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이는 거,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이 두가지는 정말 괜찮은 건 아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글을 올려놓고 잘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그건 채 반나절도 가지 못했다. 결국 그 글은 내려야했고 내가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이 반나절의 시간이 내게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그래서 어제 아침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뒤집혔고 출근하는 내내 구역질이 났다. 점심을 거르고 약국에 가 약을 사 먹었고 온 몸이 추위로 떨렸으며 오후부터는 어지럽기 시작했다. 괜한 짓을 했나보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멘탈 갑이라고, 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안되는 것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점점 더 머리가 아팠다. 남동생에게 퇴근길에 나를 기다렸다 태워가라 일렀고 남동생은 우리 회사앞에서 내가 나올때까지 기다렸다. 남동생의 차에 올라타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좌석이 너무 뒤로 쳐진 것 같아, 라고 하니 남동생이 의자 밑에 뭔가를 조절하라고 했고, 나는 손으로 더듬었지만 찾을 수 없어 내버려두었다. 일단 그냥 갈게, 하고. 남동생은 신호가 걸린 틈을 타 자신이 찾아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나는 어지러우니까 좀 내버려둬 일단 그냥 갈게, 했다. 나는 마음껏 아프다고 투정을 부려도 좋았다. 


집에 가서는 저녁을 거르고 씻고 누웠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추워서 달달 떨고 있었더니 아빠가 안방에 있는 온수매트를 작동시켜 주셨다. 여기 들어가 누워 있어, 라고. 나는 보통 온수매트 위에 눕는 걸 싫어하고 침대가 아닌 데 눕는 걸 싫어하지만 아빠 말대로 했다. 아빠는 잠시후 이불을 더듬더듬 만져보시며 따뜻해졌냐 물으셨다. 그러더니 우리 병아리 아프지 마, 라고 하셨다. 나는 거기에 응수했다.


응 난 아빠 병아리 삐약삐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빵터지셨고 내 다리 쪽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시청하던 남동생은 이게 대체 뭐냐며 삼십대후반 병아리라니,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불쌍하다 닭도 되지 못하고, 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아빠는 다시 매트위를 만져보셨다. 이제 따뜻하지? 하고. 그래서 나는 또 말했다.



응 따뜻해요. 난 아빠 병아리 삐약삐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여기서 멈췄어야 되는데, 내가 내 방으로 위치를 옮겨 침대에 누워 있는데 너무 열이 나는거다. 끙끙 앓다가 아빠 방으로 가서 아빠, 내 얼굴 좀 만져봐, 했다. 아빠는 손으로 내 뺨을 만지셨고, 너 열나네, 하셨다. 응. 병원 안가도 되겠냐고 하셔서 응 안가도 돼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거야 라고 했는데, 그러고 그냥 돌아오지 않고 한 번 또 한거다.



난 아빠 병아리 삐약삐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져서 웃던 아빠가 말씀하셨다.


싸대기 날리기 전에 니 방 가서 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딸한테 애교를 바란건 아빠셨잖아요? 근데 왜 이제와서 싸대기 날린다고 하는거죠?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내 방에 돌아와서 내가 아는 남자들중 가장 상남자, 울트라 슈퍼 마쵸맨과 통화를 하는데, 하는동안에도 열은 나고 머리는 아프고, 그러고 있었는데, 글쎄, 이 울트라슈퍼마초맨한테 내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고, 울트라슈퍼마초맨상남자는 신청곡을 받는다고 했으며, 그래서 나는 무려, 그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노래인, 심규선의 <담담하게>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그 노래를 불러줬다. 무려 울트라슈퍼상남자 마초맨이, 심규선의 담담하게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건 뭐 가히 폭발적인 영향력을 내게 주었는데, 암튼 내 열은 그 노래 듣고 내려간듯? 아침에 생각하니 또 웃긴거다. 상남자의 담담하게 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래전에 한 남자가 수화기를 통해 내게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는데, 내가 불러달란 것도 아니고 지가 술취해서 부르고 싶어서 부른것 같았는데, 노래는 잘 부르는 남자였지만, 암튼 그때 나는 그게 되게 싫었다. 상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거다. 손은 어디다 둬야 하는지,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어야 되는지. 마치 죽어있는 시간 처럼 느껴져서 진짜 딱 싫은거다. 그 뒤로 내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박혀 있었다. "노래불러주는남자=쓸데없는시간을만들어내는남자" 암튼 딱 싫어가지고 혹여라도 그런 일이 생길까봐 남자사람들과 통화를 할때면 애초에 밝히고 시작하곤 했다. 전화기에 대고 노래부르는 남자 딱 싫어, 라고. 그동안 난 대체 뭐하라는 거야?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그런데 어제 알았다. 그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되는 거였다. 뭘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들으면 되는 거였다. 들으면서 좋아하면 되는 거였다. 듣는 동안 나는 내내 웃었다. 내가 낫고 있다는 걸, 내가 알 수 있었다. 상남자의 담담하게는 그런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한결 나아있었다. 기분도 좋았다. 밥도 맛있게 먹었고, 아픈 딸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말하며 나는 아침을 차려준 아빠의 궁둥이를 두번 툭툭, 쳐줬다. 엄마가 안산에 가계신데, 내가 아픈 통에 밥을 하고 차리는 것도 설거지도 다 아빠 몫이었다. 뭐 사실, 안아파도 엄마 안계실 때 아침은 아빠가 차려주신다 -0-


어제 노래를 불러준 상남자에게 좋았다고 말했고, 어제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에게 고마웠노라 말했다. 덕분에 나아졌다고.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건 이렇듯 힘이 된다. 내 주변의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아침이었다. 그 고마움 때문에 또 기뻤고.




우울한 독서를 마친 뒤에 어떤 책을 읽을까 책장 앞에서 한창을 고민했다. 역시 잭 리처가 생각났지만, 순서대로 읽고 싶었고 다음권이 내게는 없었다. 검색해서 다음권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는 그렇다면 마이클 코넬리를 읽을까 하다가, 아니야,  밝고 아름다운 거, 하고 책장 앞에 서서 아무리 노려봐도, 읽지 않은 책들에 대고 뭐가 더 아름답고 밝은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참에 확-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그래, 이 책이라면 우울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단번에 꺼내들었다.



 














그리고 첫장을 펼치면서부터 나는 아주 크게 만족했다. 우앙- 좋아- 마치 우울할 때 먹는 버터를 잔뜩 쳐바른 빵 같은 느낌이랄까. 



베르티 바톨로티 부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커피 넉 잔을 마시고, 버터와 꿀을 바른 주먹만 한 빵 세 개와 반숙 달걀 두 개를 먹었다. (p.7)



여기까지만 읽고서도 좋긴 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버터와 꿀을 발랐다지만 결국 빵 세개와 달걀 두 개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다음줄은 내 욕망을 반영해줬다.



