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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의 역사
클로딘느 사게르 지음, 김미진 옮김 / 호밀밭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백설 공주』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동화이다. 공주와 이를 시기하는 계모 사이의 갈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백설 공주 이야기는 일곱 난쟁이, 진실을 말하는 거울, 독 사과 등 상상적 소재들이 첨가되어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교훈까지 보여주고 있어 더없이 좋은 동화로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백설 공주 이야기 같은 전래동화는 아이들에게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기도 한다. 동화 속 계모는 어린 딸을 미워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백설 공주는 하얀 피부와 붉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아리따운 모습이다. 계모는 백설 공주의 타고난 미모를 질투한다. 동화 속에서 여성은 착하고 예쁜 여성 아니면 나쁘고 못생긴 여성으로 그려진다. 또 여성을 괴롭히는 존재는 또 다른 여성, 즉 못생기고 성질이 고약한 여성이다.
계모의 질투심에 불을 지른 건 자신보다 백설 공주가 더 예쁘다고 일러바친 거울이다. 사실, 동화 『백설 공주』에서 악의 근원은 계모가 아니라 거울이다. 거울이 만들어지고부터 인간은 비로소 자기를 깊이 인식하고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자기 얼굴을 알게 된 인간은 외모에 대한 우월과 차별을 알게 되었고 화려함과 누추함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되었다. 거울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를 양산하기도 했지만, 인간 대부분을 자기 혐오증에 빠져들게 했다.
과거에 남성은 외모보다는 주로 능력이나 성격으로 평가되었다. 요즘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 보니 남성도 외모가 중요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마치 무슨 ‘사명감’처럼 무조건 예뻐야 하는 부담감을 짊어진 채 살아왔다.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에 많은 가치 기준이 부여되고 있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외모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유독 여성의 외모에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시선은 현대인만의 특징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여성의 외모를 향한 평가와 혐오의 역사를 추적하고, 여성을 왜곡한 역사와 문화를 비판한다. 추함, 즉 ‘못생긴 여자’는 남성 중심의 공적인 역사에서 외면당하고 박해받았다. 이 책을 쓴 저자 클로딘느 사게르(Claudine Sagaert)는 못생긴 여자가 부정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과정을 시대적으로 구분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존재였다. ‘여성은 신체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게 태어났다’는 엉터리 통념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여성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은 여성의 열등한 면뿐만 아니라 여성의 추함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고대 그리스인, 그리고 더 나아가 중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여성의 ‘추함’은 신체적으로 추하고, 도덕적으로 추한 것을 의미했다. 노파와 마녀는 여성의 근본적인 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로 미술에서 묘사됐다. 근대에 이르게 되면서 교양 없고, 자기 관리에 소홀한 여성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노처녀, 똑똑한 독신녀, 페미니스트 같은 전통적 여성성에 벗어난 여성은 ‘못생긴 여자’로 취급받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못생긴 여자’에 대한 남성 중심적 시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은 못생긴 외모를 개인의 문제로 본다.
추한 것, 조화롭지 못한 것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다만 이런 것에 대한 수용 능력이 부족한 사회가 문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개개인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확정 짓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추함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반응은 아름다움을 열렬히 추구하는 사회의 또 다른 역설이다. 이러한 기나긴 역설은 ‘못생긴 여자의 역사’가 반증한다. 이는 곧 아름다움 자체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나이 듦이 연륜이 아닌 추함으로 여겨지고, 복원될 수 없는 아름다운 젊음을 성형을 통해 조형하도록 요구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이유로든 추함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성은 외모를 근거로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해온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남성의 편파적인 외모 평가는 여성을 무시하는 ‘예의 없는’ 태도이다. 나 또한 ‘예의 없는’ 남성으로 외모 차별에 연루되었음을 깊이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