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단 한 번의 노력을 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그대로 내가 어제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 한다."(불안의 책, p31)


소아르스가 자신이 "언제까지나 회계사무원으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 "시나 문학은 내 머리에 앉은 나비와 같아서,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나를 더 우스꽝스럽게 만들 것"(p32)이라고 자조했듯이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같은 심정이다. 언제나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는가. "삶에 동의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p35)이라고 페소아이자 소아르스는 말했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친밀과 공감대를 얻을 수 없었기에 차라리 철저히 거부했고, 자신만의 고독과 몽상과 영혼을 부르짖은, 모두가 삶의 조건으로 거론하는 미덕의 이면을 파헤쳤던 소아르스, 루소, 알렉시. 진짜 삶이 그런 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다들 사생아나 천애 고아인 듯이 굴었고 썼다. 페소아의 異名 소아르스는 자신이 이미 양친의 사망으로 고아이지만 사회적으로도 모두가 고아라고 말했다. 합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과학 맹신 세태에 종교라는 의지처가 무력해진 시대 탓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신앙이 주는 위로를 조금도 누릴 수 없는 고아로 태어났다"(불안의 책, p386) 루소도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사춘기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으니 실제로 평생 고아였던 거나 다름없었다. 유르스나르도 어머니가 산욕열로 사망하고 아버지와 방랑생활을 하며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이들의 유년을 획일화해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내가. 그러나 그것은 이들 작가의 고백체, 자기 자신에 대한 천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육론 에밀을 쓴 저자였기에 비난을 더 피할 수 없었던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사실이 볼테르에 의해 폭로되자 고백록, 대화: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를 써 자신의 진정성,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해 사상에 대해 논하던 사람이었던 터라 사회의 심판과 냉대는 굳건했다. 소아르스는 물고기와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입 때문에 망한 이들이라고 했는데 루소도 어쩌면 그런 케이스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타인에 의해 고립된 루소는 그의 사망으로 미완성 유고작이 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나 자신은 무엇인가를 탐구 주제로 써 내려갔다. 그는 고백록을 통해서도 당시 누구보다 자신을 치열하게 까발린 작가이기도 했다. 페소아는 세상과의 단절을 스스로 원했던 작가였는데, 평생 70개가 넘는 다양한 정체성의 가상 인물을 통해 를 분리하며 자신을 탐구했다. 그의 미완성 유고작 불안의 책속 수백 개의 단상들은 그것을 반영한다. ‘부조리와 역설이 진정한 작가의 임무라고 말하고 있듯이 이 책에는 상반된 의견이 많다. 초반엔 신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처럼 말하고 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신을 깨부순 세계를 원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작가의 어떤 페르소나인지도 불분명하고 여러 편집본도 있는 터라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자유를 획득했다. 유르스나르 알렉시·은총의 일격에서도 주인공 알렉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이다. 그는 편지로 아내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하고 있다. 그 자체가 쓰는 자의 자유 형태인 독백이자 일기이자 편지인 이들의 글 속에는 세상의 요구에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한결같은 자기애, 자유의지가 담겨 있다.   

 

자신의 성향을 따르는 것은, 또한 성향이 우리를 이끌어 선을 행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은 미덕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덕은 의무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때 그 명령을 행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성향을 억제하는 것에 있으며, 바로 이것이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잘할 줄 몰랐던 것이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95)
"인간의 자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04)

   

 

루소가 그토록 주장했던 인간의 자유에 대해 유르스나르의 단편 알렉시만큼 잘 표현한 소설도 드물다. 아직도 동성애는 누군가의 허락과 용인이 필요한 일탈로 간주되고 있다. 알렉시에 영감을 준 앙드레 지드 코리동 처음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가 1924년에 저자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알렉시(혹은 공허한 투쟁에 관하여)」는 1929년에 출간되었다. 유르스나르는 이 소설에서 동성애 단어나 독자가 기대할 만한 외설스러운 장면을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관습, 통념 등 모든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며 인간의 성적·감정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동성애자 남성과 두 번 결혼한 유르스나르를 생각할 때 주장이나 옹호보다 객관성에 더 가까웠다.

