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하고픈 시
윤동주 외 지음 / 북카라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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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엮었는지 누가 디자인했는지에 대해 일체의 설명이 없다. 그저 윤동주 외 지음 이라고 써서 한국 근대부터의 명시들을 잘 모아놓았다. 정지용의 '향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비'는 오랫동안 몸 속 깊이 저장되었다가 다시 꺼내 읽는 듯한 시다. 뿐만 아니다. 내 젊은 날의 서정윤님의 '홀로서기'라든지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는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김소월님, 한용운님, 이육사님, 유치환님들이야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또 읽어도 언제나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시들이다.

 

  기형도님, 김춘수님, 김수영님 등 한국 현대시로 넘어오는 시대의 큰 시인들을 만나는 것도 덤이다. 우리가 젊은 학창 시절에는 교과서로 만날 수 없었고 대학에서 찾아서 읽어야 했던 기형도님이나 김수영님의 시들은 왠지 슬픈 그림자가 베어있곤 했다. 그리고 나의 대학시절 한창 현역의 시작을 선보였던 도종환님, 정호승님, 강은교님 등 등 낯익은 시인들의 이름과 시들도 보인다. 고은 시인님의 '그꽃'은 하이쿠를 떠올리게 한다. 촌철살인의 시....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인생을 통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감각이 더욱 섬세해졌다. 때로는 창가를 두드리는 빗줄기에 감정이 쏟아내리기도 하고 계단 틈새에 핀 작은 풀꽃들이 생각의 보따리를 터트리며 말로 쏟아지기도 했다. 바닷가에 빛나는 무수한 물별들이 금강경의 사구게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지상의 작은 사랑 한 점에 눈길이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이 감정들을 더욱 갈무리훈련을 해서 내 인생의 보잘것없는 시 한편이라도 써볼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못쓰게 될지 몰라도 어떤가? 다음 생이라도 시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이번 남은 생의 어슬픈 나의 시도는 작은 시작의 출발이라도 되면 될 것....한 사람의 그리움이 내게 남긴 흔적이다. 한 영혼의 도장이 내 마음에 깊이 찍혀 그의 빛깔이 내게 묻어 나로 하여금 시를 읽게 하였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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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오현 선시
조오현 지음 / 문학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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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설악에 다녀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신흥사의 스님의 부고가 신문에 났다. 평소 스님이 보인 행에 많은 사람들과 신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유투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일화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공부한 사람이 가지고 보는 식견은 남다르다. 그 식견으로 삶을 살아가고 흔적을 남기어도 그것은 남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스님의 선시가 궁금했다. 선시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장 이 시대를 가까이 살아갔던 스님의 선시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책이 이 책이다. 그러나 정작 스님의 선시는 몇 편 수록되지 않았다. 좀 더 스님의 시를 더 수록했다면 좋았을텐데....스님의 기억하는 시인들의 헌시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편 되지 않는 스님의 선시는 좋았다. 스님의 선시를 나의 식견으로 어찌 알까마는 공부삼아 한 두 편 올려본다.

 

  "된 바람의 말"

 

 

서울 인사동 사거리

한 그루 키 큰 무영수

 

뿌리는 밤하늘로

가지들은 땅으로 뻗었다

 

오로지 떡잎 하나로

우주를 다 덮고 있다

 

 

"사랑"

 

사랑은 넝쿨손입니다

철골 철근 콘크리트 담벼락

그 밑으로 흐르는

오염의 띠 죽음의 띠

시뻘건 쇳물

녹물을

빨아먹고 세상을 한꺼번에 다

끌어안고 사는 푸른 이파리입니다

잎덩쿨손입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생명의 뿌리입니다

이름 지을 수도 모양 그릴 수도 없는

마음의

잎덩쿨손입니다

하나님의 떡잎입니다

부처님의 떡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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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 나는 베끼지 않았다 - 몽골 세계숨은시인선 7
바오긴 락그와수렌 지음, 이안나 옮김 / 문학의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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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긴 락그와수렌은 몽골의 시인이다. 18살 때 처녀시 '가을 달'을 시작으로 시인의 길을 걸었다. 몽골의 대지와 초원이 주는 품 속에서 서정적인 시들을 써나가는 몽골 서정시의 대표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표현하는 시어들은 몽골의 자연이고 그 품에 편안하게 안긴 시어들이 읽는 이 누구나가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따라읽게 만들고 감동받게 한다. 그는 몽골을 사랑한다.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는 대지를, 그 대지 위에 부는 바람을, 바람에 눕는 풀들을, 게르를, 말들을, 그리고 몽골 모두를 사랑한다.

