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재미’의 조건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책을 추천하지 못한다. 나는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책을 ‘추천받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상대방으로부터 추천받은 책들 전부 다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는 꼭 기억해둔다. 꼭 한 번은 그 책을 읽어야 할 순간이 온다. 상대방이 계속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조르면,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평소에 본인이 읽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있어요? 정말로 그 책이 있다면 그게 당신이 원하는 ‘재미있는 책’이에요.”

 

 

‘재미있는 책’을 만난다는 건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다. 한 번 보고 책이 재미있으면 다행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주저 없이 책을 덮으면 된다. 간혹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서점이나 도서관에 직접 가서 책을 한 번 살펴보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추천한 책을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에 담되, 바로 주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 주문은 그 책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 하나다 나나코, 기타다 히로미쓰, 아야메 요시노부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앨리스, 2018)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게 바로 ‘죽은 자’를 위해 책을 추천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서점이 있다. 일본에 있는 ‘겟쇼쿠 서점(月蝕書店)’이다. 특색 있고 개성 있는 22개의 일본의 중소 서점을 소개한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이라는 책에 첫 번째로 나온다. ‘겟쇼쿠’는 ‘월식을 뜻한다. 이 서점 주인의 주 고객은 고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대체 ‘죽은 자를 위한 추천 도서’라는 게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책을 준비해서 제안하는 일입니다. 묘소나 불단에 꽃이나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잖아요. 그것을 책으로 대신하는 것이지요.

 

고인이 자주 읽던 책을 공양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고인의 장서나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 등을 보고 그분이 살아계셨으면 분명 샀을법한 신간이나 장서와 관련 있는 책을 추천하는 겁니다.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9, 11쪽)

 

 

서점 주인은 고인의 장서나 유품을 확인한 뒤에 고인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른다. 책은 고인을 위한 공양품(供養品)이다. 이 일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전혀 다를 것이다. 자기 일을 충실히 하려는 서점 주인 입장에선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서점 주인은 고인이 가지고 있던 장서나 유품을 통해서만 고인이 샀을 법한 책을 추정하는데, 고인의 장서가 아닌 책을 생전에 고인이 읽지 않은 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책을 사지 않고도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서점(小林書店)을 운영하는 고바야시는 자신이 직접 쓴 서평으로 손님에게 판매할 책을 추천한다. 그가 쓴 서평도 상품이다. 서평 한 편당 300엔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원이다. 서평만 따로 살 수 있다. 그가 남긴 서평만 해도 수천 편이 넘는다. 나도 제법 서평을 많이 썼지만, 고바야시처럼 내가 읽은 책을 상대방에게 추천하기 위해서(내가 읽은 책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고 싶어서 서평을 쓴다. 내 서평이 상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어느 정도 있는 서평을 쓰려면 책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구매자의 관심을 끌도록 맛깔나게 잘 써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고, 그렇게 쓸 생각은 없다.

 

나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책,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절판본을 알리는 서평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즉 내 서평은 ‘죽은 책을 위한 글’이다. 서평을 쓰는 나 자신을 직업으로 비유하면 ‘묘비를 만드는 사람’이다. 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 묘비명과 같은 글을 쓴다.

 

 

 

 

 

 

 

 

 

 

 

 

 

 

 

 

 

 

* 천상병 《천상병 전집: 시》 (평민사, 2018)

 

 

 

 

 

 

 

 

 

 

 

 

 

 

 

 

 

* 크리스티나 로세티 《로세티 시선》 (지만지, 2013)

* [절판] 김천봉 옮김 《빅토리아 여왕 시대 2》 (이담북스,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1994)

 

 

 

 

만약에 내가 죽으면 공양품이 될 책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젖는 종이책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주1] 하늘에 지내면서 읽을 만한 책이 뭐 있을까? 과연 이승 너머에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 언급한 ‘천국’과 같은 도서관이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어떤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니 책 공양은 안 받는 걸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 드리우는 책도 놓지 말아요.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주2]

 

 

 

 

 

[주1] 천상병의 시 『귀천』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주2]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의 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 그늘 드리우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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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5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되도록 두껍지 않고 재밌게 술술 읽히는 책을 선호하고 이런 책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는데 깨달음을 주는 것. 게다가 문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요즘 단편소설에 빠졌어요. 주로 장편을 많이 읽었는데 찾아보니 빼어난 단편이 많더군요.
단편 독서의 장점은 좋은 작품은 한 번 더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고인이 좋아할 법한 책을 찾는 것, 쉽지 않겠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작가의 신간이면 되려나요?

죽은 책을 위한 님의 서평 쓰기. 의미있네요. 응원합니다!!!

cyrus 2019-03-18 11:58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분량이 많은 책을 끈덕지게 읽지 못하겠어요. 책에 몰입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저도 단편소설이나 짧은 분량의 책을 찾게 됩니다. ^^;;

고인을 위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맞아요.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 도서를 공양품으로 바치면 되겠어요. ^^

카르페디엠 2019-03-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아주 재미있게 보았어요. 일본의 서점문화가 이렇게 발전했나싶기도 하고..

cyrus 2019-03-18 12:00   좋아요 0 | URL
지난 달 모임에 도현 쌤이 <꿈의 서점>이 재미있다고 말씀하셔서 읽게 되었어요. 그 때 성은 쌤은 <아침의 피아노>를 추천하셨고요. 두 권 모두 좋았어요.

쌤 댓글을 보자마자 ‘우주지감’ 카페에 접속했는데, 이번 달 모임 신청 끝났더군요... ㅠㅠ

Angela 2019-06-1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하고, 잊고 싶으면 잊으라는 말은 기억해달라고 매달리는것보다 더 강열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