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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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수학을 못했다는 게 이상하긴 했다. 실험물리학자보다 사고실험에 더 치열할 이론물리학자가 수학을 못했다고? 아인슈타인에 대한 오해 외에도 이 책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걸 깨는 정보가 많다.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유럽인도, 미국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아니다. 심지어 미국 본토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진실은 책에서ㅎ/ 이건 지금 당장 구글을 검색하면 되지만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궁금하지 않음? 마젤란도....
아쉬웠던 건 본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Top 10 분류 항목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가끔 웃기려고 이렇게 분류한 건가 싶은 것도 있고ㅎ; 스스로 밝혔다시피 깨부수고 핵심을 찾는 세계사 책이라기보다 인문학적 생각 깨기 책에 가깝다. 본서 핵심 내용보다 닫는 말에 부록처럼 밝힌 이런 상식 교정이 내겐 더 유익했던 교양 도서^^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못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들먹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여러 수학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았다는 소문은 이미 그의 생전에도 있었다. 그는 그 같은 신문기사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 "나는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는데, 이미 14세 때 미적분에 재미를 느꼈다." 실제로 그는 6세 때 뮌헨의 페터스슬레 학교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어제 알베르트의 점수가 나왔어. 이번에도 1등이야. 훌륭한 성적표를 받았단다." 두 학년을 건너 뛴 아인슈타인은 9세 때 뮌헨의 명문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하지만 권위주의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15세 때 조기에 자퇴해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없이 종합기술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을 시도했다. 뛰어난 재능 덕에 그는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물리학과 수학 시험은 매우 우수했던 반면 지질학 등 다른 시험 과목의 성적이 썩 좋지 못해 결국 시험에 떨어졌다. 이후 1년간 아라우Aarau(스위스의 아르가우Aargau)의 주립학교에 다니며 정식으로 대입 자격을 취득하면서 1896년 10월에 비로소 연방공과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했다.
그를 둘러싼 소문에는 오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라우 시절의 졸업장에는 실제로 물리학 6점, 수학 6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다만 스위스에서 점수 표기 방식은 독일과 정반대다. 스위스에서 6은 ‘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원래 목표는 수학과 물리학 교사 학위를 받는 것이었는데, 그보다 앞서 상대성이론을 고안하게 된다.
p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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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20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제목처럼 즐겁게 읽기 좋은 책이군요.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함은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AgalmA 2017-09-20 00:38   좋아요 1 | URL
제가 유머가 풍부했다면 겨울호랑이님 많이 웃겨 드렸을텐데...안탑. 근데 겨울호랑이님이나 저나 그 방면엔 큰 차이 없는 거 같아 든든(?) , 편안한 여유를 많이 주시죠.ㅎ 은근히 심각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겨울호랑이 2017-09-20 00:40   좋아요 1 | URL
^^: 저야 자타공인 썰렁한 편이라 ㅋㅋ AgalmA님은 그래도 유머 감각이 좋으시잖아요^^:

AgalmA 2017-09-20 00:41   좋아요 1 | URL
저는 코드가 통하는 사람들만 통하더라는^ㅁ^;; 온라인에서 몸개그를 보여줄 수도 없고ㅋ;;

겨울호랑이 2017-09-20 00:44   좋아요 1 | URL
^^: AgalmA님이 좀 고급진 유머를 구사하신다는 걸 제가 조금은 알지요 ㅋㅋ 글쎄요. AgalmA님의 몸개그는 죄송하지만 별로 기대가 안되네요 ㅋㅋ

서니데이 2017-09-20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인슈타인이 수학을 진짜 못했다고 가정해도... 대부분의 우리보다는 잘 했겠죠. 아주 많이.^^;

AgalmA 2017-09-20 01:05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당시 최고 수학자보다 못 한건지 보통사람 수준이었다는 건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 채 대 물리학자도 수학 못했지 위안삼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syo 2017-09-20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도권 교육 ㅈ까라 그래 하는 신화적 요소와 아인슈타인을 헐뜯고 싶은 욕망과 실제로 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학창시절 등등이 막 섞여서 저런 말로 후려쳐진 것이 아닐까요ㅎ

AgalmA 2017-09-20 07:20   좋아요 1 | URL
실제로 수학을 전혀 몰랐음에도 전자기유도현상과 ‘장‘개념을 만든 마이클 패러데이라는 예가 있긴 하죠. 패러데이는 생계가 어려워 학업을 하기도 어려웠고 제본소 견습공으로 일하며 제본하던 책으로 공부를 했죠. 쇼맨십도 있어서 강연도 호응이 좋았고 이런 여러가지 면 때문에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얻은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패러데이는 실험물리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나간 발명가 스타일입니다. 패러데이의 개념들은 후일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수학적으로 증명해 그 유명한 맥스웰 법칙으로 완성된 거죠.
아인슈타인은 너무도 천재라 흠을 좀 만들고 싶었던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아인슈타인이 자기 이론 증명을 위해 수학이론을 누구에게 배웠다는 소리 저도 읽은 적 있는데 그 경우는 더 고차원적 수학논리가 필요해 보완하려는 거였다고 봐야죠. 아인슈타인 이론이 워낙 어렵잖아요^^; 지금도 그것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몇 없는데 당시는 더 했을 거 아니겠어요. 누구도 모르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이라니 생각만 해도 저는 까마득)))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잃어버린 몸 할란 엘리슨 걸작선 2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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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 엘리슨 리뷰 쓰기의 어려움은 소설의 주요 줄기를 말하는 것이 강력한 스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소설 리뷰에서 자세한 스토리를 밝히는 걸 되도록 피하는데 너무 자세하게 알 경우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보는 것보다 책을 사기 전에 리뷰를 검토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내 경험을 통해서도 그렇다. 스토리를 너무 잘 아는 고전들 경우 사람들이 잘 안 읽는다는 걸 생각해 보라. 독후감 형으로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감상을 쓰는데 도취해 이 부분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세하게 얘기해서 내가 이만큼 열심히 봤다는 걸 알리는 과시형, 귀찮거나 능력이 부족해 대충 말하는 리뷰어 등등 경우의 수는 많다. 아무튼 할란 엘리슨은 스토리 이상 가는 특유의 재담, 화려한 언술이 있다는 걸 당부하며 리뷰로 들어가겠다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1993년 브람스토커상 수상, 1994년 로커스 상 수상, 1994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1994년 네뷸러상 노미네이트, 1994년 세계판타지문학상 노미네이트)

