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붉은 담장의 커브》시집에서 대상들은 모이면서 서로를 찌르고 갉아먹으며 침범하고 해체하지만 서로를 증명하는 ‘세계-내-존재‘(하이데거)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사라지는 결과일지라도.


부서진 계단


나는 계단을 오른다.
부서진 계단

내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계단들은 사라진다.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
서로 계단을 던지며

모든 사람이 싸우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팔을 꺾어
멀리 던져버린다.

멀리 날아간 팔이
되돌아와
계단을 오른다.

나에게로 자꾸
나는 굴러 떨어진다.

계단을 오르지만
계단은 보이지 않는다.

단두대에 앉았지만
나는 이미 머리가 없다.


서로를 반영하면서도 지우는 과정의 연속이라 이수명의 시는 탈자기화를 만들어낸다.  매일 간이 재생되어 되살아나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이상한 시적 정황이 계속 펼쳐진다.


˝멀리 날아간 팔이/되돌아와 계단을 오른다˝(「부서진 계단」),

˝나는 내가 보낸 밀정을 살해했다. 또 다른 밀정을 보내서. 내가 제2, 제3의 밀정을 보냈을 때, 내가 내 밀정의 밀정이 되어 사라지기 전˝(「바다의 프리즘」),

˝길을 가면서, 그는 호도나무를 베었다. 호도나무는 눈에서 자란다. 호도나무가 두 눈을 완전히 가리기 전에, 그는 이따금 멈추어 가지들을 잘라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호도나무는 왜 돌아오는 것일까?˝(「호도나무를 베다」)

˝사과를 던지자 최초의 벽이 생긴다. 사과는 벽에 맞아 떨어진다. 벽에 맞는 순간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조각들로 흩어졌다가 사과는 다시 뭉친다.//사과를 던지자 벽이 뚫린다.//푸른 사과들이 도로 양변에 늘어서 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머리 위로 내가 던진 사과가 날아간다.˝(「푸른 사과」전문)


그래서 《붉은 담장의 커브》 시집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악몽의 사전처럼 보인다.
하이데거 ‘세계-내-존재‘의 의미처럼 존재들은 주체적이지 않고 세계 속에서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므로 무수한 사건과 부딪히며 비물질적이고 불확실한 상태에 지속적으로 빠진다. 안심할 수 있는 세계도 대상도 없다.

˝한순간 불빛이 그를 에워싸고 그를 파먹는다. 쥐들이 비명을 지른다//그의 머리는 불빛에 녹아서 완전히 사라진다.˝(「식당에서」)

˝나는 날마다 나타나는 낯선 사람이다.... (중략).... 호루라기를 불면서 나는 사라지는 것이다.˝(「안내」)

˝고양이에게 물려간 뒤/ 태양도 고양이를 물었다.//붉은 카펫 위에서/나는 그네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그넷줄을 잡고 있는 두 손은 손목이 끊어져 있었다.˝(「그네」)

세계 내에서의 불안으로 인해 시적 화자의 세계는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불길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벽에서 튀어나온 못들, 못들을 피해 나는 잠잔다. 못들과 함께, 두 귀는 서 있고 손톱과 발톱은 공중에 떠 있다.˝(「」)


 

시적 화자는 불안과 의심 때문에 세계와 대상을 편집증적으로 추적하게 되는데, 이수명 시에서 사물들이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탄의 세계에서 이수명 시인이 아직도 치열하게 싸워나가고 있는 건 인간에게 꽤 긍정적인 소식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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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에 이르다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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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걸 동시에 가져와 보려는 시도는 정영문 소설 속에도 언급되고 있는 조르주 페렉 같은 작가들 소설에서 잘 볼 수 있다. 편집증적이지만 이걸 감당하는 작가의 고통은 사실적이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대응될 수 없다. 애초에 불가능하고 결국 무용(無用)을 향해 나아간다.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많은 삶 끝에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있듯이.

 

 

언젠가 이후로, 아무런 맥락도 없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얘기를 하는, 그래서 아무것도 말하는 것이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말하는, 그래서 사실 그 무엇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그래서 어쩌면 말하기의 끝에 대해 말하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거의 필사적으로 말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이런 글들을 쓰며, 삶을 허비하는 데 삶을 다 바치는, 그럼에도 다른 삶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럼에도 다른 삶은 꿈꾸고 싶지 않은, 남은 삶은 남은 삶을 허비하는 데 마저 다 바칠 것이 분명한 이상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ㅡ 「개의 귀

 

오리무중인 생각들이 이어졌지만 이것들을 일일이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점점 더 오리무중 상태에, 오리무중에 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한, 도술을 부려 세상과 담을 쌓은, 역사 속 중국의 누군가를 잠깐 생각했다.”

ㅡ 「오리무중에 이르다

 

 