 

  그가 태어났을 때 자연은 그에게서 눈을 앗아가버,렸다. 그가 빼앗긴 눈의 감각은 시적인 눈으로서 다시 살아난다. 그가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가지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의 원초적인 보는 감각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금기된 것은, 상실은, 보다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그래도 락그와수렌의 시를 읽으면서 어떤 시는 첫 줄부터 나에게 강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가 하면 시의 첫 어절과 끝 어절까지 편안하게 읽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마지막 줄에 가서 가슴을 확 열게 하는 시들도 있다. 어쨌거나 시인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비틀어 낯설게 하고 또 그 낯선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특별한 사람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몽골의 자연과 언어 그리고 몽골적 감수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새롭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서정의 궤도는 인간의 보편적이고도 일반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또한 세계적이다. 영미시나 유럽시에 대한 획일적인 번역에서 벗어나서 이젠 우리 나라도 제 3세계의 시들에 대한 번역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또 제 2의 3의 바오긴 락그와수렌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듯이 가장 몽골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겠다. 다만 몽골어가 가진 섬세한 뉘앙스의 차이나 그 문화적 느낌이나 정서를 우리가 아무리 잘 번역된 것이라 할지라도 담을 수 없는 언어적 독자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면에서 원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

 

  나이 40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시란 어떤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또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가 가진 운율성이나 리듬 또는 시가 가진 상징성도 마음에 들지만 내 영혼이 깊어지는 자리를 적합한 그리고 압축적인 시어로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많은 매력을 느낀다. 나도 내 인생의 시 한 편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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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낸다는 건 한국대표시인 시선 1
황동규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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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살아낸다는 것은 이른 아침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일까? 신록의 잎새사이로 허공을 타고 귓청을 때리는 산새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비밀에 대한 의문의 불꽃 하나 터트리는 것일까? 80인생을 살아오며 그는 젊음의 열정과 사랑의 시절을 지나고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며 사회현실과 민주주의에 대해 노래하고 중년의 시기를 지나면서 좀 더 다채로워진 사물과 자연에 대한 관심의 시기를 거쳐서 불교와 기독교적 진리가 만나는 삶의 통찰 속에 서 있기도 한다.  

  말의 아름다움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 속에 생겨나는 무늬들을 아름답게 수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의 마음을 거쳐 나오는 글들은 하나하나 마음 속에서 살아 가슴속의 꽃을 피워내는 것일까? 시인이란 이런 사람들일까? 즐거운 편지를 지나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삶이라는 터널은 사람들을 이렇게 바꾸는 것일까? 인생의 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봐지는 삶의 언덕 위에선 꽃이 피고 꽃씨가 날린다. 바람을 타고 제 인연의 길을 따라 날리다 문득 어느 둥지에 보금자리를 펴면 새로운 인생의 문은 열리고 또 새로운 꽃이 핀다. 삶을 산다는 것은 꽃을 피워내는 일일까? 일상의 시간들이 지층처럼 쌓여서 어느 순간 세월이라는 앨범 속에 구분되어지면 인생의 흔적들이 한 권 두 권 쌓여서 책장이 되는 것일까?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시인에게 어떤 것일까? 언어의 길을 거쳐서 그의 변해가는 마음 속의 일들이 다시 언어라는 집을 지으면 우리는 그 언어를 쫓아 그의 인생을 가늠한다. 독자 하나하나의 삶과 관이 덧붙여져 그만의 독특한 빛깔과 무늬로 시인의 독자 하나하나의 가슴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것일까? 인생이란 자신의 가슴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자연들이 더욱 깊어지고 그렇게 우주를 닮아가는 것일까? 문득 석양에 지는 노을빛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견디기 힘들었던 실연의 상처들이 점차 추억이란 이름으로 변색되어 아름다워지는 듯한 것.....기나긴 여행 뒤에 방안에서 몸을 뉘이며 마음의 평안함과 행복을 누리는 것...그것이 다시 언어로 정리된다면 이 또한 인생의 길이 되는 것인가? 바람따라 흐르다가 한 점 흔적없이 흩어지더라도 무엇하나 붙잡을 것 없는 삶 앞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나이들어갈 것인가?  

