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한 대를 놓친다는 건 단순히 그 한대의 몇 분만 잃는다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해 환승열차까지 놓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언제나 그 시간에 타던 열차, 그것을 탄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열차는 때로 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늘 이시간대에 오는 것은 맞는데, 내가 5호선에서 내려 3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환승역에 도착하면, 잠시후 열차가 들어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아직 환승역에 도착하기 전,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열차가 도착해있고 문이 열려 있었던 거다. 저 열차다. 저걸 타야해! 저걸 놓치면 나는 십분 정도를 잃는다! 그래도 지각하진 않지만, 십분을 잃고 싶진 않아. 간혹 이런 일이 있던 터라 나는 늘 그랬듯이 뛴다. 계단에서도 후다다다닥 뛰고-라고 했지만 사실 멈춰있는 에스컬레이터였다-, 완전히 계단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열린 지하철 문을 향해 뛴다. 나만 뛰는 게 아니다. 다들 바쁘다. 다같이 뛴다. 다 같이 뛰자 동네 한 바퀴. 그러다 보니 저쪽에서 뛰던 아저씨와 이쪽에서 뛰던 내가 쾅- 하고 부딪친다. 그 아저씨도 나도 동시에 어! 하지만, 그 아저씨는 나를 흘깃 보고는 지하철 안으로 탑승하고 나는 허우적허우적 휘청휘청 대다가 그만 슬라이딩- 해버렸다.
씨발.
저거 타야해.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지하철 안으로 탑승하고 내가 타자마자 지하철 문이 닫힌다. 검정색 스타킹엔 이미 땅바닥의 먼지가 묻어 있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타자마자 옆칸으로 옆칸으로 옆칸으로 옮긴다. 이쯤되면 내가 넘어진 걸 본 사람이 없겠지. 그리고 빈 자리에 가 앉아 무릎을 터는데, 흑흑, 너무 아프다. 손바닥도 욱씬욱씬 무릎도 욱씬욱씬. 너무 아프다. 아파. ㅠㅠ 너무 아파. ㅠㅠㅠ 그런데 그 아픔보다 더 큰 크기로 쪽팔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덩치도 산만한 여자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 큰 여자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넘어졌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뭣이지, 이름이, 퍼기. 여튼 그 여자가 그랬는데. 다 큰 여자는 울지 않는다고. Big Girls don't Cry. 흑흑. 눈물이 핑 돌지만 울지 않는다. 그러다가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게 뭐야. ㅠㅠ 이러면서 눈물이 나는데 웃기고 웃긴데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는데 웃기고..이걸 반복하다가 아, 이제 진정하고 책 좀 읽자, 하였는데, 그때 내가 왼 손에 들고 있던 책, 그러니까 넘어지면서도 들고 있던 책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아-
야.
문학이 어떻게 데이비드 실즈의 삶을 구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있건만, 이 책은 나를 넘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의 양손은 균형을 잡으려고 허우적대다가 결국은 균형을 잡지 않았을까. 내가 균형을 잡지 못해 허우적 대다 결국 넘어지고야 만건, 이 책이 한 손에서 무게를 불균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문학은 데이비드 실즈의 삶을 구했지만, 결국 나를 넘어뜨린 게 아닌가.
야.
나 출근 베테랑이야.
내가 아침마다 이 시간에 출근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랜 시간 한 줄 알아? 어떻게 이 내가, 이 내가, 넘어질 수가 있지? 어째서? 이 아침에? 다 큰 여자가? 왜? 어째서?
아...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멈추질 않는다.
나 출근 베테랑인데...
오래전 노래, 고신해철의 <도시인>에서는 '직장이란 전쟁터' 란 가사가 나오는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겐 직장에 가는 길부터가 전쟁터란 생각이 든다. 아,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여기 있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데이비드 실즈'의 다른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재미있게 봤었다. 아주 재미있게. 진짜 키득거리면서 재미있게 봤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책만큼 재미있지 않고 처음엔 산만하다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산만한 걸 딱히 좋아하질 않아, 흐음, 이건 읽지 말까 하고 포기하다가 이내 아주 재미있는 부분을 읽게 된다. 아, 너무 흥미로워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길동역에 내려서는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읽었다니까. 아, 이러면 안되는건데...