 

이 단편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물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외톨이 흑인 루디는 유일한 친구이자 짝사랑하는 앨리슨의 부탁으로 그녀가 조사하던 연쇄살인범 스패닝의 진실을 알기 위해 그를 만나게 되는데……. 역으로 루디가 연쇄살인범이 되고 그가 흑인에서 백인이 되는 과정이 있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SF 장르물을 많이 본 사람들은 대략 짐작할 수도 있겠고, 제목을 상기하시라.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허비한 건 인종차별이나 불운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연민 때문이었다는 루디의 깨달음은 의외로 계도적인 결말이 되어버렸지만 군더더기 없이 상큼한 끝을 보여줬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1968년 휴고상 수상)

 

표제작이기도 한 이 단편이 2권에서 단연 돋보인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각국이 개발한 AM의 성격을 얘기하면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 대략 보인다

 

처음에는 연합형 마스터컴퓨터(Alied Mastercomputer)였다가, 그다음에는 적응형 조종자(Adapyive Mastercomputer)가 됐다가, 그다음에는 적응형 조종자(Adaptive Manipulator)가 됐다가, 나중에 그게 지성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를 연결한 후에는 사람들이 그걸 공격형 위협(Aggressive Menace)이라고 불렀지만, 그때쯤엔 너무 늦었고 결국에는 그게 스스로 AM, 떠오르는 지성이라고 자칭했지. 그건 나는 존재한다(I Am)는 뜻이었어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p102)

“AM은 돌아다닐 수 없었고, 경탄할 수 없었으며, 소속할 수 없었다. 그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p111) 

 

자신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을 죽이는 인간처럼 AM은 모든 인간을 죽이고 자기에게 지능을 부여한 개발자 5명에게 자기가 겪는 무한 고통을 같이 겪게 만드는 걸 목적으로 산다. 마지막 생존자는 AM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처리한 외형으로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없는 입으로 실존의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과연?)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할란 엘리슨은 자멸의 경고로 풀어놓고 있다. 그의 다른 단편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다. 존재 간에는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이질성이 있다는 인식. 인공지능이 우리 관심을 이토록 끄는 이유는 존재,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크로아토안 

(1976년 로커스상 수상, 1976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도시전설에 대한 단편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연애하던 남자는 불법 시술로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시켰고 여자 친구는 변기에 흘려버린 태아를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이 이야기는 하수구에 악어를 버려서 탄생했다고 알려진 앨리게이터(하수구 악어) 도시 전설과 이어지는데, 태아를 찾으러 간 남자는 악어를 탄 아이들이 살아가는 기묘한 지하세계를 만난다. 지상에서는 철없는 아이처럼 살았던 그는 이 세계에서는 아버지라 불리며 모든 걸 다시 배워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 악어를 탄 아이들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는다.

 

 

    

랑게르한스섬 표류기 : 북위 38° 54서경 77° 0013에서 

(1975년 휴고상 수상, 1975년 로커스상 수상)

 

이 단편을 두고 카프카, 멜빌, 메리 셸리, 아시모프, 시오드막의 융합이라는 평은 적확하다. 오마주들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늑대 인간이라는 괴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탈봇은 자신의 존재 이유, 영혼을 찾고 싶어 한다. 비밀스러운 정보제휴처를 통해 그의 영혼이 있는 장소의 지리적 좌표를 얻긴 하는데, 가는 방법은 굉장히 물리학적이다그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가진 연구소 책임자 친구를 가진 덕분에 나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할란 앨리슨은 탈봇의 영혼이 있는 장소를 환상적으로 그려 놓았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 보시길/

 

 

 

 

 

폭신한 원숭이 인형

(1988년 에드거상 수상)

 

행동심리학 책을 본 사람은 제목만으로도 짐작이 쉬울 텐데, 동물들은 폭신한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애니는 아이를 잃고 폭신한 인형을 아이로 여기며 노숙자로 살아가는 흑인 여성이다. 최하층이자 가장 취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범죄 무리들에게 얽혀 곤경을 헤쳐 가는 모습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신춘문예 당선작 같은 느낌이었는데(비교할 만한 작품이라면 황정은 신춘문예 당선작 마더) 역시나 에드거상을 탔군

 

 

    

꿈수면의 기능

(1989년 로커스상 수상, 1989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1989년 브람스토커상 노미네이트)

 

이 단편도 아주 독특한 설정이다. 상실의 아픔을 흘려보내지 못해 타나토스의 입을 몸에 품게 된 맥그래스의 기이한 경험을 담고 있다 

 

그녀가 집단 꿈치료를 제안했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일찍 그 근처로 왔다. 그러고는 하루 대부분을 자신이 정말 일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지 판단하려 애쓰며 돌아다녔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 일대가 어떻게 고급화됐는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변했는지, 이곳에 번창했던 멋진 작은 가게들이 급등하는 임대료 때문에 어떻게 쫓겨났는지 살펴보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 가게와 저 상점을 기웃거리고 쇼핑을 하며 그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는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쁨이 말라간다는 사실에 갈수록 낙담했다. 기쁨이 말라갔다. 가게마다, 거리마다, 사람마다. 