 

 

 

결국 삶 역시 생리적인 비밀일 뿐이니까. 어째서 쾌락이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단 말이오. 통증 역시 감각이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데. 우리가 통증을 존중하는 것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지, 그저 받아들이는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하잖소. 그리고 그게 아니라 해도,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라 해도, 난 쾌락이 죄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31)
 
난 친구들을 사랑하는 게 행복했고, 친구들도 날 사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소. 사랑은(용서하오, 그대) 그 이후 내가 다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오. 사랑을 느낄 수 있으려면 너무도 많은 미덕이 필요하다오. 어린 시절의 내가 그토록 부질없는 연모의 감정을, 거의 대부분 거짓이고, 심지어 관능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감정을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소. 하지만 아이들에겐 사랑이 순수의 일부라오. 자기들이 상대를 욕망의 대상으로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요.”(알렉시·은총의 일격p34)

 

 

 

   

소아르스, 루소, 알렉시 모두 속박을 견딜 수 없어하고 불안과 몽상 속에 있으면서 한결같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이 가족처럼 혹은 페소아의 다른 이명들처럼 느껴졌다.

 

"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과거에 느꼈어야 마땅하기에 정말로 느꼈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예감 같은 건지도 모르겠소. (설사 관습에 순응하기 위해서라 할지라도) 내가 우리의 과오를 범하지 않은 시절의 기억까지도 오염시킨다는 거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난 지금 불안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23)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늘 쾌락과 고통이 지극히 가까운 감각이었소. 어느 정도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같으리라 생각하오.”(알렉시·은총의 일격p30)
 
온갖 커다란 충동에 냉담해진 내 영혼은 이제 감각적인 대상들의 영향만을 받는다. 이제 내게는 감각밖에 없으며, 고통이나 기쁨은 오로지 감각에 의해서만 이승에서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12)
자기 영혼 속에 틀어박혀 자만심을 더 고집하게 만드는 외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비교와 편애를 단념함으로써, 자만심은 내가 자신에게 선한 사람임에 만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만심은 다시 자기애가 되어 자연의 질서로 되돌아가 나를 평판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었다.”(고독한 산책자의 몽상p135)
 
무능하고 예민한 나는 나쁘든 좋든, 고귀하든 천하든, 난폭하고 강렬한 충동은 다룰 수 있지만 내 영혼의 본질로 파고들어 지속되는 감정과 계속 이어지는 정서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영혼은 칭얼거리는 어린아이를 못 견디듯 스스로를 못 견디고, 불안은 점점 커지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불안의 책, p25)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 내 감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불안의 책》 p202)
아무도 사랑한 적 없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나의 감각들, 의식적으로 보고 있는 상태, 귀 기울일 때 받는 느낌, 그리고 세상의 소박한 것들이 과거(과거는 냄새를 통해 참 쉽사리 기억된다)의 일들을 상기시키며 내게 말 걸어오는 방식인 향기 등이다.”(불안의 책p271)

  

 

원하진 않았지만 내가 타고난 감수성의 혼란스러운 밑바닥에 있는 것들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존재다라고 말한 소아르스의 고백처럼 이들의 공통적인 사태는 그들의 타고난 감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겠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수많은 이명으로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되려 한 페소아이자 소아르스나, 외부의 영향과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역경에 무감각해지게 만듦으로써 자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기 안에서 평온을 찾으려 한 루소나, 자신과 갈라설 수 없어 자신이고 성 정체성으로 더욱 자신이었던 알렉시는, 책임과 의무보다 자신의 천성을 택했다. 
    
