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잃어버린 몸 할란 엘리슨 걸작선 2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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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 엘리슨 리뷰 쓰기의 어려움은 소설의 주요 줄기를 말하는 것이 강력한 스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소설 리뷰에서 자세한 스토리를 밝히는 걸 되도록 피하는데 너무 자세하게 알 경우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후 리뷰를 보는 것보다 책을 사기 전에 리뷰를 검토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내 경험을 통해서도 그렇다. 스토리를 너무 잘 아는 고전들 경우 사람들이 잘 안 읽는다는 걸 생각해 보라. 독후감 형으로 글 쓰는 사람들은 자기 감상을 쓰는데 도취해 이 부분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세하게 얘기해서 내가 이만큼 열심히 봤다는 걸 알리는 과시형, 귀찮거나 능력이 부족해 대충 말하는 리뷰어 등등 경우의 수는 많다. 아무튼 할란 엘리슨은 스토리 이상 가는 특유의 재담, 화려한 언술이 있다는 걸 당부하며 리뷰로 들어가겠다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1993년 브람스토커상 수상, 1994년 로커스 상 수상, 1994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1994년 네뷸러상 노미네이트, 1994년 세계판타지문학상 노미네이트)

 

이 단편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물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외톨이 흑인 루디는 유일한 친구이자 짝사랑하는 앨리슨의 부탁으로 그녀가 조사하던 연쇄살인범 스패닝의 진실을 알기 위해 그를 만나게 되는데……. 역으로 루디가 연쇄살인범이 되고 그가 흑인에서 백인이 되는 과정이 있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야? SF 장르물을 많이 본 사람들은 대략 짐작할 수도 있겠고, 제목을 상기하시라.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허비한 건 인종차별이나 불운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연민 때문이었다는 루디의 깨달음은 의외로 계도적인 결말이 되어버렸지만 군더더기 없이 상큼한 끝을 보여줬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1968년 휴고상 수상)

 

표제작이기도 한 이 단편이 2권에서 단연 돋보인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각국이 개발한 AM의 성격을 얘기하면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 대략 보인다

 

처음에는 연합형 마스터컴퓨터(Alied Mastercomputer)였다가, 그다음에는 적응형 조종자(Adapyive Mastercomputer)가 됐다가, 그다음에는 적응형 조종자(Adaptive Manipulator)가 됐다가, 나중에 그게 지성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를 연결한 후에는 사람들이 그걸 공격형 위협(Aggressive Menace)이라고 불렀지만, 그때쯤엔 너무 늦었고 결국에는 그게 스스로 AM, 떠오르는 지성이라고 자칭했지. 그건 나는 존재한다(I Am)는 뜻이었어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p102)

“AM은 돌아다닐 수 없었고, 경탄할 수 없었으며, 소속할 수 없었다. 그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p111) 

 

자신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을 죽이는 인간처럼 AM은 모든 인간을 죽이고 자기에게 지능을 부여한 개발자 5명에게 자기가 겪는 무한 고통을 같이 겪게 만드는 걸 목적으로 산다. 마지막 생존자는 AM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처리한 외형으로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없는 입으로 실존의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과연?) 인공지능을 개발했지만 할란 엘리슨은 자멸의 경고로 풀어놓고 있다. 그의 다른 단편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메시지다. 존재 간에는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이질성이 있다는 인식. 인공지능이 우리 관심을 이토록 끄는 이유는 존재,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크로아토안 

(1976년 로커스상 수상, 1976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도시전설에 대한 단편이다. 자기중심적으로 연애하던 남자는 불법 시술로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시켰고 여자 친구는 변기에 흘려버린 태아를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이 이야기는 하수구에 악어를 버려서 탄생했다고 알려진 앨리게이터(하수구 악어) 도시 전설과 이어지는데, 태아를 찾으러 간 남자는 악어를 탄 아이들이 살아가는 기묘한 지하세계를 만난다. 지상에서는 철없는 아이처럼 살았던 그는 이 세계에서는 아버지라 불리며 모든 걸 다시 배워나가는 삶을 살게 된다. 악어를 탄 아이들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는다.

