의미다.
만약 돌잡이 물건으로 책이 있다면, 그것을 잡은 아기의 앞날은 어떻게 보면 좋을까? 책을 잡았으니까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책잡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오히려 문제투성이라서 상대방에게 책잡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방금 언급한 건 말장난[주]이니까 책을 잡은 아기의 미래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책은 연필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부모는 책을 잡은 아기가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 잘하는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돌잡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아기가 책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그 아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집안 환경은 아기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책 읽는 행위’가 몸에 배지 않으면 책에 친숙한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읽을 능력이라든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뇌》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는 애초에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독서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문자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행위에는 뇌 회로의 연결이 필요하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서서히 문명을 만드는 와중에 뇌는 기존 회로를 재편성해 문자를 인지하고 해독하는 능력을 향상해 왔다. 그러면서 ‘독서’라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울프는 독서를 ‘문화적 발명’으로 본다. 따라서 독서는 타고난 능력도, 재능도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책 읽는 사람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안에서 동영상 프로그램 · 영화 · 음악 등 각종 미디어를 접한다. 콘텐츠도 전에 볼 수 없었던 형식으로 바뀌고 있다.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는 영상 위주의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다. 울프는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순간 접속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책으로》라는 제목의 책에서 ‘뇌의 읽기 회로’가 잊히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본다. 전작 《책 읽는 뇌》에서 언급했던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진다면 책을 깊이 읽고 생각하는 능력도 같이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게 되며 책을 읽는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장편소설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은 경험을 들려주면서 그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의 태도를 고백한다.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사람도 디지털 기기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 속에 있는 문장을 빠르게 혹은 대충 읽고 있다. 마치 스마트폰 화면에 나온 짧은 텍스트를 훑어보듯이 말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면 글을 대충 훑어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 나만큼, 그리고 나보다 더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애서가 동지들이여, 우리 솔직해지자. 정말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종이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뇌의 읽기 회로’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리에 동영상과 짧은 글을 선호하는 뇌 회로가 생겨나고 있다. 예전과 다르게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독을 피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책으로》는 책 안 읽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 모두에게 경고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글을 훑어보고 건너뛰는 신경회로는 강해지지만, 집중력과 성찰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매일 영상과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깊이 있는 사고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종이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종이책 읽기를 무조건 예찬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양손잡이 읽기’를 제안한다. 디지털 기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알고, 깊이 있는 사고를 유도하는 종이책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다.
《다시, 책으로》는 나에게 초심을 다지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다. 깊이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단순한 메시지는 나태해진 나를 깨우는 낙숫물이다. 종이책을 대충 읽으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여러 생각들을 모아서 재편성한 것들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독서는 책을 덮으면서 끝나는 종점에서 나만의 생각이 샘솟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을 잊어선 안 된다.
[주] ‘책잡다’는 ‘남의 잘못을 들어 나무라다’는 뜻의 동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