그런 다음 잡곡 식빵 한 장에 햄과 치즈를, 우유 식빵 한 장에는 소시지를 얹어 먹었다.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바람에 커피와 노른자를 흘려 연갈색 잠옷에 얼룩이 생겼다. 빵 부스러기들이 잠옷 속으로 떨어졌다. 바톨로티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빵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한 발로 깡충깡충 뛰었다.(p.7)



아! 너무 좋다. 역시 저게 끝이 아니었어. 햄과 치즈, 소시지!!!!! 완벽한 아침이다!!!!! 아 치킨이 너무 먹고 싶다. 요즘 굽네치킨의 고추바사삭치킨이 유행이라던데, 나도 그거 한번 먹어보고 싶네. 오늘 집에 가서 먹을까? 아픈것도 다 나았으니? 나도 매일 아침에 햄과 치즈와 소시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베이컨과 고기가 있어도 좋고. 아, 그럼 정말 좋겠다. 버터는 필시 구비!!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아침 식단은 정말이지 호텔 조식뷔페다. 딱 그거야. 난 그걸 좋아해. 근데 호텔 조식뷔페는 내가 자꾸 갖다 먹어야 되서 귀찮어...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면 내가 원하는 대로 가져오지 않아서 또 빡쳐.....그러니까 이걸 한 상 가득 차려 놓는거다. 가만있자, 아침 밥상이 완전 내 스타일인 영화가 있었는데.



이미지는 못찾고 영상만 찾았다. 여기 ☞ http://www.traileraddict.com/did-you-hear-about-the-morgans/breakfast




암튼 혼자 사는 베르티 바톨로티 부인이 이렇게 아침부터 잘 먹는 게 나는 몹시 흡족했는데(나는 혼자서도 아주 건강하게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 애정이 생긴다), 그녀는 정말이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바톨로티 부인은 욕실로 갔다.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욕조는 이미 금붕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어제 수족관에서 사 온 작은 금붕어 일곱 마리와 큰 금붕어 네 마리가 욕조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물고기이지만 변화를 원할 것 같아서 그 곳에 풀어놓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휴가를 내어 멀리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허구한 날 둥근 어항 속에만 갇혀 지내야 하는 물고기가 불쌍해서였다. (p.8-9)



아, 정말 너무 좋지 않은가. 사람들이 멀리 여행을 가듯, 금붕어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톨로티 부인이라니. 이 마음이 너무나 유쾌하고 따뜻해서 모두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이거봐, 금붕어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톨로티 부인은, 가끔 욕조에 금붕어를 풀어 놓는대! 하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씨익- 웃음을 짓게 되지 않을까? 



혼자 사는 베르티 바톨로티 부인 앞으로 여덟살 소년이 배달된다. 소년은 부인을 엄마라 부르게 되고, 한 번도 엄마인 적 없었던 부인은 이제 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배달되어진' 소년은 이미 그 나이의 아이가 해야 할 것들을 분명하게 교육받은 상황,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앞으로 알려줄 바톨로티 부인의 이야기가 아주 기대된다. 부디 아이가 가르쳐준 대로만 지내지 않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자기전에 사탕을 먹으며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라니, 안된다. 죄책감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두 개 연달아 먹었을 때 느끼는 거지, 사탕 하나에 느끼는 게 아니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도 한 개 먹었다면, 그때는 영혼이 사르르 녹는 기분만 느끼면 되는 거다. 죄책감은 두 개째부터, 뭐 싫다면 세 개째부터 느껴도 좋다.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잔뜩 발랐다고 그 쾌락에 몸둘 바를 모르며 살짝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자. 두 개 먹은 게 아니라 한 개 먹었는데, 뭐 그리 죄책감을. 세 개 먹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헤비한 육체는 헤비한 음식으로부터! (  ")




여튼 두 끼를 거르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와- 한층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얼굴이 더 깊어졌달까. 깊어진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출근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내 얼굴의 깊어진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얼굴은 왜 드러나지 않게 아름다운가..왜 은근하게 아름다운가..대놓고 아름다워도 될텐데............



치킨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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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5-0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가장 사랑하는 아동문학책이예요.!!

다락방 2015-01-06 10:44   좋아요 0 | URL
가장가장 사랑할 만 합니다, 달걀부인님!! >.<

2015-01-06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5-01-06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2.이번주 제 메뉴는 아무래도 굽네 바사삭이 될듯하네요.

3.참 좋은 남자들에 둘러싸여 사는 다락방님..그죠?

다락방 2015-01-06 11:19   좋아요 0 | URL
1. ^______________^

2. 치킨치킨! 우리 다음에 만나면 치킨 먹어요. 두당 한마리씩 먹읍시다! ㅋㅋㅋㅋㅋ

3. 그보다는 참 좋은 여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5-01-06 13:19   좋아요 0 | URL
3. 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01-06 14:39   좋아요 0 | URL
네?
뭐라고요?
안들려요~~~~~~~~~~~~~~~~~~~~~~~~~~~~~~~~~~

Jack Reacher 2015-01-06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If you want to eat a chicken, I will cook two chickens.
If you want to wash the dishes, I will wash the dishes.
If you want to hear a song, I will sing for you.
Do not say me out. Never say, never again.

Jack

다락방 2015-01-06 14:39   좋아요 0 | URL
음..이건 팝송의 느낌이 나네요.
잭 리처님의 직업은 작곡가 입니까?
치킨 맛있게 잘 만들 수 있어요?
여튼 다음엔 위 가사에 곡 붙여 오세요.

꽃핑키 2015-01-06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부분에서 정말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ㅋ 난 아빠 병아리 삐약삐약ㅋㅋㅋㅋㅋㅋ 이걸로 앞으로 다락방님 계속 놀려먹고 싶어진다는요 ㅋㅋㅋ
그나저나, 그날 그 페이퍼는 어쩐 일인지 딱! 마침 새글 알림을 보게돼서 당장 달려와서 읽고 무척 많이 공감하고, 덧글을 쓰다가 몇번이나 지웠다가, 맘 속으로 열렬히 다락방님을 멋지다! 응원하며 조용히 좋아요 버튼만 눌렀는데.. 것때문에 많이 아프셨다니. 제 마음도 쓰라립니다.
어쨌든 ㅋㅋ 저런 멋진 남자들이 다락방님을 듬직하게 지켜주고 계시니!! ㅋㅋ 마음 놓습니다! ㅋㅋ

다락방 2015-01-08 09:13   좋아요 0 | URL
아, 꽃핑키님. 멋지다 생각해주고 응원해주신 것 모두 고맙지만 제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국 그 글을 감췄네요. 제가 아직 거기까지는 안되는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응원해주신 마음은 잘 받고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꽃핑키님.

근데 병아리 삐약삐약은 어제부터 하기 싫더라고요. 질렸어요..역시 전 체질상 이런게 안맞는지도 모르겠어요. 귀찮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5-01-07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8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5-01-0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페이퍼에서 가슴 아픈 대목이 있잖아요.

`점심을 거르고`와 `저녁을 거르고`요. 너무 마음 아파요.
다락방님에게 이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예요.

이제 조금 나아졌다니 다행이예요. 깊어진 아름다움을 갖게 되신 것 축하드리구요.
그래도, 아프지 마세요... 아프지 마세요...

다락방 2015-01-08 09:21   좋아요 0 | URL
점심을 거르고와 저녁을 거르고를 한꺼번에 하다니. 말도 안돼. 그쵸?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안아파요, 단발머리님.
바로 다음날 다 나았고요 그래서 족발에 소주도 마셨어요.
와인도 마셨는걸요.
지금도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전 늘 배가 고파요.

단발머리님,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진심으로요.
:)

무스탕 2015-01-0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빠 닭, 엄마 닭 한텐 언제까지고 병아리 맞죠. 병아리가 아프면 닭 가슴에 못 박힙니다. 아프지 마세요.
병아리 대신 닭이 아파줄수도 없고 병아리 혼자 아픈게 아니고 닭도 같이 아프니까 아프지 마세요.