그러다 누군가는 홀로 남는다.“(p252)

 

몽유병과 꿈, 기억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탐구를 버무린 그로테스크한 미스터리물이다. 1980년대 프랜시스 크릭과 그레임 미치슨의 뇌 연구 이론인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서 꿈을 꾼다는 가설”(p253)을 주축으로 할란은 이 단편을 쓴 거 같은데, 최근엔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고도 하니 이거 참 나로선 어려운 문제다. , 읽을 책만 늘어나는 반갑지 않은 소식들.

 

 

 

 

 

 

 

 

 

 

 

 

 

 

 

 

 

  

 

콜롬버스를 뭍에 데려다준 남자

(1993미국 베스트 단편소설집수록, 1994년 네뷸러상 노미네이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의 오마주인가 싶은 단편이다. 101일부터 35(?)까지 레벤디스가 행한 악행과 선행 혹은 어느 것에도 속하기 어려운 기묘한 삶에 대한 관찰들을 제목을 붙여가며(‘오디세우스의 여정’, ‘환대하는 수선화’, ‘매일 착한 일 한 가지’, ‘보답 없는 일에 몰두하기’)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그랬듯 언어에 대한 짓궂은 농담들이 많다.

  

레벤디스 : 1034일 필틱요일, 그는 모든 개들에게 영어와 프랑스어, 북방 중국어, 우르두어, 에르페란토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하지만 개들이 말한 거라곤 최악이라고 평할 만한 운율을 맞춘 시뿐이었고, 그는 견시(犬詩)라고 불렀다.”  

 

레벤디스는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이라는 그리스어라고 한다. 이야기 진행으로 보아 시공간을 두루 오가는 그는 인간 삶에 개입하며 인간 속에서 살아가는 장난기 많은 타락천사 같은데(반복되는 추임새 전 슬프게도 유한한 세계에서 사는 무한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레벤디스라고 부른 일, 마스터 변수 지출을 많이 한 것 등등으로 본부로부터 견책을 받고 다른 임무에 임한다. 아무도 알아줄 사람도 없는데 세르챠라는 이름을 굳이 택하고.

   

 

 

악동 같은 할란 엘리슨의 웃기고 슬프고 서늘하고 기발한 2권은 이렇게 끝난다. 할란의 작품에서 시간을 낭비해서인간은 이렇다는 견해를 자주 본다. 없는 1035일까지 챙겨서 사는 존재처럼 나도 삶의 창조에 전력해야겠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에트루리아어로 열변을 토하던 레벤디스 같을 순 없겠지. 난 일단 에트루리아어를 모르고 더 많은 걸 모른다. 그렇지만 함께 재밌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다. 좋은 음악만 같이 들어도 삶은 더 나아 보이지 않던가.

 

 

 

Nothing But Thieves 신보가 나왔어용~

https://youtu.be/S6Nt1ssPLBA 

Nothing But Thieves - Broken Machine (Stripped Version)  

 

 

 

 

 


 

이번 Axt(악스트)  No. 014에서 이주혜 씨가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리뷰를 쓰셨지만 제 리뷰가 더 꼼꼼하고 애정 넘친다고 자부합니다-_-! 워워~ 이러다 리뷰 과시형이 될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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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18 14: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능력이 없어서 대충 말하는 리뷰어 1번 등장이요! ㅎㅎㅎ

과연, 이런 게 리뷰구만요....ㅠㅠ 끄덕끄덕

AgalmA 2017-09-18 17:28   좋아요 0 | URL
syo님은 읽기도 바쁘시잖아요ㅎㅎ; 저라도 그렇게 읽으면 리뷰 쓸 시간에 책을 더 읽을 듯ㅎ;
리뷰도 계속 쓰는 버릇을 해야 습관이 되고 기술도 늘죠. 안 쓰다보면 또 잘 안 돼요. 자전거 타기처럼 한 번 익히면 평생 되는 그런 게 아니더라는.
남들이 어찌 쓰든 제가 가타부타할 깜냥이 되나요. 어디까지나 내 생각엔 이런 것 같다 정도입니다.

서니데이 2017-09-18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서 리뷰를 쓴다는 건, 쉽지 않아요.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 처럼요.
A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AgalmA 2017-09-18 17:30   좋아요 1 | URL
오,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좋은 표현인데요. 서니데이님 공부 열심히 하신 분답게 멋진 표현^^b
더운 건지 선선한 건지 묘한 날이네요~

ICE-9 2017-09-18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리슨의 팬으로서 이 페이퍼를 격하게 환영합니다^^

AgalmA 2017-09-18 17:41   좋아요 1 | URL
헤르메스님한테 ˝할란 엘리슨 안 사요, 흐흐˝ 팅겼던 기억이 납니다-.-; 다 소장할 책들인 걸로 아뢰옵니다.