물론 책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많은 부분은 '내가 가진(생각하는) 어떤 것'과 겹치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이 에피소드도 마찬가지. 내가 아주 긴 부분을 굳이 옮기고자 하는 건, 내 경험과 어느 정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 남자를 좋아하면서, 나는 그에게 '당신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자기에 대한 글을 쓴)일기장을 보여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일기장은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대꾸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데이비드 실즈는, 일기장을 본다. 읽는다. 그 일기를 쓴 여자 몰래. 그 방안에 숨어들어서. 아...오 갓. 신이시여. 그가 나의 일기장을 볼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ㅎㅎㅎ 여튼, 아주 길지만 한 번 옮겨 보겠다. 우리, 다같이 재미있어 보도록 하자. 특히 당신, 집중해 읽으시라.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동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레베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 그녀는 나의 작은 몸짓 하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우리가 키스를 하거나 헤엄을 치거나 길을 걸을 때면, 나는 한시바삐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서 나의 어떤 말이나 내 몸의 어떤 움직임이 그녀의 일기에서 칭송되었는지 알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녀의 침착하지 못한 손글씨가, 자줏빛 잉크가, 멜로드라마 같은 이 일 전체가 좋았다. 내 존재의 모든 측면을 나 자신에게 혹평 당하는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칭찬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중독적인 휴식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D. 를 사랑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처럼 완전하고 완벽하면서도 집착없이 순수했던 적도 없다. 가끔은 그를 황금빛 물처럼 마셔버리고 싶을 정도다." 당신이라면 자신에 대한 이런 글을 읽은 뒤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며 밀턴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가끔 그녀는 목욕 가운 바람으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책을 돌려주기 위해서, 아니면 그녀가 막 썼거나 읽은 글에 대한 내 반응을 듣기 위해서. 그녀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걸어 가려고 했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포옹했다. 처음에는 방 앞 복도에서, 잠시 뒤에는 내 방이나 그녀의 방에서, 침대에서. 나는 열두 살 이후 아무하고도 키스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고등학교 내내 끔찍한 여드름에 시달렸다), 레베카를 산 채로 삼킴으로써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날 때까지 깨물었고, 그녀의 얼굴을 핥았고, 그녀의 귀를 씹었고, 그녀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그녀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쥐어짰다.
일기에서 그녀는 평생 이런 키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나를 보고 난 뒤에는 늘 잠들기가 어렵다고 썼다. 나는 그녀의 가운 허리띠를 잡아당기면서 이불 밑으로 이끌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내가 그녀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 눈이 멀어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그녀는 이런 표현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날씨가 완전히 추워지기 직전에, 우리는 산으로 하이킹을 갔다. 첫날 그녀는 배낭을 침낭 발치에 두었다. 우리는 몇 분 동안 부드럽게 키스했고, 그녀는 곧 잠들었다. 그러나 둘째 날 그녀는 배낭을 베개 삼아 머리 밑에 두었다. 나는 칠흑처럼 까만 하늘을 응시하면서 레베카의 머리 뒤 흙에 손가락을 파묻었고, 처음으로 두 번째로 세 번째로 네 번째로 그리고 아마도 열네 번째로, 거의 순식간에 절정에 올랐다.
그 후로 나는 차마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여성의 40퍼센트는 자신이 흔히 오르가슴을 가장한다고 고백했다는 조사 결과를 읽은 적이 있었다. 레베카는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었지만-남부 유대인이라는 흥미로운 변칙 사례였다-몸을 잔뜩 뒤틀면서 신음과 교성을 냈다. 만일 그것이 연기라면, 나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엔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매일 밤 다리로 내 몸을 휘감고 뭔가를 외쳤는데, 처음에는 독일어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야 "아, 내 아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아들? 그녀에게도 자기만의 문제가 있겠지, 나는 짐작했다. 우리는 주피터 교향곡을 틀어놓고, 우리도 몰아치는 크레셴도에 맞추어 절정에 오를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 나는 그녀 위에 앉아 그녀의 입에 들어간 채, 그녀 방의 파란 벽을 응시하면서, 온몸이 짜릿하게 파래지는 것 같아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위에 앉아 엉덩이를 돌리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그만" 하고 말했다. 나는 "그만?" 하고 대꾸하고 그만했다. 그녀는 내 뒤통수를 움켜잡으면서 "그만? 장난해? 그만하지 마" 라고 말했다.