작가도 독자도 숲이기도 하고 담이기도 한 글을 헤매다 문득 이상한 황홀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판매하는 곳을 어렵게 알아내 동굴을 하나 주문했다(물론 동굴은 그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살 곳이었다). 며칠 후 동굴 하나가 왔지만 동굴로서 결함이 있는 곳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구 모양의 바윗덩어리로, 크기가 적당했지만 결정적으로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입구가 없었고, 그에 따라 입구이자 출구인 출구도, 입구와 별개로 있는 출구도 없었다. 그래서 출구를 통해 그 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것은 동굴로 보기 어려웠다. 불량품이 틀림없었다. 사용 설명서도 없었다. 어쩌면 사용자가 알아서 그 커다란 바위에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구멍을 내 동굴로 사용하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동굴이 아닌 바윗덩어리는 반품하고, 폭이 좁지만 바닥이 없는 늪을 하나 다시 주문했다(물론 늪은 그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살 곳은 아니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는 늪에서 살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늪에서 살 수는 없었다. 물론 늪을 주문해 그곳에서 나오지 않고 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을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쩌면 그들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 늪은 이따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곳이었다). 다시 배송된 늪에는 잠든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카나리아 한 마리가 옆으로 누워 있었고 늪은 말라버려 늪에 빠져들 수도 없었다. 나는 늪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늪 역시 반품했다. 나는 이어서 바람을 주문했는데, 바람은 작은 밀폐용기에 들어 있었다. 바람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용기의 입구에는 바람의 세기와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조종 장치가 있어 원하는 바람이 일게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대단히 놀라운 발명품이었다. 회오리바람이 불게 할 수도 있었고, 화염처럼,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넘실거리는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었는데, 물론 바람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손을 대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바람 몇 개를 집안의 여러 구석에 풀어놓은 채로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와 아직 구석에 그대로 있는 바람들을 보고 만족해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광풍이 일게 해 집안에서 바람이 미친 듯이 불며 창문을 마구 흔드는 것을 집밖에서 볼 수도 있었다. 나는 몇 번 그 바람을 틀어놓아 집안의 물건들이 바람에 사정없이 날아다니는 것을 창밖에서 지켜본 후 집안에 들어오기도 했다. 바람들은 용기에 달린 조종 장치로 다시 용기에 담을 수도 있었다. 바람은 심지어 동물처럼, 혹은 식물처럼 길러 생장시킬 수도 있었는데, 무한히는 아니고, 어느 크기로까지만 자랐는데, 물론 바람의 먹이는 바람이었다……

ㅡ 「개의 귀

 

 

매력적인 캐릭터와 재미난 플롯을 짜는 것 못지않게 이런 서술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재능이 없다면 이런 서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얼핏 보면 요설이나 요령부득 투덜로 오해하기 쉽지만 문장의 얼개가 어찌나 단단한지 따라만 해 봐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참으로 기이한 재능이다. 그리고 완강하다. 의미나 재미 따윈 알 바 없다는 듯 오리무중 호수를 글로 넓히고 있는 정영문 작가의 이상한 집념은 어떤 이들의 시선을 분명 잡아끈다.
 

점점 더 오리무중에 이르는, 혹은 이미 오리무중에 이른 것 같은 생각들 속에서 나는, 어쩌면 긴 끈을 입에 문 채로 호수를 헤엄쳐 건너가며, 호수 건너 불, 그 불을 향해 호수를 건너가는 손과 눈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호수가 불에 탈 리는 없지만 불타는 호수, 하면 불타는 호수가 펼쳐지고, 어느새 호수 건너 불을 향해 호수를 건너가는 손과 눈도 불타오를 것 같았다.

어쩌면 호수 중간에서, 혹은 반대쪽 호숫가에 이르기 직전에 기진맥진한 끝에 익사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과거에 일년 중 익사자의 날, 목매달아 죽은 자의 날과 같은 날들이 었었던 어느 종족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했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날, 원한에 사무쳐 죽은 자들의 날과 같은 날들도 있어도 좋을 것이었다.

익사에 대한 생각을 하자 익사의 황홀이라는 표현이 떠올랐고, 몸안으로 물과 함께 어떤 황홀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익사의 황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끈을 입에 물고 있게 된다면 끈은 잠시 내가 가라앉는 깊이를 재어주다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입었고, 외투 호주머니 속에 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바깥으로 나가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데 꼭 여름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ㅡ 「오리무중에 이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죽음까지 꼭꼭 챙기는 정영문 소설은 정말 그렇다. 우리가 그의 글을 읽는 것은 관람자가 아니라 목격자이자 동참자가 되는 행위다.

 

 

Thrupence - Alethea( feat. Edward Vanz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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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06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영상의 반복된 음이 자꾸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 우울이 아닌 몽환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약간은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는 거 같은 기분이 들게 하네요^^ 잘 들었어요.

AgalmA 2017-06-07 19:28   좋아요 0 | URL
정영문 작가 글이 좀 울적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음악은 좀 밝은 걸로^^ 캐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잘 읽힌다는 게 과연 장점일까? 유능한 작가는 어디든 대입할 대답도 소설에 담고 있다. 단편 옥수수와 나에서 “쓰레기라도 잘 읽힐 수는 있는 거야.” 답을 찾아냈다. 이 책에 대한 내 견해도 그렇다는 뜻의 인용은 아니다. 잘 읽히긴 했는데 무엇을 잘 읽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뭘 먹은 거 같긴 한데 입맛만 자꾸 다시고 있다.

 

우선 단편들의 배열이 맘에 들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오직 두 사람이 맨 앞에 있어서 점점 맛없는 부위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작가가 밝힌 단편의 발표 순서에 따르면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이다.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는 이 책에서도 순서대로 이어져 있고, 출판계 인물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라리 이 세 작품 먼저 읽고, 신의 장난, 인생의 원점아이를 찾습니다, 오직 두 사람순서가 더 나을 거 같다. 아니면 오직 두 사람」을 중간쯤에 읽어도 좋을 것이다. 냉면 계란 노른자를 먹는 취향에 따라 오직 두 사람을 읽으시라 당부하고 싶다.

 

사은품이던 [김영하 소설 A-Z] 책자에 맞춰 나도 [오직 두 사람 리뷰-]을 작성해 보았다.

 

관념, 계획 (옥수수와 나)

그러는 너는? 관념을 어떻게 처리해?”

