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노라 에프런 지음, 박산호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내 잘못으로 인해 친구와 다투었을 때, 그가 보내준 책이 바로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였다. 노라 에프런이란 이름을 보나 책 제목을 보나, 10대 아니면 20대 여자가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는 내용으로 알고 한달간을 내 방 냉장고 위에 쳐박아 뒀었다. 갑자기 이 책을 읽게 된 건 요즘 너무 독서량이 적어 실적을 올려볼까 하는 모범생적인 마음에서였다.


애당초 가졌던 선입견과는 달리 이 책은 65세된 작가분이 삶에 대해 깨달은 통찰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책은 술술 잘 읽혔고, 몇몇 대목에선 나랑 생각이 일치했다. 자식교육을 하나 안하나 애들은 잘 자라기 마련이며,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는 그네들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이나, “옷장에 있는 옷 가운데 3분의 1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성공한 것”이라는 구절, 그리고 “아이들이 10대가 되면 개를 한 마리 키워라. 최소한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존재가 하나는 생기는 셈이다”라는 구절 등등은 개에 대해서는 극우적인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늘 느끼고 있어도 표현하지 못했던 그 어떤 것을 대신 말해주면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데, “35살에 신통치 않다고 생각한 몸도 45살에는 그리워진다”고 말하는 저자를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이 더더욱 마음에 드는 건 갑자기 “읽을만한 책이 없냐”고 물어오신 어머니께 자신있게 권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재미없는 책은 끝까지 못읽으시는 어머니가 이 책만큼은 재미있다고, 이제 20페이지만 더 읽으면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간 어머니한테 재미를 드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책으로 약간의 효도는 했지 않았을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친구가 이 책을 보낸 이유는 도대체 뭘까? 혹시 개를 기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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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8-0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보관함에 넣어야겠군요.
:)

비로그인 2007-08-0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꽤나 만만하게 보았는데, 보관함으로 넣었습니다.부리 님 리뷰를 읽고요.
아참, 그리고 노라 애프런, 사교계에서 내노라 하는 명사라고 하더군요. 말랑말랑하고 느긋한 걸 좋아하는 저로서는 제목도 맘에 듭니다.

부리 2007-08-0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저...책임지라고 하기 없기!
다락방님/님도 마찬가지!

실비 2007-08-0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관함에 직행!

2007-08-07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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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재활동을 열심히 안하시지만, ‘알라딘 호외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흑백TV님이 지금은 까먹은 이유로 이 책을 선물해 주셨다(뒤늦게마나 감사드린다). 책 앞머리에 찍힌 책도장은 그게 2005년 8월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 책은 무려 2년간이나 방구석에 놓인 채 내 손길을 기다려 왔나보다. 내가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못한 건 표지 남자의 섬뜩한 눈초리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난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단어에 약간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세계명작은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 진도가 느리며, 읽고 나도 잘 이해를 못하는 거라는 편견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었으니까. 그런 편견을 해소해준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그러는 걸로 보아 역시 책은 어릴 적부터 읽어야지 나처럼 갑자기 벼락치기로 읽어선 안된다.


바흐를 즐겨듣는 주인공인 알렉스는 천하의 망나니로, 닥치는대로 사람을 때리고 돈을 빼앗는다. 일전에 읽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악함과 폭력성이라는 면에서 알렉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 이런 나쁜 인간이 있을까 싶었고, 그의 폭력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이 왜 명작인지 의아했다. 하지만 후반부를 읽다보니 이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데, 저자는 사적인 폭력보다 더 나쁜 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것이라는 사실을 ‘루도비코 요법’을 예로 들어 주장한다. 루도비코 요법은 폭력이 담긴 필름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폭력에 저항감을 갖도록 세뇌시키는 것으로, 결국 주인공은 저항을 못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세계명작의 특징은 그 시대에만 진리인 게 아니라 요즘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이 책을 덮으며 삼성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식 파동 때 K대 학생들이 보여준 자발적인 복종을 떠올렸다. 굳이 루도비코 요법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저항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자본이라는 괴물에게 말이다.


* 덧붙이는 말: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서 밑줄을 그어놓은 대목이 있다. “그 오랜 독일 거장(바흐)의 아름다운 갈색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인간들을 더 세게 패주고 갈가리 찢어 마루바닥에다 내팽개치고 싶다고 생각했지(45쪽).”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음악, 그것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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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8-0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한번 보셔야겠는데요...

Mephistopheles 2007-08-0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삭제 무암전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도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07-08-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전에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나저나 저는 왜 이 책을 보면 자연스레 『파리대왕』을 떠올릴까요?