학기 말에,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서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고 짐을 싸던 중, 레베카의 일기를 읽은 것에 대해서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와 키스할 때마다 눈을 감으면 내가 그녀의 책상에 앉아서 일기장을 넘기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짓을 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녀에게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
"보고 싶을 거야. 가기 싫어." 나는 대답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얼굴을 마주하고는 도무지 고백할 수 없었던 말을 편지에 다 털어놓았다. 쭉 그녀의 일기를 읽었다, 너무 미안하다, 우리 사랑은 여전히 순수하고 우리가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그녀가 고든에게 돌아가고 나와는 두번 다시 말도 섞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다 이해하겠노라고.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 애초에 내가 그녀의 일기를 읽음으로써 힘을 얻을 필요는 전혀 없었고, 일기를 내버렸으며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고, 나를 용서하고 싶지만 자기는 신이 아니고, 그래도 신보다 자기가 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다시는 거짓믈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내 말을 다 믿겠다고 했다. 그녀가 보기에, 우리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
글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온 날 밤, 그녀는 내 방문에 "나한테 와"라고만 적은 쪽지를 붙여두었다. 우리는 가을 학기의 분방한 방종을 흉내 내려 애썼다. 그러나 두어 주 전만 해도 지극히 본능적이었던 행위는 이제 괴로울 정도로 자의식적인 행위가 되었다. 관계는 급속히 냉랭해졌다. 심지어 그녀는 한동안 고든에게 돌아갔지만, 두 번째 시도도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이제 와서 보건대, 내 입장에서는 대단히 이상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녀의 일기를 읽어서 나 스스로 상황을 망친 뒤, 일기를 읽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림으로써 우리 둘 모두의 상황을 확실히 망쳐버렸다. 그냥 나 혼자만 사실을 알고서 차츰 수치심이 옅어지게 놓아둘 순 없었을까? 나라는 인간은 대체 뭐가 문제인-문제였던-걸까? 내게는 남보다 큰 자멸의 버튼이 있어서 남보다 더 세게 더 자주 그걸 눌러대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내게는 사건에 대한 언어가 적어도 사건 자체만큼 에로틱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지 못하게 되자, 예전만큼 굳게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비극적 결함 아니겠는가. (p.61-65)
아,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 어린(젊은?) 시절의 데이비드 실즈를 떠올린다. 헤엄을 치며, 이 자세로 헤엄치면 나를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고심하던 청년을. 상대의 입술을 깨물며, 여기에 대해서는 일기장에 어떻게 적힐까, 라고 동시에 생각하던 청년을. 또한, 레베카를 떠올린다. 그와 포옹하고난 뒤 일기장을 열어 그날 하루를 다시 생각하며 적어내려가던 여성을, 그의 팔에 안겨 안도했던 느낌을 적어 내려갔을 여자를, 헤엄치던 그의 근육을 보며 가슴 떨리던 걸 다시 끄집어내는 여자를. 아, 무릇 일기 쓰는 여자는 사랑에 빠진 것인가. 여자가 일기를 쓰는 것은 내 삶의 중심에 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남자가 그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그녀의 삶에 자기가 중심임을 자꾸만 생각하고 싶은 것인가. 여자가 일기를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를 떠올리는 것이고, 남자가 그 일기를 읽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나(자기 자신)'를 보고 싶은 걸까. 아, 이것은 이 책을 통틀어(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암튼 이 책을 들고 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넘어졌으며, 지금 보니 왼쪽 손에 작게 멍이 들었다. 이게 다, 이 책을 들고 넘어져서 생긴 일이다. 왼 손에 들고 있었고, 책을 놓지 않고 넘어져서 멍이 든거야. 문학은 내 손을 멍들게 했어...