 

 

    

랑게르한스섬 표류기 : 북위 38° 54서경 77° 0013에서 

(1975년 휴고상 수상, 1975년 로커스상 수상)

 

이 단편을 두고 카프카, 멜빌, 메리 셸리, 아시모프, 시오드막의 융합이라는 평은 적확하다. 오마주들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늑대 인간이라는 괴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탈봇은 자신의 존재 이유, 영혼을 찾고 싶어 한다. 비밀스러운 정보제휴처를 통해 그의 영혼이 있는 장소의 지리적 좌표를 얻긴 하는데, 가는 방법은 굉장히 물리학적이다그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가진 연구소 책임자 친구를 가진 덕분에 나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할란 앨리슨은 탈봇의 영혼이 있는 장소를 환상적으로 그려 놓았다. 책을 통해 직접 만나 보시길/

 

 

 

 

 

폭신한 원숭이 인형

(1988년 에드거상 수상)

 

행동심리학 책을 본 사람은 제목만으로도 짐작이 쉬울 텐데, 동물들은 폭신한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애니는 아이를 잃고 폭신한 인형을 아이로 여기며 노숙자로 살아가는 흑인 여성이다. 최하층이자 가장 취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범죄 무리들에게 얽혀 곤경을 헤쳐 가는 모습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신춘문예 당선작 같은 느낌이었는데(비교할 만한 작품이라면 황정은 신춘문예 당선작 마더) 역시나 에드거상을 탔군

 

 

    

꿈수면의 기능

(1989년 로커스상 수상, 1989년 휴고상 노미네이트, 1989년 브람스토커상 노미네이트)

 

이 단편도 아주 독특한 설정이다. 상실의 아픔을 흘려보내지 못해 타나토스의 입을 몸에 품게 된 맥그래스의 기이한 경험을 담고 있다 

 

그녀가 집단 꿈치료를 제안했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일찍 그 근처로 왔다. 그러고는 하루 대부분을 자신이 정말 일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지 판단하려 애쓰며 돌아다녔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 일대가 어떻게 고급화됐는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변했는지, 이곳에 번창했던 멋진 작은 가게들이 급등하는 임대료 때문에 어떻게 쫓겨났는지 살펴보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 가게와 저 상점을 기웃거리고 쇼핑을 하며 그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는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쁨이 말라간다는 사실에 갈수록 낙담했다. 기쁨이 말라갔다. 가게마다, 거리마다, 사람마다. 

그러다 누군가는 홀로 남는다.“(p252)

 

몽유병과 꿈, 기억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탐구를 버무린 그로테스크한 미스터리물이다. 1980년대 프랜시스 크릭과 그레임 미치슨의 뇌 연구 이론인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서 꿈을 꾼다는 가설”(p253)을 주축으로 할란은 이 단편을 쓴 거 같은데, 최근엔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한나 모니어, 마르틴 게스만)고도 하니 이거 참 나로선 어려운 문제다. , 읽을 책만 늘어나는 반갑지 않은 소식들.

 

 

 

 

 

 

 

 

 

 

 

 

 

 

 

 

 

  

 

콜롬버스를 뭍에 데려다준 남자

(1993미국 베스트 단편소설집수록, 1994년 네뷸러상 노미네이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의 오마주인가 싶은 단편이다. 101일부터 35(?)까지 레벤디스가 행한 악행과 선행 혹은 어느 것에도 속하기 어려운 기묘한 삶에 대한 관찰들을 제목을 붙여가며(‘오디세우스의 여정’, ‘환대하는 수선화’, ‘매일 착한 일 한 가지’, ‘보답 없는 일에 몰두하기’)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그랬듯 언어에 대한 짓궂은 농담들이 많다.