나는 관념이 아니라 정액을 처리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설가는 말이야. 현실적이어야 해.

철학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게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너는 관념에서 출발해서 거기에서 사실의 살을 붙여가는 일을 하잖아.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거기에 육체를 더하는. 그러니까 네가 뭐라고 떠들든 너 역시 관념을 먼저 처리해야 할 거야.”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너의 그 확신이 나는 불길해.”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냉소적이기는.

살인 계획이라는 건 말야. 이민하고 비슷한 것 같아. 한번 그쪽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일종의 메타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불륜과 느와르를 섞었고 소설가가 조현병으로 빠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옥수수라고 여기는 초현실성이 이 단편을 산뜻하게 해준다. 옥수수는 관념도 육체도 아니니까.

 

 

//농담, 죽음, (슈트)

농담죽음의 공포를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것이 커트 보니것이었던가.”

그는 어느새 탐정이 알려준 주소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이폰에 받아둔 구글맵을 따라가니 실수가 없었다. 우주의 인공위성이 자신을 죽은 아버지에게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은 없다.” 우주 공간으로 올라간 유리 가가린이 말했었지. 신은 없지만 아버지는 있어. 위성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찾아갈 수 있게 된 지훈. 아버지 때문에 화가가 되지 못하고 시인이 되었는데, 아버지도 화가로 살아오지 못했다. 장르 문학 편집자이기도 한 지훈에 걸맞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유머와 죽음을 잘 버무린 단편이다.

 

X

 

X

 

무지, 믿음 (아이를 찾습니다)

무지는 인간을 암흑 속에 가둔다

우리가 네 배내옷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네 구강에서 긁어낸 세포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하면 그게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는데,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을까?” 

아이를 유괴당한 한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러서야 아이가 돌아오게 된다. 불행에 너무 익숙했던 터라 내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모두가 상처받았고 되돌릴 수 없다. 이 작품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작가에게도 세월호는 여러 가지 삶의 경로가 되었다. 자세한 건 후기에서 읽어보시길.

 

 

아빠, 용서 (오직 두 사람」)

(현주)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현정) “언니는 내가 아빠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어쩌지? 내가 아빠를 버린 거야. 언니는 내가 아직도 아빠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빠가 언니한테 준 거, 그게 사랑이야? 그리고 무슨 용서?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아빠, 내가 아니라.” 

가족 간의 이해는 점점 멀어져 결국 한국에서는 아빠와 현주, 뉴욕에서는 엄마와 현정 그렇게 두 사람씩의 어둠으로 커진다. 현주는 뉴욕으로 가 아빠와 담배 둘을 끊기도 하는데 결국 아빠에게 돌아간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현주는 어떤 혼자로 살아가게 될까. 관계의 이합집산이 잘 드러난 단편이다.

(오빠) “현주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 있지? 이 말은 영 뒤집을 수가 없네. 뒤집어도 똑같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가 돼.”

 

 

추문 (최은지와 박인수)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문학 용어로 사건이라 불리는 그것은 현실에서 대체로 추문으로 불린다. 그것은 모든 인간을 재밌게 만든다. 자발적으로 미혼모가 되려는 최은지 때문에 주인공은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 할수록 추문에 휩쓸린다. 불가항력으로 암 환자가 된 친구 박인수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는 위선에서 조금 탈출할 용기를 얻는다.

 

 

X

 

 

탈출 (신의 장난」)

이게 정상적인 방 탈출 게임이에요?”

시대가 잘 느껴지는 소재다. 소재가 바로 답을 암시할 때가 있다. 탈출 못 하겠군 생각했는데 역시 탈출하지 못 했다. 책의 마지막 단편이었는데 무척 실망스러웠다.

 

 

X

 

 

/, 후회, 회귀 (인생의 원점」)

마음의 은 마음으로 갚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것처럼 마음의 에도 값이 있어 돈으로 치를 수 있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후회 안 해.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삶은 잘 생각이 안 나는 간밤의 꿈 같아. 한밤중에 무슨 꿈을 꾸었든 아침에는 전날 밤에 잠든 곳에서 눈을 뜨잖아.”

서진에게는 인아가 회귀할 원점이었으나 인아에게 서진은 인생이라는 힘겨운 등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대피소와 같은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단짝이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서진과 인아 사이엔 이젠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 구타와 불륜과 자살과 살인과 반신불구이런 것들은 왜 항상 붙어 다닐까. 이런 것들을 지나고 나서 인생의 새로운 원점을 생각하는 건 진부하지만 인생은 또 대체로 그렇지 않던가.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그에게 더 많은 느낌과 새로운 원점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게.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1회 보니 낸 책은 많은데 읽은 독자는 별로 없는 작가라며 자조하시던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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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05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작가를 찾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만 읽게되네요. 김영하 작가도 그 중 한 분인데,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반가움만 앞서서 아무런 비판 정신없이 읽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술술 읽혀지는 장점도 있었지만^^
아무튼 님 글을 읽다보니 나이듦이 독서에 있어 새로운 도전에 방해가 된다는 핑계는 그저 핑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성하고 갑니다~~

AgalmA 2017-06-06 01:30   좋아요 3 | URL
좋아하는 작가 책 열심히 읽는 게 나쁠 리가 있나요^^ 작가에게도 큰 힘이 될 테고요.
제가 너무 기대가 컸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도 역시 도움이 안 될))

지금행복하자 2017-06-05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잘 안 읽게 되는 작가가 되고 있어요.. 읽으면 재미읽게는 읽는데 선뜻 손은 가지 않아요. 제 취향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AgalmA 2017-06-06 01:12   좋아요 1 | URL
저도 언젠가부터 김영하, 하루키 등의 책을 잘 안 읽게 되었어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빛나는 작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두에게 두루 관심을 가지기엔 역부족입니다.
취향 문제도 크죠. 우리가 바라게 되는 것도 점점 많아지니까요.

