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 터키, 수많은 이민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로 들어온다. 그들은 공터에 정착해서 불법으로 집을 짓는다. 정부는 싼값에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불법으로 공터를 차지해도 눈감아준다. 메블루트와 그의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는 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터키의 전통 음료인 ‘보자’를 팔면서 지낸다. 그는 매일 “맛 좋은 보오자아아!”라고 외치면서 골목을 누빈다. 메블루트는 사촌 형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본 라이하라는 소녀에게 한눈에 반해 3년 동안 연애 편지를 쓴다. 그는 한밤중에 라이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라이하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눈앞의 그녀는 예전에 사랑했던 소녀가 아님을 확인한다. 하지만 메블루트는 운명의 장난을 받아들이고, 그녀와 결혼까지 해 아이도 낳는다.

 

 

 

 

 

 

 

 

 

 

 

 

 

 

 

 

 

*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 (민음사, 2017)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민음사)은 이스탄불 거리를 누비며 보자를 파는 메블루트와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파묵은 근대 도시 사회로 변하는 이스탄불 속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과도기와 소시민의 삶이 정교하고 촘촘하게 교차하며 엮인다. 이 소설을 통해 터키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 이희수 《터키사 100》 (청아출판사, 2017)

* 전국역사교사모임 《처음 읽는 터키사》 (휴머니스트, 2010)

 

 

 

오스만 제국 해체 후 1923년에 출범한 터키 공화국은 세속주의와 민족주의를 국시로 삼았다. ‘터키의 아버지(Atatürk)케말 파샤(Kemal Pasha)가 이끈 군부는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이슬람이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케말 파샤는 터키를 유럽 국가로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서양식 옷을 입고 다니게 한 것은 물론 선거권도 부여했다.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약간 변형한 터키어도 제정했다. 덕분에 터키는 이슬람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1952년 나토(NATO)에 가입했고, 유럽의 일원이라는 평가도 듣게 됐다. 그러나 경제 성장 등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그늘’이 발생했다. 기득권층이 된 터키 근대화 세력의 부패 문제가 심각했다.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화적 · 이념적 주도권을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빼앗아 오지는 못했다. 점점 시대가 바뀌면서 군부 중심 체제는 한계에 부닥쳤고, 21세기 들어와서 권력이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을 외친 이슬람주의 세력에 넘어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터키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가 주도한 근대화 정책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민주 투사로 떠오른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아 2002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2003년에 내각책임제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2014년에 에르도안이 내각책임제를 직선제로 바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에르도안 세력에 반대하는 언론인과 정치 인사들이 탄압받았다. 에르도안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파묵은 터키를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6년 쿠데타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세속주의 세력을 숙청했다. 작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개헌하는 데 성공하면서 에르도안은 ‘터키의 술탄(Sultan)’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술탄은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Caliph)가 수여한 정치적 지배자의 칭호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재현하려고 있다.

 

《내 마음의 낯섦》에는 전통 관습을 옹호하는 터키 사람들과 세속적인 터키 사람들이 나온다. 특히 이 소설에서 터키 여성들은 전통을 거부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라이하의 언니 웨디하는 담배를 피우며, 메블루트의 사촌 쉴레이만의 아내 멜라하트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면서 살아온 여성이다. 그러나 군부 세력이 터키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고 해도, 가부장적 사회를 잊지 못하는 이슬람세력의 반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980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케난 에브렌(Kenan Evren)은 헌법을 마음대로 고치면서까지 독재 정치를 일삼았지만, 임기 초기에 임신 중지(낙태)를 허용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내 마음의 낯섦》에서 웨디하는 에브렌 정권의 임신 중지 허용 정책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케난 에브렌 장군이 1980년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삼 년이 지나 좋은 일을 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미혼 여성에게 임신한 지 십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권리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 권리는 혼전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미혼의 용감한 도시 여성에게 유용했다. 기혼 여성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남편들을 설득하여 낙태에 동의한다는 사인을 받아야 했다. 둣테페에 사는 많은 남편들은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죄악이야, 애들이 크면 우릴 보살피겠지 하면 사인을 해주지 않았다. [중략] 어떤 여자들은 서로에게서 배운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메블루트가 사인을 해 주지 않아도 절대 동네 아낙네들의 말에 솔깃해서 그런 짓 하지 마, 알았지, 라이하? 나중에 후회할 거야.”

 

(《내 마음의 낯섦》, 464쪽)

 

 

글쎄, 내가 보기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시골에 사는 터키 여성은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남편이 아내의 선택에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남편들은 임신 중지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남편의 동의를 받지 못해 임신 중지를 할 수 없게 된 여성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임신 중지를 행한다.

 

 

 

 

 

 

 

 

 

 

 

 

 

 

 

 

* 엄익란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 (한울아카데미, 2018)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임신 중지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이슬람 경전 코란(Quran)은 태중의 자식을 살해한 부모는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살해된 자식이 그 부모의 죄를 증언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심지어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임신 중지를 허용되지 않는다. 코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무슬림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삶의 완성’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슬람은 ‘명예’를 중요시한다. 무슬림 여성은 정숙하게 행동하면서 순결을 지켜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지 ‘명예로운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출산 거부와 불임은 무슬림 여성의 명예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라이하는 아이를 원하는 메블루트를 설득하지 못해 ‘혼자서’ 임신 중지를 시도하게 되고, 끝내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 살이다. 이 소설에서 메블루트는 정직하게 사는 인물로 나오지만, 그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라이하의 정신적 부담감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라이하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란다.

