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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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안 기분이다. 마치 이 시처럼.


 

너의 마음을 읽었는데 / 그랬기 때문에 너와 멀어졌다. / 나의 잘못인가.”

(독심,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의 첫 시집부터 오래된 독자이자 팬으로서 나는 그를 유령 산책자로 분류하며 읽고 있었다.

 

 "살아 있는 듯하지도 않지만 죽어있는 것도 아닌 듯한, 이 고장의 살벌한 아늑함에 대해 나는 지치고 넌더리를(중략)산책할 때마다의 발병. 나는 센치해진다.” (구토」)

이곳에서 모든 것은 /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중략)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객관적인 아침)

 

 내 잠 속의 모래산(2002)

갑자기 나타난 곳에서 / 갑자기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 골목이 끝나면 펼쳐지는 / 오래된 신세계” (복화술사」)

나는 여행 중이고 자꾸 몸이 지워져” (여행자들」)

골목, 이라는 발음을 반복하자 서서히 골목이 사라진다” (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나는 내 바깥에서 태어났다. (실종 )

 

정오의 희망곡(2006)

조금 덜 존재하는 밤, / 안개 속에서 뼈들이 꿈틀거린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떠오른다 (뼈가 있는 자화상」)

누군가 쎈터링한 공이 정점에 도달하는 일요일. /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 힘껏 발을 뻗어보기도 하는. / 달려간다는 것에는 수많은 허공이 필요하다. / 근육질의 허공이”(우연을 위한 장소)

 

생년월일(2011)

나는 잠처럼 완전히 흩어지지 못하고 / 목적지처럼 자꾸 멀어지지 못하고 / 그저 조금 기울어진 채 // 이상한 마음으로 생활을 했다.”(튀어나온 곳」)

나는 천천히 표백되었다. 조금씩 모든 것이 되었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표백 )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

 

나는 더 너머를 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시에 왜 코끼리나 악어,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난무하고 왜 모든 게 무너지면서 되돌아오는지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식물들은 대개 보이지 않는 통일된 전체를 환기하기 위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들은 이에 반대한다. 동물들은 언제나 우리의 바깥에 있다. 동물들은 영원을 가르치지 않고 반대로 유한함과 필멸을 가르친다. 동물들은 개체성과 운동성과 생존 본능의 담지자들이다. 그들은 회귀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멸한다. 그들은 일회적인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희로애락을, 오욕칠정을, 마침내 죽음의 불가피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된 동물들은 통일된 전체 같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본능과 육체성과 타자성을 가르치기 위해 동물들은 인간의 시야로 들어온다. (중략)그러니 시인의 시는 동물원의 시가 아닐 수 없으며 동물원의 시는 인간사의 시를 뒤집고 누비고 돌려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에세이동물원의 시, 동물입니다 무엇일까요(2018))

 

그는 이 에세이 말미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동물들 앞에서 영원회귀를 말하던 것을 언급한다. “만물은 흩어지고 만물은 다시 만난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그러므로 세계와 동물들은 영원회귀 속에서 모든 영원을 부수며 일회적으로 살아가고 일회적으로 죽는다고 밝힌다. 그들은 죽음을 제 안에 이미 지니고 있어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그 자신에게서 벌써 부조리하다. 인간과 동물을 끝없이 이종교배하며 상징과 비유의 시를 숱하게 써왔으면서 결론적으로 인간과 동물을 가른다. 동물들이 개체성과 생존 본능에 압도되어 있다는 그의 인식은 하이데거 사유-‘얼빠짐, 마비 상태 Benommenheit'-를 계승하고 있다. 동물성으로 긍정을 말하고 있지만 그 또한 니체의 사유 자장 안이다. 이렇게 사유를 습득하고 이어가면서 나 자신의 개체성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은 동물들도 자살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동물들에게서 나는 모든 존재들의 비밀스러운 통일성이 보이는데? 동물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들은 바깥이고 안이면서 연결된 채 가고 있는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이건 다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있는 꿈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우리 모두 산산조각 난 꿈에서 깨 다시 살고, 다시 시를 읽고 쓰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실패여도 뭐 어떤가. 어차피 우리가 혼자라면. 우리가 전체로 연결된 존재라면 누군가 대신 이 문제를 또 풀 테지. 그런데 이 모든 게 슬픈 건 어쩔 수 없군. 영원회귀와 시작이 이렇게 맞물려서. 