소아르스는 회계사무원이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을 썼다. 루소는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글을 썼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못한 알렉시는 타인이 원하는 인간이 되지도 못하겠다고 편지를 썼다. 그들의 글은 진정 자신만을 위한 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쓴 그 글이 내게 힘이 됐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끝없는 불안과 고통을 다스리는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루소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우리의 모든 계획은 공상이라고 말했다. 페르난두 페소아, 장자크 루소,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작가의 다른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내겐 너무 추상적이다. 나는 그들의 책을 더 읽을 것이다. 이 순간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쓸 것이다.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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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2-16 0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추억의 테이프가 있네요. 그럼 카세트도 아직 보유하고 있겠지요? ㅋ

AgalmA 2017-12-16 08:22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에 찍은 따끈한 사진입니다ㅎ! 이사다니느라 테이프 많이 버려서 속이 쓰려요ㅜㅜ 신해철, next(심지어 라이브 실황까지), 015b...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겨울호랑이 2017-12-16 08:27   좋아요 1 | URL
^^: 오래된 테이프는 늘어져서 나중에는 어학용 카세트로 1.2배속1.5배속으로 들었던 제 과거가 떠오르네요.ㅋ 그리신 그림처럼 투명한 테이프로 이문세의 별밤에 나오는 노래를 DJ라도 된 듯 더블데크로 녹음했던 과거도요.ㅋㅋ
 
아름다운 그런데 창비시선 409
한인준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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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곳/것이 아닌 게 있을 때 우리는 더 유심히 본다(비문인 '유심해진다'라고 무척 쓰고 싶었다). 한인준 시인은 그걸 시어로 쓰고 함께 산다고 봐야 하겠다.
내가 가족이다/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종언_이 문장들을 나는 외톨이로 잘 지낸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되나. ‘그러므로가 명사로 거기 있어 존재로서 강력해졌고 자세하게 앉는다는 표현 때문에 화자가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에서도 지명과 부사가 행위를 하는 낯섦이 이어진다. 이렇듯 우리가 사고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인은 말한다. 샤피어 워프 가설에 따라 사람의 언어의 문법적 체계가 그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을 지배한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판이한 삶을 살고 있는 게 된다.

 

저기. 저기로 가도 저기를 여기라고 부르고 말 거야. 우리는 자주 여기에 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
(중략)
우리는 확신하기 위해 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모두들 어디서 내렸을까. 움직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위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어제도 오늘도 구름은 구름이라고 불렸다. 구름을 구름같다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확신하면서 당신에게 문자를 보낸다. 언제쯤 도착할 거 같아?
(중략)
비가 그친 줄도 모르고 우산을 펼쳐 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비가 내린다”(확신)
 
언제부터 별은 달이 아니고 별과 달이었는지// 나는 빛과 빛나는 것을 구분하는지//지하철 출입구를 왜 자주 출구라고만 부르나//어디로든 어디서든 나가야만 했던 것인지//이곳은 아직도 생각 속이구나//이곳에서 별은 달이 되어가는데”(기대)
 
아니야 이 길이 맞아. 생각이 드는 것과 생각이 나는 것을 어떻게 구별했을까”(이륙)