보슬비 2017-06-05 2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은 읽으시고 평이라도 남기시지 저는 취향이 바뀌는지 예전에 좋아하던 작가의 신작이 나왔는데 감흥도 없고 시큰둥해지네요. ^^;;

AgalmA 2017-06-06 01:14   좋아요 1 | URL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란ㅎ? 이번 김영하 신간은 굿즈 뽐뿌가 컸어요ㅎ;
이번 독서에서도 김영하 작가에게 예전부터 아쉬웠던 게 여전히 해소가 안 되어서 또 한동안 김영하 작가 책 안 보게 될 듯...

북다이제스터 2017-06-05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영하 소설은 단 한편도 못 읽어보고 수필만 달랑 한 권 읽었는데요, 명성에 비해 몹시 썰렁하더라구요. 내공이 몹시 부족하단 느낌도 들었구요.
김영하 작가의 대표작이 무엇인가요? 더 읽고 판단해야 겠습니다. ㅎㅎ

AgalmA 2017-06-06 01:17   좋아요 0 | URL
썰렁ㅎㅎ 약간 시니컬한 게 김영하 작가 특징이기도 하죠. 본인 자체도 글도.
<아랑은 왜>나 <검은꽃> 같은 건 역사공부도 많이 하고 쓴 거 같던데 북다이제스터님은 역사 좋아하시니 그 책 중 하나 읽어보시죠?

겨울호랑이 2017-06-05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소설에서 주제 단어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AgalmA님께서는 잘 묶으셨네요. 저는 소설 읽다보면 생각없이 읽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ㅋ

AgalmA 2017-06-06 01:20   좋아요 2 | URL
분석하는 걸 재미로 여기니까요ㅎ;;
생각없이 읽게 되는 책은 제가 되려 피하는 편입니다. 시간죽이기를 하려면 차라리 어려운 책 보며 골머리 앓는 쪽을 택하겠어요. 그리고 나를 탓하죠;;;

겨울호랑이 2017-06-06 10:37   좋아요 2 | URL
저는 어려운 책을 보는 것보다 잠자는 게 더 좋아요^^: AgalmA님 존경 한 표 헌정합니다

AgalmA 2017-06-07 19:39   좋아요 2 | URL
저도 잠 좋아해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치고 우리 좀 언밸런스하네요ㅎㅎ
한사람은 새벽기상, 한사람은 불면증에다가 둘다 잠보다 어려운 책이랑 씨름하는 게 일이고ㅋ

겨울호랑이 2017-06-07 19:38   좋아요 2 | URL
^^: 수면의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ㅋ 푹 잘자면 자는 시간은 조금 짦아도 되겠지요? ㅋ

AgalmA 2017-06-08 18:42   좋아요 2 | URL
잠도 겨울호랑이님과 저는 좀 다른 관점이네요ㅎ
제겐 잠이 휴식보다는 영감과 모험의 세계입니다. 현실 세계를 벗어나게 해 주면서 이 세계를 살 수 있는 힘과 재료를 주는 곳이죠. 그래서 질보다 양이 더 필요하죠ㅎ 헌데 불면증이라니... 사는 거 참 복잡해요...

커피소년 2017-06-08 23:10   좋아요 1 | URL
잠이 휴식이라서 좋은 점도 있고.. 긍정적인 꿈을 꾸면... 삶의 위안이 될 수도 있고.. 잠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삶이 힘들고 지칠 때는 잠자는 시간 제외하고는 다 싫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꿈도.. 많이 꾸면.. 피곤하고 힘든데.. 꿈에서 보여 지는 것들이 생각해보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더군요.. 평소 생각지도 못 했던 영상이 꿈에서는 펼쳐지니까요... 간혹 이 꿈..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ㅎㅎ 너무 주관적이라는 것이 문제지만요..ㅎㅎ

AgalmA 2017-06-09 00:14   좋아요 2 | URL
스트레스를 잠으로 푸는 사람이 많죠. 사람 만나 상담하고 대화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그것도 그때 뿐일 때가 많죠. 모든 상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타인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트라우마 같은 경우는 그림자처럼 일상을 따라 다니니 자기만의 감당이죠. 술도 체력이 가능해야.... 잠은 큰 노력없이 취할 수 있는 처방이죠.
예술가나 작가들 상당수 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깨고 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개꿈 같은 때도 있지만 그 명작이 기억 안 날 때가 더 문제ㅎ;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을 전투적으로 현실로 가져오려 했죠. 폴 매카트니는 잠에 취해 일어나 ˝예스터데이˝를 흥얼거리며 잘 복기했죠.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능! 꿈 일기도 부지런해야 하고... 어휴, 부지런해야 될 게 넘 많다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6-09 00:25   좋아요 3 | URL
^^: 잠 못 이루시는 두 분 생각도 많으시고, 하시려는 바도 많으셔서 잠을 못 이루시는듯 ㅋㅋ 저는 부지런하게 살지 않고 대충 살렵니다 ㅋㅋ

AgalmA 2017-06-09 00:28   좋아요 2 | URL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겨울호랑이님의 다음 리뷰도 부지런이 빠질 수 없음을 예언합지요! 우후후))

겨울호랑이 2017-06-09 00:33   좋아요 2 | URL
^^: 다음 리뷰 주제는 ‘비움‘으로 정했습니다.대충대충 쓰겠습니다.ㅋㅋ ...^^:

AgalmA 2017-06-09 00:41   좋아요 2 | URL
비움이라면 동양철학으로?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게 만드셨다고요ㅎ
남이야 뭐라 하든 좋을대로 하십셩~ 겨울호랑이님 성격상 그럴 수 없을 테지만 발로 쓰셔도 정리 칼같이 하실 거 같으니까요ㅎ 그리고 저는 재밌게 읽겠죠^^ 아니, 뭐가 대충이라는 거야! 하믄서ㅋ

겨울호랑이 2017-06-09 00:44   좋아요 2 | URL
발로 쓰려면 더 정성을 다해야할 거 같아 손으로 쓰렵니다^^: 편한 밤 되세요. 전 이만 대박꿈 꿔야겠습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7-06-08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그렇군요. 전 잠자면서는 다 내려놓는 편이라 길몽외에는 취급하지 않으려 해요..ㅋ 이런 AgalmA님 불면증이군요. ㅜㅜ

커피소년 2017-06-08 19:10   좋아요 2 | URL
꿀잠 자는 노하우를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6-08 19:32   좋아요 2 | URL
^^: 제 리뷰 대상 도서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잠이 안 오시면 리뷰를 쓰시면 ㅋㅋ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졸음이 오실거라 생각합니다 .

커피소년 2017-06-08 19:37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이 추천한 책을 읽는 것이라서 더욱 긴장하고 읽고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오히려 불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ㅎㅎ 잠 안 올 때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온다는 분들이 부럽더군요,, ㅎㅎ

AgalmA 2017-06-08 22:05   좋아요 2 | URL
길몽ㅋㅋ 겨울호랑이님은 참 쿨한 마음가짐과 생활을 하시는 거 같아 부러운데요. 저는 참 잡생각이 많아 자려고 누워서 2~3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게 부지기수랍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책을 읽자 싶어 책을 읽느라 또 잠을 못자는 악순환ㅎ;
저도 김영성님처럼 잠 안 올 때 책 읽으면 잠 온다는 분 부러워요ㅜㅜ
일전에도 <안티 오이디푸스> 읽다가 잠은 커녕 골똘히 생각하다 머리만 지끈거려 휴식 차 E. H. 카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펴들었는데...넘 재밌는 거에요. 그리고 밤을 꼴딱 샜죠ㅜㅜ; 일 독촉하고 있는데 이러고 있으니.... 도선생이 도박빚, 마감에 쫓기며 글을 썼던 심정 저는 정말 공감해요ㅠㅠ
요즘 리뷰쓰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괴롭습니다. 내가 재밌게 본 걸 전해 줄 시간이 없엉!

겨울호랑이 2017-06-08 22:30   좋아요 2 | URL
AgalmA님 생각의 속도를 손이 못따라가는 것 같네요. 저는 그처럼 빠르지 못해 천천히 생각하다 잘 잡니다.ㅋ 머리만 대면 잠을 자니..잠자는 숲속의 호랑이? ㅋ

커피소년 2017-06-08 22:33   좋아요 2 | URL
요즘 겨울호랑이님과 아갈마님의 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과거에는 아갈마님과 그 장소님이 콤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갈마님이 그 장소님의 글을 발견하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 해 댓글을 남기셨던 걸로 기억 합니다..ㅎㅎ

커피소년 2017-06-08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에 대해 걱정이 많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잠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갈수록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입니다. 잠을 잘 자려면 행복한 생각을 하면 된다니.. 긍정하면 세상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는 말이 가장 무책임한 말 같아서 말이죠..

AgalmA 2017-06-08 21:55   좋아요 2 | URL
저도 잠에 관련한 책들 자기계발서 같을까봐 선뜻 손이 안 가더라고요. 자기 경험담 이런 것도 싫고요.
마음의 시스템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 한 게 아니죠.
자기 전에 요가를 하고 마무리 자세에서 ‘송장자세‘를 취할 때 잠자리가 좀 편하더라는. 몸을 최대한 이완시켜 주는 게 좋은 잠을 부르는 최선의 방법인 듯합니다. 그러나 나는 귀차니스트.....에휴)))

김영성님 말씀도 있고 해서 조만간 잠에 대해 읽어보려 한 책 읽고 소개해 보도록 할께요. 요즘 바빠져서 빨리는 못 올릴 거 같아요.

커피소년 2017-06-08 22:31   좋아요 2 | URL

아갈마님은 역시나 잠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셨나봅니다..,ㅎㅎ 자기 경험담..ㅎㅎㅎ계속 나오더군요.. ㅎㅎ 사례도요.. 그게 또 개인차가 있는 것이라서.. 크게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아서요...

마음의 시스템이 호락호락하지 않죠... 게다가 환경적인 요인을 배제할 수 없으니.. 이 환경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절대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으니까요... 어릴 적 수면에 대한 트라우마.. 이런 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저도 태어나고 부터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얼마 없어서요..ㅎㅎㅎ누구는 머리만 붙이면 잠이 온다고 해서 어디 가서도 잘 자던데.. 저는 그렇지 못 합니다..

자기 전에 요가와 같은 스트레칭 해주고 자는 것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지요.. 그래서 그냥 피곤을 느낄 때까지 버티다가.. 잠을 자는 것 같습니다...