  물음은 길이되고 또 물음으로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진 물음으로 삶은 구성되고 어느덧 묻던 그 물음이 알수없는 사이에 문득 희미해져가는 것...마음 속에 알고 모르고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언제나 걷던 이 거리가 문득 새로워지고 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이 전혀 몰라지게 되는 것...모르지만 모르지 않는 것...나이지만 나같지 않은 것...나와 너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지는 것...그 마음의 빛깔 속에 세상이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스며들고 그렇게 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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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인의 시을 읽으며 삶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합니다.
저는 위안을 받습니다. 격려도 많이 받습니다. 달팽이님


달팽이 2010-05-16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짧은 글이 마음에 더욱 깊이 스며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사님의 코멘트도 그러합니다. 속으로 소화시켜야 할 일들이 숙제처럼 남는...

라로 2010-06-03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멋진 책 소개 감사드려요~.

달팽이 2010-06-04 13: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비님. 맞나요?ㅎㅎ
 
절, 그 언저리 - 김지하 수묵시화첩
김지하 지음 / 창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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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 그가 먹을 간다. 독재 정권에 저항하면서 가슴끓는 분노와 열정을 젊은 피로써 써내던 펜을 놓고서 그가 먹을 간다. 민중운동의 밑불을 지피기 위해 분신했던 열사를 향해 생명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외쳤던 그가 이젠 인적 없는 어느 산중에서 댓잎에 바람스치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먹을 간다. 60인생을 훌쩍 넘기고서 다채롭고 치열했던 그의 삶을 단순화시켜 흑과 백 속에 자신을 담아내려고 그가 먹을 간다.


도덕경에 보면 玄은 ‘玄牝之門’이란 말에서 모든 만물이 생겨나는 암컷의 문이란 뜻으로 쓰인다. 만물이 생겨나는 자궁의 의미를 가진다. 자궁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나오고 다시 입 속으로 모든 생명체들이 그 생명을 다하고 들어간다.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이를 ‘가물하다’라고 해서 해지고 어두워질 무렵의 어둑한 상황을 표현하였다. 가물가물한 그 곳에서 만물이 태동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호인 다석(많은 밤)에도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 현은 하얀 종이 위에 세상의 만물을 그려낸다. 눈 쌓인 초봄의 추위를 뚫고 매화를 피우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난초를 자라게도 한다. 또한 그런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빛을 드러내는 선사들을 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예전에 정열을 바쳤던 그런 세상은 찾을 수가 없다. 번잡하고 치열했던 그의 저항과 투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젠 그 일들을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스스로의 생명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일까?


평화로운 듯 때로는 무표정한 듯 앉아 있는 승려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마음에선 시퍼런 칼날들이 서로 부딪히며 불꽃을 터뜨리고 있다. 달조차도 날카로워 첩첩의 산등성이를 베어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찾기 위한 구도의 치열한 과정이 그의 마음에서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치열한 전장을 지나서 비로소 다다른 고향집에 핀 매화꽃이 아닌가?


그 매화 꽃 위로 한 점 봄나비되어 그는 나풀거리고 있다. 환상같은 인생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의 낮을 지나 차가운 바람이는 들녘의 저녁을 지나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밤을 꼬박 새우고서야 다다른 또 다른 새벽에서 그는 몸의 무게를 잊어버린 듯 가볍게 이 꽃잎에서 저 꽃잎으로 훨~훨 날아다닌다. 그렇게 놀다가 다시 해질 무렵이 되면 빈 하늘 속으로 멀어져 한 점 되었다가 사라질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절 언저리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산으로 난 숲길을 따라 그를 뒤밟아본다. 산의 푸르른 신록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콸콸하는 계곡 물소리가 눈 앞을 가로막고 선다.


꽃 禪院


추사가 썼다는

世界日花 祖宗六葉

낮은 문 좌우에


영산홍 한 그루

자산홍 또 한 그루

선원 마당에 맞절하네


내 왼쪽 분홍빛 뺨과

네 오른쪽 자줏빛 볼이


서로 웃음지어

맞부비어

山紅參禪 내리 하는 곳


육백년 古梅와

곁에 선 매화자손들 줄줄이

寒梅參禪하는 그 자리


호남 제일

꽃 선원


미소

꽃드는

자리,


오오

花史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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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7-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도, 달팽이님의 리뷰 제목도 마음을 두드립니다.
玄의 먹이라니!^^

달팽이 2006-07-2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나쁜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FTA에서도 아마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입니다.
님의 마음 속에 그것을 수용할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