   
우리는 사실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적하는 틀림과 다름은 과연 어느 정도로 명확한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는 쉽다. 비가 내린 뒤 한참 비를 생각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여전히 비가 내린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비를 계속 경험한다면? 미친 게 아니라면 철학 아니면 예술이다. 어렵다는 건 시인도 안다. “식탁 위에 놓인 빨간색은 내가 먹을 수 있는//하지만인가//느낌은 한입으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어렵다/어렵다를 뱉는다”(종언_) 알면서도 한인준 시인은 굳이 어렵게 뒤꿈치처럼 생각”(윤곽) 해보기도 하고, 천천히 제발과 부탁을 더해버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불어오지 않는 바람도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힘에 대해”(종언_하늘 위에 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몰하고 말한다. “육하원칙을 내 인기척으로 두 손을 꼭 쥐고 악다구니로/내 살을 내가 씹을 때마다/상처는 여기구나, 하고 나를 가만히 눌러”(퍼포먼스) 주면서. 시인은 이 모든 게 결국 아무것도 아닌 연극이 아닌가 생각하는 듯도 하다(끝날 때까지 기다려, 연출 연습), 데자뷔). “혼자 많은 생각으로 얼마나를 하고”(종언_) 있어 다른 이의 얼마나도 생각하는 건 수순일까. “목숨은 왜 혼자 배우는 거요//당신 혼자 알았다고 전부가 아니야. 우리 모두 배울 때까지 기다려주자”(게스트하우스) 절대로와 함께라면 모든 것은 이곳으로 도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절대로와 함께라도 모든 것이 이곳으로 도착할 것이다”(종언_할 말 잃어버리기」)라고 말하는 건 바람일까 의지일까
    
한인준의 이 고집스러운 실험은 자신의 고립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김나영 평론가의 표현처럼 우리의 합의와 확신에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 화자의 말은 그 자체의 속성 상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지시하고 설명하는 말이 생겨나는 순간에 그 대상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것으로 편갈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다. 그뿐 아니라 그는 말의 그 역설적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화자의 의심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나와 너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는 애초부터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말의 대상에 대한 지시와 설명과 부연 같은 말의 발생 이후에 나타나서 거꾸로 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지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중략) 이 시집 속에서라면 생각하는 일은 예를 들어 이별의 경우, 그것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경험으로 통칭하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통칭에 깃들어 있는 오해를 해소해서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스스로가 만들어 갖는 과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사전적인 정의로 포괄되어 의미를 벗어나는, 관념으로서 취득해야만 하는 고정적인 이해에 저항하는, 이를테면 자신을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순수한 생각을 얻는 일이다.”(p106)
    
언어의 힘을 얻기 위해 고투하기보다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시집이다. 한인준 시인은 이미 그러고 있다. 이 시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당신 잘못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전혀 이해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좋다고 생각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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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2 | URL
요즘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마술이 돼가고 있어서^^;;

cyrus 2017-12-02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아재 개그 :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아리아나 그란데’가 생각났습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

AgalmA 2017-12-02 17:26   좋아요 0 | URL
ㅎㅎ 경상도 식으로 ˝그란데 와 그라노?˝ 는 안 떠오르시고요? ㅎㅎ
 

(2011년 1월)

 

김경주 시인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라 말했지만 내 계절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뀐다. 누가 더 힘겨운 지구살이인지...내 그로테스크한 기분을 잘 말해주는 시인이 있다. 

 



1.
생일

탯줄이 가위에 잘린 날
먹는 미역국,
탯줄 먹듯 먹는 미역국.

그렇게 살면 못 살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았다
붉은 털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톱니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수난절도 정부미도
돌아갔다 떡국도 붙박이별도 돌아가고
판박이 삶 속에 생일이 돌아와도
그럭저럭 헛 살고 늙어간다는 느낌뿐.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데
별수없이 이렇게 산다.
자궁 속의 강낭콩만한 태아가
부풀어오른 엄청난 육체,
그리고 전진하는 나의 갱년기,
나의 종언, 나의 재,
나 없는 나의 무덤,

無는 대체
나이를 몇 살이나 먹었을까,
내가 다시 0의 나이로
어려져서 충실하게 들어앉을 無는.

詩 최승호 (《대설주의보》, 민음사)

 

 

툭툭 일갈하는 최승호 시인의 문체에서 시적 재능이 뛰어나 너무 쉽게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곤 한다. 한국 시인 중 상당한 다작을 보여준 것만 해도 그렇고. 《대설주의보》 시집 해설을 맡은 김우창 선생의  정공법적인 시선과 비평이 대비를 이루며 돋보인다. 현학적인 수사와 철학(자)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깊다. 이건 최승호 시인과 비슷하다.

