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2.gstatic.com/images?q=tbn:ANd9GcTe2UgPpowb60mLHN_IWFRC_slNaOpHLt-soxazTDOKFuqRlx3RfjtjzDc7eA)
'오늘'은 '집으로'와 '미술관 옆 동물원'을 만든 이정향 감독의 작품이다.
이런 감독은 왜 자주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만큼 괜찮은 작품들인데,
그가 이번에 만든 영화는 용서에 관한 내용이다.
송혜교는 1년 전 약혼자를 오토바이로 쳐 죽인 10대를 용서하는 탄원서에 서명한다.
그냥 치어죽인 것도 아니고,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는 걸 알고 한번 더 치어 확인사살까지 한 끔찍한 놈인데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 부모와 종교단체 사람들 등 많은 이들의 회유와 간청이 있었겠지만,
어찌되었건 겉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인다.
그 후 송혜교는 종교단체의 부탁을 받아 가해자를 용서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다큐로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용서라는 것에 회의가 들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벌써 감형을 받아 출소를 했더라고요. 저 같으면 출소한 뒤 제일 먼저 저한테 찾아와 사과를 했을 텐데
결국 저는 그 사람한테 사과를 받지 못했어요. 그때 했던 용서를 취소하고 싶어요."
송혜교가 알아보니 자기 약혼자를 죽인 그놈은 자기 반 아이를 시덥잖은 이유로 죽인 뒤 소년원에 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가해자의 반성이 없는, 단지 형을 단축하기 위한 용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데.
이런 식으로 관객을 조종하는 영화라 해도 그게 내 신념과 일치한다면 거부감이 없다.
용서에 관해서는 <밀양> 같은 영화를 비롯해 여러 군데서 얘기를 했으니 패스(요즘 이 단어가 끌린다)하고,
내가 공감한 건 심심할 때마다 자기 딸을 때리는 폭력 아버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 딸은 공부도 잘 하고 신장병도 있는 아이인데도 아버지는 파이프까지 동원해서 딸을 때린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 때리는 거라 이유도 없지만,
"맞을 짓을 하니까 때렸지" & "내가 안때렸으면 니가 지금 이렇게 사람 구실을 했겠냐"는 게
아버지는 물론이고 오빠와 어머니의 뜻이다.
그런 가족이 싫어 집을 나온 그 딸-이름이 지민이다-에게 송혜교는 말한다.
자기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서, 그렇게 때리는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가 널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송혜교는 모른다.
두들겨 패는 아버지는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역시 아버지 기분에 따라 신나게 두들겨 맞으며 자란 나로선
안맞고 커본 사람이 맞는 아이의 슬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스포일러를 잠깐 말하자면,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송혜교는 지민이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그 전까지 혜교가 했던 말들은 밥상을 엎을만큼 짜증이 났다.
사람이 사람을 고의로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는 걸 제외하면
이 세상에 맞을 짓이란 건 없다.
더구나 자기가 낳은 자식은 부모 스스로가 가장 존중해 줘야 하건만,
어떤 부모는 낳았다는 게 무한정 때릴 권리를 가진 것처럼 군다.
그게 다 자격이 없는 것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부모가 됐기 때문인데,
영화에서 지민이의 부모가 판사인 것처럼,
사회적으로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폭력아빠는 많이 있다.
검사-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돈도 제법 버셨던 울 아버지는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우리를 그렇게 두들겨 패셨을까.
세월이 흘러서 나중에 아빠 나이가 돼보면 이해할 수 있을줄 알았지만,
마흔 중반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아빠의 그 심보를 이해할 수 없다.
엄마가 어릴 적에 갈라서서 우리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면,
그리고 평생 써보지 못한 약사 면허증을 이용해 우리를 길렀다면,
내 어린 시절이 지금처럼 추억할 거 하나 없는,
길고 긴 터널만은 아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엔 갈라설 자유가 남자에게만 주어진 권리였고
엄마 또한 그다지 용기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고난의 나날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2월, 어머니 연세가 62세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