ICE-9 2017-09-18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까지 회심시킨 갓 엘리슨이로군요^^

cyrus 2017-09-1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SF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둘씩 다시 소개되는 건 정말 좋은 현상입니다. 아작출판사가 요즘 열일하는군요. ^^

AgalmA 2017-09-18 20:1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전엔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작 같은 데에서 열심히 내주니 관심이 많이 가네요^^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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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친척의 별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곳에서 좋은 일이 많았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숲길을 걸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때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기하학에 대해, 마음이 죽는 일에 대해, 건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시는 지난여름 그와 보낸 마지막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리 나와 봐, 벌집이 생겼어!"

​  그가 밖에서 외칠 때, 나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거실에서 한낮의 빛이 들이닥쳐서 여러 가지 무늬가 바닥에 일렁였고

  "어쩌지? 떨어뜨려야 할까?"

  그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벌집은 아직 작지만 벌집은 점점 자란다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날 것이다 그가 말했지만 큰일이 무엇인지는 그도 나도 모른다

  한참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벌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것들이 벌집 주위를 바쁘게 날아다니고 육각형의 방은 조밀하게 붙어 있고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턴가 들리지 않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하지만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멸종한댔어"

  돌아온 그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쯤 여름이 끝났던 것 같다


 

  여름의 계곡에 두 발을 담근 두 사람이 맨발로 산을 내려왔을 때,

  늦은 오후에 죽어 가는 새의 체온을 높이려 애썼을 때,

  창을 열어 두소 외출한 탓에 침대가 온통 젖어 어두운 거실의 천장을 바라보며 잠들었을 때,



 

  혹은 여름날의 그 어느 때,

  마음이 끝났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여름에 시작된 마음이 여름과 함께 끝났을 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도무지 알기가 어렵고



 

​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뜨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ㅡ 황인찬

 

 

Abelardo Morell - Camera Obscura Image of the Grand Tetons in Resort Room (1997)

 


 

§ 종로와 소설과 원형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접하며 문득 상수를 떠올린다. 그를 홍상수 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건축」은 홍상수 감독의 서사 구성이나 호접몽 특징과 유사하다.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남겨두는 그런 거 말이다.

황인찬 시인의 대부분의 시들은 자조와 회고성을 띄는데, 「건축」은 그의 시 세계 건축 구조성을 들여다보게 한다. 일상은 기본 리듬으로 작동하고, 꿈과 죽음과 환상이 주재료이며 동률의 필수 재료이다.

 

이 시집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로 연작시를 보며 종로에 대해선 나도 여러 시도를 하고 싶던 게 겹쳤다. 글이든 영상이든. 오래전부터 청계천, 명동, 인사동 등 종로는 서울 창작자들에게 터전이자 노스탤지어 역할을 해왔다.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 많아 퇴색되어 보이긴 하지만 종로는 홍대가 뜨기 전까지 문화 중심지였다.

내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 관심을 둔 것은 눈여겨보던 종로 일대 숨은 풍경을 잘 담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도되지 않은 것이 아직 많다. 계속 바뀌어가고 있는 이 풍경만 담아도 얼마나 할 말이 많은가. 언젠가 성일 평론가가 ㅡ인과응보처럼 자기를 씹을 많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찍은ㅎㅡ 첫 영화로 《카페 느와르》를 찍고 나서 술회를 밝힐 때 영화 속 풍경이 이젠 많이 바뀌었다며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보존적 가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 영화에서도 종로 풍경이 꽤 담겨 있다. 정은 소설 『백의 그림자』에서는 고가도로가 있던 옛 청계천 전자상가 풍경을 잘 보여줬다. 글을 쓰는 순간은 누구나 사건 순간을 전하는 기자가 되는 셈이다.   


많은 작가들이 설과 시의 경계를 깨고 싶어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는데, 황인찬 시인은 이 부분에서도 뛰어나다. 시와 소설의 장점을 각각에서 잘 수렴하고 있다.

그런데 세간에서 상찬하는 이 시 세계가 신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황인찬 시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말하는 건 외형상에 따른 단순한 평가 같다. 

두 번째 시집『희지의 세계』 마지막 시 「인덱스」마지막 문장은 인덱스란 뜻과 뉘앙스처럼 이렇게 끝난다.


"이제부터 평생 동안 이 죄악감을 견딜 것이다"


황인찬 시에서 계속 목도되는 것은 모던한 스타일 뒤에 정제되어 있는 형성(原型性)이다. 우화 같은 카프카의 소설 저변이 그러하듯이.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황인찬의 살아있는 세계엔 말라 있는 것들이, 저편 세계는 젖어 있는 것이 가득하다. 그 중간쯤에 일어나는 불, 문학의 세계가 있다.

바슐라르 식으로 물, 불, 공기, 흙의 로 그의 시 경향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나기 직전의 새와 물속에서 금속같이 느껴지는 손 같은 그런 것.


하지만 이런저런 분석 노력이 나는 귀찮지. 도무지 너무 귀찮지. 시인이 그렇게 쓰든 안 쓰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고 싶으면 그리 쓰면 된다.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가 그렇듯 사실 독자의 몫은 그냥 듣는 역할이다.


오늘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우리는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게 삶이며 일상인데 문학이라고 다른가.

도무지. 도무지....