 

"실감은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 손쉽게는 그것은 어떤 일을 겪는 사람의 생생한 체험을 재생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생겨난다고 여겨진다. 또 이것은, 단적으로 작가가 그리고 있는 대상과 작가와의 일치, 특히 심정상의 일치로 인하여 가능해진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리 말한다면, 사회 의식을 중요시하는 작품의 경우, 실감의 결여는 흔히 억압적 체제에 의해 희생되는 민중과의 보다 긴밀한 심정적 일치에 의하여서만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형상화의 관점에서 볼 때 심정적 일치의 기능은 이와 같이 긍정적인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형상화는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을 만든다는 것이고 이것은 객관화 작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주체적 일치는 이 객관화 작용에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픈 사람과 심정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때, 아픈 사람의 아픔이 크면 클수록, 또 그 사람의 커가는 아픔에 일치하면 할수록 언어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음과 외침에 한정될 것이고, 그런 경우 아픔의 내용 특히 그 객관적 정황에 대해서 전달하거나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픔의 내용과 정황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ㅡ그것을 전달하고 진단하며 또는 형상화한다는 것은 아픔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아픈 사람과의 일치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그것의 객관화는 있을 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학에서 기대하는 바의 직접적인 전달 또는 형상적 직관을 유발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가가 이러한 일치 상태에 머무는 한, 그는 인식이나 형상화에 나아갈 수 없다. 예술은 대상과 일치하며 동시에 이것으로부터 멀리 있는 역설을 그 조건으로 한다. 예술가가 반드시 관찰자, 제3자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상과 그 대상을 예술적으로 인식하는 자가 같은 사람일 경우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가 단순한 수난자로 수난의 와중에 있는 한, 그는 예술적 표현을 얻어낼 수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민중이라면, 민중은 예술가가 아니다. 민중적 예술가는 민중이면서 민중을 객관화할 수 있는 자, 그런 의미에서 민중을 넘어선 사람이다(이것은 민중과 예술가를 갈라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민중이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고 스스로의 힘을 안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과한다는 것을 말한다)."(p138~140)

 

"사람이 진실에 의하여 움직여질 수 있는가? 여기서 진실이라 함은 어떤 특정한 진실, 즉 직접적인 이해 관계에 의하여 나에게 결부되어 있는 진실이 아니라 인간 일반의 보편적인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겠는데, 문학은 우리의 현실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사람 모두가 인간 존재의 진리에 직관적으로나, 또는 반성과 교육을 통하여 참여할 수 있다고 믿고자 한다. 이것은 문학이, 직접적 명령이나 교훈을 통한 전달이든, 어떤 객관화된 심상의 제시를 통한 전달이든 그것도 물리적 강제력이 없는 마당에서의, 전달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데에서 드러난다. 물론 사람의 참다운 모습 또는 그것에 비친 바 비뚤어진 모습이 일거에 제시될 수 있고, 또는 그것이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실천적 활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우리가 순진하게 믿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근본 바탕에 그러한 순진한 믿음을 갖지 않고는 문학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p142)   

 

 

 

2.
모래인간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래가 된 인간은 많지만 모래로 된 인간은 없다. 모래는 잘 뭉쳐지지 않는다. 모래는 흩어진다. 모래는 흘러다닌다. 모래들이 물어뜯은 것 같은 움푹한 미라는 있지만 모래로 빚은 태아는 없다. 사막에 사는 모래쥐도 그렇다. 모래가 되는 모래쥐는 많지만 모래로 빚은 모래쥐는 없다.

ㅡ 최승호 詩 「모래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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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1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11-01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우창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까!?

AgalmA 2017-11-01 22:04   좋아요 1 | URL
앗 죄송^^; 잠깐 박이문 선생님 생각하다가 실수를ㅜㅜ....잘 지적해 주셨어요!