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거창한 일을 열심히 실행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하는 건 고작해야 텀블러를 들고 커피를 사는 일이고,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하는 일 뿐이다. 그러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자, 생각한 게 면(천)생리대 사용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생리기간 내내 가방에 넣고 다니고, 빨고 하는 일들이 번거롭게 느껴져, 항상 '다음부터' 라고 미루기만 했다. 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영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미룰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젊고 건강한 육체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환경호르몬에 맞서 열심히 싸워줬던 내 육체. 그러나 이 육체가 작년부터 젊음에서 약간 빗겨나간 것 같다. 환경호르몬에 맞서 싸우다 상처를 입었달까. 일회용 생리대가 나를 아프게 했고, 고통스럽게 했다. 해서,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도보다 더 먼저, '내 고통을 막기 위해' 면생리대 사용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자 회사동료 e 양이 본인이 준비해둔 면생리대 몇개를 내게 써보라며 주었는데, 그래 어디 한번 써보자, 하고 썼다가 오,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면이 내 피부에 닿자마자 안정이 되는 거다. 이것은 어쩌면 그저 '이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일회용 생리대보다 피부에 닿는 느낌이 더 좋았다.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나는 면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아직 생리기난 내내 면생리대를 쓰는 것은 번거롭게 느껴져, 일회용과 번갈아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가지 느낌 혹은 생각이 교차한다. 내 젊은 육체는 이제 서서히 지고 있는가, 왜 더이상 환경호르몬과 싸워 이기지 못하는가, 하는 씁쓸함.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했다는 의도로 처음에 시작했으면 명분이라도 있을텐데, 이건 내 육체를 위해서였네, 라는 씁쓸함.
오늘 아침 출근길, 양재역에서 회사까지 걸으면서, 이렇게 내 육체가 점점 더 시들어가는건가, 하고 생각하노라니 그 증거가 또 하나 생각났다. 바로 '손'이었다. 내 손은 길고 가늘어서 예쁜 손이 아니라, 고생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란 손 같아서 예쁜 손이다. 그러니까, 맨질맨질 주름도 없는 그런 손. 손만 보면 부잣집 딸같달까. 여튼, 그러므로 나는 내 손을 보호해야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남들이 핸드크림 발라도 그따위, 하면서 콧방귀를 꼈달까. 이십대 중반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남자들 세 명과 술을 마시는데 그중 한남자가 모태솔로 였다. 그가 내 옆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내 손을 스쳤고, 그러자 깜짝 놀라며, 오 여자 손을 이런거냐며 한 번만 만져보면 안되겠냐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래 한 번 만져보렴, 하고 손을 내밀었고,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덥썩 잡고는, 와 엄청 부드러워, 여자 손은 이런거에요? 이러면서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하는 거다. 그때 앞자리에 앉았던 남자 둘은 그게 웃기다고 낄낄대고, 뭔가 나는 애틋한 마음이 되어 아,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남자라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남자친구가 델러 왔어요 이제 그만' 하고는 일어나서 나왔다. ( ")
그런데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하거나 손을 씻거나 하면 손이 거칠어지는 느낌이 왔다. 아! 이건 뭐냐...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핸드크림을 바르는 이유를 알게된 것이다. 이 거친거 잡아주려고 핸드크림 사용하는 구나. 그때까지 핸드크림 선물 들어오면 주변에 뿌렸는데-난 이런거 안써-, 이제는 내 돈 주고 내가 쓸려고 직접 핸드크림을 사기도 한다. 아-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면생리대를 쓰면서, 핸드크림을 사면서...
늙어가는 육체의 쇠잔함..
새로 나올 갤럭시 6 은 내 타임라인에서 보면 '아이폰 따라쟁이'의 느낌이다. 나 역시 보면서 '갤럭시는 그 긴 시간동안 아이폰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인가' 라는 생각만 들었는데, 비교사진을 검색해 동생에게 보여주려고 트윗검색창에 '갤럭시6' 넣었다가, 예쁘고 갖고싶다는 긍정적 트윗이 많아 깜짝 놀랐다. 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걸 예쁘다고 생각하고 갖고 싶어하는구나. 내 타임라인에서만 아이폰 따라쟁이었어. 확실히 트윗의 타임라인은 철저히 '내 위주'라 내 생각에 갇혀 있게 만든다. 나의 타임라인에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 같았지... 나는 이런 식으로 보고 싶은 것만, 한쪽 면만 보게되는 구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면서, 나 역시 내 생각에 갇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타임라인을 보다가 들었다.