부리 2007-08-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영화로 보면 너무 잔인할 것 같지만....근데 어떻게 구하나요? 디비디?
메피님/제가요 다운 받아 영화보는 거 못하거든요 윤리적으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어떡합니까?
다락방님/음, 저는 다행히 파리대왕을 안봤기 때문에 그 책을 떠올리지 못했답니다 저희집엔 파리가 별로 없어요 모기만...

Mephistopheles 2007-08-07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로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하게요..^^

부리 2007-08-0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감사합니다 특히 저렴 부분이 맘에 들어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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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학생의 생일날 책을 몇권 선물했더니 답례로 돌아온 게 바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였다. 읽을 책이 좀 밀려 있긴 했지만 지도학생이 세 번이나 “그거 읽으셨어요?”라고 묻는 바람에 날 잡아서 읽었다. 책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176쪽밖에 안되는 얇은 책이라서 오래지 않아 읽을 수 있었는데, 다 읽었다고 자랑하려니 지도학생이 외국으로 떠버렸다. 안그래도 부진한 올해 독서실적을 생각하면 한권이라도 더 읽어야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니 좀 허무해진다.


마르셀 에메가 쓰고 베르베르 소설의 전담 번역자 이세욱이 옮긴 이 책은 제목과 저자 모두 내게 생소해,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도 읽어보지 않았을 거다. 2002년에 나왔고 5년만에 11쇄를 찍은 걸 보니 그래도 꽤 팔린 책인데 난 왜 몰랐을까? 책선물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거라는 걸 다시한번 상기해 보며 표제작의 줄거리를 언급해본다. 주인공은 자신이 벽을 드나드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사를 곯려주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는데, 머리만 내놓고 상사에게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는 일반인의 예상처럼 값비싼 물건들을 훔치는 길로 접어들고, 범인이 자신이란 걸 동료들이 안 믿어주자 일부러 잡힌다. 감옥 안에서도 탈출과 체포를 반복하던 주인공은 순간의 실수로 벽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자, 이 단편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걸까? 공명심으로 망한 사내의 이야기? 아니면 능력을 나쁜 일에 쓰면 망한다는 교훈? 책 뒤에 붙은 해설을 보니 옮긴이가 많은 장을 할애해가며 설명을 해놨던데, 그걸 보니 여전히 모르겠어서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재미있으면 됐지, 꼭 이해해야 해?”


다른 단편들 역시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된 재미있는 것들인데, 특히 <생존시간 카드>을 읽으면서는 저자의 상상력에 존경심을 품게 된다. 갑자기 <나무>가 생각난다. 천재작가라고 생각했던 베르베르가 자신의 상상력을 그냥 책으로 엮은 건데, 거기 실린 단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그쳤다면 에메의 단편들은 그 상상력을 작품으로 멋지게 승화시켰다. <나무> 이후 베르베르 책을 더 이상 안사는 것과 달리 <벽으로>를 읽으니 에메의 다른 책을 사보고 싶어진다. 말썽만 피우는 지도학생이 간만에 고맙다. 그는 이 사이트를 절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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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그 학생이 미자인가요? 이 책 저도 궁금해요^^

부리 2007-08-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아아 예리하신 마노아님!! 비결은 역시 선글래스?
 

너구리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 글 뭐예요? 저 보라고 쓴 거예요? 유치합니다."

그녀가 보내온 메일은 그토록 간단했지만

그 세 문장이 날 얼마나 기분좋게 했는지 모른다.

 

네어버 사전에서 질투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질투: 1) 다른 사람이 잘되는 걸 못마땅해하는 마음.

        2)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낼 때 속상해하는 것

"질투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고란 이바노세비치라는 철학자인데

그 말은 결국 사랑이 있어야 질투도 가능하다는 뜻,

그러니까 "부리님 좋아하면 안되요?"라는 말은 너구리님의 진심이었다.

 

답장을 썼다.

유치한 거 인정한다,

하지만 오리배를 같이 탄 그 여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언제 너구리님을 태우고 세시간 동안 오리배의 페달을 밟아 드리고 싶다...

 

오늘 아침, 너구리님이 다시금 보내온 답장을 읽었다.

"정말 세시간 동안 오리배 태워주시는 거죠?"

그녀가 보낸 메일은 단 한문장이었지만

그걸 읽고난 후부터 계속 마음이 갑갑하다.

오리배는 보기는 그럴듯해도 정말 힘이 드는 놀이기구로

오직 애인관계만이 그걸 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보이고픈 관계일지라도 세시간은 무리다.

새초롬한 너구리님의 성격상 세시간을 못채우면 화를 낼텐데....

벌써 다리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일본서 너구리님이 오기 전까지 근육을 좀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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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궁금해. 이러다 야클님 처럼 결말이 저 결혼해요, 이런거 아녀요? :)

Kitty 2007-08-04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세요~ ㅋㅋㅋㅋㅋ
다리 근육 화이팅! ^^

Mephistopheles 2007-08-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태워 주십시요 옆에서 부리님 페달 밟으면 전 소주도 따라드릴 수 있습니다.