 

 

 

“끝나지 않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 아닌가?”(「종말론사무소의 일상 업무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죽음은 방어선의 국경일까, 버리기 위한 결말일까.

 

 

 

※ 이 시집에 대한 내 별점은 그의 세계관과 사유에 대한 동의가 아니다. 그로 인해 내가 하게 된 사유 기회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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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06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은 비교적 운동량이 많은 대신 식물보다 생명력이 짧은 것 같습니다. 굵고 짧게 사는 것과 가늘고 길게 사는 것에 다름은 있을 수 있어도, 우열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AgalmA 2018-03-06 13:58   좋아요 1 | URL
이 시집에서 화자가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하고 있는데요. 만물회귀를 말하고 다중우주 같은 시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쩐지 (당연히)제가 모르는 시인의 인식은 굉장히 유물론적인 게 아닐까... 말씀하신 대로 우열적인 그 가름도 좀 충격적이고 해서 .... 이 시집 읽고 굉장히 쓸쓸해졌어요 ...

겨울호랑이 2018-03-06 15:09   좋아요 1 | URL
흠.. 이제 드디어 AgalmA의 「1일 1그림 & 1시집」이 세상에 나올 때가 되었군요...

AgalmA 2018-03-07 06:12   좋아요 1 | URL
읭?...게...게을러서...^^; 나온다기 보다 제가 만들어야 가능할 거 같아서ㅎㅎ; 만들게 되면 겨울호랑이님은 5순위 안에 드는 분이죠^^ 물론 공짜로!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07 08:22   좋아요 1 | URL
^^:) 4부 찍으실 계획이시군요 ㅋㅋ

