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0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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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평온한 섬이다. 이 섬은 영화 <조스(Jaws)>의 촬영지였으며,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과거에 이곳은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살았던 옛날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공용어는 수화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의 켄트(Kent)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청각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고립된 이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결혼으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지속적인 근친결혼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열성인자가 출현돼 예상치 못한 장애나 질병과 관련된 면역성 약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서스 비니어드섬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에 이상 없는 비장애인들도 살고 있었다. 이 섬에 사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모두 수화를 사용했다. 섬사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편한 장애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그곳에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줄여서 마서스 비니어드[])는 섬사람들이 장애를 수용하는 사회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섬에 사는 75세 이상 노인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의 정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힌다. 19세기 말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섬사람들의 청각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섰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는 데 실패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화를 발명하기 전 그는 청각 장애인 전문학교를 경영한 교사였다. 그는 수화 대신에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며 말의 맥락을 이해하는 독화(讀話)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처럼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청각장애 발병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벨이 섬을 조사하던 당시에 학자들은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유전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유전 법칙이 재조명받을 때까지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의 청각장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벨은 섬사람들이 수화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섬사람들은 외부인이 듣지 못하는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특이한 질병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청각장애를 불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인, 특히 비장애인들은 마서스 비니어드 섬을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고립된 지역으로 본다. 그러나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섬에 사는 비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수화를 같이 배우면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한둘의 청각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비장애인들은 수화를 평범한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살았던 최후의 청각장애인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이가 많은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했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을 특별한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하는 섬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청각장애인-cyrus ]에 대해서 아무것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았어요. 당신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섬은 살기에 대단히 좋은 장소일 거예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220)

 

 

비장애인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장애인으로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책의 역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원문은 'hearing people'이다)건청인(健聽人)이라고 옮겼다. 나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청인이라는 표현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인가. 그냥 청인이라고 썼으면 어떨까 싶다.

 

126쪽 저자의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신의 자녀가 청각장애인의 여부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유능한 의학적인 유전학자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녀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장애인을 아프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타자화하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 래디컬 페미니즘 관점에서 볼 땐 장애 여성 또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만약 장애인 태아를 양육할 수 없다면 임신 중지(낙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장애학을 공부한 여성주의 철학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태아의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도입된다면, 장애인은 태어나선 안 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존재라는 편견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상 수명과 장애 여부를 판정하여 태어나야 할 존재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분류하는 것은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리뷰 제목 주] 이 책의 8장 제목이다.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마서스 비니어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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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와 비장애, 건강과 비건강,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는데도, 현실에서는 차별과 구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12-12 16:48   좋아요 0 | URL
상대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도 이런 오류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싸이러스 님 보면서 항상 알라딘계의 쓰는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두 글을 올리는 게 쉬운 게 아니죠. 더군다나 꽤 공들인 글들인데 말이죠..

cyrus 2018-12-12 16:57   좋아요 1 | URL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의 핵심 내용이라든가 관심 있는 내용을 한글 파일에 입력해서 저장해요. 보통 이런 작업을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일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밤 12시나 1시에 잠을 청합니다. 카프카처럼 생활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 사무직에서 일하고, 밤에 글을 썼어요. 밤에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죠. 카프카는 밤새면서 글을 쓰면 다음 날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요. 결근하고 싶으면 회사에 몸이 아프다면서 핑계를 둘러댔어요. 사실 저도 카프카처럼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

雨香 2018-12-12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

예전에 장애운동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 바로 사회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소개해주신 책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읽지는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될 분들에게 선물할 것 같기는 합니다.)

cyrus 2018-12-12 16:59   좋아요 1 | URL
지난달에 페미니즘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거부당한 몸>을 읽었어요. 독서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페미니스트들 멤버들이 아니었으면 이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을 계기로 장애에 관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장애학과 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초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