다락방 2015-01-08 09:22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이제 안아파요. 아빠 닭이 보살펴줬거든요. 헤헷
고마워요, 따뜻한 무스탕님. ♡
 

자,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페이퍼는 아름답게 가보자. 아름답게 가기에 앞서, 이 페이퍼에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지평》에 대한 스포일러가 대박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에헴. 킁킁.

 

 

 

 

토요일인 어제.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광화문엘 갔다. 여차저차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잠깐 극장 근처의 까페에 들러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했다. 요즘엔 책읽기가 무척 더뎌 얇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가 꽤 시간이 걸린다. 작정하고 까페에 가 앉아 읽지 않으면 도무지 책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여튼, 그래서 나는 까페에 가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직원이 내게 깔끔한 맛을 원하는지 진한 맛을 원하는지 물었다. 응? 나는 깔끔한 맛을 택했는데, 씨발, 이제 앞으로 깔끔한 맛 안먹을라고 한다. 이 까페에서는. 맛이 찝찌름하다. 어떤 커피에서는 신맛이 나곤 했는데, 이 까페의 깔끔한 아메리카노는 그 신맛이 났고, 나는 그게 별로였다. 많이 마시지 않은 거라 가장 작은 컵에 시켰는데, 4,100원씩이나 하더라. 맛도 구려. 여튼 투썸플러스 아메리카노 깔끔한 맛은 내 스타일 아닌걸로...

 

그리고 책을 읽다가 곧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그는 그날의 날씨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쌀쌀하고 맑고 햇볕 좋은 오후, 겨울중에 찾아오는 봄, 그가 특히 좋아하는 계절, 1월이나 2월에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단 며칠만 찾아오는 그런 날. (p.155)

 

 

 

 

 

 

 

 

 

 

 

 

 

 

 

 

 

 

 

 

 

 

날씨는 누구에게나 찾아든다. 가만히 있어도 온다. 싫다고 도리질을 해봐도 날씨는 내 앞에 있다. 내 주변에 각자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날은 바람이 불 것이고 어떤 날은 유독 햇볕이 강할 것이다. 이 책의 화자인 보스망스는 특히 좋아하는 계절에 대해 얘기한다. 겨울중에 찾아오는 봄, 이라고 그 날씨를 표현한다. 이 감각과 기억이 너무 아름다워 지금 여기 이 까페에서, 이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옆에 두고 읽기에 정말이지 맞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망스는 전혀 좋지 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마르가레트는 역시 한 남자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다 서로를 만나게 된 그들의 젊은 시절이, 사십년이 지난 지금 보스망스에게 떠오른다. 마르가레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어제였나. 친구와 얘기하다가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를 했었다. 양가 부모가 다 살아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모자란 것없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세상이 정해놓은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적당한 직업을 가지고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적당히 살아가는 일. 이 일이 어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여느 가정의 모습일텐데, 그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살다보면 알게된다. 함께 하는 것이 불행해 따로 떨어져 살기로 결정한 부모, 준비물 챙겨가기에는 빠듯한 가정 형편,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나 바쁜 부모, 대화가 부족한 가족들, 한 가족의 밑빠진 독을 언제나 대신 채워주는 다른 가족 구성원. 차라리 이 모든걸 다 버리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한 가정이 많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보스망스의 이런 생각이 보여주는 그런 가족의 모습이 흔하지 않다는 거다.

 

 

 

대체 어떤 계기가 있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들, 자신 있는 입술과 눈빛으로 부모에게 사랑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한결같은 자신감과 적자嫡子다운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는 푸트렐 박사나 이본 고셰나 꼬맹이 페터나 당신이나 나나 모두 같은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건 어떤 세계였을까? (p.169)

 

 

 

오래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은 말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언가 잘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혼나는 게 싫어, 상사 몰래 상사의 자리로 가 서류를 고쳐놓기도 하는 직원이었다. 착하지만 답답했던 친구로 기억하는데, 그 친구는 내게 여러번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당시 나를 '언니'라 불렀는데,

 

 

언니 보면 사랑 받고 자란 티가 확 나요

 

 

라고.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건, 대체 뭘까? 그걸 어디서 어떻게 느낀 걸까? 누군가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는 건 본인이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그 친구는 사랑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걸까? 그때까지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가 그 친구가 회사를 말없이 관두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쩌면 그녀에게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녀의 몇가지 행동들을 떠올리며 할 수 있었다. 어제 책의 저 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직원이 떠올랐다. 그 직원이 내게서 본 건 한결같은 자신감과 적자다운 당당함 이었을까. 그 친구에게 나는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에 속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간혹 식구들과 그런 대화를 한다. 우리같은 평범한 가정이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라고.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면, 그건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먼 걸까?

 

 

금요일에 엄마와 둘이 외출하고 오면서 오래전에 사주 본 얘기를 했었다. 엄마는 내가 사주를 봤단 말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찡그리셨는데, 그 돈 있으면 맛있는거나 사먹으란 거였다. 그런 걸 왜 보러 다니고 왜 믿는 거냐고. 나는 그걸 믿는다기 보다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치유 같은 거라고 얘기했다. 막상 봤다고 하니 궁금한지 엄마는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러다가 나는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부모자리가 좋대, 라고. 그러자 엄마는 말씀하셨다. 니가 무슨 부모자리가 좋아, 우리는 돈도 없고 너한테 물려줄 유산도 없는 부족한 부모인데, 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인생의 목표가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거라면, 엄마랑 아빠가 나쁜 부모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지. 그렇지만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게 아니고, 나는 유산 같은건 받을 생각도 안해. 내가 돈 벌 능력이 있으면 나는 그 능력으로 돈 벌어서 내가 먹고 싶은거 먹으면서 살거야.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돈 많이 벌어 큰 집을 사고 싶은 것 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늙어서도 내 능력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주를 마시고 싶다면 소주를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와인을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돈만 벌면 된다. 그러다 조카나 동생들 같은 내가 무한정의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살 수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가진 게 없어서 물려줄 거 없는 부모가 나쁜 부모라는 생각은 안한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좋은 부모지 엄마, 내 여동생과 남동생같은 동생들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더라고. 그런 동생을 줬는데 완전 좋은 부모지.

 

 

엄마는 그건 늬들이 각자 열심히 살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뭐, 훈훈한 대화였다. 아, 근데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을까.....

 

 

 

나는 어제 외출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책을 마저 읽는다. 저 위에 인용한 문장처럼 아름다운 문장에 넋을 잃긴 했지만, 이 책이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은 마지막을 읽고서야 들었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두장쯤이 남아, 역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내처 읽었다. 그리고 아- 벅차올랐다. 이 소설은 아름답다고, 나는 가슴에 품고 싶어졌다.

 

 

보스망스는, 사십년 후, 마르가레트를 찾기로 한다. 그녀가 있다는 곳의 위치를 알게된 후, 거기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해럴드 프라이의 순례가 생각났다. 이제 나이가 많아져버린 그에게 걸음은 힘겹지만, 그는 조금씩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한다. 아직 그곳에 있는 사람이 '그녀'인지 확실하지 않다. 거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한 청년에게 길을 묻는다. 그녀는, 그녀일까?

 

 

"라디즈니코프 서점이라고 아십니까?"

그는 남자에게 영어로 물어보았다.

"네, 잘 알죠."

"서점 주인이 여자인가요?"

"네, 아마 프랑스 사람인 것 같아요. 독일 말을 할 때 프랑스 억양이 약간 들리거든요. 아니면 러시아 사람일지도 ‥‥‥"

"서점 단골이세요?"

"이 년 전부터요. 주인 여자가 사비니 광장 쪽에 있던 러시아 서점을 인수하고 이쪽으로 옮겨왔어요."