2018-03-07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8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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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맥과이어는 수를 보여주면서 교묘했다.
1851년 작 허만 멜빌《모비 딕》의 후예임을 자처하듯 《얼어붙은 바다》가 펼쳐지는 시대는 1859년이다. 《모비 딕》의 주인공 이슈메일이 우울과 폭력성을 잠재우기 위해 ‘권총과 총알’ 대신 바다를 택했던 것처럼 《얼어붙은 바다》의 두 주인공 패트릭 섬너와 헨리 드랙스도 바다로 향한다. 이 두 주인공에게는 《모비 딕》의 인물들 특성이 고루 배합되어 있다. 외다리인 에이허브 선장의 특징과 삶에 회의적이지만 야만인 퀴퀘그와 우정을 나눌 줄 알았던 인간적인 이슈메일을 절묘하게 섞은 절름발이 패트릭 섬너, 이슈메일처럼 섬너도 포경선을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기만의 삶의 법칙으로 사는 야만인 프로 작살수 퀴퀘그를 더 잔인하게 변형한 헨리 드랙스. 이 외에도 두 작품에서 겹치는 인물과 설정이 꽤 많다. 뱃사람치고 이상하게 양심적이고 자연계에 깊은 경외감을 가지고 있어 거친 바다에서의 쓸쓸한 생활 속에 미신에 경도되어 있던 일등항해사 ‘스타벅’(《모비 딕》)은 《얼어붙은 바다》의 작살수 오토와 닮았다. 피쿼드호에서 선원들의 장난과 유흥거리 취급받던 흑인 소년 ‘핍’이 바다에 빠져 죽는 첫 주검이었듯 드랙스에게 성폭행과 살해당한 소년 ‘조지프’는 볼런티어호의 첫 주검이었다. 《모비 딕》을 안 읽은 사람이라면 안 읽은 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읽은 대로 유사함과 차이를 느끼며 《얼어붙은 바다》를 따라가게 된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추적과 같은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인지 한참 생각했다. 
실감 나는 고래잡이 현장을 압도하는 에이허브 선장의 모비 딕을 쫓는 기이한 집념이 《모비딕》 전체를 꿰뚫고 있었듯 《얼어붙은 바다》는 많은 포획으로 멸종되어 가는 고래와 함께 사양길에 접어든 포경 산업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러 인간 군상의 욕망과 남루한 밑바닥을 끝까지 쫓는다. 에이허브 선장이 모비딕에 대한 복수와 집착을 숨기면서도 드러내며 선원들을 착취하고 모두의 파멸을 자초했듯이 《얼어붙은 바다》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그렇다. 보험 사기로 배를 침몰시킬 작당을 한 선주 백스터와 브라운리 선장은 각각 예상외의 실패와 어이없는 죽음을 겪는다. 그들의 음모 때문에 북극 빙하 속에 갇힌 선원들은 서로에 대한 증오와 살기 위한 협력을 저울질하며 악전고투한다. 섬너는 다리 부상을 입게 된 인도 전투에서 이미 이런 상황을 겪었다. 상관의 지시로 부대를 이탈해 보물을 찾아 나섰다가 동료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왔는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연금도 못 받고 쫓겨났고 방황하다 아편 중독까지 되었다. 그는 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소년을 구해주지 못했듯 볼런티어호 사환 소년 조지프도 구해주지 못한다. 뭍에서도 물에서도 여린 존재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까. 헨리 드랙스와 패트릭 섬너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정도와 상대가 다를 뿐 그들도 이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하는 자들이다. 드랙스와 섬너의 중요한 차이는 나만 살아남겠다는 이기심의 정도 차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유유자적 배의 주치의 역할만 하려 했던 섬너는 약품을 몰래 취하긴 했지만 의료 행위까지 허투루 하진 않았다. 조지프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사태를 바로잡으려 노력도 했다. 인도 전투에서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영향을 미쳤다 해도 피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불명예제대를 하게 된 원인이자 기념품인 반지를 조난 당한 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식량과 교환하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과 신념이 다르지만 그를 돌봐준 성직자를 수술할 때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임했다. 고난과 시련을 스스로 자초했다 생각하면서도, 무슨 의미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상 그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이 아니라 주어진 삶 자체에.《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유일한 생존자였듯 《얼어붙은 바다》에서 섬너가 최후로 살아남은 이유는 그들이 매우 운 좋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파도를 타듯 살았던 그들 삶의 기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섬너가 탈출 끝에 만난 동물원 북극곰처럼 운도 어느 순간 다할지 모른다. 그는 사는 내내 도망 다녀야 할 악조건과 운명에 처해 있지 않은가. 《모비 딕》의 ‘이슈메일’ 이름은 구약성서 「창세기」 16장에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유래한다. 이스라엘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하녀 하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집에서 쫓아낸 인물이다. 그래서 ‘방랑자’,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라는 뜻을 지녔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도 ‘이슈메일’ 이름의 뜻을 나눠가진 자들이다. 삶의 파도와 작살은 계속 날아들 것이고 배신의 모습이든 죽음의 모습이든 결국 우린 잡힐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고독과 결핍을 이겨낼 의지를 끝없이 살려내야 한다. 모든 바다가 얼어붙기 전에. 모든 바다가 얼어붙더라도. 결국 패트릭 섬너를 거듭 살려냈던 건 운을 부르는 그러한 의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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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2-14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세요. ^^

AgalmA 2018-02-15 03:25   좋아요 1 | URL
전 일 땜에 설 지나 쉴 거 같아요ㅜㅜ...즐거운 연휴되시길/

겨울호랑이 2018-02-15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주변의 상황이 절망적이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같네요...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에도 그러한 희망의 끈마저 놓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AgalmA님 하시는 일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