잠에 대한 책 소개와 리뷰 기대 되네요. 저는 많은 책을 읽어 본 것도 아니고 대충 손에 잡히는 책 읽은 것이라 제대로 된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ㅎㅎ

리뷰는 천천히 기다리죠.. 뭐..ㅎㅎ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아갈마님처럼 장문의 정성스러운 글을 쓰려고 하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AgalmA 2017-06-09 03:27   좋아요 1 | URL
˝시간대를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수면과 각성이 태양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거의 모든 기관, 조직, 세포 내부는 낮과 밤이라는 리듬이 맞춰져 있다. 신장은 밤에 활동이 느려진다. 그것은 이불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화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은 이에게 너무도 좋은 특징이다. 북극권에서 침낭 안이 있을 때에도 아주 유용하다. 또한 체온도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오전 3시에 체온이 가장 낮아진다. 간의 기능도 마찬가지로 달라진다. 사람의 간은 아침 시간에 가장 활동이 느리다. 그러니 가장 저렴하게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 아침 식사를 하면 된다.˝
ㅡ 닐 슈빈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리뷰로 알려 드리겠다는 그 책은 아니고, 이 책을 재독하다가 관련 사항이길래 옮겨요. 생체 시계를 바로 잡는 게 가장 관건 되겠네요. 생체 시계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답이 없는....
 
별을 먹는 사람들
로맹 가리 지음, 이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정복자들과 식민 역사 속에 가난하고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아즈텍 문명 부족 출신 알마요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디언 독재자가 된다. 악마에게 영혼? 낯익은 설정이다. 로맹 가리는 괴테 파우스트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으며, ‘파우스트가 지닌 진정한 비극은 그가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다는 점이 아니라 실제로 영혼을 살 악마가 없었다는 점, 그는 악마를 만나지 못했고 영혼을 팔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한 채 죽었다고 설명한다.’ 로맹 가리는 판타지적 악마가 아니라 현실에 실제하는 악마적 요소들을 적절한 비유와 비판의식으로 보여준다. 알마요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하는 다음 생각이 이 소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없는 근원의 것을 보게 한다. 요컨대, 아마도 이승은 인간들의 것이고 여기엔 다른 누구도, 강력한 힘도, 신비도 없는 곳일지 모른다. 세상은 빈 정어리 통조림으로, 미국의 설비들로, 코카콜라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아마도 미국의 잉여 군사 용품들을 풀어놓는 거대한 물류 창고일지도 모른다. 스페인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신부들 또한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또 선도 악도 없으며 신도 악마도 없을 것이고 진정한, 전지전능한 재능도 없을 것이며 오로지 미국의 잉여 물자를 처리하는 거대한 공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믿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목적이 분명한 이상주의 장교들과 대학생들이 신이나 악마의 도움 없이 놀라울 정도로 손쉽게 그의 정부를 전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적들은 그가 냉소적이라고 자주 비난을 했지만, 그는 이 말에 대해 해명을 해왔다. 그는 냉소적이지 않았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젊은 장교들이나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지식인들, 엘리트들은 등 위에서 그를 별을 먹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쿠혼족 출신임을 빗대어 붙인 말로, 그가 태어난 열대 계곡에서는 마스탈라 혹은 마스칼이라 하고 산속에서는 콜라라고 불리는 식물을 마약처럼 복용하는 인디언들을 의미한다. 인디언들에게는 달리 입안에 넣고 씹을 만한 게 없다. 마스탈라는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고,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그들 나름으로 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자기들 눈으로 보다 나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해주었다. 알마요의 적들은 그렇게 해서 그에게 모욕감을 주려고 했다. 그들은 별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이 상처를 주는 경멸적인 말이라고 여기면서도, 자기들은 메스칼이나 콜라가 아닌 다른 마약을 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의 재능으로 혹은 사람들의 힘으로, 그들이 문명이라 부르는 것으로, 문화전당을 가지고 마약을 한다. 이제는 온 지구를 덮고 있어서 달로 가져가기도 하는 미국의 잉여 물자를 가지고서, 쓰레기를 쏟아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마약을 한다. 그들은 인디언보다 더 많이 마약을 한다. 그들도 마약 없인 살아갈 수 없고, 환영 속에서 전지전능한 우주의 주인을 본다. 그는 깊은 증오심에 사로잡혀 주먹을 쥐었다. 원형경기장 속에 갑자기 다시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웃음소리와 야유 속에 파묻혀 다시 한 번 쓰러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마요는 클럽〔엘 세뇨르〕(인디언 부족들이 악마를 부르는 호칭)를 통해 악마적 재능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을 찾지만 실패한다. 알마요를 둘러싼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능을 키우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믿는 신념을 사실 가장 의심하면서 삶에서 늘 놀라운 쇼를 펼치길 바라지만 잘 안 되는 것처럼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광대이며 인간이다. 누군가는 끝을 보게 되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 시간들이 겹치고 떠난다.

마지막 대사가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며 무대가 끝났다

 

죽음이 뭔가요?” 꼭두각시 올레 옌슨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능이 없다는 것, 바로 그거야.”

 

 

 

덧)

심각한 주제를 무겁지 않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로맹 가리, 공쿠르 상 두 번 받으실 만 하다능! 

 

상담받은 정신과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유아기가 지속되는 전형적인 경우, 경이로움을 향한 유아기의 잔재인지, 정신분석학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그 점에 대해 지극히 당황스러워했지만 찰리 쿤은 인간 영혼의 욕구들 가운데 정당한 것도 있고, 그 도중에 길을 달리하는 것이 있음을 이해했다.

성공한 갱스터는 언제나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공이다. 알마요라는 사람의 물리적 영향은 그가 처한 상황 때문이 아니다. 정글에서 맨발에 긴 칼을 손에 든 그를 만난다면 마찬가지로 충격적이면서 어느 정도 신화적인 인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만족스럽게 그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행을 자초한다.