다락방 2007-08-0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흥미를 더하는군요!!
기대만빵이예요, 부리님.
120부쯤에서 저도 찬조출연 살짝 해야겠어요. 그러려면 일단 부리님과의 데이트가 먼저일까요? 호호 ^0^

비로그인 2007-08-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제 얼른 다음 회를 올려주셔야죠.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07-08-0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부지런히 다리 운동 하세요, 부리님!

가시장미 2007-08-0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랜만에 봐서인지..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는 -_-;;
형의 유머도 히스토리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ㅋㅋ
부리형. 근데 말이지. 마태형한테. 이 말 좀 전해줘!

- 잠수 그만 타시고, 나타나시라, 오바! -_- ㅋㅋ -

미즈행복 2007-08-04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페달을 밟으시다가 잠시 발을 멈추고 쉬세요. 느리지만 절로 조금씩 가기도 하던데요?
쉬시는 동안 뭘 하실지는 님의 자유이십니다^^

비연 2007-08-04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님 글은 언제 봐도 재밌어요^^ 근데 정말 결말 궁금..ㅋ

moonnight 2007-08-0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매일 러닝머신을 달리시고 테니스도 열심히 하시는데 세시간 정도야 거뜬하시리라 믿습니다. 다음회도 기대할께요. ^^

부리 2007-08-0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러닝머신 일주에 한번 정도 하구요 테니스는 좀 열심히 칩니다 하지만 오리배는 다른 차원 같아요
비연님/재밌다고 해주시니 거듭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미즈행복님/50분 쉬고 10분 페달을 밟으면 괜찮을까요??^^
가시장미님/아 마태는.... 당분간 잠수를 더 할 예정이라네요. 그리고 이 단순한 글에 무슨 히스토리가 있다구!!
혜경님/다리운동으로는 역시 오리발 차고 수영하는 게....
주드님/다음 회는 곧 올라갑니다 화이팅!
다락방님/늘 진실만을 말하는 '부리예요' 코너를 위해 님과 데이트를 해야겠군요
메피님/오호호 소주라... 님과 단둘이 오리배를 타볼까요?^^
키티님/님이 재밌다니 이거 쓴 보람이 있어요!
아프락사스님/결말은 저도 모릅니다 ing의 매력이죠

2007-08-07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너구리가 일본으로 떠나버린 지 벌써 5일째,

메일함을 뒤져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로밍 서비스인가 하는 것도 안받았는지, 그녀의 전화기에선 꺼져 있다는 말만 되풀이된다.

그녀가 오는 다음주까지 난 도대체 뭘 하며 지내야 할까?

이것이 지난 사흘간 내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실존적 고민이었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너구리에 비하면 미모가 약간 처지지만,

20대라는 엄청난 장점은 미모의 떨어짐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았다(29세다).

십년 전에 봤을 땐 19세였는데

어느 새 이토록 멋진 여자로 자란 거다.

얼떨결에 말했다.

"내일 식사나 같이 할래요?"

내 말에 그녀는 긴 속눈썹을 위아래로 흔듦으로써 동의를 표했다.

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날 찾아온 건 오늘 두시였다.

벌써 왔냐고 물으니 "왜요? 좀 빨리 보고파서 그랬는데..."라고 금새 시무룩해진다.

감정이 이토록 돌변하는 게 바로 20대의 특징,

그 모습이 귀여워 난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인근 횟집에서 생선회에 소주를 먹고

인근 저수지로 가서 이걸 탔다.

날은 더웠고, 그녀는 이상하게 무거웠다.

난 죽어라고 페달을 밟았지만 오리배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준수한 미모가 아니었다면

20대가 아니었다면

난 권태기에 빠진 다른 커플들처럼 물결에 오리배를 맡긴 채 부채질만 하고 있었을거다.

 

"너무 재밌었어요"

그녀는 오리배에서 깡충 뛰어 선착장에 내렸고

난 휘청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뒤를 따랐다.

순대국으로 저녁을 때운 뒤 근사한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었다.

터미널에 그녀를 내려준 뒤 기차역으로 가려는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다음번에 또 오리 태워주실 거죠?"

그녀가 잡은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헬스 자전거라도 좀 타야겠구나..."

 

너구리에게 사랑을 고백할 뻔한 게 불과 닷새 전,

그런데 난 20대 미녀에게 흔들리는 자신을 본다.

그녀가 나처럼 나이 많은 남자를 이성으로 생각할까 의문이지만 말이다.