AgalmA 2018-02-15 14:11   좋아요 1 | URL
나 자신을 사랑하고 반성하며 끌어주지 못한다면 세상 무엇에도 그러하지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애와 이기심은 구분되어야 겠지요.
겨울호랑이 님 말씀 들으니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의 한 대목이 생각나네요.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사물을 이성적이고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의지를 발휘할 수 있게 해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희망과 용기가 함께 가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2-15 16:0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다른 한 편으로는 상황에 따라 흔들림없이 살아가는 삶이 의도적으로 용기나 희망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요.. AgalmA님께서도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AgalmA 2018-02-15 16:28   좋아요 1 | URL
저는 용기나 희망을 추상적 관념이나 판타지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생각엔 삶의 자세이자 행동력에 더 가깝습니다. 언어가 우리 삶의 이해를 좌우하듯이 삶의 성찰과 행동도 그러한 것들의 바탕없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뇌과학이나 행동심리학이 그런 것들을 단순히 인간 생물의 작동방식으로 평가절하한다 해도 그것들은 이성과 결합해 기나긴 역사 속에서 늘 크게 작동했지요. 수많은 혁명과 지금의 metoo 운동만 봐도.
겨울호랑이 님이 말씀하시는 흔들리지 않는 삶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요? 손잡이 없이 수레를 끌고 가겠다는 말씀같이 들렸습니다ㅎ? 서로 화두로 생각해 볼 일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02-15 16:54   좋아요 1 | URL
흠... 저는 무엇인가 목적하거나 추구하는 것은 인위적인 부분이 강하기에 꾸준히 나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행복한 삶, 용기있는 자세 등등.. 그런 부분은 쉽게 규정하기 어렵기도 하고 사람마다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기에 더 어려운 문제라 여겨지네요. 제가 말씀드린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어떻게 해야한다는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의 문제라는 편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배고플 때 먹고, 졸리면 자는 문제는 굳이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의 생각이고 사람마다 삶의 철학은 다를테니 정답은 없겠지요.. AgalmA님의 의견 역시 일리있다고 생각합니다.^^:

AgalmA 2018-02-15 18:59   좋아요 1 | URL
오늘도 일하고 낼도 일할 거라 제 심사가 참 편치 않은데요. 쉴 때 쉬지 못하고 잘 때 제대로 잘 수 없는 삶을 사는 제 선택을 탓하는 연속이죠. 그렇듯 우리 삶은 1:1 대응식으로 물흐르듯 산다기 보다 문제와 돌발 상황의 연속이고, 더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을 잡아줄 의지와 자세가 지속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나 이런저런 지침서를 읽으려는 것이기도 할 테고요. 의도에는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모든 면이 있을 테지만 그 추동 자체는 본능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과의 감당은 각자의 몫이 되겠죠. 다른 이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지 않길 바라지만 모두가 연결된 세상이라 참 만만치 않네요... 그래서 저는 이런저런 것에 휩쓸리지 않고 삶을 긍정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차라리 용기나 희망이지 않겠나 하는 것이죠.
생각을 정리해 볼 말씀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8-02-15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각자의 삶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이 모여 개인의 철학이 되듯 AgalmA님의 말씀 또한 삶 속에서 나온 지혜라 여겨집니다.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기 위한 각자의 대처는 그런 면에서 다른 빛깔로 빛난다고 생각되네요. AgalmA님 연휴기간 기운내셔서 좋은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AgalmA 2018-02-16 04:09   좋아요 1 | URL
요며칠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읽으니 평생 떠돌이 일용직 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지성을 키워 나가며 자유로운 삶도 가능하구나 싶어 그가 참 존경스럽더군요. 말씀처럼 에릭 호퍼의 삶과 지혜는 그의 아포리즘에 단단히 녹아 있더군요. 울상 짓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차에 겨울호랑이 님과의 대화도 참 뜻 깊었습니다! 거듭 감사드려요🙏

2018-02-15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2-15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galmA 2018-02-16 14: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설연휴 맛난 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요^^
새해 복 1 플러스 1 되시길 바라며 :)

2018-02-23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입술을 열면 창비시선 418
김현 지음 / 창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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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빛과 피가 섞인 칸타타를 작곡했노라

진이정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5

 

한 예술가가 형상을 창조하면 그는 그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게 된다. 생각이란, 세계를 정서적으로 인지해 낸 형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예술적 형상이란 작가에게는 자신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공고물인 것이다. 생각이란 단명(短命)하지만 예술적 형상은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감수성이 있는 인간이 한 예술 작품에서 받는 인상과, 순수한 종교적 체험 사이의 유사성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인간의 정신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김현, 진이정, 타르코프스키, 마크 로스코, 반 고흐를 한데 모아 찍은 저 사진에서 당신은 어떤 공통점을 보는가. 이들이 그려내는 빛 속에 강렬하게 드러나는 종교성 때문에 나는 저 사진을 찍고 말았다. 김현 입술을 열면에는 영혼이란 단어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님”, “”, “십자가”, “예배당”, “교회”, “성당”, “기도”, “정령”, “창조”, “사랑”, “천사”, “영원”, “진실의 종”, “운명”, “평화”, “축복”, “말씀”, “전지전능”, “은총등의 단어들이 계열어로 호위하고 있다. 진이정 시집이 아트만부터 신령”, “굿”, “업보”, “윤회등 그러한 계열어로 가득했듯이. 보고 있으면서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눈() 같은 의미의 폭설이다. 눈을 한 움큼 두 손에 담았다고 눈을 가졌다고 찾았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의(시인으로서도, 독자로서도) 궁지다.