"그런데 서점 이름이 왜 라디즈니코프랍니까?"

"옛 러시아 서점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거예요. 전쟁 전부터 있던 서점이죠."

남자 자신은 미국인인데 몇 년 전부터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집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디펜바흐 가 인근이라고 했다.

"거기 가면 꽤 흥미로운 베를린 관련 책과 자료 들이 있어요."

"주인 나이가 몇 살쯤 돼 보이던가요?"

"선생님 나이예요."

보스망스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기억나지 않았다.

"가족은 있던가요?"

"아뇨, 제 생각에는 혼자 사는 것 같아요." (p.182-183)

 

 

아, 그는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사십 년만에.

 

 

잠시 후 그는 서점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를 잊었을 수도 있다. 사실 두 사람의 행로가 포개진 것은 아주 짧은 동안이었다. (p.183)

 

그가 그녀가 있는 서점의 문을 열기전.

 

오랜 세월 그는 마르가레트가 벌써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래, 그럴 리가 없다. 우리 둘이 태어나던 그래. 이 도시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잔해 더미에 불과했던 그해에도 공원 저 구석 폐허 사이에서는 라일락이 꽃을 피웠다.

너무 많이 걸었더니 피로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그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그는 공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와 옆에서 들리는 나직한 대화 소리에 몸을 실은 채, 반은 깨고 반은 잠든 듯한 상태로 부유하듯 걸었다. 저녁 일곱시다. 로드 밀러는 서점 주인이 밤늦도록 문을 열어둔다고 했다. (p.184)

 

 

 

서점안에 마르가레트는,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보스망스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그녀는 그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며칠전에 친구에게 읽어준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 마지막 부분을 떠올렸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지만,

 

내 걸음이 당신의 미래에 이르게 된다 해도

 

당신 놀라지 말아요. (p.237)

 

 

 

 

 

 

 

 

 

 

 

마르가레트에게 바로 위의 문장을 속삭여주고 싶었다. 놀라지 말아요, 보스망스가 당신 서점의 문을 열어도.

 

 

 

 

 

 

 

토요일날 본 영화는 '마리앙 꼬띠아르' 주연의 《내일을 위한 시간》 이었다.

 

영화속 여자는 우울증을 앓다가 직장에 복귀하려고 하는데, 직장의 사장은 직원들에게 '그녀의 복귀를 선택할 것이냐 너희들의 보너스를 선택할 것이냐' 의견을 물었다. 보너스까지 챙겨주며 한 명의 직원을 복직시키는 것 둘 다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만큼의 돈은 없다, 는.

 

거기에서 보너스를 선택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선택지를 준 윗대가리가 나쁘다.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굉장히 당연한 거니까. 그녀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설득한다. 보너스 대신 나를 선택해줘, 나도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해. 그러나 그녀도 그 말이 얼마나 닿기 힘든 말인지를 안다. 그들이 받기로 한 보너스의 금액은 크다. 일년치 전기세와 수도세가 해결되는 돈. 게다가 그들 나름의 사정도 있다. 집을 수리해야 하고 한 집안의 가장이라 생활비가 빠듯하고 등등. 그런 와중에 그 보너스를 포기해달라고 말하는 자신이 거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너를 선택할거야, 라고 해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난 보너스를 선택해야 해, 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너스를 선택했다가도 그녀를 보고는 도저히 마음에 걸린다며 그녀를 선택하기로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들에 그녀는 그들 모두에게 얘기한다.

 

보너스와 나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한건 내가 아니야.

 

그러나 마찬가지로 함께 일했던 직원들 역시 대답한다.

 

보너스와 너 중에 선택하길 강요한 건 우리가 아니야, 라고.

 

 

자, 일단 나의 경우.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그녀의 복직에 표를 줄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고 엄마의 비자금을 조금 찔러주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렇지만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형편이 어려워진다면, 그래도 그 편이 더 인간적이란 이유로 동료 직원의 복직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내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한푼이 아쉬울 때도 역시 마찬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너스를 포기하고 너를 선택할게, 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기로에서 '너'가 아니라 '나' 혹은 '우리 가족'을 택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그녀조차도 그들에게 '네 선택을 충분히 이해해'라고 말한다.

 

왜 윗대가리 새끼는 그 선택을 직원들에게 넘겨버리는가. 왜 그것을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정하는 것인가. 늬들이 언제 다른 일에 직원의 의견을 반영한 적이 있느냐. 아니, 애초에 이것은 직원의 의견이 아니다. 니가 준 선택지중 하나일 뿐이지. 아니, 그것은 선택지중 하나라고 볼 수도 없다. 사람들이 무슨 선택을 하든 네가 가지는 것은 같으니.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이점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사람이 어떤 고통 앞에, 어떤 병 앞에 힘들어 할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무슨 그따위 문제로 힘들어하냐' 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린 언제나 자신이 가진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또한 아픈 사람에게 엄살 떨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사람에겐 절실한 아픔이니까. 역시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절망 속으로 빠지는 것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 상황속, 직업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절망과 사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작업반장이 직원들에게 압박을 가한다는 것 모두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번번이 약에 의지하고 울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을 보는게 내게는 몹시 힘겨웠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를 기꺼이 돕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번번이 그녀를 일으켜세워주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녀의 옆에서 조금만 더 하면 된다도 격려해주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울면 안아주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기도 했다. 누구라도 네 상황이라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그렇게 주저앉는 것을 이해한다고. 그러나 그녀는 울다가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헤어질 것 같아.

 

남편은 그녀에게 무슨 말이냐 묻고, 여자는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동정하는 거잖아. 이렇게 오래 살 순 없어. 당신은 4개월동안 섹스도 못하고 살 수 있어?'

 

남편은 '앞으로 할거잖아' 라고 말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녀는 안정제 한통을 입안에 다 쳐넣는다. 하아- 진짜 힘들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녀를 보아주고 돌보아주고 격려를 준다는 것은 정말이지 위대한 일로 생각되어졌다. 같은 상황에서 내가 그럴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바스러지는 멘탈을 가진 사람에게 그때마다 번번이 사랑한다고 속삭여줄 수 있을까? 그런 위대한 사랑을 내가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먼저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녀는 잘싸웠고, 자신이 잘싸웠음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잘 싸웠다는 걸 받아들인 이상, 아마 다시 시작하는 일도 이제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잘 싸울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싸울 수 있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사십년이 지나도 당신에게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일전에 친애하는 측근님의 생선구이 포스팅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토요일에 친구와 드디어! 생선구이를 먹으러 갔다. (당신의 밥상이 내게 미친 영향이 이래요!!)

 

 

 

 

 

먹으면서 너무 맛있고 좋아가지고 막 흥분했다. ㅎㅎ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이걸 맛있게 먹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생선구이 만으로 소주를 내내 마실 수는 없다. 우리가 더 오랜 시간 얘기하며 소주를 더 많이 마시고 취하기 위해서는 2차는 다른 곳을 알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암튼 진짜 조낸 맛있었다. 행복할 지경이었음 ♡

 

 

며칠전에는 설거지하다가 또 빡이 쳤다. 나는 설거지를 할때면 곧잘 빡이 치곤하는데, 설거지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 싫어.. 가끔은 진짜 설거지를 할때면 다른건 다 필요없고 '내가 앞으로 설거지는 맡아서 다할게' 하는 사람에게 확 시집가버리고 싶은 심정이 된다. 못생겨도 된다. 내가 예쁘니까. 돈을 못벌어도 된다. 내가 버니까. 섹스를 못해도 된다. 안해도 살 수 있으니까. 다만 설거지만큼은 진짜 빠짐없이 꼭, 제대로, 자기가 다 맡아서 한다면, 나는 정말이지 시집 갈 생각도 있는 것이다!!!