AgalmA 2017-11-01 22:09   좋아요 0 | URL
평소의 감사를 담아 가즈오 이시구로 책 한 권 thanks to를 syo님께ㅎ;
이거 때문이 아니라 아까 주문ㅎ))

syo 2017-11-01 22:12   좋아요 1 | URL
도대체 syo가 무슨 평소의 감사를 받을 일을 하였을까요 ㅎㅎㅎㅎ 어찌됐건 땡스 투 땡스투입니다.

AgalmA 2017-11-01 22:13   좋아요 1 | URL
삶의 소소한 재미 제공ㅎ?

syo 2017-11-01 22:15   좋아요 1 | URL
보람차다 히히
 
나는 벽에 붙어 잤다 민음의 시 238
최지인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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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희로애락을 고루 살핀다기 보다 고통에 집중해 채록하는 역사 같다. 사람들의 많은 말들과 책을 접해도 그렇고 오늘 내 하루를 생각할 때도 그렇다. 아주 잠깐의 생각 속에서도 나는 저릿한 그 감각을 반추한다. 최지인의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도 그러한 보고서였다. 작품 해설을 맡은 이경수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면 유년의 체험과 광장의 체험을 통해현재의 비정규 청년 세대의 딜레마를 집약한 시집이라 말할 수 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라는 소식이 해마다 전해지는 가운데 너무 흔해서 너무 많아서 이러한 보고가 새삼스럽지도 않다. 너무 잔인한 말인가. 나는 개별자 최지인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집중하는 대상을 더 눈여겨보고 싶었다. 이해는 보편성이 아니라 특수성으로 다가갈 때 더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 세대의 절망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이 최지인의 시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시어이다.

외투들 벽에 걸려 있다”(이리),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아버지 살이 닿았다/나는 벽에 붙어 잤다(중략)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세상에는 벽이 많았고/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비정규), “아직은 아니다 몹시 추운 저녁/밝다 여기는 도시의 광장/길고 견고한 벽이 정면에 있다/벽에 올라선 사람들은 위태롭다 절벽/여러 표정과 식탁에서의 침묵이 암막에 가려 있다”(앙상블), “벽에 기댄 노파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겹겹이 입은 잠바가 뼈를 가리고 있다 작은 눈이 잠깐”(기이한 버릇을 가진 잠과 앙상한 C ), “벽이 있었다면 그와 나는 두꺼운 이불을 바닥에 깔고 함께 누울 수 있었을 텐데 풀지 않은 짐들을 구석에 몰아 놓고 내일 먹을 음식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을 텐데//머그잔을 벽에 던졌다/유리 조각 바닥에 흩어지고(중략)욕조가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욕조를 선물받는다면 골치 아플 거야 벽을 뚫어야 할지도 모르지 벽을 뚫다니! 해머를 쥔 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 그는 드레스를 입고 시체처럼 누워 있네//창문을 열어 두고 시멘트벽에 기대어 있다 도시가 흙처럼 쌓여 있다”(저편의 말), “포클레인이 4층 빌라 벽을 두드린다/주저앉고 있다”(병상), “부서진 서랍장이 널브러져 있었다 벽에 기대 입 벌렸다”(천천히 말하기), “군이 벽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댔다”(쓸모의 꼴), “골목의 벽들이 무너져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인부들이 깨진 벽돌을 옮겼다/우리는 질문하지 않고”(항간), “곰팡이 핀 벽지를 뜯어내고 페인트칠했다/얼룩들이 지워지고 벽은 새하얗다”(레드존), “우린 자동차 백미러를 부수고 다녔지. 하숙방 벽에 깨진 거울들을 전시했다. 우리를 지켜보던 거울들, 깨진 금들.”(믿어야 할 앞날), “너와 나는 하루씩 번갈아 가며 벽 쪽에 누워서 잤다//이곳의 유일한 기쁨을 나누기로 동의했다”(이후), “처형당했다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 모였었다/벽 맞대고 서 있던 여섯/도시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비참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일상은 계속될 것/총성이 멈추면”(리얼리스트)