기어이 무너질 것을 짐작하는 이들은 죄악감에 싸여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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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17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처음 읽은 시지만, 뫼비우스의 띠같은 느낌을 주는 군요.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어쩌면 시작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마침 AgalmA님께서 올리신 사진의 느낌이 시의 이미지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이 부분이 앞선 글 중의 ‘대칭성‘과도 맞닾아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님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제 머리 용량이 별로 크기 않기에 너무 여러 생각하다가는 과부하가 걸릴것 같아 적당히 하렵니다.ㅋ

AgalmA 2017-09-17 01:30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느낌처럼 저도 그래서 <건축> 시가 참 좋더라고요. 끝모를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데 화자는 계속 끝났다고 말하면서 꿈으로까지 환치하려 하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게 남은 거에요. 문학은 어쩌면 이런 잉여, 초과 상태를 풀려는 무모함이자 고집인지도 모릅니다.
겨울호랑이님은 본인 공부만으로도 벅차실 거 같은데요. 제 서재 글은 쉬엄쉬엄 보세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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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은 내게 3가지 선행을 했는데, 쇼스타코비치를 자세히 보게 만들었고, 전도 유망하던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눈 밖에 났던 문제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or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토마스 만과 발터 베냐민이 러시아의 천재적 스토리텔러로 인정한 니콜라이 레스코프 원작 소설을 찾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책 많이 사서 읽으라고 격려해 줬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역자는 작품 해설에서 이지적이며 행동력 있는 투르게네프의 아가씨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팜므파탈적 여성들, 혹은 체호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과 달리 레스코프의 촌부들은 러시아 벽촌 풍경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원시적 특성을보여 준다고 말하며, “문학사가 미르스키는 러시아를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도스토옙스키나 체호프가 아닌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레스코프를 읽어야 한다고 추천한 것을 인용했다. 레스코프가 존경했고 같은 시기에 작품 활동했던 톨스토이(1828~1910)도 도스토옙스키(1821~1881)에 비해 레스코프(1831~1895)가 읽히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레스코프를 미래의 작가라고 평했다. 레스코프에 대한 이런 격찬에 공감하기엔 이 작품집 한 권 읽기로는 어림없다.

레스코프가 잘 알려지지 않은 건 1860년대 이후 러시아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간의 논쟁이 잡지와 신문 지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졌고, 1862년 페테르스부르크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났을 때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레스코프의 기고글이 학생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체포하도록 경찰을 충동질하는 걸로 자유·진보주의자들에게 오해되어 큰 고초를 겪었다. 휴양을 위해 레스코프는 외국으로 떠났고, ‘스체브니츠키라는 가명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풍자하는 안티니힐리즘 소설을 쓰게됐다. 자유진영과 반목하는 작품들을 자주 썼고 격렬한 반응에 비해 호응을 얻지 못한 거 같다. 문단도 이념 갈등이 한창이라 중장년기 레스코프의 창작 초기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쌈닭, 플로도마소보 마을의 옛 시절(1869)은 주목받지 못했다.

레스코프가 대중에게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창작 중기시기인데 돈키호테와 산초같은 인물을 통해 러시아의 성직자 생활을 그린 성직자들(1872) 때부터다. 봉인된 천사(1872), 신들린 순례자(1873)도 러시아의 종교적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레스코프 작품 중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왼손잡이(1881)는 국내에도 번역되었는데 천재적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가 외국에서는 대접받지만 조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냉대 받다 죽어가는 이야기를 레스코프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그린 작품이다. 이 시기에는 의인 시리즈도 그의 특징으로, 그리스도교의 삶의 이상을 실현하는 괴짜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외골수(1879), 불사신 골로반(1880), 사관학교 수도원(1880), 청렴한 기술공(1887) .

레스코프는 창작 중기 이후 점차 러시아정교회의 형식적이고 교조화된 종교의식에 대한 비판 어조를높였고, 성직자들의 부정적인 면들을 풍자적으로 그린 주교의 사생활(1878)은 국가검열에 걸려 창작과 건강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검열 대상이 되면서 이전엔 불편한 관계였던 자유 진영에서 작품을 출판하게 됐다.

그의 창작 후기종교와 사회의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주제라고 볼 수 있는데, 제도화된 교회에 왜곡된 그리스도교의 참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국내에도 소개된 광대 팜팔론(1887)은 속세를 떠나 높은 석탑 위에서 자기 영혼의 구원만을 갈구하는 옛 집정관 예르미가 속세에 파묻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광대 팜팔론을 만나 가르침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고, (1890)믿음이 산을 옮긴다는 성경 구절에서 모티프를 빌려왔는데 그리스도교 초대 교회와 이집트 이교도 간의 대결을 귀금속 세공사인 제논과 그를 유혹하려는 절세미인 네포라 사이로 비유해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성자의 실체를 보게 만드는 야행성 기질의 사람들(1891), 인간 삶에 대한 회의감이 짙게 묻어나는 겨울날(1894) 등이 있다.

전집 발행과 관련된 검열로 받은 충격 탓에 피폐한 상태에서 폐렴이 겹쳐 레스코프는 1895221일 사망했다. 그는 병든 재능을 가진 작가로 불리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체호프, 고리키, 레미조프, 자먀친 등 20세기 초반 문학 양식주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레스코프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은 스카즈skaz. 고골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장감 넘치는 구어체를 재현하려는 일종의 문체 양식이다. 청자를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효과를 내려는 서술 방식인데 음악 장르에서 힙합의 랩과 비슷하다. 스카즈 기법이 잘 반영된 레스코프의 작품이 쌈닭왼손잡이. 짧은 글로는 잘 와닿지 않을 거 같아 쌈닭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본 장면을 인용해 보겠다. 길지만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기도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갈대를 바라보았어. 마치 생전 처음 보듯이 말이야.