  

레벤디스 : 1034일 필틱요일, 그는 모든 개들에게 영어와 프랑스어, 북방 중국어, 우르두어, 에르페란토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하지만 개들이 말한 거라곤 최악이라고 평할 만한 운율을 맞춘 시뿐이었고, 그는 견시(犬詩)라고 불렀다.”  

 

레벤디스는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이라는 그리스어라고 한다. 이야기 진행으로 보아 시공간을 두루 오가는 그는 인간 삶에 개입하며 인간 속에서 살아가는 장난기 많은 타락천사 같은데(반복되는 추임새 전 슬프게도 유한한 세계에서 사는 무한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레벤디스라고 부른 일, 마스터 변수 지출을 많이 한 것 등등으로 본부로부터 견책을 받고 다른 임무에 임한다. 아무도 알아줄 사람도 없는데 세르챠라는 이름을 굳이 택하고.

   

 

 

악동 같은 할란 엘리슨의 웃기고 슬프고 서늘하고 기발한 2권은 이렇게 끝난다. 할란의 작품에서 시간을 낭비해서인간은 이렇다는 견해를 자주 본다. 없는 1035일까지 챙겨서 사는 존재처럼 나도 삶의 창조에 전력해야겠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에트루리아어로 열변을 토하던 레벤디스 같을 순 없겠지. 난 일단 에트루리아어를 모르고 더 많은 걸 모른다. 그렇지만 함께 재밌을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다. 좋은 음악만 같이 들어도 삶은 더 나아 보이지 않던가.

 

 

 

Nothing But Thieves 신보가 나왔어용~

https://youtu.be/S6Nt1ssPLBA 

Nothing But Thieves - Broken Machine (Stripped Version)  

 

 

 

 

 


 

이번 Axt(악스트)  No. 014에서 이주혜 씨가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리뷰를 쓰셨지만 제 리뷰가 더 꼼꼼하고 애정 넘친다고 자부합니다-_-! 워워~ 이러다 리뷰 과시형이 될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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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18 14: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능력이 없어서 대충 말하는 리뷰어 1번 등장이요! ㅎㅎㅎ

과연, 이런 게 리뷰구만요....ㅠㅠ 끄덕끄덕

AgalmA 2017-09-18 17:28   좋아요 0 | URL
syo님은 읽기도 바쁘시잖아요ㅎㅎ; 저라도 그렇게 읽으면 리뷰 쓸 시간에 책을 더 읽을 듯ㅎ;
리뷰도 계속 쓰는 버릇을 해야 습관이 되고 기술도 늘죠. 안 쓰다보면 또 잘 안 돼요. 자전거 타기처럼 한 번 익히면 평생 되는 그런 게 아니더라는.
남들이 어찌 쓰든 제가 가타부타할 깜냥이 되나요. 어디까지나 내 생각엔 이런 것 같다 정도입니다.

서니데이 2017-09-18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면서 리뷰를 쓴다는 건, 쉽지 않아요.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 처럼요.
A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AgalmA 2017-09-18 17:30   좋아요 1 | URL
오, ˝내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좋은 표현인데요. 서니데이님 공부 열심히 하신 분답게 멋진 표현^^b
더운 건지 선선한 건지 묘한 날이네요~

에일로이 2017-09-18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리슨의 팬으로서 이 페이퍼를 격하게 환영합니다^^

AgalmA 2017-09-18 17:41   좋아요 1 | URL
헤르메스님한테 ˝할란 엘리슨 안 사요, 흐흐˝ 팅겼던 기억이 납니다-.-; 다 소장할 책들인 걸로 아뢰옵니다.

에일로이 2017-09-18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까지 회심시킨 갓 엘리슨이로군요^^

cyrus 2017-09-18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SF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둘씩 다시 소개되는 건 정말 좋은 현상입니다. 아작출판사가 요즘 열일하는군요. ^^

AgalmA 2017-09-18 20:1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예전엔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작 같은 데에서 열심히 내주니 관심이 많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