 

금요일에는 네시쯤 밥을 다 먹었고, 일자산을 그때 갈 예정이어서 좀 초조해졌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어두워진 산은 무섭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아빠는, 야 해 떨어지기전에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안그래도 그럴거라며 아빠에게 '그래서 말인데 아빠, 설거지는 다녀와서 할테니까 그냥 둬요' 라고 했다. 아빠는 그래그래, 라고 하셨는데, 이 때 내 앞에 앉아 밥을 먹던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얼른 다녀와.

 

 

아.................진짜 울트라캡숑 나이스짱 멋진 동생이다. 남동생은 내가 설거지를 진짜 우라지게 싫어한다는 걸 알고 가끔 지가 설거지를 한다. 내가 할게, 하면서. 매번 그러는 게 아닌게 좀 문제지만 여튼 잘하는 편이다. 산에 오르면서 생각했다. 내 남동생은 진짜 멋지게 잘 자랐다고. 이런 누나를 만나 교육 제대로 되어있다고. 후훗.

 

 

아, 이렇게 쓰는 사이에도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가는구나.

 

 

마지막으로,

지평이 너무 좋아,

오랜만에 책을 읽어 보았다.

 

http://youtu.be/6NLWS0X7auU

 

 

 

오늘은 '난 네가 병신짓을 해도 좋아' 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욕이여 칭찬이여... 방점이 병신짓에 찍히는거여 좋아에 찍히는 거여....말한 이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젠장, 듣는 나는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돼, 왜 자꾸 병신짓에만 찍을라고 하냐, 나는.. 하아-

 

 

 

 

 

(2014/01/05 06:10  어제 저녁에 작성한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에 관한 글은 내렸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역시 그정도의 용기가 아직 제게 부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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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5-01-0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투브의 목소리는 락방님 목소리인가요???

다락방 2015-01-04 22:55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읽었습니다, 머큐리님.
일요일이 가고 있어요 ㅠㅠ

에르고숨 2015-01-0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래 페이퍼에 울분과 에너지를 쏟고 왔더니 <지평>과 <내일을>에 이은... 생선구이!! ㅜㅜ 다락방 님은 내 맘을- 들었다놨다들었다놨다들놨들놨. ㅜㅜ 계속 울면서 좋음요. 약방의 감초 같은 <사랑의 미래>도 너무 좋고요. 푹 주무세요, `친애하는 측근님.`
참, 목소리도 짱 좋으심! ㅜㅜ (전 조금 더 울겠슴미다흙흙)

다락방 2015-01-06 10:23   좋아요 0 | URL
그 아래페이퍼는 감당하지 못해 지우고 말았습니다, 에르고숨님. 아니 감춰두었죠. 미안해요. 에르고숨님의 댓글이 있는데... ㅠㅠ

근데 목소리 좋다는 칭찬, 좀 좋다요! 히히히히히. 사실 저는 제 목소리를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근데 자기 목소리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요? 이건 잘 모르겠다. 목소리 좋다는 칭찬에 다락방이 춤추고 있습니다. 헤헷.


단발머리 2015-01-05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 읽고 있는데, 어디가 좋은지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까, 얼른 마저 읽고, [지평]을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좋은 문장들이 많네요. 은은한 맛이 있어요.

다락방님 남동생은 여러모로 참 부럽습니다.
제게도 남동생이 있는데, 우리도 참 사이 좋은 남매간인데...
그래도 설거지는 안 해주더군요. ^^

책 읽기 이벤트, 자주 좀~~~ 해 주시길요. 나한테만 읽어주는 거 같애요. 흐흐~~

다락방 2015-01-06 10:34   좋아요 0 | URL
전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읽었는데 좋았어요. [지평]의 경우에는 읽는 동안에 잘 몰랐다가 다 읽고나서 확- 좋아졌죠. 제가 바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책과 내가 만나는 타이밍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제게 이 책은 지금 읽기에 굉장히 적절했어요. 헤헷.

책 읽기는 앞으로 간혹 하겠습니다. 단발머리님의 호응에 힘입어!! :)

2015-01-05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5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1-0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평을 읽어야겠어요! 얼른얼른
어제 저는 데리야키 소스를 얹은 연어구이를 했어요. 새해 기념으로 만화책에 나온 요리 이벤트에 응모할 요량으로 한건데... 막상 된장국에 그걸 떡 놓고보니 초라한거 같아서 풀죽어버렸어요.

우리 월요일을 견뎌봐요.
제 가족관계는 어디로봐도 실패라 그저 부럽습니다 다락방님.

다락방 2015-01-06 10:39   좋아요 0 | URL
무려 연어구이...를 했단 말이십니까, 휘모리님? 맙소사. 대박. 엄청 멋지시네요. 능력자!
전 일요일에 휘모리님 페이퍼에서 떡볶이 보고 완전 충동 받아서 떡 사고 양념 사와서 떡볶이 만들어 먹었어요. 제가 하면 정말이지 사람이 먹을 게 안되기 때문에 양념도 사와야만 했어요. 그래서 먹었답니다. 헤헷.

연어구이와 된장국의 정갈한 밥상이라니. 전혀 초라하지 않은데요? 정말로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완성된 밥상이에요, 휘모리님. 아주 근사한 밥상이고요. 밥까지 한그릇 퍼두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있다면, 게임 끝입니다. 연어구이를 할 줄 아는 여자사람이라니. 완전 쑝가게 멋있네요, 휘모리님.
:)

무해한모리군 2015-01-07 08:3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연어구이는 딱히 요리가 아니예요.. 그냥 굽고 간장이랑 양념좀 넣고 조리면 끝. 그러나 다락방님이 응원하시니 응모를 해봐야겠어요 ㅋㄷㅋㄷ

2015-01-05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ck Reacher 2015-01-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orry my darling. I cannot wash the dishes. The only thing I can do is shoot my enemy including your boss.
I just want to make you happy, but I am afraid my flaw would hurt you. I cannot wash the dishes.

Jack

다락방 2015-01-06 10:41   좋아요 0 | URL
설거지를 할 수 없다니...
아웃이네요, 잭 리처.

마태우스 2015-01-06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전 다락방님 포스팅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엉뚱함이 참 좋습니다. 영화얘기를 하다 갑자기 나오는 생선구이, 그리고 맨 마지막의 독백, 이런 것들을 참 좋아해요. 글구...카드 잘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보냈어야 하는데..>!!