 

눈이 와

그 사람은 꿈을 꾸었다

 

박사의 마음기계에

깨지기 쉽고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침묵하고

밤이면 질문하고

질문을 깨뜨려버리는 자를 기록했습니다

 

어둠이

박사가 지닌 숲을 뒤덮어

박사는 가슴을 열고

녹색 광선이 등장하는 흑백영화를 상영했습니다

 

무성 영화

 

인상파(印象派)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둔 미술 사조이다. 추상표현주의 거장인 마크 로스코의 작품도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빛과 색이 더 중요하다. 정제된 시적 몽상으로 가득한 타르코프스키의 영상도 이야기와 빛이 인상깊게 엮어 있다. 김현은 언어로서만 가능한 효과를 꿈꾼다 


 

한 남자가 칼을 들어 얼굴을 찢자 한 남자의 얼굴이 갈라졌다. 한 남자는 떨어진 눈과 코와 입을 주워 캔버스 밖으로 고요히 사라졌다. 한 남자는 눈도 없이 코도 없이 입도 없이 칼을 버렸다. 한 남자는 이제 완전한 얼굴이었다. 한 남자는 눈이 두개 코가 두개 입이 두개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 남자는 이제 완전한 사실이었다.”(보는 자의 관점) 

 

이 시집에 나오는 -’, ‘-검은’, ‘생명-죽음’, ‘조선-박근혜는 “이곳은 아주 컴컴하고 희구나. 빛이 없구나. 어둠으로 환하구나.”(조선마음 6)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리는 눈()을 눈()없이 만끽할 수 없듯, 몽환 속을 걷던 잠에서 깨야 아침을 맞듯 그것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시가 아닌 것에 시간이라는 제목을 붙”(죽음과 시간)이고, “시간이란 그토록 유용한 넘나듦임에도 우리는 민숭민숭하게 늙어버”(조선마음 8)리는 순간만을 겪기에 시인은 계속 이어 붙인다. 신 없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듯이 없는 조선과 옛 고궁도 시인에게는 이 현실의 예배당으로 작동한다. 진이정이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갔듯이 말이다. 시간을 돌려 읽으며 조선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말하게 되어 버리는 우리가 읽지 못하는 현상(시간, , 세계 등등)을 멈춰 가져오는 게 그의 시적 방법론 같다. 그렇기에 그의 인용과 차용과 각주가 넘치는 캠프적 작법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끝에 가서는 이해가 됐다. 그리고 단순히 방법론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타르코프스키의 걸작 중 하나인 희생의 주인공 알렉산더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광인이 되어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았듯이 김현 시인도 기꺼이 그러하리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술가로서 나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 광기는 누구도 볼 수 없고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시인의 말) )

 