시인은 벽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걸 몰랐을 거 같다. 알았다 해도 막을 수 없었으리라. 벽은 아버지부터 부수고 있었지만 좀체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고, 광장에서 사는 우리는 또 그 벽에 기대 쉬고 잠을 청하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그의 시에 이미 표현되고 있다. “인간은 가끔 인간 자신을 쏟아 내곤 한다 그것은 아주 난해하다 울부짖음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언어 이전의 삶은 어쩐지 위험하다선조들은 흙으로 벽을 세우고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올렸다 거기서 선조들의 가족과 가축이 살다가 죽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났다”(인간의 시). 벽은 우리를 보호하는 사물이 아니다. 그 벽은 우리에게 남은 제단 같다. “목매 죽은 삼촌의 손/창틀에 늘어져 있었다(중략)두루뭉술/당신 발이 차가웠다”(이리), “담벼락에 박혀 있는 못 굵은 노끈 걸려 있다 개 한 마리 목매달려 있다 대롱대롱 개의 신음/소년 창문으로 개를 지켜본다 죽은 듯 축 늘어졌다 이내 온 힘을 다한다 불쑥 창문 불쑥 창문들”(리얼리스트)

우리의 목과 가슴과 손과 발이 텅 비지 않도록 이 벽들을 무사히 지나가더라도 우리는 기어이 그렇게 될 운명이다. 배를 뒤집으면 관이 되듯이 우리를 뒤집어도 관이 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우성과 함께 뒤집히며 이 광장을 지나가야 할까.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되면서. 그래서 희망은 낙관하는 허공의 끝이 아니라 삶의 유일한 끈인지 모른다.       

 

 

ps) 이 시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는 첫 시이자 등단작인 「돌고래 선언」과 3부 마지막 시 「인간의 시」, 4부 마지막 시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한다.  이경수 문학평론가는 이 시들의 진행에서 '시적 주체의 선언'이 거듭 새로워지고 갱신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라 최지인 시인의 다음 시집이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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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0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0-20 03:20   좋아요 0 | URL
예. 벽 얘기 하다보니 사진도 그렇게 찍어보고 싶더라고요ㅎ
허물어질 것들만 허물어지면 좋을텐데 세상 일이 참 그렇지 않죠....
 

 

이번 주는 어쩌다보니 우리집에 시집이 많이 방문했다. 귀찮지만 나는 귀한 손님 대접을 한다. 
 
이병률 시인은 수다쟁이류가 아니다. 말을 시켜도 가장 적정한 언어가 태어나기 전까지 기다려 달라는 태도다. 안 기다려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쓰던 시를 내버려두고 훌쩍 나갔다 오는 사이 사람들이 그의 떨어진 시들을 주워주는 걸 보면서 “사실은 내가 쓰려고 쓰는 것이 시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시일 때가 있다”(내가 쓴 것)고 말하듯이. 이번 시집은 맑은데 맛이 깊은 국, 손에 잡힐 거 같이 가까운데 깊은 하늘 같다.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이병률  사람중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 2017)
 
옮겨놓은 것으로부터
이토록 나를 옮겨놓을 수 있다니
사는 것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이병률  여행중에서 (바다는 잘 있습니다, 2017)
 
발을 땅에 붙이고서는 사랑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완벽한 사랑은 공중에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어찌 삶이 비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병률  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  중에서(바다는 잘 있습니다, 2017)
  

 

김이듬 새 시집은 특유의 결기가 많이 누그러진 거 같아 다행인지 섭섭인지 모르겠다. 시인이 내내 불행의 옷을 걸치길 기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는 것만이 제대로인 만남인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네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공격하면 끄고 편히 숨 쉬면 된다. 담배를 끊는 마지막 세대, 죽은 이를 기억하며 낭독회를 하는 마지막 몇몇.”
김이듬  마지막 미래중에서(표류하는 흑발, 2017)