그런데 불현 듯 내 눈으로 들어오는 저것은 무엇일까? 나는 호수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과, 그 가벼운 회청색 안개가 꼭 무슨 수의처럼 온 들판을 뒤덮는 것을 보았어. 그런데 그 안개 아래, 정확히 호수 한가운데에 갑자기, 마치 물고기 한 마리가 철석거리기라도 한 것처럼, 작은 동그라미가 생기더니, 그곳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오는데, 얼마나 작은지, 크기는 아마 수탉만 했을 거야. 아주 작은 얼굴에 암청색 카프탄(예전에 러시아 남자들이 외투처럼 입던 길고 헐렁한 상의)을 입고, 머리에는 녹색 모자를 쓰고 있었어.

참 신기한 사람이네, 꼭 예쁜 인형 같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떼지 않았지. 전혀 무섭지 않더라고. 정말이지 일말의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니까.

그런데 그게 조금씩 올라오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거야. 그러더니 급기야는 내 가슴으로 곧바로 뛰어오르는 게 아니겠어. 정확히 말하면 내 가슴 위가 아니라, 가슴 위쪽 허공에 서서 몸을 숙였어. 그러고는 아주 진지하게 모자를 벗더니 인사를 하는 거야.

정말 웃겨 죽을 뻔했어. 나는 생각했지. ‘아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웃긴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그런데 그놈이 다시 모자를 척 쓰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돔나 아줌마, 우리 사랑 한번 할까요!’

나는 웃겨서 속이 다 뒤집힐 뻔했어.

에고, , 꼬마야! 네가 어떻게 나랑 사랑을 하려고 그러니?’

그랬더니 갑자기 그놈이 내 뒤로 돌아가더니, 젊은 수탉 같은 소리를 내는 거야.

꼬끼오 꼬꼬!’

그러더니 갑자기 딸랑거리는 소리, 두들기고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거기에 신음 소리까지 들렸어. 하느님 맙소사, 내가 생각했어. 이게 무슨 일이지? 개구리들, 잉어들, 붕어들, 게들이 나와서 어떤 놈은 바이올린을, 어떤 놈은 기타를, 어떤 놈은 작은 북을 치는 게 아니겠어. 이놈은 춤을 추고, 저놈은 뜀뛰기를 하고, 또 다른 놈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거야!

아이고, 이건 나쁜 징조야! 이이고, 이건 불길한 징조라고! 기도로 나를 지켜야겠다.’ 나는 생각했어. 그래서 하느님이 부활하셨다, 라고 기도문을 외우려는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거야.

뛰어올라, 더 높이 뛰라고.’

이와 동시에 내 배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붐부룸붐, 붐부룸붐.

어떻게 된 거지? 타르반(줄을 퉁겨 소리를 내는 러시아의 고대 현악기)이 된 거야. 그리고 내 위에 아까 그 작은 인간이 서서는, 써레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

아이고, 성자들이시여! 아이고, 거룩한 순교자들이시여!’

그런데 그놈은 계속 활로 나를 톱질하듯 문질러 대면서 왈츠도 연주하고, 또 온갖 종류의 카드리유를 다 연주하는 거야. 그런데 다른 놈들은 더 성화였어.

더 거칠게 연주해. 더 거칠게 하라고!’

자네에게 하는 말이지만,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끙끙거려야 했어. 그놈들이 나를 그렇게 밤새도록 두들겨댔다니까. 동이 틀 때까지 온 밤을 세례 받은 인간인 내가 그놈들, 그 악마들에게 타르반 대용으로 놀림을 당한 거야.“

무서운 일이네요.” 내가 말했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 친구.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놈들이 나를 가지고 마음껏 음악을 연주하고,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였어.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전혀 모르는 장소더라고. 초원이 있고, 꼭 호수 같은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어. 그리고 갈대도, 다른 모든 것도 내가 본 그대로였어. 그런데 하늘에서는 태양이 옷 밖으로 드러난 내 살을 구워삶을 듯이 내리쬐고 있었어. 보니까 내 아마포 보따리와 가방도 그 자리에 있었어. 모든 게 다 그대로 있더라고.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보였어. 나는 일어나 겨우겨우 마을까지 갔어. 거기서 농부를 한 명 고용해서 저녁녘에 집에 올 수 있었지.”

그런데 돔나 플라토노브나, 당신이 정말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확신하세요?”

그게 아니면, 자네 혹시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에요. 내 말은, 정말로 모든 일이 꼭 그랬느냐는 거예요.”

모든 게 내 말 대로라니까. 자네는,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알몸을 보여주지 않고 견뎌냈는지가 더 궁금하겠지.”

그 말에 나는 정말로 놀랐다.

그래, 이렇게 나는 악마도 견뎌냈다고. 하지만 교활한 인간들 앞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어.”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잘 들어봐. 한 번은 어떤 상인 부인을 위해 고로호바야 가에서 이사를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가구를 산 적이 있었어. (후략)”

(p240~243) 

 

 

 

악마에게 조롱당한 일화라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돔나가 마차를 같이 탔던 무리들에게 윤간당한 상황을 환상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가 난파선에서 동물과의 사투인지 식인과의 사투인지 완전히 다른 표류이야기로 읽을 수 있듯이. 이야기를 음미하며 따져 생각하기도 전에 돔나는 또 다른 이야기 속사포로 나아간다. 이런 레스코프의 스카즈는 정말 매력적이다. 쌈닭이나 왼손잡이두 작품 중 하나는 꼭 읽어보길 권한다.