예술에 있어서는 개성이 진실임을 판명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좀더 보편적이고 좀더 높은 이념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예술가란 자기 자신에게 마치 기적과 같이 부여된 재능에 대해 소위 관세를 물어야만 하는 하인이다. 진정한 개성이란 오로지 희생을 통해 얻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희생의 시 쓰기를 하는 시인은 빛은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나는 그것이 최초도 최후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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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2-11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로 얼굴을 찢는다‘는 문장을 읽으니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눈동자를 칼로 가르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AgalmA 2018-02-12 23:11   좋아요 1 | URL
전체 시를 보면 회화 사조(입체파, 초현실주의 등등)들을 풀어 쓴 거 같은데 이 시집에 영화도 많이 삽입되어 있기도 해서 그런 상상이 되실 만도 하죠. 자세한 내막은 시인만 알겠죠^^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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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6년이 지나 심리 상담사를 찾았을 때에야 커스틴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돌연한 가출로 인한) 회피 애착, 라비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유년기에 잃은 어머니로 인한) 불안정 애착에 평생 얽매여왔고 그 때문에 자신과 상대를 괴롭게 했음을 인정한다. 소설은 그것을 낳게 된 더 큰 배경의 문제점도 계속 거론한다. “사랑은 조사를 거부하는 본능이자 감정이라는 개념에 취해버린 세계”, “결혼생활을 감정(애정, 욕구, 열정, 갈망 등)에 대한 축성(祝聖)”이자 완성처럼 포장한 세계, 금전을 따지기보다 영혼의 짝을 만났다는 믿음을 추구하고 연인은 완벽하게 우리를 사랑할 것이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낸 낭만주의 사상의 영향은 이들 부부뿐 아니라 부모 세대에도 작용했고, 그들의 자녀 세대에도 여전히 큰 장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도.

소설은 커스틴과 라비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 생활에서 온갖 환상의 무너짐을 겪으며 아이를 키우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자신의 꿈을 잃어가면서(“그래, 실패란 이런 것이다. 주요 특징이라면 침묵이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고, 불러내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일도 없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실패를 엄청난 재난 같은 모습으로 상상해왔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실패는 사실 겁먹은 무위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성공을 향한 집요한 꿈을 심어놓았다. 인류에게 그런 분발심이 내장된 데에는 분명 진화상의 이점이 있었지만) 외도에도 빠지는 많은 과정과 심리들을 냉소하지 않으면서(“냉소는 너무 쉽고, 그래서 얻는 것이 없다”) 주목하며 그리고 있다. 어쩌면 낭만주의의 발전된 형태일 수도 있을 작가의 이런 휴머니즘 자세가 쉽게 깎아내릴 건 아니다. 온갖 막장과 외설이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양, 인간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괴물처럼 그려내는 요즘 소설의 지나친 과잉과 광기가 진실(“진실이 거짓보다 그들의 관계를 훨씬 더 왜곡할 수 있다”)을 드러내는 탁월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연인/배우자가 우리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라고 의도적으로 착각한다. 사실상 결혼은 인간 본성, 인간의 약점과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고된 길이다. “우리 눈에 정상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직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사랑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고,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기란 감정의 존재 법칙을 우회할 방법을 찾았다고 믿는 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통을 흔쾌히 견딜지 결정하는 일이다. 완벽한 삶을 꿈꾸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추구의 욕망을 덜어내는 일이고,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최고 수료 단계이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삶의 속성에서 파생된 결혼이란 제도의 문제점을 봐야지 각 개인의 문제(“모든 게 네 탓”)로만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외도와 배신 문제는 여전히 낭만적 성채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데 사랑과 섹스(욕망)를 동일시하고 도덕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태도는 깊이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이 모든 고민의 시점을 지나는 결혼 16년 차에 라비는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미래의 불확실성도 깊이 깨닫고 있다.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권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잠깐 동안 만족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 깊었던 것은 그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인간과 사회, 사랑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 인간 사회에는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 인생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줄 게 결국 그리 많지 않다는 측은한 믿음이 존속한다. 

아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봉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사랑이란 말은 갈수록 부정적 의미들을 내포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와 자기 충족에 빠진 문화는 만족과 타인의 부름에 응하는 행동을 쉽게 등치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매혹하고 위로해주는 능력에 대한 보답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러나 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더 자란 아이들이 가끔 큰 불안을 느끼며 판단을 내리듯이, 아이들은 아무 요점이 없고, 이것이 아이들의 요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위치에 있기 때문에어떤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장점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약점에 대한 동정, 즉 인류 모든 구성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고 한때 나 자신의 것이었고 결국 나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그 취약성을 동정하는 사랑으로 인도된다. 자율과 독립성을 늘 지나치게 강조하고 싶어 하는 와중에 이 무기력한 피조물은 아무도 결국은 자력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인생은문자 그대로사랑하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 이 소설을 읽으면 자신을 대입해보게 될 것이다. 내 결핍들, 부모가 결혼생활에서 겪었을 어려움들, 부모와 내가 같이 머물 수 없는 평행선들, 내가 만난 모두가 가졌을 문제들, 서로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대립했던 각종 사건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인류 삶의 가장 근본적인 끈이라는 것을 말하며,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평범한 말이지만 사람 삶이 그 평범 속에 있는 것과 같이. 낭만적 연애 이후는 더 많은 일상이 채우는 것과 같이.
 