 

  
나이가 들면 시인들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뉘는데, 여백이 깊어지거나 사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신인 시인들의 시집에 더 애정이 간다. 거칠고 뚝뚝 끊기는 호흡이어도 그들의 날숨이 가득 느껴져서 좋다. 만들어진 길을 애써 비껴 엉뚱한 몸짓 발짓으로 일어서 걷기 시작하는 그들. 어떤 시인은 빛 속으로 곧장 걸어간다.
  

돌고래 선언


  
손과 죽음을 사슬이라 부르자. 그들이 손가락을 걸고 있는 모습을 엉켜 있는 오브제라 부르자. 그들은 손가락을 쥐고 엄지와 엄지를 마주한다. 구부러진 몸이 손을 향해 있다. 손이 죽음을 외면하는 것을 흔적이라 부르자. 빠져나갈 수 없는 악력이 그들 사이에 작용한다. 손이 검지와 중지 사이 담배를 끼우고 죽음은 불을 붙인다. 타오르는 숨김이 병원 로고에 닿을 때 그들의 왼쪽 가슴은 기울어진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자. 손이 기둥을 잡음으로써 손은 기둥이 되고 그것을 선()이라 부르자. 죽음이 선의 형상을 본뜰 때, 다리를 반대로 꼬아야 할 때, 무너질 수 있는 기회라 부르자. 사라진 손을, 더듬는 선을, 부드러운 사슬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들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담뱃재를 털자. 흩어짐에 대해 경의를 표하자.
 최지인  돌고래 선언」  全文(나는 벽에 붙어 잤다, 2017) 

 

물질과 기억


  
태엽을 감을 적마다
시간에도 감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감정은 신이 아니었지만
시계를 차고 사우나에 들어가면
자꾸만 바라는 게 생긴다.
 
태어나자마자 청춘이었던 사람은
어떻게 생일 챙겨 줄까?
 
에덴의 뱀을 둘둘 말아
태엽을 만들면
아담과 이브는 알람을 맞췄을 텐데.
  
선악과가 먹고 싶은 시간,
하느님 몰래
산책하고 싶은 시간.
 
창세기는 오전 730분부터.
 
기혁  물질과 기억  全文(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박수, 2014)

 

 

예전엔 허수경 시인의 결이 나랑 맞지 않아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맘에 착 밀착되던 순간부터 그의 시들을 참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문장이 지나간 행간 여백도 순도 100% 시여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쓰레기도 흑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보랏빛 구릿빛 빛 아닌 살갗이었다가
허수경  나의 도시중에서(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2011)

 

 

 푸디토리움 (Pudditorium) - 인연 (Nid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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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10-14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집들 제목이 공간을 전부 메우는 것들이네요~ ^^
그러면서 비워주는 곳이기도 하고.. ㅎㅎㅎ

AgalmA 2017-10-15 00:30   좋아요 2 | URL
시집은 책계 휴게소 같지 않아요? 시집 읽으면 숨통이 좀 틔어요ㅎ

2017-10-14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0-15 00:32   좋아요 2 | URL
이런 계절 외투 호주머니에 문지 시집 같은 거 끼워넣고 다니기 좋죠^^
시간이 있음 돈이 없고 돈이 있음 시간이 없고 이 상관관계 어쩌면 좋을까요;;

겨울호랑이 2017-10-14 2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 「물질과 기억」제목을 보고 베르그송이 시썼다고 생각했네요 ㅜㅜ 이런~

AgalmA 2017-10-15 00:34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제목 보고 바로 베르그송 생각했는데....아, <물질과 기억> 뿐만 아니라 사놓고 안 읽고 있는 책 보기 미안해서 집안 운신이 맘이 편하지 않습니다ㅎ;;;

2017-10-15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7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