 

 

  

《레이디 맥베스》(2017, 국내 포스터) 

작가 레스코프 이야기만으로 이미 리뷰가 가득일세;; 영화 개봉에 맞춰 소담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2017)에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원제: 므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 1865), 쌈닭(원제: 여전사戰女士, 1865) 두 단편이 실려 있다. 여주인공들은 모두 므첸스크 군 출신이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1865)이 죄와 벌(유형)’로 구분되는 구성과 도스토옙스키의 잡지 세기에서 처음 발표된 것 때문에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1866)과의 연관성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돈이 궁했던 도스토옙스키가 급하게 죄와 벌을 쓴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레스코프의 이 작품도 어떤 모티프가 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매우 의심 간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여주인공 카테리나가 애인 세르게이와의 사랑을 위해 가족들을 살인한 게 발각되어 두 사람이 유형을 떠나게 되고 유형길에 세르게이에게 그녀가 갖은 수모를 당하다가 그의 새로운 애인을 끌어안고 투신하는 이야기다. 전체 내러티브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추천한 박찬욱 감독이 딱 좋아할 장면ㅎ

쌈닭은 공식적으로는 레이스 상인이지만 중매쟁이, 가구 구매 대행, 중고 의류 판매, 자금 조달, 직업 알선, 포주 역할 등을 하는 오지랖 넓은 돔나 플라토노브나의 수다를 통해 당시 페테르스부르크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결말에서 돔나는 뜻밖의 이유로 파멸한다. 역자는 레스코프가 두 작품에서 러시아 여성의 의지적 본능과 원시성을 드러냈다고 평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카테리나가 세르게이에게 집착하는 본능 너머에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애착 장애징후를 읽을 수 있었고, 돔나가 사랑을 믿지 않고 물질과 수다로 삶을 영위하다가 어린 소년을 사랑해 외롭게 죽음을 맞는 것 또한 그녀가 자주적 여성이었다고 볼 수 없는 함의를 제공한다. 물론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경우 레스코프의 어린 시절 체험(뛰어난 미모의 며느리가 시아버지 귀에 납을 부은 엽기적인 살인 사건)과 형법재판소 사서로 일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그가 고향 오룔 부근의 여성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열두 편의 시리즈를 쓸 생각을 한 거 같은데 실현했다면 문학적 가치를 넘어 미르스키의 평대로 러시아인을 잘 알 수 있는 사료적인 가치로도 뛰어났을 것이다. 계획이 미완으로 끝나 아쉽게 됐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런 여성상을 그린 작품은 흔치 않고 매우 현대적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레스코프가 잘 알려지지 않은 눈여겨볼 러시아 작가인 건 분명하다.


 

 

 

 

Lew - Baby St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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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2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제목부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연상시키네요.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스는 악마와 교감을 나누려하는 전형적인 악녀로 그려지는데, AgalmA님의 글을 통해서 본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수난-부활 또는 구원의 서사 구조 안의 인물로 느껴지네요^^: 짐작이라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겠지만요 ㅋ

AgalmA 2017-09-02 16:06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 맥베스 부인이 남편을 이용해 신분상승하려 한 것처럼 레스코프의 맥베스 부인도 가족을 죽여 재산과 자유를 모두 가지려 한 야심가, 악행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였다는 게 두 맥베스 부인의 큰 공통점이죠. 겨울호랑이님 너무 깊게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ㅎ; 레스코프가 예수의 참된 삶,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이긴 한데 적어도 이 작품에서 그 정도 깊이까지는 저는 못 느꼈어요^^; 스스로 맞는 수난은 맞는데 맥베스 부인이 자신을 구원할 여지를 레스코프는 전혀 안남겼죠. 연적을 죽이고 바다 속에서 살아 남는다면 탈출이 되긴 하지만ㅎㄷㄷ

겨울호랑이 2017-09-02 16:05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제가 잘못 넘겨짚은 듯 합니다. 기회가 되면 레스코프도 읽고 싶어집니다. 다만, 대기번호표가 이미 많이 발급되어서...ㅋ

2017-09-0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9-02 16:15   좋아요 1 | URL
^^: 계획대로 된다고 하기보다 ‘테트리스‘게임처럼 쌓인 책들이 빠지는게 제 현실인듯 합니다 ㅋ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창비시선 411
신용목 지음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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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가면 물속 돌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보석 같기도 물의 알 같기도, 나 같기도 전혀 다른 타자 같기도 한 그것을 꺼내 보기도 하다가 어떤 것은 집에 가져왔다. 내가 생각한 돌, 내가 가진 돌에는 내 기억과 환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러나 누군가 각각의 돌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내 경험과 인상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고, 돌이 있었던 장소나 성분에 대해 말할 수도 있지만 돌의 처음과 끝 그리고 본질에 대해서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

신용목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시집도 그런 궁지를 말하고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시구가 있는 모래시계에서 모래시계과 같은 형국이다. 모래시계는 끝없이 자리바꿈으로 시간을 재는 기계다. 모래시계는 자체가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움직이고 바라보는 주체에 의해 시간은 측정되고 경험된다. 주체도 환상이라는 문제까지 가져오면 앞으로 나아가기 더더욱 어렵겠지. 이런 복잡한 지경에 대해나는 알고 있거든시는 서사로서 보여주고 있다면, 모래시계시는 환상성으로 그 교차와 중첩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잤던 잠을 또 자고 꿨던 꿈을 또 꾸며 모래시계에서 모래알들이 떨어지듯 이름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한다. 모래는 해변으로 바뀌고 이 모래가 다 어디서 온 건지 알 수도 없다. 모래처럼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돌아보았다. 비슷한 정황을 일찍이 이장욱 시에서도 본 적 있다.