다락방 2015-01-06 10:43   좋아요 0 | URL
헤헤 저도 마태우스님의 글을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마태우스님.
오늘 경향신문 받아봤는데 새로운 필진에 마태우스님이 똭- 계시더라고요. 유후-
앞으로 경향신문 읽는 일이 신나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드려요. 지면에서 뵙겠네요.
:)

마태우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다정하게 지냅시다!!

dreamout 2015-01-0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서야 새 아이폰이 통신 개통됐는데,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더니 아무것도 못봤더니..
뭔가 일이 있었나보네요.. 뭔지 모르지만 화이팅~

다락방 2015-01-07 09:56   좋아요 0 | URL
제가 사적인 페이퍼를 썼다가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하핫 ;;

좋은날 2015-01-0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목소리 정말 좋아요~

다락방 2015-01-08 09:22   좋아요 0 | URL
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 좋다는 칭찬은 제가 많이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날아갈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

로지 2015-01-1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광고메일에서 화재의 서재글이라는 소개가 있더군요. 글의 제목과 소설의 제목과 표지에 끌려 문득 들어왔습니다. `지평`의 마지막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다락방님의 일상이 따뜻한 느낌이라 좋습니다.ㅎㅎ

다락방 2015-01-12 09:04   좋아요 0 | URL
하하 좋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월요일이네요. 아무쪼록 우울하게 시작하지 않도록 하시구요,
[지평]은 좋은책입니다, 로지님. 전 참 좋았습니다.
:)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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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내 인생 어느 시점에 존재했든, 최종 목적지가 당신이라면, 나는, 결국, 당신에게 닿는다.
아름다운 소설이다. 주인공이 시간을 느끼는 방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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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결국 당신에게 닿는다. 너무 멋진 문구네요~^^파트릭 모디아노에게 이런 감수성이 있는줄 몰랐어요ㅎ

다락방 2015-01-04 22:58   좋아요 0 | URL
마지막에 그냥 훅- 오더라고요. 정말 훅-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어젯밤 친구가 보내준 마이클 볼튼의 라이브 동영상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소향 이란 가수와 함께한 무대였는데, 그 영상 자체는 좀 구리기도 하고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찾은 다른 영상으로 대체해보겠다.


http://youtu.be/T5BUJGhZlME


이 영상으로 대체한 이유는 순전히 음질 때문이고 내가 아침에 본 영상처럼 블랙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기 때문이다. 나는 라이브 하는 마이클 볼튼을 보고 진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이클 볼튼은 1953년 생이라고 네이버가 말해준다. 60세가 넘었다는 뜻인데, 와- 정말이지 블랙 셔츠에 청바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거다. 게다가 목소리도 젊었던 때와 다름이 없어, 이 사람은 자신의 몸 관리를 정말 잘하는구나 싶어지는거다. 젊은 남자의 경우에도 심플하게 블랙 셔츠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데, 블랙 셔츠 속의 몸은 탄탄하고 청바지를 입은 하체도 멋있고 와- 신체적 건강함이 주는 매력이란 이렇듯 사람 쑝가게 하는 구나 싶어지는 거다. 그런 몸을 유지하니 젊은 시절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 아침에 블랙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마이클 볼튼의 영상을 보면서, 아, 육체적 매력이란 이렇듯 사람을 홀리는 것이야, 라고 생각했다. 육체적 매력은 신체적 건강함에서 온다. 신체적 건강함은 물론 멘탈이 건강해야 이룰 수 있고. 



어제 과음으로 인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고, 출근길 스벅에 들러 텀블러를 내밀며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했더니 직원은 '매일 오시네요' 라고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오! 사흘 연속 갔더니 나를 이제 알아보네. 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음료가 나왔을 때는 다른 직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더라. 난 역시 해피 뉴 이어, 라고 대답했다. 기분이 좋았다.


육체적 매력과 밝은 인사들.



회사에 와서 다른 직원과 스벅 직원 얘길 하니, 자기는 거길 매일 가는데 그런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오늘도 갔다왔단다), 과장님 세 번 봤는데 직원이 그렇게 말을 걸어요? 한다. 나는 말했다.



난 예뻐서 그런지 사람들이 아는 척을 잘 해.


......




건강하게 잘 지냅시다, 우리.

육체적 매력을 지니고 삽시다.






어제 하루종일 폭식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Orz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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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12-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ppy New Year.. ^^*


다락방 2015-01-01 13:21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레와님! :)

2014-12-3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3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4-12-3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조지 클루니를 볼 때마다 감탄해요. 사람이 남자가 저렇게도 늙을 수가 있구나, 복도 많다, 이러면서.
부러운데요, 다락방님. ^^

아무개 2014-12-31 13:38   좋아요 0 | URL
아..조지 클루니는 정말 인정!!!!!

다락방 2015-01-01 13: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조지 클루니가 멋있죠. ㅋㅋㅋㅋㅋ 근데 저는 음, 볼튼이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
그러고보면 조지 클루니도 그렇고 마이클 볼튼도 그렇고, 외국에는 멋있게 늙어가는 남성들이 많은 것 같아요. 블랙 셔츠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아저씨라니..멋져! ♡

dreamout 2014-12-3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1월 1일은 숙취로 고생하지 않으시길 ^^

다락방 2015-01-01 13:24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어제 와인과 맥주를 하고 잤는데 오늘 숙취는 없네요. 전 숙취로 고생을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했었던 것 같은데..왜 안하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드림아웃님.
드림아웃님의 독서 목록을 새해에도 열렬히 기다리며 관심있게 읽도록 하겠습니다.
:)

야클 2014-12-3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날이 더 예뻐지시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다락방 2015-01-01 13:25   좋아요 0 | URL
우앙- 야클님이닷!
제겐 아직도 야클님이 체리 드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하하하. 전 야클님과 체리 공유한 사이..(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야클님.
새해에도 늘 지금처럼 재미있는 글 써주세요.
언제나 유쾌한 성정 잃지 마시고요.
:)

Jack Reacher 2015-01-01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appy new year, my darling.
You have a special physical attraction, especially your abdomen.

다락방 2015-01-04 22:58   좋아요 0 | URL
Good night, Jack.

에르고숨 2015-01-0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때마다 뵙네요, 잭 리처 님은.ㅋㅋ
`육체적 매력을 지니고 삽시다`라는 말씀이 아주 건강하게 들립니다. 다락방 님 기쁘고 슬프고 `똘끼어린` 책과 일상 이야기 새해에도 꾸준히 써 주세요. 제가 엄청 좋아하는 거 아시죠? 새해 복!!

다락방 2015-01-04 22: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분은 언젠가부터 나타나시네요. 한글도 읽으시며 영어도 쓸 줄 아시는 분이신가 봅니다.

에르고숨님, 육체적 매력을 지니고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후훗. 건강하게 오래오래 그리고 다정하게 지냅시다.
에르고숨님이 저 좋아하는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어어어어~~~~ 저도 에르고숨님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수줍)

우리 지금처럼 자주 만나요, 에르고숨님!
:)

서니데이 2015-01-01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새해 첫 날이라 인사 드리러 왔어요.
올해도 재미있는 책과 맛있는 이야기를 많이 기대할게요.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셨으면 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5-01-04 23:0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쁜 것들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이 기쁘고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

자하(紫霞) 2015-01-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리처님의 댓글에 빵 터지면서 ㅎㅎ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그 유쾌함 올해도 계속 지속되시길...
그리고 남동생과 운동도 계속 하시길...저는 다락방님을 오랫동안 보고 싶으니까요.^^

다락방 2015-01-04 23:00   좋아요 0 | URL
네, 자하님.
우리 건강한 습관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여기서 만나요.
오랜만에 뵙네요, 자하님.

해피 뉴 이어!!
:)
 

아침 출근길에 양재역 8번 출구로 나오면 대체적으로 행복하다


라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지하철에서 내내 이 노래를 듣다가 가슴만 두구둥두구둥 거리고 말았다.


http://youtu.be/e-ijD7kdTs4



책도 못읽었어...