부모의 다정함만으로 충분하다면 인류는 활기를 잃고 머지않아 사멸할 것이다. 인류의 생존은 마침내 넌더리를 내고 사랑과 흥분을 선사할 더 만족스러운 원천을 찾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이 세상에 항상 나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응은 냉소나 공격이 아니라, 드문 순간이나마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사랑해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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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0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4 16:05   좋아요 1 | URL
저도 알랭 드 보통 견해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ㅎ; 하지만 생각해 볼 지점을 건드려주는 지성이 돋보이지요^^ 세상의 복잡하고 많은 부분을 비정상과 정상으로 가르고 보는 건 문제가 있긴 해요.

겨울호랑이 2018-01-24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쪽 format이 조금 더 좋네요^^!ㅋ

AgalmA 2018-01-24 15:39   좋아요 2 | URL
기혼자라 더 그러신 건 아니고요ㅎㅎ? 이 책 덕에 제가 잘 모르는 관계나 감정들을 많이 알게 되었지요^^

겨울호랑이 2018-01-24 17:14   좋아요 1 | URL
^^: AgalmA님의 말씀처럼 제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네요. 리뷰만으로도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니 이쪽 format이 좋아요 ㅋㅋ

2018-01-26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6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6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6 22:45   좋아요 0 | URL
강! ㅎㅎ 잘못 말했네요. 강원도 갈 때 길게 이어지던데^^.
여름철에 안개 피어 오르고 해서 좋더라고요. 땅이 넓으니 거기 사는 사람의 감흥도 천차만별이겠지요^^
전 이제부터 피자 먹을거임~케헤헤

2018-01-28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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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가치라는 단어는 붙어 다닌다. 불행과 무가치가 몰려다니는 것처럼. 행복과 가치의 선후관계를 생각해보면 가치를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기쁘고 행복하다. 가치 중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느낄 때가 가장 강렬할 것이다. 꿈을 이루고 상을 받을 때 기쁜 이유이다.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7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타인 즉 인간의 가치 없음에 대해 고통스러움과 환멸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상작 황정은 <웃는 남자>d와 여소녀가 주인공이다. 가정에서부터 길에서 차가운 주검이 되기까지 ddd 외에 그 존재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dd의 죽음 이후 사물의 온도와 세상의 소음에 온통 불쾌감과 냉소를 보내던 d는 택배 기사로 다닐 뿐인 자신을 알아본 세운상가 음향기기 수리사 여소녀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듣고 보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은 닮았다기보다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보여주는 쌍 같다. 평생 고장 난 기계 속을 들여다보던 여소녀는 무너져가는 시대의 건물 속에서 지옥과 같은 적막을 경험하고 있다. 평생의 가치라고 할 연인을 잃은 d는 자신처럼 가족을 상실했지만 시대의 혁명으로 싸워가는 사람들 함성 속에서도 죽음 같은 환멸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버려지기 직전의 빈티지 음향기기에서 어떤 것과도 다른 소리를 살려내는 여소녀를 통해 d는 지금까지와 다른 소릴 알게 되었고 진공관에서 예상치 못한 사물의 온도를 느낀다. 작가는 여기서 끝을 냈는데 그 온도, 소리, 관계, 가치의 이후는 우리의 몫이라는 뜻일까.