범죄 안에는 형이상학적 욕망의 실추를 의미하는 허무주의가 있었다. 심지어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는 도적들한테도, 어떤 사람의 목에 아무렇지도 않게 총알을 박는다든지 실실 웃으면서 목을 벨 때에도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수롭지 않다, 아무도 없다’는 의식이 어느 정도 들어간 신념 같은 것이 우선 필요하기 마련이다. 라데츠키는 자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험가들을 여러 명 알고 있었다. 악의 힘과 폭력에 대한 그들의 깊은 믿음은 언제나 라데츠키를 매우 유쾌하게 해주었다. 학살이라든지 잔인함, ‘권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순진함이 필요하다.

.... 그래서 안 될 이유도 없겠지. 트루히요는 베개 밑에 추잡한 마스코트를 넣어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뒤발리에는 아이티의 보두 神을 자청하고 전국에 그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제례를 진행했다. 히틀러는 점성술사에게 의견을 물었고, 과테말라의 후엔테스는 한창 닭을 숭배하는 의식 중에 아르벤스 부하들의 손에 쓰러졌다.

인디언 농부들이 자기네 운명, 착취와 부당함, 스페인 계층, 군대와 경찰 엘리트 조직의 손에 굳게 결탁되어 있는 모든 부패를 잊기 위해서 끊임없이 테오나나카틀(멕시코 인디언들이 먹는 환각성 버섯), 페요테, 올롤리우키(멕시코산 메꽃과 덩굴성 식물, 종교의식에서 환각제로 사용)에서 추출한 마스탈라, ‘별’을 씹으며 바보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누가 진짜 주인인지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잘못된 장소에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무슨 일이든 다 했다. 신은 오로지 하늘에만 계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얻은 권력의 정상에서 느끼는 평온함 그리고 수년간의 성공적 행보 이후에는 뭔가가 잘못 돌아갔고, 뭘 해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내놓는 모든 담보물, 끊이지 않는 모든 노력이 무시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컨대 그가 충분히 사악하지 못해서, 충분히 잔인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 무시되고 잊히길 원했다. 새로 건설한 도로는 그들만의 세계의 종말, 이번엔 기계와 엔지니어와 전기를 들고 찾아온 새로운 콘키스타도르들을 의미했다. 그들이 끊임없이 기다려온 고대의 신들에게 되돌아가는 건 이런 도로들을 통해서가 아니다. 전화와 도로는 경찰과 통제와 세금 징수원과 군대를 의미했다.

영혼이 없는 인간들이라는 이유로 사제들이 인디언을 개처럼 다루었듯, 정복자들이 자부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간 것은 그들이 별 볼 일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화장실 청소부나 사장, 종업원이나 접대원들은 나이를 먹어도 기자들이 찾아오면 젊었을 적에 보았던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묘사를 할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진정한 기적을 만들 것이다. 잭에게 신화적인 성격까지 부여하면서 계속 과장을 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전설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한테 믿지 말라고 하는 건 그의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별을 먹은 사람들의 입안에 뭔가를 넣어주는 게 그의 일이다. 사람들의 믿음과 희망과 쉽게 믿어버리는 마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느꼈다.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사람이야?" 그때 그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눈은 잠을 못 자서 벌겋게 되어 탁자 위로 두 팔꿈치를 무겁게 내리누르면서 라데츠키에게 물었다.

"이상주의자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중요한 별들을 향해 높은 곳으로 눈을 들어 올려서 자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아요, 인류만을 생각하지요. Sprechen Sie deutsch, Herr Baron?(독일어 할 줄 아세요, 헤르 남작님?)"

"이상주의자가 뭐요?" 알마요가 물었다.

"세상은 자기에게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인간입니다."

사실 그는 자기들이 생존할 확률이 여기 진을 치며 명령을 내리는 장교들의 이상주의와 교육과 교양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는지 계산했다. 그들이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완전 정치화되어서, 전적으로 현실만을 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총을 쏘아댈 것이고 그러면 도망자들은 끝장나는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한껏 고양되어서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고귀하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말해서 인도적인 성향이 그들의 정치적 이념보다 더 강력하다면, 그때는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한 젊은 혁명가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것을 지속할 가능성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 계산할 방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단지 젊은 여자와 몇몇 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 발사하기를 거부한다면, 인도적인 나약함과 생명에 대한 그리고 그들 자신의 위엄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면 그들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전복되고 소탕되어 처형될 것이고 이 나라의 모든 것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자들과 아이들의 피 앞에서 주저하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理想이 부족한 혁명이다.

독재자보다 더 나쁜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실추한 독재자였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배우들과 자기 쇼에 충실한 광대들이 무대에서 사라지면, 그제야 연극에는 진정성이 나타난다. 그건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드골에게서도 사실이다. 아마 더 멀리, 수천 년 전 뮤직홀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바위 위에 올라선 앙투안 씨의 길고 검은 윤곽이,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드러났다. 빠르고 규칙적으로 팔을 움직였다. 앙투안 씨는 곡예를 하고 있었다. 은색 공들이 달을 향해서 아주 높이 날아갔다. 앙투안 씨는 야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개의 공이라고 목사가 세었다.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성과였지만, 수천 년 전부터 이어온 인간 재능의 온갖 발현을 굽어보는 저 수백만 개의 별에게는 도대체 그게 무슨 작용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란!" 그녀가 말했다. "항상 큰 말에 올라앉아 있지, 그것도 언제나 백마에. ‘인간적 삶’이란 말을 들으면 뭐 자기들이 그 말을 만든 것같이 그런단 말이야. 인간적 삶은 여기저기 다 있다고요. 사실 세상에는 인간적인 삶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뭔가 좀 바꿨으면 하죠. 깨끗한 어떤 거랄까……."