8번 출구로 나와 회사까지 걸으면, 그 시간이 무척 행복해서 부러 선택한 방향이었다. 5번 출구가 2-3분 정도 시간은 더 적게 걸리는데 말이지. 물론, 8번 출구로 나온다는 건, 그 앞의 스벅에 들른다는 걸 의미한다. 어제 마침 조조 모예스의 신간을 샀다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스벅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 온 게 아닌가. 아침에 들러 커피를 마시자, 싶어 텀블러를 들고 스벅에 가 커피를 받고, 또 힘차게 걸었다


라고 쓰고 싶지만 저 노래 때문에 힘차게 걷기는 개뿔...눅진눅진. 아주 감상에 쩔어가지고 나를 누군가 빨래 짜듯 짠다면 줄줄줄 감상이 흘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아- 이래가지고야 마음먹은 대로 《자살의 전설》과 《지평》에 대한 얘길 할 수 있을까? 힘들어..에너지 딸려.........치킨 먹고 싶다. 아침부터. 어젯밤에는 생선 구이가 먹고 싶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는데..하아- 치킨 먹으면 에너지가 솟아날 것 같아. 그러면 자살의 전설과 지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텐데...



라고 쓰지만 역시 자살의 전설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자.


















얼마전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나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사람은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해야 한다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의 한 몸을 챙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자신의 몫을 잘 살아내고 자신의 한 몸을 잘 건사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한다. 존재 자체가 부담이나 기 빨리는 게 아닌, 내내 신경쓰이고 걱정하게 만드는 게 아닌, 그저 순수하게 '좋아함'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말을 힘들다는 말을 내내 들으면서 마음 끓이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채워나간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상대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 보다는 더 많이, 믿음과 안정감, 그리고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 이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안에, 연민이나 동정이 끼어들기를 원치는 않는다. 물론, 내가 이렇게 원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이렇게 구성되어질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분명 친근한 누군가에게 더 많이 기가 빨리고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기를 쪽쪽 빨아먹고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러길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밴'은 어릴 적에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한다. 그걸 '경험'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 그 특별하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 그는 놓여있었고, 그는 그로부터 혹은 그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는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 《자살의 전설》.

이 책을 읽는 일이 당연히 기쁠 리 없다. '코맥 매카시'의 뒤를 잇는다는 찬사에 나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책을 펴들고, 그러다 등장인물들이 놓인 상황에 힘이 빠져 버린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이다.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 내 행복을 뒤로 미루는 일은 어리석다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둘은 너무 적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닉 혼비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들려주는데, 이 책을 읽다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너뿐이고 너에게 나뿐이라면, 우리 둘중 하나가 사라졌을 때 다른 하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내내 '자살'이 화두가 되는 이 소설 속에서 '자살'이란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삶을 혹은 죽음을 자신이 결정한다는 것에 굉장한 회의가 드는 것이다. 그래도 될까? 정말 그래도 되는걸까? 평생을 아버지의 자살에 휩싸여 사는 아들이 있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아들의 자살 때문에 이도 저도 못하고 도망칠 생각만 하는 아버지가 있는데, 과연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그래도 되는' 일일까? 모르겠다. 특히나 <수콴 섬>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꾸만 그리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많이 무거워졌다. 본인이 약하다는 것을 그렇게 자주 드러내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당신이 그렇게 약한 모습을 수시로 드러내면,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대신 아버지 옆을 선택한 아들의 기분은 대체 어떻겠냐고 어깨를 붙잡고 흔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둘은 바다를 따라 걸었다. 구름이 짙고 이슬비가 내렸다. 파도는 희미하고 바다는 불안하게 들끓었다. 이곳은 가파른 해안으로 전에는 거의 와본 적이 없었다. 산책은 반대편 곶을 돌아 그다음 곶까지 이어졌다. 둘 다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자 없이는 못 살겠다. 너와 이곳에 있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내 여자 생각이 나는구나. 여자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왜 그런지 모르겠다만, 주변에 없는 존재를 어떻게 이렇게 아쉬워 할 수 있는지, 원. 그러니까 아무리 바다와 산과 숲이 있다 해도 여자와 자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p.149)




여자와 자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사람들이 전혀 없는 수콴 섬으로 거주지를 이동한다. 십대 아들을 데리고. 아들은 엄마와 여동생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암울할거라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밤에 우는 아버지를 알고 있으므로 '여기 있을게요' 라고 정말 그러고 싶은 것처럼 얘기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정말로 그러한 줄 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들으려 하기 때문에. 왜 '진실'과 '진심'을 듣는 일이 그렇게나 '늦게' 우리에게 오는 걸까.



전신의 감각이 사라졌다. 갑자기 피곤하다 싶더니 입속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로이 생각이 났다. 그 애는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로이의 죽음은 순간적이었다. 짐은 자신도 모르게 물을 토하고 다시 물을 삼켰다. 마치 마지막 물이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들이켰다. 차고 딱딱하고 불필요한 물. 그리고 로이가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랑으로 충분해야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깨달음이란 왜 이렇듯 늘 늦기만 한지. (p.263)


죽음의 순간에서야 나에 대한 누군가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은 너무 '늦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오래전에 깨달았다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가 분명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그걸 깊고도 깊게 들어가보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에겐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남자는 크게 절망해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자살을 시도하기 바로 직전,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자살을 진행할 것인가 전화를 받을 것인가 고민하던 남자는 자살하려던 걸 잠시 멈추고 전화를 받는다. 전화는 누나로부터 온 것이었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자살은 연기되었다. 그는 상복을 챙기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자살의 연기는 좀 더 연기된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이 우연들이 겹치는 장면들을 보고,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분명 슬픈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그 죽음으로 누나가 전화를 걸고, 그 전화를 받음으로써 남자는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내 관심을 갖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죽음에서 조금은 더 멀어지고, 결국은 삶을 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자살의 전설》속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또 아들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게 있었을까. 어떤 관심, 어떤 사랑, 그리고 어떤 대화들이 그들을 자살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 자살을 선택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아있는 자들에게 삶은 어김없이 계속되겠지만, 그 삶의 수많은 순간들에 고통이 찾아들 것이다. 아프다.



어젯밤에도 친구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안정된 일이다.



이 책의 문체는 이 책의 띠지에서 말한 것처럼 조금 코맥 매카시를 닮긴 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줌파 라히리'를 떠올렸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대로 나아갈 때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러했다. 치과 의사를 원하지 않았지만 치과 의사로 살고 있는 아버지를 묘사하는, 이런 부분이 그랬다.



하나의 삶을 타인의 삶 안에 구겨넣을 수 있다면 타성은 소멸할 것이다. 깊은 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아버지는 오랫동안 차를 몰아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내 작은 충치 신경을 뚫고, 구멍을 때우고, 치형을 만들고, 가르치고, 흘겨 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전 생애가 우그러지고 왜소해졌다. (p.271)



책을 읽을 때는 그저 아프다는 느낌 뿐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더 많이 생각이 난다. 수콴 섬이.






친구와 나는 오래전에 이 영화를 보았다. 

어제 우연히 이 영화의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당연히 자세히 기억날 리 없었다. 여자는 세금을 안냈어, 라고 내가 말했고 남자가 세무사였던것 같아, 라고 극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말하려 갔다가 여자를 처음 만났던 것 같아, 그녀를 버스에서 보고 내릴 역을 지나쳐 그녀를 따라 내리지, 라고 내가 말했고 그랬던 것 같아, 라고 그가 말했다.복합 구조였고 남자는 자신이 소설속의 주인공임을 알고 작가를 찾아가지, 라고 그가 말했고, 아 그랬던 것 같아, 라고 내가 말했다. 그러다 이 영화를 본 후에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얘기했는데,


오늘 아침, 뜬금없이 이 영화속 장면이 떠올랐다. 어제 말하지 못했던, 기억하지 못했던 장면이.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로 밀가루를 주는 장면. 그리고 그 장면 때문에 그 당시에도 그와 대화했던 것이. 나는 그저 밀가루를 준다고 웃었는데, 그는 내게 말했었다.


flower 대신에 flour 를 주는 건 유희겠지, 라고.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밀가루가 영어로는 flour 이구나! 나는 그녀가 빵집을 하기 때문에 밀가루를 선물한다고 생각했어!