 

김숨 <이혼>은 제목 그대로 서로에게 가치가 되지 못한 이들의 파국이다. 작가는 단순히 부부 관계의 단절, 헤어짐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을 하지 않는 엄마에게 나도 더는 엄마를 도울 수 없다고 후회할 말을 하고 민정은 독립해 떠났다. 그녀는 아버지로 인해 세상에 닫힌 문을 갖게 되었다(“한때 그녀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세상 모든 폭력의 근원이 아버지 같았다.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폭탄 테러도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만 같았다”). 아내 민정의 병과 마음에는 무심했으면서 사회 약자들을 가까이하며 사진 작업을 했던 철식은 그동안 쫓아다녔던 비정규직 노동자 강인구와도 민정과도 어떤 소통도 하지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됐다. 관계가 쉽사리 끊어지지 못하는 예도 작가는 안배했다. 스스로 이혼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지경까지 상대에게 깊이 예속되고 만 민정의 어머니, 이혼 후에도 결혼 생활에서의 의문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영미 선배,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맺어진 인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다리 없는 여자 같은 이들은 우리에게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 가치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무시 못 할 강력함이다.

 

김언수 <존엄의 탄생>은 떠돌이 개에게조차 무시를 당하는 것에 분개한 진수라는 인물의 비루한 일상을 담았고, 윤고은 <평범해진 처제>는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가장 깊이 알게 되는 사건인 첫사랑과 재회한 주인공이 자신이 그런 가치의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에피소드다. 그녀가 쓰려던 소설 천재평범해진 천재에서 평범해진 처제로 변형되어 완성되듯이. 윤성희 <여름방학>은 집안의 돌림자 때문에 이병자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오십 넘는 생을 산 주인공이 그 이름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듯 세상에도 적당히 맞춰서 산 삶을 이야기한다. 새 삶과 새 이름을 가지는 것을 여름방학으로 표현하는 주인공과 작가에게 왜 하필 방학이냐고, 방학은 금방 끝나고 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려다가 삶의 환희가 그런 것이라 결국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기호 <최미진은 어디에>는 자신의 소설이 평가 절하되어 중고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에 모욕을 느낀 작가가 판매자와 직거래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판매자의 내막을 알게 된 작가는 모욕을 당할까 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서글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짧고 재밌는 메타 소설인데 박형서 작가를 재밌게 이용(?)해서 더 재밌었다.

 

편혜영 소설은 늘 서늘함이 떠도는데 <개의 밤>도 역시 그러했다. 김은 처가의 도움으로 고급 전원주택을 얻게 됐고 장인의 도움으로 현장 사고 처리 일을 맡게 됐다. 그 가족에 융화될 수 없었고, 부대 폭행의 악질 가해자인 처남 문제에서 그들의 옹호에도 동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사고를 당한 직원 장의 집에 합의를 요구하러 동료 안과 찾아간 김은 안에게 불가피한 처리를 교묘하게 떠넘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내동댕이쳐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역할을. 그리고 처남 일의 탄원서를 내민다. 그가 처남의 탄원서 서명을 받아야 되는 수치와 굴욕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연대를 만드는 이 과정은 익히 보아온 일이지만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그가 살던 전원주택 단지 내에 노부부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도 개가 짖지 않았던 것처럼 이 세상의 많은 밤과 불의에도 그런 파수견이 없다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다.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에 대해.

 

김은 감은 눈을 떴다.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는다고, 우리를 벌하는 건 우리 자신일 뿐이라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아내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아내가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에는 침묵하고 잘못을 추상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처남의 죄를 하찮게 만들어버린 것을 모르는 척했다. 아내에 따르면 모두의 인생에 죄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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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24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소설의 리뷰는 이렇게 쓰는 것이군요. 좋은 format을 알고 갑니다.. 참, 더 좋은 내용도 배워가네요.^^!

AgalmA 2018-01-24 15:40   좋아요 1 | URL
많고 많은 리뷰 중 하나일 뿐이죠^^; 겨울호랑이님 뷔페 글만큼 영양가가 풍부했으면 좋겠다는 게 희망사항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4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가치 없음. 불행의 지속성,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안개의 풍경 ... 요즘 소설의 화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명랑하던 김애란도 우울한 풍경을 이야기하고는 했으니... 아마도 용산사태와 세월호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됩니다..

AgalmA 2018-01-24 16:54   좋아요 0 | URL
네, 황정은 <웃는 남자>에도 세월호 당시의 광화문 풍경이 가득 펼쳐지죠.
작가는 시대를 넘어 보기도 하지만 시대의 카나리아라고도 생각해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겠죠. 최근 한국문학 보면 너무 위축되어 있는 거 같아 안타까운데 좀 더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