 

 

삼 분 전의 잠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 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속의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이장욱 (내 잠 속의 모래산, 민음의 시 111, 2002)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언가가 무언가를 계속 가져오며 일어나는 충돌, 거기서 일어나는 환기는 창작의 강력한 자장(磁場)이기도 하지만, 신용목은 이 시집 첫 시 후라시부터 내내 하나의 화두로 추적하고 있다.

 

 

 

 


 

동그라미는 왼쪽에서 태어납니까/ 오른쪽으로 태어납니까//왼쪽으로 태어난 동그라미의 고향은 오른쪽입니까 어디서부터/ 오른쪽은 시작됩니까// 동그라미를 그리는 자는 동그라미의 부모입니까후라시

 

누가 돌을 던져서, 허공의 어디쯤 깨져나간 것이 내 머리는 아닐까? 세계의 뚫린 구멍이 내 생각은 아닐까? 그 둥근 틈으로 모든 침묵이 날아가버려서//우리는 취하고//하나씩 가로등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불빛처럼,//끔찍한 일이다.// (중략) // 유리창이 깨지듯 잠이 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면, 오래전 날아온 돌멩이가 잡힌다.” 취이몽(醉以夢)

 

이 불판을 데우는 것은 타오르는 단풍 같습니다. 저 접시에 담겨 나오는 것은 / 갓 떨어진 낙엽 같습니다./ 놀랍게도, 고기는 연기의 빛깔로 익는군요./ 재의 색깔인가요? // (중략) // 어느날, 내 몸속의 잎들이 한꺼번에 지는 날이 있을 겁니다./ 내 몸을 찢고 나온 슬픈 식사가 있을 겁니다. 송별회

 

누군가 느낌을 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부엌까지 비닐봉지에 비린내를 담아가듯 꿈과 꿈 사이로 이어진 생활을 지나가려고/ 누군가 내 뺨을 후려치고 그 손을 내 손목에 담아놓았는지도 모른다흐린 방의 지도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속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리는 몸의 느낌이 있다산책자 보고서

 

왜 여름과 가을이 가을과 여름이 방을 따로 쓰지 않는지 몰랐다 왜 밤과 낮이/ 한몸으로 뒤엉켜 나뒹구는지// (중략) // 왜 몸과 몸이 마음과 마음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는지 몰랐다 왜 너와 내가/ 그 방에 갇힐 수밖에 없었는지사과

 

   

자신을 돌멩이[*]에 투영하며 존재론적 울분과 슬픔(“이 슬픔엔 규격이 없다”, “슬픔은 대규모로 일어난다”)의 긴 운구 행렬을 보여주는 시인의 연유는 모래시계만큼 오래된 인류의 질문ㅡ“나는 누가 이렇게 오래 들어올리고 있는 술잔일까?”(귀가사(歸家辭))과 다르지 않다. 자주 거론하는 아버지의 죽음이 물음을 더 깊게 만든 이유 같다. 종교가 지금껏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이 시집에 답을 물어볼 만한 존재-신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연관성이 있다. 입 없는 목소리들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계속 듣는 연유도 그러하겠다.

 


 언제나 부르는 사람의 바닥이 가장 깊어서 그 아래 낮에도 고여 있는 밤처럼그림자 섬

   

 


 

  

돌멩이[*] :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돌멩이'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작품을 썼는데 가장 낯설게 표현한 사람은 사르트르 아녔나 싶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바닷가의 돌을 집어 들고 구토를 느끼는 대목은 아직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해되는 게 신기하다.

 

※ 이 시집에 대한 허수경 시인의 추천글은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을 쓴 카뮈의 글만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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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6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 모래시계를 보니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날로그 시계는 바늘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표시하고, 디지털 시계는 숫자로 시간을 표시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립니다. 디지털은 ‘존재‘의 있고 없음을 통해 인식을 하고, 아날로그는 변화‘ 또는 ‘현상‘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AgalmA 2017-08-26 22:12   좋아요 1 | URL
네, 사고 전환으로 삶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듯이 내부적 갈등, 해결방법도 연관되겠지요.

서니데이 2017-08-26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처음 보고 고기 말린 건 줄 알았...^^;
돌이라고 하면 하얀색 회색 검은 색이 익숙해서 그런 걸지도요. 근데 어디서 발견(?)하셨어요, 저 돌??

AgalmA 2017-08-27 00:32   좋아요 1 | URL
육포 색깔이기도 하지만 배고픈 거 아닙니까ㅎㅎ 낙엽과 고기를 환유로 연결한 신용목 「송별회」시 같은 상황이네요ㅎ;; 여행 한참 다닐 때 군산 바닷가에서 가져 왔지요.

서니데이 2017-08-26 22:57   좋아요 0 | URL
그런 걸까요.^^

2017-08-27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