어제는 기억나지 않았던 이 장면이 뜬금없이 기억나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메로베. 성이었나, 이름이었나? 하지만 명멸하는 불빛이 아주 꺼져버릴까 두려워 이 문제에 길게 몰두할 수 없었다. 수첩에 이 이름을 적어넣은 것만 해도 벌써 소득이었다. 메로베. 다른 것으로 생각을 돌리는 척하기. 기억을 밀어붙이지 않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제 스스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려면 그 수밖에는 없었다. 메로베. (p.11)









남자는 젊은 시절의 기억들이 희미해짐을 깨닫고 몰스킨 수첩 하나를 준비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기억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한다. 그리고 그 파편의 조각들로 기억들을 되새겨보려고 한다. 메로베. 기억난 그 이름이 성이었는지 이름이었는지도 모르는채로 그저 두다가, 마침내는 그에 관련된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메로베 주변의 사람들까지. 그가 누구와 연관이 있었는지도, 그리고 그가 그 당시의 '그녀'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됐는지까지도, 서서히, 결국은, 떠올리고 만다. 이 남자와 내가 겹쳐졌다. 몇 년전에 본 영화를 툭- 던졌고, 이랬던가 저랬던가 기억 나는 부분들을 던지며 서서히, 그렇게 기억들을 찾아냈고, 밀어붙이지 않고 놓아두었더니 오늘, 불쑥 생각나잖는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지평에서 이런 기억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구나, 새삼 다가왔다. 






이번호 시사인에는 읽을 거리가 아주 풍성하다. 

어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굴뚝에 올라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기업이 있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항상 먹먹하게 한다. 이런 일들을 알고 있다는 건, 유의미하다. 지금 당장 액션을 취하는 게 아니어도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느 방향을 봐야할지를 알 수 있으니까. 알고 있다면,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사도 무척 좋았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글은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여동생이 오면 읽어보라 권할 것이다. 




다시 저 위에, 출근길 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와- 그냥 짜면 감성이 후두두둑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보니 에너지가 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분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뭔가 더 에너지를 써야할 것만 같아졌다. 그러다 가로수를 보며 생각했다. 아, 장작 패기! 장작 패기는 어떨까. 나무를 잔뜩 도끼로 찍고 베고 하는 일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니, 그러다보면 이 축축한 감성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럴 바엔 아예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벌목꾼이 되는 건 어떨까. 나는 벌목꾼이 되어 하루 온종일 나무만 베어대는 거다. 그러다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나무 그늘에 앉아 좀 쉬면서, 또다시 어김없이 감성이 나를 덮치려고 하면 다시 벌떡 일어나 나무를 베고...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버터를 잔뜩 발라 구운 세숫대야 만한 스테이크를 먹고...그러다 일이 끝나면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술을 퍼마시고 기절을 하고....그러면 이 감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육체의 고단함에 감성을 뒤로 좀 던져둘 수 있지 않을까.

감성에 푹 젖어 벌목꾼이 되고 싶어지는, 그런 아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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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시사인을 읽어봐야겠어요.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니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음음음..

더 행복해져요 우리

다락방 2015-01-01 13:26   좋아요 0 | URL
차마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기사입니다, 휘모리님. 일독을 권합니다.
휘모리님, 우리 행복하게 지내도록 해요.
나중에 늙어서 서로에게 찾아가고 따뜻한 차 한잔을 같이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지금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야 하는 겁니다.

[그장소] 2014-12-3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을 보면 늘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가는데 한 의지하는 우리의 그
나루토군이나 루피군이 떠올라요.
일단은 씩씩하고 열정적이고 건강해뵈요.
외모는 병의 유무는 제가 전담 주치의가 아니니 모르나 글에 묻어나는 영양이 그래요. 그래서 이단은 삐딱한 저는 항상
읽으면서 이럴수도 저럴수도 라며 글에 대한 답변을 브리핑해요..그런데..나루토나..루피가 가진게 그거 잖아요..얄짤없는 삐딱군도
결국은 어느사이 저만치서 마음으론 한편이 되어 응원하고 그들의 길을 지켜보게 된다는 거요. 이 바보야.하면서 무르다..세상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라고 네가 보는게 다가아냐..라며 일장 연설하던 일명 쓴맛 좀 보고 어둠으로 돌아서서 적이라는 상황으로 대치하고있는 와중에도 그들의 속 깊은 어딘가를 건들여 놓고 말고..살아서 헤어지면 어디 너의 길을 지켜봐주지..하게 만들고. 혹 죽게 되도 일생의 오점인 어느한때를 되새기며
알려주려 하죠.내 길에 이런 허방도 있을거야..그러니 꼬마..조심해..라든가,
네...! 이 모난 심정은 한편 그들같이 그러다
이젠 뒤편에서 아..이 사람이 어떤길을 가는지 보고싶다..그래졌달까요.
역시 건강한 마인드는 어둠을 뚫고 이윽고는
날이 밝을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항상 다음글은 어떨까? 기대하며 봅니다.
에너지 충전 하고 갑니다.
블링블링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v

다락방 2015-01-01 13:2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그장소님.
일단 나루토군이나 루피군이 뭔지..제가 잘 모르겠어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캐릭터인가..라고 생각해볼 뿐입니다. 하핫;;
씩씩하고 열정적이고 건강한 것이 제가 삶에서 추구하는 바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행복을 가지고 각자의 몫을 충실히 건강하게 살아내기를 원하기도 하고요.
항상 다음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니,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할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건강하고 씩씩해야겠지요. 후훗.

그장소 님께 에너지 충전의 기회를 드렸다니, 제가 다 기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장소님. 자주 봬요.


레와 2014-12-3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어찌됐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변함없네.
이 생각이 변하기 전에 마지막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



다락방 2015-01-01 13:31   좋아요 0 | URL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는 것과, 내가 위 페이퍼에서 말한 자살과는 약간 다른 것 같아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마지막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도 수긍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가 십대초반인데 아버지가 자살하는 상황 같은 것은, 그 아버지의 삶이 어떠했다한들 아들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큰일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십대의 아이가 자살하는 것은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라고만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남아 있는 아버지의 삶을 아주 크게 뒤흔들어 버리니까요. 아무쪼록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다정하게 지냅시다, 레와님. 가끔 푸지게 수다를 떨면서 말이죠.

:)

2014-12-31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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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1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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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5-01-0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평>은 계속 구매를 망설이고 있던 책인데, 저렇게 `기억들에 대해 얘기`한다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고마워요, 다락방 님. 그리고- 벌목꾼이 되고 싶은 마음, 뭔지 너무 잘 알겠능;; ㅜㅜ

다락방 2015-01-04 23:01   좋아요 0 | URL
에르고숨님, 지평은 에르고숨님 마음에 드실 겁니다. 다 읽은 저는, 다 읽고나서 더 좋아진 책입니다.
:)

일요일이 다 가서 미칠것 같아요, 에르고숨님. 연휴가 나흘이나 됐는데 전 뭘했을까요? 내내 먹은것만 생각나네요. 힝 ㅠㅠ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