그나저나 오늘의 위로가 있다면, 출근길에 '남자'랑 부딪쳤는데 넘어진 건 '나'라는 사실이었다. 남자랑 내가 부딪쳤는데 남자가 넘어졌다면...그게 어쩐지 더 슬플 것 같으니까.
내가 조지 부시에게서 경멸하는 모든 특징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경멸하는 특징이다. 그는 나 자신이 최악으로 구현된 존재다.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G.K. 체스터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요." (p.27)
이윽고 나는 알게 된다. 무디가 수치심을 느끼는 진정한 이유는 자기 주변의 추행의 신호가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내가 극복할 수 없는 건 바로 이것이다. 일련의 그 추악한 범죄에 내가 공모했다는 부끄러움." (p.48)
(<사랑과 고통> 이라는 영화에 대해 언급하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영화 내내 덜컥인다. 해가 나는가 하면 비가 내린다. "나에 대해 뭘 배웠어?" 릴라가 묻는다. "당신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거요." 사랑에 빠진 그가 대답한다. (p.72-73)
로미오와 줄리엣이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 열네 살이라는 무르익은 나이인 그들은 머지않아 누가 식기 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낼 차례인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남녀가 밤새 껴안고 있었다고 암시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몸을 떼고, 돌아눕게 마련이다‥‥‥ (p.73)
(`로리 무어`의 《애너그램Anagrams》을 인용) "네 블록 떨어진 곳에서 보니 새 떼에게는 일종의 집단적 생명,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성이 있었다. 새들의 무작위적인 날갯짓에는 틀림없이 패턴이 있었지만, 저 검은 새들 중 어느 한 마리 혼자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우리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각자 혼자라면, 새들도 제 머리를 벽에 박을 것이다." (p.79)
(바셀미의 소설 《형제The Brothers》를 언급하면서)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다. "공기가 마치 우리 몸에 딱 맞춘 장갑처럼 우리를 감싸는 밤이었다." 이런 생각은 참 좋지 않은가- (p.135)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은 대부분 상당히 비슷하다. 출생, 사랑, 못생기게 찍힌 운전 면허증 사진, 죽음.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p.151)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사실상 프롤로그나 다름없는 해설적 첫 장은 책의 나머지 부분과 그가 쓴 다른 모든 글을 부질없게 만든다. 나는 이 공개적인 명상을 위해서 살고 죽겠다. (p.176)
소셜 네트워크/블로그가 좋은 책을 낳을 수 있을까? 이 경우(병신같지만 멋지게)처럼 극히 드물게는, 그렇다. 책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현대 문화와 공존하고 그 에너지를 문학을 위해서 쓸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곧장 급소를 찌르는 것, 이것이 오늘날 읽고 쓰는 방법이다. 적어도 내가 오늘날 읽고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189)
1987년에 (전미 도서상)픽션 심사 위원단이 토니 모리슨을 수상자로 지정하지 않자, 그녀느느 당시 위원장이었던 내 옛 스승 힐마 월리처Hilma Wolitzer 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을 망쳐줘서 고맙군요." 내 인생이 고작 몇 사람이 점심을 먹으면서 선정하는 상을 받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면, 내 인생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p.197)
톨스토이에 따르면, 예술의 목적은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p.199)
이듬해, 누나가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좋은 소설이지, 나름대로 대단히 좋은 소설이야, 하지만 이제 《아홉 가지 이야기》로 넘어갈 때가 됐잖니.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의 시모어에게 어지나 감정 이입을 했던지, 어머니가 친구인 심리학자에게 나를 데려가서 몇 번 면담을 잡았을 정도였다.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는 지금까지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 중 하나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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