 

 

 라이하는 울기 시작했다. 메블루트가 돈을 잘 벌지 못하고, 매니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했으며, 이번 보자 가게도 실패할 거라는 생각에 겁을 먹었고, 베이올루의 혼수품 상점에서 주문받아 하는 바느질 일이 없었더라면 매달 말까지 근근이 버티며 살았을 거고, 아기가 제 먹을 것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는 말에만 의지할 수는 없고, 이미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네 명이 아침저녁으로 꽉 끼어 사는 단칸방에는 새 사람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내 마음의 낯섦》, 464쪽)

 

 

 

 메블루트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상상을 펼쳤다. 아이의 이름은 메블리드한이 될 것이다. [중략] 메블루트는 라이하가 아이를 지우는 데 이토록 단호한 까닭은 돈이 없고 성공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항변, 심지어 일종의 벌주기가 아닐까하는 의심과 원망이 일었다.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하면 그들의 삶에 어떤 결핍이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듯했다. 더욱이 악타쉬 가족보다 더 행복하다는 게 확실해질 거였다. [중략] 행복한 사람은 자식이 많다. 불행한 부자들은 터키에 인구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유럽인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아이들을 질투했다.

 

(《내 마음의 낯섦》, 465쪽)

 

 

메블루트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남편이 되지 못해서 라이하가 아이를 지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무능력한 모습을 보는 아내를 원망한다. 그는 열등감을 떨쳐내려고 ‘희망 고문’을 한다. 라이하가 아이를 많이 낳아주면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메블루트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 하며, 가부장으로서의 본인의 경제적 무능력을 은폐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라이하가 아이를 낳아주기를 희망한다. 메블루트의 순진한 발상은 아내의 희생을 강요한다.

 

 

 

 

 

 

 

 

 

 

 

 

 

 

 

 

 

 

* 우유니게, 이두루, 이민경, 정혜윤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2018)

* 조은주 《가족과 통치》 (창비, 2018)

 

 

 

우리나라에서 임신 중지는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낙태죄’가 처음으로 규정된 것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도입하면서 불법 낙태를 묵인했다. 한 자녀 출산 후 불임 시술을 하면 국가의료원에서 그 자녀 출산 비용을 무상화했고, 불임한 부부에겐 주택융자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남성이 불임을 택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의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산아제한 정책은 주로 여성의 몸에 집중되었다. 국가 권력은 여성의 몸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불법 낙태 시술을 단속하기로 했다.

 

낙태죄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임신 중지를 ‘범죄 행위’로 만드는 법적 규제나 종교적 · 문화적 장벽들로 인해 불평등을 겪고 있다. 라이하처럼 불법 임신 중지를 행하다가 생명을 잃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에도르안 정부는 낙태 금지법 도입을 추진하려고 한다. 불법 임신 중지는 여성의 생명을 위협한다. 파묵은 소설에서 라이하의 최후를 단 한 줄로 묘사한다.

 

 

 라이히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했고, 끔찍한 일이 벌어져 출혈과 고통으로 반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내 마음의 낯섦》, 475~476쪽)

 

 

이 문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세밀한 묘사로 정평이 난 파묵은 왜 그녀의 임신 중지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을까?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왜 라이하는 혼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여성 작가가 이 소설을 썼더라면 라이하는 쓸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임신 중지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어머니나 동성 친구와 동행하면서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라이하의 복잡다단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던 언니 웨디하가 그녀 곁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은 게 아쉽다. 이런 묘사가 없다는 건 ‘남성’ 작가의 한계로 봐야 하는가? 이 슬픈 장면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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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12-0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한 100여 페이지 정도 읽다가 그만둔지 거의 반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같이 야반도주한 그녀가 다른 사람임이 밝혀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

cyrus 2018-12-07 12:28   좋아요 0 | URL
파묵의 소설이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아니었으면 읽을 일이 없었을 거예요.. ^^;;

레삭매냐 2018-12-06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궁금하기는 한 데 원체 파묵의
책이 좀 지루하다는 썰이 있어서 선뜻
도전하기가 그렇네요...

cyrus 2018-12-07 12:31   좋아요 0 | URL
분량이 많아서 마음잡고 읽기가 힘들어요.. ㅎㅎㅎ 파묵 작품 전작 읽기에 성공한 독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

2018-12-06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7 12:44   좋아요 0 | URL
제가 왜 남의 글을 검토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것 맞습니다. 대부분 장애인 인권론자들은 ‘병신’을 쓰지 말자고 주장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는(‘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애인 인권론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에 사로잡히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저는 ‘병신’을 가벼운 농담으로 써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이런 비슷한 논의가 진행되었고요, <거부당한 몸>이라는 책에 보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둘러싼 장애인 인권론자들의 논의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병신’을 써야 할지 안 써야할지에 대한 논의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의 시선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그들도 가끔 ‘병신’이라는 말을 쓰니까요.

[‘병신’은 쓰지 말아야 할 표현? 그전에 따져야 할 것]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47&aid=0002187121

페크(pek0501) 2018-12-08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직한 책을 읽으셨네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서 그런지 파묵의 책을 선뜻 읽게 되지 않더라고요.
내년에 도전해 봐야겠군요,

cyrus 2018-12-09 16:10   좋아요 0 | URL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터키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파묵의 소설을 읽으면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파묵의 장편소설 대부분은 분량이 많은 편이라서 완독하기가 쉽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