심지어 애국적이면서 정화 작용을 하는 한껏 격앙된 분위기에서 자기 몸이 타는 냄새가 민중의 기쁨을 담은 첫 발의 폭죽에 섞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시신의 몰골은ㅡ한 폭군이 몰락하고 다른 폭군의 시대가 왔음을 축하하는 영원한 방식인 것이다ㅡ개조차도 그 옆에 다가오지 않을 그런 상태이리라.

결국, 이 세상에는 마술 같은 것이 있다고, 단 하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모두 하늘로부터 각자 특별한 하나의 재능을 받는데 그것을 마음속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두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마음속에서 깨어나 그가 여자를 바라볼 때마다 점점 커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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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 가리 책들은 꾸준하게 사서 모으고
있는데 막상 읽은 책은 얼마 안되는 그런
느낌입니다.

AgalmA 2017-06-05 13:19   좋아요 0 | URL
예,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이 상당하죠. 다른 데에서도 많이 나오고. 저도 따라가기 벅차네요ㅎ;
 
최후의 세계 열린책들 세계문학 45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지음, 장희권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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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이 위치를 바꾸며 돌이 되거나 새로 변신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는 곳, 유배자와 도망자들의 땅 토미. 끝없이 돌들이 무너져 내려도 늑대의 울음소리가 그 속에 파묻히는 것에 더 마음이 진정되는 백일몽 같은 곳. 로마법과 이성 같은 것이 굳건히 서 있을 수 없는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굶주린 독수리가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부위를 가장 먼저 공격하듯이 인간의 부주의, 무지, 가장 연약한 지점부터 무너진다.

 

벌레가 득실거리는, 구역질 나고 악취 나는 유기체의 부패 과정에 비하면 화석의 운명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는 일인가. 이런 역겨움에 비하면 화석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구원이며, 언덕과 협곡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낙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유성과 같은 인생의 영화는 무에 불과하다. 돌의 위엄과 지속성만이 최고의 것이다...... 하고 오비디우스가 말했다고 했다.”

 

 

짐승들조차 화석이 되는 것이 존재의 혼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 언제나 돌이었어요. 유배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화석이 되는 것으로 끝났죠. 때때로 저는 오비디우스가 돌아가고 그가 지펴 놓았던 불이 꺼진 뒤에도 그가 불속에서 읽어 준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동굴의 바위벽에 몇 시간씩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어요. 항아리 위에, 또는 아궁이의 시뻘건 불속에 돌로 된 코와 뺨과 이마와 입술과 슬픈 눈들이 어른거렸어요. 오비디우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랍고도 신기했어요. 그는 마른 개울 바닥의 침적물과 자갈에서도 시대와 생명을 읽어 냈어요.˝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돌을 만드는 여정. 파도에 모두 휩쓸려가는 걸 재차 겪더라도. 작가는 이 여정에서 피타고라스가 오비디우스의 하인일 수밖에 없다고 결정했다.

 

 

피타고라스는 오비디우스의 대답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서 점점 자신의 생각과 느낌 일체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그 일치감이야말로 후세에 전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조화(調和)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모래에 글쓰기를 멈추고 어디를 가나 비문(碑文)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하 술집의 책상에만 손톱과 주머니칼로 글을 새겨 넣더니, 나중엔 점토 파편으로 집 벽에 글을 쓰거나 백묵을 가지고 나무에 글을 남겼다. 때로는 길 잃은 양이나 돼지의 몸에도 글을 써넣었다.”

 

  

유배 당한 오비디우스를 찾아 코미에 온 코타는 그리스인 피타고라스가 그의 주인 오비디우스의 운명을 따르려 한 것과 닮았다. 그가 토미 해안에서 모두의 운명이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는 건, 신화 속 인물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한 이 소설, 이 소설을 읽으며 세계의 진면목을 보려 하는 독자의 상황과 동일하다. 모두가 결국 미치는 것, 미치지 않는 세계란 없다는 것은 진실일까 비유일까. 꿈꾸지 않는 사람이 없다면 미치지 않는 사람, 세계도 없다는 소리겠다. 아무튼 독자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소설은 코타도, 독자도 자신이 되기 위해 왜 이렇게 힘든가를 생각하게 한다. 돌에서 이야기를 읽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덧)

신화를 독특하게 재해석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존 바스 키메라도 추천한다. 이 작품과 견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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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5 01:15   좋아요 0 | URL
「호모 데우스」 보니까 고고학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인공지능도 쉽지 않은 영역이라 미래 유망직종일 거라고 그러더군요ㅎ 인공지능도 따분해 하는 영역에서도 인간은 재미를 찾는 종족이니 지질학도 어련하겠습니까ㅎ;

레삭매냐 2017-06-05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빙하와 어둠의 공포>라는 책으로
알게 된 작가였는데 다른 책도 있었네요.

신화와 현대의 이종교배가 빚어낸 이야기가
참신해 보입니다.

AgalmA 2017-06-06 04:24   좋아요 0 | URL
저도 <빙하와 어둠의 공포> 인상적으로 읽고 이 책 기대하고 읽었는데요. 잘 안 읽혀서 몇 년만에 다시 펼쳐 들게 되었죠ㅎ; 그 책과 상당히 다른 색채였어요. 말씀하신 부분이 포스트모던한 점이라 할 수 있는데요. 헌데 전 신화 우려먹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