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뇌
"부리야, 여행지 좋은 데 있으면 추천해 줘."
엄마가 여고동창 분들과 고희 여행을 가신단다.
외국이라곤 별로 가보신 적이 없고,
돈을 줘가며 보내드릴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 엄마인지라
이렇게 알아서 가신다는 게 난 참 기뻤다.
올해는 엄마가 회장을 맡고 계신지라, 여행지를 직접 알아보셔야 했다.
돈과 일정 등을 놓고 고민하던 어머니는 일본의 한적한 시골에
단풍을 보러 가시기로 결정을 하셨다.
일정은 10월 15일부터 18일, 3박4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여동생이 남편과 더불어 멕시코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날짜가 10월 12일부터 19일이었다.
여동생은 그 기간 중 어머니한테 자기집에 와서 애를 봐달라고 부탁했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번뇌가 시작되었다.
2. 멕시코
여동생이 애 둘을 팽개치고 멕시코에 가게 된 건
학회에 가는 남편을 따라서였다.
외국 가길 좋아하는 여동생은 엄마한테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글쎄 남편하고 나 둘다 공짜래! 얼마나 좋은 기회야?"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누군가는 그들의 여행 비용 500만원을 내야 했다.
누가 그랬을까?
바로 제약회사였다.
의사들은 제약회사에서 스폰서를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거 없으면 외국 학회 어떻게 가?"라고 말하는 내 선배를 봐도 그렇고,
국내 학회에 참가하면서 제약회사 스폰서로 코엑스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묵는다고 말하는
친구를 봐도,
그런 지원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제약회사가 아무 이득 없이 그런 스폰서를 할 리도 없고,
그렇게 쓴 돈은, 어쩌면, 약값 인상분에 반영될 수도 있다.
안그래도 다른 직종보다 돈을 잘 버는 의사들이
왜 그런 돈을 받는 걸 당연시하는 걸까?
그리고 그런 돈으로 가는 학회에 아내까지 동반하는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3. 서른두살의 바보 엄마
난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엄마는 당신의 여행계획을 말하지 않은 채
여동생에게 애를 봐줄테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우리 엄마는 결혼 전까지 25년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내셨다고 한다.
하지만 가부장의 원단인 아버님과 결혼하시고 애 넷을 낳게 되면서
37년간을 별로 웃을 일이 없이 보내야 했다.
2001년 12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의 삶이 다시금 시작되었으니
우리 엄마의 나이는 겨우 서른둘에 불과하다.
"뭔가 잘해준 게 있어야 남편을 그리워하고 그러지..."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그런 엄마의 연세는 내년이면 70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즐겁게 추억을 만드셔야 할 터인데,
그리도 기다리시던 친구들과의 여행을 마다하고 여동생 집에 틀어박혀 애를 봐야 할까?
이 과정을 지켜보던 내 가슴이 울화증으로 멍드는 동안,
친구 분들은 이 사태에 대해 격분해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이에 아직도 딸 때문에 여행을 못가는 게 말이 되느냐?"
"회장이 안가면 어떡하냐? 네가 안가면 나도 안가겠다"
갈지 말지를 최종적으로 통보해 줘야 하는 날,
엄마는 누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누나는 그게 말이 되느냐고 화를 냈고,
여동생 집에 애 봐주는 아줌마도 있고,
집도 가까우니 자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봐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결국 엄마는 극적으로 여행자 명단에 당신의 존함을 새겨 넣었다.
엄마는 신이 나서 여행 가방을 챙기셨고,
이번에 산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법을 내게 물으시며 들떠 있었다.
4. 여행은 갔다, 그러나...
여동생이 떠난 일요일부터 당신이 떠나던 수요일 오전까지,
엄마는 열심히 애를 봐주셨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는 철이 좀 들었지만
둘째가 여간 보채는 게 아니어서
애봐주는 아주머니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엄마는 누나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일본에 가셨다.
공항으로 마중을 가겠다는 날 따돌리기 위해 일요일날 온다고 거짓말을 하셨던 어머니는
토요일 밤 9시, 귀국과 동시에 여동생 집에 가서 다음날까지 마저 애를 보셨다.
여동생이 오기 직전 집을 나선 어머니는 집에 오고 난 뒤에야 노곤한 몸을 뉘이셨다.
오늘, 엄마랑 같이 할머니 병원에 다녀오는데 어머니가 입을 여신다.
"미자(여동생) 때문에 좀 속상해.
거기 갔다오고 나서 지금까지 나한테 일체 전화를 안해."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여동생은 외국에서 집에 전화를 해본 뒤
엄마가 안계시다는 걸 알았고,
누나로부터 일본에 가신 걸 알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난리가 아니었단다.
누나에게 계속 엄마 욕을 하면서 "남의 애라고 그따위로 하다니..."라며 펄펄 뛰었고
"우리 애들이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씩씩거렸단다.
다행히 애들은 다친 데 없이 건강해 행동으로 나서진 않았지만,
다녀온 뒤부터 지금까지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단다.
내가 아들이니까 답답해서 말씀을 하셨겠지만,
그런 말을 듣는 도중 너무 화가 나서 앞차를 들이받기라도 하고 싶었다.
겨우 화를 진정시킨 뒤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앞으론 절대 애 같은 거 봐주고 그러지 마세요. 그런 애한테 뭐하러 잘해줘요?"
엄마의 대답은 여전히 바보같았다.
"그러지 마라. 난 그래도 미자를 사랑한다."
올해 6월만 해도 겉보기에 괜찮으셨던 할머니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거치는 동안 팍삭 늙으셨다.
92살이니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게 이해 안되는 건 아닌데,
문제는 엄마도 건강하게 계실 날이 많지 않다는 거다.
"세월이 참 빨타(빠르다). 할머니가 저렇게 사시는 거 보니까
건강할 때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걸 느껴"
어머니, 말로만 그러시지 말고
제발 좀 당신의 삶을 사세요.
자식들 그거, 하나도 소용없는 존재들입니다.
미자 전화를 대체 왜 기다리세요?
엄마는 잘못한 거 하나 없어요.
이제 바보짓 좀 그만하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