사랑에 대해 많은 저서를 남긴 다이에 호크스라는 일본 철학자는

"사랑이 출장갈 때 바람이 시작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너구리님의 일본 출장은 나란 놈이 얼마나 바람에 취약한가를 느끼는 계기가 됐다.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공자가 했던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나무는 가만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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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망의 시작
    from Love Conquers All 2007-08-10 18:42 
    새초롬너구리의 8월 1일 일기 맑다   저녁에 심심해서 인터넷을 했는데, 부리님이 나를 주인공으로 로맨스소설을 써주셨다. 그동안 B급소설에 출연시켜달라고 해도, 인간이 아니니 안된다고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더니만... 졸라대다가 안졸라대니까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을 봐서 다음에도 이 수법을 써먹어야겠다. 하지만, 너무 헛점이 많다. 머리가 좋으신줄 알았는데 좀 실망이다.   ================= 새초롬너
 
 
Mephistopheles 2007-08-01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완젼 오리배까지 등장함으로써 부리님식 생활의 발견이 제대로 성립되는군요..ㅋㅋ
자 이제 또다른 그녀와 점을 보러가야 할 순서입니다..^^

Joule 2007-08-01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스토리, 전부 다 거짓말을 가장한 진짜죠?!

Joule 2007-08-01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면 거짓말을 가장한 진짜인 척하는 거짓말이던가.

마늘빵 2007-08-0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3류 소설은 아닌가보군요. 그나저나 저랑 동갑내기를 만나고 계시다니 부리님은 도둑

무스탕 2007-08-0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고 계십니다.. ^^

프레이야 2007-08-0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미납니다, 부리님. 사랑이 출장가면 바람이 난다!
너구리님이 그렇게 '이상하게 무거운가요?' ^^

chika 2007-08-0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구리님 사랑은 출장중이고, 그녀는 이상하게 무거운것이고... 그러면 이제 토깽이님을 만날 계획인지? (분명 부리는 어린 토깽이를 좋아라~ 할테니까...으흠~ 세번째 페이퍼를 기다려봐야하는게야..중얼중얼중얼중얼)

2007-08-01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8-0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뭔가요?
그리고 왜 자꾸 다음편이 기다려지는걸까요?

2007-08-0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08-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배를 타신 곳은 천안 근처시겠죠? 어딘가요, 저기는??

sweetmagic 2007-08-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배 사진 속 사람들이 반팔이 아니므로 ..........

푸른신기루 2007-08-0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부리님 나이가 어느정도시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대요~ㅎㅎ
전 저보다 나이많은 사람이 좋던데^-^
저도 다음편 궁금!!

마법천자문 2007-08-0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쌍벽을 이루던 막부시대의 명장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한 혼이 담긴 바람은 들통나지 않는다."

날개 2007-08-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페이퍼는 양다리의 시작? ㅋㅋ

부리 2007-08-0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예리하기도 하셔라!!
KJ님/오오 자이언츠님이 그런 말씀을..... 하여간 옛사람들은 참 멋져요
푸른신기루님/안녕하세요 저 나이가 좀 됩니다. 너무 많다보니 숫자에 불과한 정도는 아니지만...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새벽별님/호홋 열자...!!
매직님/아네요 저 진짜 타긴 탔어요!! 저건 구글에서 얻은 거지만요!!
브리니님/천안 근처 맞아요 제 차가 아니라서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속삭님/호홋 정말 아름다운 아침이어요!!!
다락방님/원래 글이란 중독성이 있답니다^^
속삭님/저, 정말 그러네요. 이, 이십대로 해야 하는데......다녀오신 뒤를 기대하겠습니다!
치카님/총 130부로 연재할 계획이라구요 호홋.
혜경님/이상하게 무거운 건 너구리님이 아니라 바로 20대 그녀!!
무스탕님/진짜 잘하는 건가요.?^^
아앗 속삭님/안녕하세요 그리 진지하게 말씀해 주시니 부끄러워집니다... 뭐든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꾸벅.
아프락사스님/오옷 아직 20대라니.... 자기 체중의 세배를 먹을 수 있고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 그런 나이가 아닙니까!!
쥴님/가끔 보면 쥴님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예리함을 가지고 계신 듯....^^
메피님/저...점을 왜 보는지 가르쳐 주세요!! 아아...생활의 발견이 힌트인가요? 거기서 점 보는 장면이 있던가요?????

미즈행복 2007-08-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랑과 함께 애 둘 태우고 페달 20분 밟는데도 땀이 범벅이 되어 죽을뻔(?) 했는데... 겨우 우리 애 둘의 몸무게는 29Kg인데도 말예요.
아, 멀고 먼, 고난의 사랑의 여로여~

부리 2007-08-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아니 님같이 연약한 미녀분한테 페달을 밟게 하시다니 남편 분이 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